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46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13번째 밤이 익숙한 공주 개미에게 다가가 고개를 조아렸다.
“파노트 공주님, 병사가 문안 인사를 드리옵니다.”
“13번째 밤이로구나. 여기에 오는 건 오랜만이네. 지상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여왕님이 좋아하실 새로운 종을 데려왔습니다. 메로트 공주님이 현재 어디 계시는지 아시는지요?”
파노트 공주가 시로네에게 더듬이를 내밀었다.
“이게 새로운 종이야?”
귀족들이 시로네의 존재를 경쟁자로 여긴 반면에 공주의 유전자는 새로운 종에 대한 흥미로 충만했다.
번식 가능 유무를 떠나, 더 나은 유전자를 얻어 내는 것이 곤충들의 지상 과제이기 때문이다.
“신기하네. 너는 잘하는 게 뭐야? 얼마나 오래 살아? 뭘 먹어? 번식은 어떻게 해? 힘은 세?”
온갖 질문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13번째 밤이 명료한 대답을 내놓았다.
“저와 같은 것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뭐어? 정말이야?”
파노트 공주의 더듬이가 더욱 빠르게 시로네를 더듬었다.
“그러면 엄청 강하겠네? 13번째 밤도 강하거든. 파라트라 군대 개미들도 상대가 안 되지.”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13번째 밤이 공손한 페로몬을 내뿜는 가운데 파노트 공주가 몸을 돌렸다.
“좋아, 내가 언니 방에 데려다줄게. 아마 로미트 언니랑 진딧물을 마시러 갔을 거야.”
파노트도 시로네에게 흥미가 동했으나 엄연히 서열이 있었기에 메로트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순리였다.
공주들은 난폭하지 않기에 13번째 밤도 안심하고 시로네에게 따라가라는 턱짓을 했다.
“메로트 공주님이 여왕님에게 데려다줄 것이다. 내 할 일은 여기까지야.”
각자 맡은 바 역할을 하면 그만인 개미 사회에서 13번째 밤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듯 자리를 떴다.
“조금만 기다리면 언니가 올 거야.”
시로네는 단단하게 외벽을 두른 메로트 공주의 방을 둘러보다가 흙이 쌓인 곳에 앉았다.
그로부터 30분 정도를 기다리자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동굴 안으로 거대한 개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메로트 공주구나.’
개미에 대해서 아는 바는 많지 않지만 다른 공주들과 다른 냄새가 났고 의외로 향긋했다.
“새로운 종이래. 어머니를 만나러 왔나 봐.”
동굴 바깥에서 수많은 공주들이 모여서 수군대는 소리가 인공두뇌 외를 통해 전달되었다.
‘아주 난리가 났네.’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얘기해 볼 테니까.”
강력한 페로몬으로 동생들을 쫓아 버린 메로트가 시로네의 눈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네가 새로운 종이로구나. 반가워. 나는 메로트야.”
“안녕? 나는 시로네.”
“바깥세상에서 왔다고 들었어. 거기는 어떤 곳이야? 콜로니보다 재밌는 것들이 많이 있겠지?”
시로네의 생물학적 능력에 관심이 있었던 파노트와 달리 메로트는 그가 사는 세계에 더 흥미가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네.’
개미와 대화를 나누는 것 또한 흥미로웠기에 시로네는 인간들의 세계에 대해 말해 주었다.
“흐음, 도구를 사용한다고.”
시로네의 손가락을 어루만지던 메로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기능절이 굉장히 구체적이다.”
손가락을 지나 손목, 팔과 몸통까지 더듬이로 확인한 메로트가 샤이닝 마법을 올려다보았다.
“그럼 이게 마법이라는 거구나.”
빛의 구체에 더듬이를 집어넣은 메로트가 황홀한 페로몬을 발산했다.
“……기분 좋아. 빛을 만진 적은 처음이야.”
그녀의 경계심이 급격히 사라져 가는 것이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전해져 왔다.
“정말 특이한 종이네. 나도 너희 세상에 가 보고 싶어.”
인간의 관점에서 개미는 세계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지만 반대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거대한 스케일이었다.
‘어쩌면 인간도 똑같을지 모르지.’
새로운 종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메로트의 모습에 시로네도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찮은 것은 없으니까.’
들여다보려 하지 않을 뿐이다.
“어라?”
시로네는 메로트의 턱 밑에 방울로 맺힌 진딧물이 떨어지는 것을 황급히 받아 들었다.
“뭐가 묻어 있는데? 내가 닦아 줄게.”
“응?”
엉켜 있는 턱 밑의 털을 쓸어내리자 메로트가 감전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딧물이었구나. 이제 다 됐다.”
“…….”
한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던 메로트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입구 바깥으로 나갔다.
“어디 가? 여왕님은 어떡하고?”
말을 듣지도 않고 사라져 버리는 모습에 시로네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왜 저러지?”
메로트가 방에서 나오자 수많은 공주 개미들이 그녀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언니, 무슨 일 있었어?”
메로트의 더듬이에서 엄청난 양의 페로몬이 발산되는 것을 깨달은 동생들이 화들짝 놀랐다.
“새로운 종에게 나쁜 말이라도 들은 거야?”
“인간, 아니 시로네가…….”
메로트가 차마 밝히기가 민망하다는 듯 소량의 페로몬으로 속삭였다.
“내 턱 밑을 만졌어.”
“뭐어어어어어!”
기겁한 공주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변태! 죽은 구더기 시체보다 못한 놈! 어떻게 그런 야만적인 짓을 할 수가 있지!”
인공두뇌 외가 바깥의 신호에 격렬하게 반응하자 시로네가 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왜 그래? 뭐가 잘못됐어?”
동시에 어깨를 흠칫한 수많은 공주 개미들이 빠르게 발을 굴려 방사형으로 퍼졌다.
그들 사이에서 페로몬이 쉬지 않고 발산되었다.
“들었어? 메로트 언니의 그…… 만졌대.”
“턱, 턱 밑을? 세상에! 어쩜 저리 뻔뻔한 종이 다 있지? 군대 개미보다 더 야만적이야.”
사갈시하는 기운을 느낀 시로네가 근처에 있는 공주 개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내가 실수라도 한 거야? 말을 해 줘야 알지.”
대답을 해 주는 개미는 없었고, 그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시로네의 흉을 볼 뿐이었다.
“최악의 변태. 나방 껍질 같은 놈. 어떻게 공주의 턱…… 밑을. 정말 참을 수가 없어.”
쏟아지는 비난에 시로네는 억울했다.
“그러니까 도대체 턱 밑이 뭔데?”
“꺄아아아악!”
공주들이 경악의 페로몬을 발산하더니 혼란스러운 몸짓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 들었어? 저 인간이 대놓고 그걸!”
순식간에 메로트의 방 앞이 텅 비어 버린 상황에 시로네가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자리에 남아 있는 메로트가 한숨을 내쉬듯 고개를 떨어뜨리며 다가왔다.
“네가 닿은 곳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부위야. 목숨과 직결되어 있기도 하지만 혼인비행에서 허락의 징표가 되기도 해. 공주들은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에게도 그…… 만지게 하지 않아. 심지어 같은 공주들끼리도.”
“어, 그러니까…….”
눈을 굴리던 시로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미안해! 정말로 몰랐어! 나는 그냥 진딧물이 털에 묻어 있어서 닦아 주려고 턱…….”
“됐고!”
황급히 시로네의 말을 끊은 메로트가 시로네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방향을 틀었다.
“모르고 한 일이니까 괜찮아. 나도 처음이라 당황했을 뿐이야. 따라와. 어머니를 만나게 해 줄 테니까.”
“응. 미안해.”
메로트를 배려한 시로네는 그녀의 뒤를 따라 콜로니의 핵심 시설에 도착했다.
“어머니, 소개해 드리고 싶은 종이 있어요. 인간이에요. 이름은 시로네고요.”
시로네는 개미굴의 천장까지 닿아 있는 거대한 여왕개미의 모습을 감탄스럽게 올려다보았다.
‘저 개미가…….’
수십만 마리의 개미들을 통제하는 콜로니 시스템의 정점, 가네트였다.
해방의 열쇠 (2)
“메로트.”
가네트의 페로몬이 발산되자 인공두뇌 외가 사상 최대의 떨림을 일으켰다.
“큭!”
콜로니의 수많은 개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목소리부터 달라야 할 것이다.
“넌 바깥세상을 동경했지. 마치 어릴 때의 나처럼 말이야. 오늘은 신기한 것을 가져왔구나.”
가네트 콜로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이미 시녀 개미를 통해 접수한 상태였다.
“마음에 드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소곳이 날개를 접고 경의를 표한 메로트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에게 말한 것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려. 네가 구하는 해답을 찾기를 바랄게.”
메로트가 자리를 피해 주자 가네트의 엄청나게 긴 더듬이가 시로네 쪽으로 다가왔다.
“들은 적이 있다. 인간에 대해서 말이야.”
개미에게 듣는 인간의 정의는 시로네가 알고 있는 인간과 전혀 달랐으나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인간은 아주 크다고 했는데, 너는 작구나.”
“그건…….”
시로네가 안드레에 대해 설명하자 신중하게 듣고 있던 가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많은 세계로 나뉘었다는 것이지? 하나하나가 모두 독립적인 세계라면…… 마치 우리를 보는 것 같구나.”
안드레는 개미의 콜로니 시스템과 유사했다.
“바로 그거예요. 특별한 기준을 통해 구분된 세계들. 그리고 이 세계의 기준은 바로 여왕님이죠.”
가네트가 콜로니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래서 묻고 싶은 건?”
시로네는 생각의 속도로 질문을 쏟아 냈다.
“시스템요. 일꾼과 병사를 나누는 기준이 뭐죠? 가네트 콜로니가 나아갈 비전은? 방의 배치나 영토의 크기는 어떤 기준을 통해서 정해지는 거죠?”
개미들이 콜로니를 건설하여 번영하는 것이 안드레의 1만 9천 세계와 유사하다면 여왕의 의도를 통해 거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터였다.
“식량 공급이 부족해지면 일꾼들의 노동량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공주들과 귀족들이 자원을 낭비하는…….”
가네트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었다.
“그런 게 아니란다.”
“네?”
“질문의 의도는 알겠지만, 나는 네가 원하는 대답을 줄 수 없을 것 같구나. 콜로니를 건설하면서 그런 복잡한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요?”
거핀은 아무런 기준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1만 9천 세계를 분리시켰던 것일까?
“그럼 어떻게 이토록 정밀한 시스템을 구축한 거죠?”
“다만 이런 건 있었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당시를 회상하던 가네트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곳에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
시로네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내 자식들이 안전했으면 좋겠다. 누구도 희생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새로운 콜로니를 건설하고…….”
가네트는 다시 시로네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너의 질문을 이해할 수가 없구나. 어째서 그런 걸 생각하지? 우리는 이미 사랑이라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니? 내 콜로니는 조금도 복잡하지 않아. 복잡한 것은 너의 생각이 아닌가 싶구나.”
“어…….”
시로네는 이마를 짚고 물러섰다.
‘이곳에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 세계에서, 이 시스템에서.
‘1만 9천 개의 기준 같은 건 없어.’
오직 하나의 기준이 혼란한 시공간을 1만 9천 개의 세계로 분리시킨 것이다.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목적의 실현에, 시로네는 벅찬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모든 것에 대한 사랑.”
박애라고 부른다.
***
미궁 안드레-제1583번 세계.
화이트블랙에 거주하는 2천 명의 1년이 걸린 생존 시험이 시작되었다.
화이트 구역의 입구에는 참가자 10명 외에도 많은 주민들이 모여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의지는 조만간 아나키 산에서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게 될 참가자들에 비할 게 아니었다.
‘정말 이길 수 있을까?’
생산물의 80퍼센트가 걸린 대결임에도 막상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아하니 딱히 단련한 자들은 없었다.
‘하긴, 나도 이런 식은 싫은데…….’
튀는 자가 먼저 후보군에 오를 것이고, 시로네는 근래 화이트에서 가장 튀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블랙은 일상이 전쟁인 구역.
‘약한 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나.’
20퍼센트의 생산량으로도 충분히 독점이 가능한 시스템이기에 강자들이 굳이 목숨 건 게임을 할 이유는 없었다.
촌장이 주민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폭력을 숭상하는 자들과 결전을 치러야 합니다. 율법의 전장, 아나키 산으로 향하는 참가자들의 무운을 빌어 주십시오!”
박수갈채가 터졌으나 시로네를 포함한 참가자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율법의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촌장이 목이 찢어져라 소리치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집마차를 타고 아나키 산으로 이동했다.
‘운송 목적이라지만 사실은 감옥이네.’
내부는 깔끔했으나 마차를 호위하는 사람만 수십 명이었고 도주하는 순간 어떻게 돌변할지 몰랐다.
“시로네라고 했지?”
맞은편에 앉은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