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49
“카르?”
-인과율의 위배 정도를 뜻합니다. 카르가 낮을수록 시스템이 예측하기 쉽고, 카르가 높을수록 예측이 어렵습니다. 보통은 윤회를 거듭하면서 카르를 높여 가지만, 90퍼센트를 넘도록 설정하지는 않아요. 시스템을 위협하기 때문이죠.
화면 속의 병사가 화살을 맞아 죽어 가고 있었다.
“죽으면 어떻게 되지?”
-꿈에서 깨어나는 거죠. 캡슐에서 나오면 드론이 정밀 검사를 실시합니다. 유토피아에서 며칠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다시 윤회를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알지 못하잖아? 스트레스가 엄청날 텐데 부작용은 없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르고는 순순히 인정했다.
-유토피아 프로젝트의 가장 큰 난관이었죠. 닫힌 세계까지는 좋은데, 죽음의 공포를 겪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국의 대표들은 아주 효율적인 하나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기에 이릅니다.
“어떤 프로그램인데?”
-신.
에이미의 홀로그램이 검지를 세웠다.
-신 프로그램이 도입되자 시스템의 안정도가 놀랄 만큼 향상되었습니다. 끝이 아니라는 개념이 스트레스 지수를 90퍼센트 이상 떨어뜨린 것이죠. 따라서 아르고에서 특정 카르 이상의 존재는 신을 구축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화면 속의 병사가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장면이 비춰지더니 갑자기 노이즈가 생겼다.
“이건?”
1인칭시점으로 오색찬란한 빛의 터널을 질주하는 화면이 끝없이 이어졌다.
-임사 체험 프로그램입니다. 삶의 회차가 종료되고 현실로 업데이트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전자기 터널이죠. 여기서 현실의 기억을 복구합니다. 가끔 로딩 중에 변수가 생겨 되돌아가는 경우가 있지만, 신 프로그램이 오류를 흡수해 버립니다.
아르고의 렌즈가 조여들었다가 펴졌다.
-다행히 무사히 전송되었군요. 현실로 돌아온 사람들을 돌보는 것도 관리자의 역할입니다.
화면이 유토피아의 배경으로 변하더니 건물 안에 설치되어 있는 유리관이 비춰졌다.
“안 돼!”
뚜껑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금발 머리의 여자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끔찍한 죽음이었지만, 이내 현실의 기억을 떠올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짜증 나. 왜 나한테만 화살을 퍼부어?”
평생의 삶이었으나 하룻밤 악몽을 꾼 것처럼 허탈하고 단조로운 감상이었다.
그녀의 앞에 드론이 날아가 렌즈를 열었다.
-즐거운 여행 되셨습니까? 여기는 유토피아입니다.
“나도 알아.”
같잖다는 듯 대답한 여자가 캡슐에서 빠져나와 걸음을 옮기자 드론이 또르르 따라붙었다.
-정밀 검사를 시작합니다.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물. 신경안정제.”
드론이 기체에서 호스를 빼내어 여자의 입에 물리자 수분이 순식간에 생성되었다.
그런 다음 목덜미에 내려와 픽 소리를 내며 신경안정제를 주입하자 여자의 어깨가 움찔했으나, 반응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드론에게 검사를 받으며 여자가 물었다.
“다음 윤회는?”
-카르 수치 67퍼센트. 시스템상 선택할 수 있는 2,598종이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도 돼?”
-가능합니다.
여자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67퍼센트면 아직 멀었잖아? 현재 남아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멀리 간 사람의 기록이 어떻게 되지?”
-현재 광력 기준으로 오메가 876년입니다.
“와, 진짜 빠르다.”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시로네가 아르고에게 물었다.
“오메가 876년?”
바벨에서 거핀이 남긴 기록에 적혀 있는 시간의 단위였다.
-오메가란 시간의 처음과 끝을 백분율로 나눈 단위입니다. 유토피아 프로젝트의 핵심은 시뮬레이션을 계속 파고들어 가는 것. 오메가 1,000년에 도달하면 다음 시뮬레이션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현실로 나오는 빈도가 줄어들죠.
현실에서 지내는 며칠조차 낭비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을 거듭할수록 오메가 1,000년에 도달하는 기간은 이곳의 시간을 기준으로 짧아질 것입니다.
공겁이기 때문이다.
-10년, 5년, 2년, 계속 줄어들다가 마침내 1초, 0.5초……. 결국 찰나의 시간 동안 영원을 살게 되는 것이죠.
시로네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이곳의 시간은 가고 있잖아? 100년 뒤에는 결국 저들도 죽을 거야.”
-물론 그렇습니다. 다만 유토피아의 주민들에게는 결코 오지 않을 미래예요. 공겁의 세계에서 시간은 무한으로 쪼개지고 있을 테니까요.
진정한 영생의 비밀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 (2)
“영원히 끝나지 않는 세계.”
어쩌면 생물이 우주라는 시스템에 완벽하게 적응한 결과물이 아닌가 싶었다.
시로네는 지금도 유리관에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계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가정한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모두가 다음 시뮬레이션으로 들어간다면, 너의 역할은 끝나는 거 아니야? 아무도 깨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르고는 고개를 저었다.
-생물이란 참으로 이상하여, 시스템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죠. 바로 마음입니다. 같은 감각을 경험하더라도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까지 통제할 수는 없어요.
퀄리어 혹은 감각질이라고 한다.
-이런 주관적 심상이 쌓여서 카르 수치를 높이고 수많은 통찰과 비경험적 지식을 발동시키게 되는 거죠.
에이미의 얼굴에 붉은 조명이 비춰지자 분위기가 적대적으로 변했다.
-감각은 전기신호지만 감각질, 즉 마음 프로그램은 양자 전송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통제가 불가능해요. 양자자체가 통제할 수 있는 신호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결국에는…….
에이미의 홍안이 붉게 타올랐다.
-각성하게 되죠. 공겁을 깨고 이탈해 버리는 것입니다. 시스템의 개연성을 파괴할 정도의 주관적 심상. 이것이 세계에 대한 의심을 만들고 시스템 밖으로 이탈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합니다.
에이미가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자력으로 빠져나왔다는 것은 시스템을 거부했다는 얘기. 꿈을 꾸고 있는 유토피아 주민들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이곳에 계속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시로네의 주위로 수많은 드론들이 날아들었다.
-당신을 이곳으로 초대한 이유입니다.
시로네의 존재는 유토피아에 위험했다.
-유토피아에 당신의 코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정상적인 인과로 도착한 것은 아니죠.
안드레는 시공간을 교란시키고, 그것은 시로네에게 또 하나의 의문을 던졌다.
“우리가 사는 세계 또한 시뮬레이션의 일부분이라는 거야? 공겁으로 끝없이 수렴하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착각은 무언가를 알았다고 전부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죠. 알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입니다. 시스템 바깥에 있는 것은요.
감정의 집중이 흐트러지자 시로네의 뇌파 속에서 에이미의 얼굴이 변질되었다.
-저에게 있어 전체는 아르고의 세계일 뿐, 그것을 뛰어넘는 사유는 할 수 없어요. 저는 신이 아닙니다. 저를 만든 것은 당신들, 인간이니까요.
홀로그램을 지워 버린 아르고가 허공에서 말했다.
-물론, 당신이 사는 세계가 시뮬레이션의 시작일 수도 있죠. 진정한 진짜. 공겁으로 계산했을 때 무한분의 1의 확률이지만, 결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반드시 처음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래요. 그러니 이제 결정하십시오.
“무엇을?”
쾅 소리가 나며 3층 높이에 설치되어 있는 유리관의 뚜껑이 이탈했다.
아르고의 기계음이 차갑게 울려 퍼졌다.
-영원히 윤회하든지, 이 세계를 이탈하든지.
공겁이냐 무한이냐.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
미궁 안드레-제1583번 세계.
화이트블랙의 달이 뜬 산 정상에서, 시로네는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랬다.
“이제 괜찮아. 아무도 널 해치지 않을 거야.”
“으아앙! 살려 주세요.”
겁에 질린 울음소리가 그칠 때까지 시로네는 아이의 등을 다독이며 생각에 잠겼다.
‘화이트블랙. 음과 양. 율법의 수 2에 대한 정의를 통해서 만들어진 세계.’
시로네는 시간이 지날수록 안드레의 실체를 명확하게 깨닫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모든 세계에는 고유의 의도가 깃들어 있다.’
하나의 세계를 탐색한 것만으로 안드레의 전체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통찰의 능력.
이는 1만 9천 개의 세계를 탐색하는 시로네의 사건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양자적 스핀으로 얽혀 있음을 뜻했다.
“형은 화이트 쪽이죠?”
시로네가 생각에서 빠져나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하지만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으나, 신뢰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기에 시로네는 다그치지 않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흐음, 블랙 구역에서 태어난 아이라…….’
여덟 살 아이의 이름은 카이.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화이트블랙의 조화를 발동하는 용도로 생존 시험에 참가한 아이였다.
“저더러 화이트 구역 사람들을 유인하면 지켜 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다들 도망갔어요. 날 죽이려고…….”
카이가 다시 울먹거리자 시로네가 말을 건넸다.
“이제 괜찮아. 생존 시험에서 이기면 되잖아. 내가 도와줄게. 자, 일단 직업 카드부터 확인하자.”
정신을 차린 아이가 품속을 뒤적이자 시로네도 자신이 받은 직업 카드를 꺼냈다.
‘구도자라고 했지.’
눈대중으로 측정한 카드의 크기는 가로 5.2센티미터, 세로 8.6센티미터였고 두께는 4밀리미터 정도 되었다.
카드 뒷면에는 여러 개의 원이 수레바퀴처럼 겹쳐져 있었는데 윤회를 상징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능력이 있지?’
당장 몸으로 느껴지는 변화가 없었기에 시로네는 선으로 3등분이 되어 있는 카드의 앞면을 확인했다.
상단에는 카드명과 등급이, 중단에는 그림이, 하단에는 설명과 효과가 적혀 있었다.
‘구도자. 어라, S등급?’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 못했기에 의외의 등급이었다.
‘설명은…….’
가부좌를 틀고 허공에 떠 있는 구도자의 그림을 확인한 시로네는 하단의 글자를 읽었다.
구도자 : 세계의 진리를 깨달은 자.
특수 능력 : 율법의 정의.
효과 : 두 가지 율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선택한 율법-화이트.
“어라? 이건…….”
화이트 구역과 블랙 구역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우와! 구도자다!”
카이가 시로네의 카드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직업 카드에 대해서 알아?”
“당연히 알죠. 블랙에서는 누구나 배우는걸요! 실제로 카드를 만들어서 예행연습도 해요.”
생산 활동을 하지 않으니 시간은 남아돌 터였다.
“구도자는 정말 좋은 거예요. 어디든 붙을 수 있으니까, 무조건 살아서 돌아갈 수 있죠.”
한쪽 구역의 참가자가 전멸해야 하는 생존 시험이었기에 구도자의 가치가 높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구역이 바뀌잖아. 내가 블랙을 선택해서 승리하면 화이트로는 갈 수 없어.”
“그게 문제예요? 어쨌든 죽지는 않잖아요.”
시로네는 문득 깨달았다.
‘그런 것인가?’
화이트든 블랙이든, 생명을 가진 자에게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카이, 네 직업 카드는 뭐야?”
시로네가 묻자 카이는 고사리손으로 쥐고 있던 카드를 천천히 뒤집었다.
“저는…… 이거예요.”
B등급이었고, 카드명은 마술사였다.
마술사 : 거의 대부분을 속이는 자.
특수 능력 : 매직 카드.
효과 : 화이트블랙의 웨폰 카드 중 한 장을 임의의 카드로 바꿀 수 있습니다. 단, 효과는 기존의 카드를 따릅니다.
현재 보유한 매직 카드-직업 카드(마술사).
카이는 실망한 표정이었다.
“이건 저에게 쓸모가 없어요. 카드를 바꾼다고 효과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속임수를 써 봤자 저에게는 아무도 겁을 먹지 않을 거예요. 신체 능력을 올려 주는 직업이어야 하는데.”
시로네가 물었다.
“아까 우리를 공격한 사람 말이야. 그 사람의 직업은 뭐였을 것 같아?”
“아마도 피에로요. 아크로바틱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거든요.”
“흐음, 어차피 직업 카드는 양도가 불가능하니까.”
시로네가 카이를 다독이며 일어섰다.
“마술사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좋은 전략이 될 거야. 내가 함께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하지만 형은 그…… 화이트잖아요.”
시로네가 직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율법을 정의한다.’
카드가 짧게 빛나더니 현재 선택한 율법에서 화이트가 지워지고 블랙이 새롭게 새겨졌다.
“어때, 이러면 같은 편이지?”
“…….”
언제나 강자의 편에 서기 위해 구도자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었기에 시로네의 결정은 의외였다.
물론 언제든지 율법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지만 카이에게 최소한의 신뢰를 주기에는 충분했다.
“네!”
카이가 기운을 차린 표정으로 일어서자 시로네도 미소를 지으며 숲을 가리켰다.
“출발하자. 일단 우리도 웨폰 카드를 모아야지. 아직 남아 있는 게 있을 거야.”
신체 능력이 아무리 월등해도 30분 만에 전부 뒤질 수 있는 아나키 산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