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52
2진수로 이루어진 초기 용언을 해체시키자 무등룡의 고개가 하늘로 솟구쳤다.
“크으으으응!”
“카라토르사!”
날카롭게 소리친 블리츠가 시로네를 노려보며 눈앞에 뇌전의 구체를 탄생시켰다.
“감히 무슨 짓을……!”
카라토르사의 목소리가 블리츠를 막았다.
“궁극의 언어.”
드래곤들이 고개를 돌린 곳에 카라토르사가 거대한 눈을 치켜뜨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과연…… 그런 것인가?”
세상을 구현하는 완벽한 신호가 용언이라면 울티마 시스템은 그 용언을 구현하는 상위 신호였다.
“그래서 이곳에 올 수 있었군. 궁극의 언어로 시간의 봉인을 풀었단 말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거핀이 만든 시공의 감옥을 울티마 시스템으로 개방한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인간이여. 너의 신호가 더해지면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게 어떤 방법이죠?”
카라토르사의 설명은 기괴했다.
“지금보다 이전의 시간이 봉인되어 있지 않은 이상 이미 일어난 사건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곳은 제1번 세계였다.
“그렇다면 되돌릴 수 없는 상태에서 강제로 역사를 바로잡는 수밖에 없겠지. 앞으로 일어날 모든 변수를 예측해서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시간의 사도, 용족의 연산 능력이라면 가능하다. 대략 지금으로부터 673년이 지나면 네가 오지 않았던 것과 같은 역사로 흘러갈 것이다.”
한 방울의 독이 정화되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거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따라서 마스터 코드, 궁극의 언어가 필요한 것이지. 네가 직접 세계에 스며들어 우리가 도출한 결과를 적용시키는 거야.”
“이모탈 펑션이군요.”
자아를 무한으로 확장시켜 시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변수를 울티마 시스템으로 입력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통찰은.
‘이것이 바로 안드레의 봉인을 푸는 방법.’
1만 9천 개의 세계를 동시에 탐험하고 있더라도 각각의 시로네는 고유의 생명을 가진 존재였다.
‘죽고 싶지 않아.’
그렇기에 안드레의 봉인을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도록 만드는 무언가일 터였다.
“인간이여, 지금의 너는 아닐 테지만, 먼 훗날 너의 세계에서 나를 찾아라. 블리츠가 인도할 것이다.”
시로네와 눈이 마주친 블리츠가 시간처럼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희생해 다오. 너로 인해 사라질 수억의 생명을 위해 너 자신을 버려 다오.”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미래를 위해.”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기다릴 수 있어. 참을 수 있어.’
영원한 이별은 아니다.
하지만 다시 만날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흘러야 하는지도 알고 있는 그녀였다.
가히 수만 년의 세월.
오직 시로네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영겁의 세월 동안 홀로 감당해야 할 그리움의 크기였다.
“선택을 해야 한다, 인간이여.”
크게 공기를 빨아들인 시로네는 석양이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수백 개의 눈동자가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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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오프 (1)
미궁 안드레-제283번 세계.
시로네는 문득 깨달았다.
‘이모탈 펑션.’
며칠 동안 고민했던 문제의 해답이 통찰의 회로를 통해서 스며들고 있었다.
정신을 무한으로 확장하여 이 세계를 개방하는 것만이 안드레의 봉인을 푸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일하네!”
흥겨운 페로몬을 발산하는 일개미들이 시야의 끝까지 열을 이루어 식량을 운반하고 있었다.
여왕 가네트의 제안으로 시로네 또한 죽은 곤충의 살점을 들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시로네, 일하는 것은 즐겁지요?”
열을 추월하는 일개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시로네를 돌아보며 페로몬을 발산했다.
“응, 물론이지.”
땀을 닦으며 시로네가 미소 지었다.
“생각에만 몰두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생각 속의 생각에 빠지면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니까요.”
“정말로 중요한 것? 그게 뭔데?”
“글쎄요, 생각을 하는 이유일까요?”
“…….”
시로네가 걸음을 멈추고 눈을 깜박거리자 일개미도 흙을 털어 내며 말을 이었다.
“어떤 일이든 실제로 맞닥뜨리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때로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일 때가 있어요.”
‘생각 속의 생각…….’
미물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성에는 공겁에 대한 나름의 정의가 담겨 있었다.
-가네트 콜로니는 복잡하지 않다.
여왕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일과를 끝내고 가네트 콜로니에 도착한 시로네는 식수 저장고에서 몸을 씻었다.
페로몬으로 소통하는 개미들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지만 시로네는 인간이었다.
‘열심히 일했으니, 조금 써도 되겠지.’
그렇게 흙을 닦아 내고 콜로니의 지하로 내려가자 귀족 개미들이 길목을 점유하고 있었다.
전부 수개미였고, 공주 개미들의 구역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로네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했다.
“비켜 줄래?”
시로네가 전진하자 그들이 펼쳐 놓은 살기의 그물망이 피부로 느껴졌다.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던 다르앤이 앞을 가로막았다.
“특별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나? 천만에. 너는 공주들의 노리개다. 질리는 순간 식량이 되는 거야.”
인간미를 찾아볼 수 없는 야생의 살기를 접할 때면 시로네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알게 된다.
‘본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이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
“비켜 줘. 기분은 이해하지만 나는 다른 종이야. 너희들과 다툴 이유가 없어.”
“그거 알고 있나? 현재 가네트 콜로니의 식량 조달이 어려워지고 있어. 군대개미가 영토를 넓혔기 때문이지.”
“그래서?”
다르앤의 턱이 시로네를 겨누었다.
“인간의 영양소가 얼마나 풍부한지 확인해 보고 싶거든. 그게 귀족의 역할이니까.”
이미 국지전이 잦은 상황이었고, 후세를 이어 가야 하는 귀족들은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하찮은 것은 없다지만…….’
시로네의 목숨도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비켜. 나는 여왕님의 특별 손님이야. 그렇게 지시가 내려졌을 텐데?”
“평시에나 그렇지. 전시라면…….”
다르앤이 턱을 가위처럼 벌리는 그때, 귀족 개미들의 뒤편에서 13번째 밤의 페로몬이 분출되었다.
“그만두십시오.”
그것만으로 불쾌해진 수개미들이 돌아보니 13번째 밤이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르앤이 귀족들을 밀어내고 다가갔다.
“지금 귀족에게 명령을 내린 거냐? 전쟁터 좀 돌아다닌다고 우리가 만만해 보여?”
오늘 국지전에서 승리한 13번째 밤의 몸에는 무수히 많은 상처들이 새겨져 있었다.
“다르앤 님을 생각해서 드리는 충언입니다. 저 인간은 여왕님의 손님이고, 무엇보다 강합니다.”
전투라고는 겪어 보지도 않은 귀족들이 감당할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흥! 너와 똑같은 것을 사용하기 때문인가? 그렇다는 것은 너에게도 복종해야 한다는 말이로군.”
“곡해하지 마십시오. 메로트 공주님의 전언입니다.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공주 서열 1위의 메로트가 전했다면 귀족들도 시로네에게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좋겠군. 빨리 가서 아양이나 떠는 게 어때?”
다르앤이 열어 준 길을 따라 지하로 내려간 시로네는 귀족 구역을 벗어나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덕분에 싸움을 피했어.”
병사는 귀족의 명령을 따르는 존재지만, 13번째 밤은 화신술을 깨달은 개미였다.
“군대개미들의 포진이 심상치 않아. 분위기가 어수선해. 당분간은 자중하고 있어라.”
13번째 밤이 물러가고 숙소에 도착하자, 귀족 구역과는 전혀 다른 환대가 이어졌다.
“어서 와, 시로네. 힘들었지?”
순식간에 시로네의 주위에 몰려든 공주들이 수다스러운 페로몬을 남발했다.
“바깥세상은 어땠어? 죽은 곤충들이 많이 있었어?”
“태양은 어떤 색이었어? 2837번 색?”
메로트가 모습을 드러내자 공주들이 일제히 옆으로 길을 비켜 주었다.
“무사했구나. 다행이야, 시로네.”
콜로니 인근에서 벌어진 국지전은 공주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주제였다.
“군대개미는 우리와 달라. 노동인구를 최소화시킨 대신 수많은 병정개미들을 양산하거든.”
숙소로 가는 길에 메로트가 정황을 일러 주었다.
“그렇게 콜로니를 점령해 나가면서 영토를 확장시키지. 전면전이 벌어지면 피해가 클 거야.”
그렇다고 콜로니를 옮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때는 나도 싸울 거야. 하지만 시로네, 너는 콜로니에 있지 않아도 돼.”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 듯했다.
“너까지 전쟁에 휘말릴 필요는 없어. 떠나고 싶으면 오늘 밤에 떠나. 내가 허락할게.”
“메로트…….”
개미는 미물이다.
최소한 인간의 세상에서 살았던 시로네에게는 목숨을 바칠 정도로 소중한 존재는 아니었다.
‘생명에 더 나은 가치라는 게 있을까?’
숙소로 돌아온 시로네는 흙바닥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사라지고 싶지 않아.’
누군가에게 개미를 보여 주면서 이것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고 한다면 어떨까?
장난이라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고, 진지하다면 뺨을 얻어맞을 게 분명했다.
‘아니, 개미라서가 아니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으니까.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있는 시로네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이모탈 펑션을 개방할 일은 없을 터였다.
얼마나 자고 있었을까.
바깥에서 들리는 천둥소리에 시로네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비가 내리나?’
이곳은 콜로니의 최하층이었다.
“비가 아니야!”
벌떡 일어난 시로네가 인공두뇌 외를 끄집어내자 막대한 정보가 전달되기 시작했다.
“막아! 여왕님의 방을 사수해라!”
“키에엑! 저리 꺼져, 흉물스러운 것들!”
상체를 벌떡 일으킨 시로네가 반동을 이용해 숙소 밖으로 뛰쳐나가자 심장이 멈출 정도로 기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군대개미.’
가네트 콜로니의 병사보다 몸이 2배는 크고, 심지어 머리는 3배나 더 컸다.
그 거대한 머리에 달린 강력한 턱이 교차로 움직일 때마다 개미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아직 죽을 수 없어! 나를 지켜라!”
야밤을 틈타 침범한 군대개미들의 공격에 위층의 수개미들이 모조리 도주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거대한 덩치를 뽐내는 귀족들이지만 군대개미의 거구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병사들은 어디 있는 거야! 빨리 나를 지켜!”
다르앤이 겁에 질린 페로몬을 발산했으나 몰려드는 것은 군대개미들뿐이었다.
“죽어라, 하찮은 종족들아!”
“끄아아아아!”
군대개미에 파묻힌 다르앤의 몸이 뒤집히는 그때, 13번째 밤이 날아들었다.
대지의 율법-개미지옥.
풍경에 디나이가 걸리면서, 다르앤을 깨물고 있던 군대개미들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너…….”
다르앤은 마지막 남은 귀족의 자존심으로 부축을 거부했으나, 이미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시로네.”
13번째 밤이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나는 여왕님을 지킬 거다.”
여왕은 콜로니를 따라 이동할 수 없기에 습격을 당한 상황에서는 가장 불필요한 존재였다.
“나는 13번째 밤이니까.”
이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한 삶이었다.
“기다려! 나를 지켜야 할 거 아냐! 여왕은 이미……!”
다르앤의 페로몬을 뒤로한 채 13번째 밤이 떠나가자 시로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메로트!”
이미 공주의 거처에도 군대개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메로트! 메로……!”
거처에 도착하자 세 마리의 군대개미가 메로트를 짓누른 채로 목을 조이고 있었다.
마치 장난을 치듯 날카로운 턱으로 그녀의 턱 밑을 압박하는 모습에 머리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