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53
“시로네…….”
시로네를 발견한 메로트가 턱을 벌렸다.
“도망쳐! 빨리 도망쳐!”
그 순간 시로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어떤 일이든 실제로 맞닥뜨리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이름조차 없는 일개미의 페로몬이었다.
“도망쳐! 여기에 있으면 안 돼!”
메로트가 사력을 다해 군대개미를 붙잡는 가운데 턱 밑을 물고 있던 개미가 몸을 긴장시켰다.
“가만히 있어! 목을 잘라 주마!”
메로트의 목이 베이기 직전, 포톤 캐논의 섬광이 날아와 군대개미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그대로 쓰러진 군대개미를 더듬이로 확인한 동료들이 상체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뭐야! 저런 종이 있다는 얘기는……!”
페로몬이 채 분사되기도 전에 포톤 캐논에 얻어맞은 군대개미들이 벽에 처박혔다.
‘들여다보면 모두가 똑같은 생명.’
끝없이 윤회의 겁을 순환하며 태어나는 존재들에게 높고 낮음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저 개미들 또한 마찬가지.’
전쟁을 멈추는 방법을 깨달은 시로네가 메로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움직일 수 있겠어?”
“시로네…… 조금 전의 그건?”
마법에 대해서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토록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가자. 보여 주고 싶은 게 있어.”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
미궁 안드레-제847번 세계.
“죽여라! 우리가 당한 만큼 갚아 주는 거야!”
시로네의 코드는 427,621번.
코드네임에 권능을 가진 자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수많은 시민들이 신전으로 쳐들어왔다.
“빌어먹을! 놔! 80만 코드 주제에 나를 건드려!”
몽둥이찜질을 당하던 게일이 참지 못하고 발악을 했으나 여지없이 주먹이 날아들었다.
“닥쳐! 너랑 나랑 뭐가 달라? 그까짓 순위 좀 높다고 나를 괴롭혔겠다!”
9번이라는 높은 코드를 빌미로 수많은 여자들을 희롱했던 게일은 당하는 것도 가장 처참했다.
하지만 낮은 코드의 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울분은 직접 당한 사람들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다 죽여! 다 죽어 버리란 말이야!”
한때는 코드네임의 제왕이었던 드라인이 이미 의식을 잃은 채로 쓰러져 있었으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네가 제일 나쁜 놈이야! 너! 네가!”
어디까지가 높은 순위였는지 기준조차 사라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었다.
“시로네, 무서워…….”
파니카는 시로네의 등 뒤에 숨어 몸을 떨었다.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
순위의 차별이 사라진 세상에서 시로네는 유일하게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주민들도 시로네에게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이미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였다.
‘인간에게 순위 따위는 없다.’
여기서부터 고귀하고 저기서부터 저급하다는 기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시로네? 어디 가?”
파니카의 물음에 시로네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살리지 않아도 좋은 생명은 없으니까.”
마치 온 세상을 끌어안는 것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린 시로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한 줄기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모두 행복하기를.’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페이스오프 (2)
***
성음과 삼보는 운석이라도 추락한 듯 거대한 크레이터가 펼쳐진 정경을 바라보았다.
“저곳이…….”
미궁 제시카의 최중심지였다.
“무언가가 추락한 것 같군요.”
문경의 목소리가 심각한 이유는 크레이터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추락한 물체는 보이지 않는다. 대체 뭐가 떨어졌던 거지?’
볼케이노의 리더, 직스가 중얼거렸다.
“이미르의 어금니.”
볼케이노를 전멸시킨 성음이 강압적으로 안내역으로 세웠지만 어차피 그도 중심지에 도착한 것은 처음이었다.
다만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는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제시카는 아주 오래전, 이미르의 어금니가 추락한 지역이라는 설이 있다.”
“어금니? 고작 이빨 하나가 추락한 것으로 이런 구덩이가 파였단 말인가?”
자그마치 직경 2킬로미터에 달하는 크레이터였다.
“황녀님, 고문서에 의하면 이미르는 1만이 넘는 육체를 흡수한 거인이라고 합니다. 거체의 상태에서 어금니가 뽑혔다면 질량 또한 상당히 크겠지요.”
직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뭔가 착각하고 있군.”
문경이 불쾌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착각?”
“천국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일화의 술은 인간을 녹여 거인을 만드는 술법이다. 그리고 이미르는 일화의 술 10단계에 도달한 전무후무한 거인이야.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
성음이 무심한 태도로 물었다.
“무엇을 뜻하는가?”
“일화의 술에 들어가는 인간의 숫자는 대략 8명에서 10명이다. 그런 거인들이 다시 10명이 모여 다음 단계의 거인으로 탄생하는 거지. 이런 계산에 의하면 일화의 술 10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인간의 숫자는…….”
직스가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100억 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100억…….”
문경은 이미르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내지 못했다.
“그것이 거인의 왕, 이미르다. 100억 명의 정신을 어떻게 통합했는지는 차치하고, 숫자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아. 거체의 상태가 아니더라도 그런 자의 어금니가 추락했다면 이 정도의 구덩이도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게 내 판단이야.”
성음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만약 그렇다면…… 그런 자의 어금니를 뽑아 버린 것은 어떤 사건인가?”
“알 수 없는 일이지. 역사 이전의 누군가가 이미르와 한판 제대로 붙었는지도.”
직스는 광활한 크레이터를 돌아보았다.
“알다시피 거인은 6단계를 넘어선 순간부터 새로운 세상으로 떠날 자격이 주어진다. 이유는 그때부터 텔로미어 레벨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야.”
문경은 진천우주국의 기밀을 떠올렸다.
“부분화와 거대화.”
“그래. 6단계 거인은 신체의 일부분으로 새로운 개체를 만들 수 있다. 또한 텔로미어를 극단적으로 소진하면 거체로 변할 수도 있지. 6단계 거인의 평균 신장은 80미터지만 거대화를 발동하면 2킬로미터에 육박해.”
평생을 거인을 연구하는 데 바친 만큼 진천우주국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정보였다.
“특이한 점은 6단계 이상부터는 평균 신장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거야. 우리는 이걸 응체라 불러. 크기가 줄어드는 만큼 위력이 강해지는 현상이지. 볼케이노는 이미르의 응체가 고작해야 3미터 안팎일 것이라 추정하고 있어.”
“100억 명의 인간으로 만들어진 3미터의 거인인가?”
“아마도 먼 옛날 이곳에서 사투를 벌였던 이미르는 생각만큼 거대하지 않았을 거야. 사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되니까.”
문경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성음이 고개를 들었다.
‘저 높은 곳에서…….’
인공 하늘이 생기기 전의 진짜 하늘에서, 이미르는 어떤 존재와 사투를 벌였을 것이다.
‘어금니 하나의 위력인가.’
그러던 와중에 어금니가 뽑혀서 이곳에 추락했고, 충격파로 미루어 보건대 모조리 쓸려 나갔을 터.
그렇게 문명이 사라진 곳에 거인들이 피라미드를 지어 이미르를 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거인의 유적인가.”
유적에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이미르의 어금니였다.
“그래, 이제 확인했으니 됐어.”
직스의 눈빛이 아련하게 변했다.
“직접 이룬 것은 아니지만 동료들도 이제는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겠지.”
평생을 바쳐 눈에 담은 광경이었다.
“죽여라. 내 역할은 여기서 끝났다.”
동료들을 죽인 성음을 따라 여기까지 온 이유는 오직 볼케이노의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여정을 끝내기에는 이르다.”
성음이 크레이터로 발길을 옮겼다.
“이미르의 어금니. 그게 무엇인지는 눈으로 확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황녀님, 하지만…….”
황급히 다가서던 문경이 삼 보의 거리를 직감하고 급하게 걸음을 멈췄다.
“위험합니다.”
그것이 감정의 본질이었다.
이미르의 부분이 아닌, 진짜 이미르의 신체 일부분이 남아 있는 장소였다.
“혹시라도 변괴가 생길까 우려스럽습니다.”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성음이 혀를 차며 문경을 돌아보았다.
“고작 이빨 하나가 두려우면 어떻게 상아탑 테스트를 치르겠느냐? 내가 알기로 후보 중의 1명은 이미 천국에도 다녀왔다고 들었거늘.”
황성을 떠나기 전에 진천우주국의 안찰이 찾아와 이렇게 일렀었다.
“마마, 상아탑 후보군 중에 1명이 저와 친분이 있는지라 조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름은 시로네라고 하옵니다.”
“조언은 필요 없다. 아이들 장기 자랑이 아닐 터. 목숨을 걸고 싸워서 결과를 내면 되는 일이 아니겠느냐?”
“물론 그렇지요. 마마의 강직한 성품이야 천하가 아는 사실입니다. 하오나, 그렇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쯤 되자 성음도 호기심이 들었다.
“강한가, 시로네라는 자가?”
“강합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튀어나온 말이었다.
“시로네는 분명 강합니다. 하지만 단지 이기고 지고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마마께서도 천하의 여걸이니, 전투의 결과는 하늘이 정하게 되겠지요. 제가 우려하는 것은…….”
살며시 고개를 돌린 안찰은 알페아스 마법학교에서 지켜보았던 시로네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는, 여태까지 마마가 싸워야 했던 자들과 전혀 다른 기질을 가진 인간일 것이옵니다.”
“전혀 다른 기질?”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는 것이 마마의 심성. 또한 절대로 부러지지 않기에 대단한 것이지요. 가히 천 번 단련한 강철 소나무. 하지만 시로네라는 자는…….”
안찰의 걱정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결코 마마를 부러뜨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어떤 강풍이 몰아쳐도 마마께서는 끄떡도 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미풍의 산들바람은 강철도 녹일 수 있습니다.”
성음이 무릎을 때렸다.
“무슨 얘긴가 했더니…… 너 또한 나를 한낱 여인으로 보는 것이냐! 시로네가 어떤 인물이든 내가 마음을 줄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마마가 여인이라서가 아닙니다.”
안찰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성음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니, 어쩌면 생물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어쩌면!”
안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저 마마께서 존재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성음이 표정을 고치고 물었다.
“그렇게 거대한가?”
안찰이 다소곳이 모은 두 손에 이마를 가져다 댔다.
“저로서는 크기를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흐음, 시로네라고?”
“마마, 이번 테스트에서 가장 강력한 후보는 나네라는 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강함은 명백히 눈에 보이는 강함. 마마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지요. 하지만…….”
안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없는 것과 부딪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음의 눈꺼풀이 빠르게 깜박거렸다.
“마마, 시로네를 경계하십시오. 절대로 그를 마마의 간격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성음이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내 일 보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느니.”
회상에서 벗어난 성음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나와 함께 경쟁하는 후보들은 만만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경쟁에 임한다면 나 또한 피해야 하는 위험 같은 건 없느니라.”
성음의 고집을 꺾을 수 없는 문경이 한숨을 내쉬며 뒤를 따르고, 직스도 삼보와 함께 크레이터로 들어갔다.
직경 2킬로미터의 구덩이는 깊이만 따졌을 때도 수백 미터에 달했고 마치 깔때기처럼 구덩이가 좁았다.
‘작다. 정말로 작은 것이 엄청난 위력으로 처박히지 않고서는 이런 구덩이가 생길 수 없어.’
볼케이노의 가설이 사실로 드러나는 광경을 지켜보는 직스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이미르의 어금니는 대체 어디에…….”
성음이 중얼거리는 그때, 크레이터가 거칠게 진동하면서 동서남북의 흙이 밑으로 빨려 들기 시작했다.
“다가오지 마라.”
성음이 일행을 정지시킨 가운데 지면이 꺼지는 자리에서 4개의 거대한 동상이 솟아올랐다.
“저건 고대 병기! 황녀님, 위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