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54
직스가 문경을 말렸다.
“기다려! 저건 욜이다! 시험의 관문이야! 가까이 다가가면 우리도 율법에 붙잡히게 돼!”
천사의 율법에 헤라라는 이름이 있듯, 천국에서는 거인의 율법을 욜이라고 부른다.
-이곳에 도달한 자여.
천천히 솟아오른 4개의 동상이 마침내 지면을 벗어나 10미터 높이까지 떠올랐다.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자세로 성음을 내려다보는 그들의 얼굴은 야수를 닮았고, 기다란 뿔이 이마에 박혀 있었다.
-그대는 우주를 건너는 존재인가?
철로 만든 몸을 부르르 떨면서 내는 소리가 심장을 직접 두드리는 듯했다.
“거인이냐고 묻는 것이라면 아니라고 하겠다. 하지만 우주를 건널 수 있냐고 묻는 것이라면…….”
성음이 소매로 입을 가리며 비웃음을 지었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걸 내가 왜 못하겠니?”
-……욜을 증명하라.
4개의 동상에 달린 기다란 뿔에서 강력한 섬광이 튀어나와 성음을 강타했다.
“황녀님!”
피할 수 없는 율법의 발동에 성음의 몸이 빛에 휩싸인 채로 떠오르더니 엄청난 섬광을 토해 냈다.
“허억!”
엄청난 충격이 성음에게 밀려들더니 그녀의 의식을 까마득한 우주 저편으로 날려 버렸다.
‘이곳은…….’
그녀가 살고 있는 행성이 눈에 보이는 것은 찰나에 불과했고, 이내 시커먼 어둠 속에 촘촘히 별들이 박힌 우주의 정경이 펼쳐졌다.
‘끝없이 날아가고 있다.’
의식이 가히 빛의속도로 멀어지는 관성 속에서 성음은 막대한 스케일의 공포를 깨달았다.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인간 또한 먼지에 불과.’
다시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느껴질 정도로 광활한 거리.
‘그리고 이것이…….’
욜의 섬광에 휩싸여 있던 성음의 몸이 수직으로 세워지더니 꽃잎 같은 입술이 살며시 열렸다.
“나의 일보一步이니라.”
에테르 파동-무간도.
성음이 튕겨 나간 우주 저편에서부터 공간이 구겨지면서 본체를 향해 밀려들었다.
“황녀님…….”
마침내 확인한 그녀의 일보에, 문경이 어깨를 부르르 떨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진성음의 한 걸음은 우주를 건넌다.’
절대로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되었는가?”
성음이 지상에 착지하자 침묵을 지키던 4개의 동상이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동시에 중심부에서 하얀 것이 빠르게 튀어 올라 성음의 앞으로 떨어졌다.
직스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이미르의 어금니!”
남의 신체가 몸에 닿는 것을 싫어하는 성음은 공간을 고정시켜 먼발치에서 지켜보았다.
사람의 것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작은 어금니 하나가 인공 태양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큰일이다! 전설이 사실이었어!’
이미르 정도의 거인이라면 이빨 하나로도 새로운 개체를 만들 수 있기에 문경이 황급히 칼을 빼 들었다.
“뭐지?”
한참이 지나도 반응이 없자 직스가 의견을 냈다.
“이미르는 천국의 군대에서 유일하게 전장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 아마도 그의 의지가 재탄생을 막는 것 같다.”
“흥, 싱겁기는.”
자존심이 상한 성음이 어금니를 던지자 직스가 황급히 두 손으로 받았다.
“라 에너미는 이곳에 없구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할 수 없지. 다음으로 넘어가자.”
처음부터 3개의 미궁을 전부 탐색하는 전략은 오직 진성음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하오면, 어디로 가실 겁니까?”
거리상으로는 안드레가 가깝지만 별을 뛰어넘는 성음에게는 어차피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성음이 지평선 너머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로네를 만나러 가겠다.”
페이스오프 (3)
***
미궁 안드레.
“허억! 허억!”
키도는 안드레의 미로처럼 복잡한 길목에 숨어들어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직 멀었나?’
시로네가 공겁의 수레바퀴를 발동한 지도 어느덧 6일째가 되어 가고 있었다.
“죽은 건 아니겠지.”
1명의 시로네는 이곳에 남아 스피릿 존을 유지해야 하지만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저쪽이다! 추격해라!”
마가 도적단의 목소리에 키도는 한쪽 다리를 절며 미궁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40명에 달하는 자들의 숫자는 이제 7명까지 줄었지만 안드레의 입구를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길! 적들이 너무 많았어!’
객관적인 숫자, 종합적인 전투력,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덕분에 식량도 많지만.’
키도가 인육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슬슬 이것도 물리는데.”
손에 들고 있는 시체의 팔을 잡아 뜯자 찌익 하고 근육이 떨어져 나왔다.
물론 마가 도적단도 안드레 바깥에서 식량을 공수하겠지만 섭식의 키도에게 고수들의 시체는 중요했다.
‘스키마의 기술, 외중력이라.’
새로운 기억이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래서 지박령에 버틸 수 있었던 거로군. 확실히 짜증 나는 기술이야.’
하지만 이제는 키도도 스키마를 구사할 수 있었다.
‘스키마, 인육으로 배웠어요.’
같은 경험이라도 퀄리어(감각질)에 따라 심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억만으로 스키마를 열지는 못한다.
‘교과서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마가 도적단이라는 최고의 실력자 수십 명의 기억을 전부 합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스키마에 대한 관점이 아무리 제각각이라도 공통분모는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내야겠다.”
마지막 한 번의 충돌로 승패가 갈릴 거라는 사실은 마가 도적단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리를 절며 안드레의 입구 쪽으로 가자 마가 도적단이 최후의 만찬을 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주워 온 과자 부스러기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낼 정도는 될 것이다.
“……결심했는가?”
남은 6명의 부하들이 살기를 드러내는 가운데 부단장이 검을 들고 일어섰다.
“여기서 결판이 나겠군.”
40명에서 시작해 7명으로 줄어드는 동안 키도의 기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화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고블린은 타인의 경험을 먹는다.’
그렇지 않고서는 단원들이 죽어 갈 때마다 실력이 껑충 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일찍 간파했더라면…….’
미궁에 가둬 놓고 체력을 깎아내리면 제풀에 지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어쨌거나 지나간 일이었고, 남은 7명이 총공세를 퍼부어 죽이지 못하면 마가 도적단은 전멸이었다.
동귀어진의 살기를 받아들이는 키도의 귓가에 안드레 바깥에서 터지는 폭음성이 들렸다.
‘리안.’
아직도 박녀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힘들 텐데…….’
미궁에 은신이 가능했던 키도와 달리 6일 동안 잠을 잘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을 터.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게.’
각오를 다진 키도가 창을 꺼내 들자 부단장이 검을 사선으로 늘어뜨리며 다가왔다.
“마법사는 어디 있지?”
마가 도적단도 시로네를 찾아내지 못했다.
“나도 몰라. 상관없잖아? 너희들이 죽든, 내가 죽든, 남은 건 그것뿐이니까.”
“그건 그렇지.”
부단장의 검이 키도를 겨누었다.
“비록 고블린이지만, 마가 도적단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너의 실력에 경의를 표한다.”
“킥!”
절로 비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거야.”
회전하는 창을 따라 옆으로 이동한 키도가 순식간에 안드레의 입구를 틀어막았다.
‘더 강해졌어.’
동시에 7명의 마가 도적단이 가진 기술을 모두 끌어내며 일제히 솟아올랐다.
“경의를 표한다느니, 어쩐다느니……!”
바닥을 구르며 창을 휘두르는 키도의 주위로 지박령의 화신술이 발동했다.
“동시에 찔러! 살기를 바라지 마라!”
무섭게 스핀을 먹은 키도에게 7명이 낙뢰처럼 떨어지고, 곧바로 1명의 목이 잘려 나갔다.
“죽여! 계속 공격해!”
왼손으로 땅을 짚은 자세로 엎드린 키도가 오른손의 창을 휘돌리며 튀어 나갔다.
“상대성이론이니! 양자 이론이니!”
수직으로 내리그은 부단장의 일 검에 양날창의 중심부가 뎅겅 잘려 나가고.
“우주가 어쨌다느니, 신이 어쨌다느니!”
둘로 나뉜 창을 양손으로 붙잡은 키도가 상체를 뒤틀자 어깨를 따라 핏물이 솟구쳤다.
“지금이다! 무조건 박아 넣어!”
일렬로 돌진하는 마가 도적단을 노려보며 키도가 둘로 나뉜 창을 붙잡고 소리쳤다.
“오만한 인간들이여!”
지박령의 화신술이 극에 달하면서, 바닥이 파도처럼 일어나는 환영이 그들을 덮쳤다.
“피해! 이것만 피하면 이긴다!”
드러눕듯 허공에 떠오른 키도가 양쪽 어깨를 회전시키며 바닥을 빠르게 굴렀다.
“두 다리를 땅에 박고 살아가는 주제에……!”
6개의 칼날이 섬광처럼 키도를 향해 날아들고.
“어찌하여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가!”
풍차처럼 회전하는 두 자루의 창이 원을 그리며 섬광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
마가 도적단과 키도의 위치가 정확히 역전된 지점에서 모두의 동작이 정지했다.
“경의를 표한다고?”
“커억!”
부단장의 가슴팍이 열리는 것을 시작으로 단원들 모두가 피를 뿜어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
안드레의 입구를 향해 주저앉아 있는 키도가 둘로 쪼개진 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죽음에 대한 애도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것이 키도가 깨달은 사랑이었다.
‘가야 한다.’
떨어뜨린 두 팔에 힘을 밀어 넣은 키도가 다시 창을 붙잡고 안드레의 입구를 나섰다.
전투가 시작되고 6일째의 태양이 떠 있는 풍경은 실로 처참하고도 끔찍했다.
‘정말로 이것이…….’
2명의 인간이 몸으로 싸워서 만든 정경이란 말인가.
‘육탄. 가히 폭격을 맞은 수준이다.’
관광객의 시체가 널브러진 곳에 생존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건물이며 땅바닥이며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리안, 조금만 기다려.’
저 멀리서 터지는 굉음을 들은 키도가 절뚝거리며 안드레의 입구를 벗어나는 순간.
“어?”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시야를 가리더니 무릎조차 굽히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시로네.’
마가 도적단을 단신으로 궤멸시킨 키도였으나 이제는 체력에 한계가 온 것이었다.
‘반드시, 살아서…….’
키도의 의식이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미궁 안드레-제1583번 세계.
모든 카드를 다 꺼내라는 시로네의 제안에 화이트의 참가자 4명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카드를 다 꺼내라고?”
마법사 앞에서 무력시위는 소용이 없다는 건 알지만 마르코는 순순히 따를 수 없었다.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하는 거야? 율법의 싸움에서 무기 카드는 생명과도 같은 거야.”
“나는 제안에 응하겠어.”
놀랍게도 시로네에게 가장 적개심을 드러냈던 밸라드가 순순히 품에서 카드를 꺼냈다.
경비라는 직업이 남들과 다른 촉을 전하는 것이었고, 효과는 상당했다.
“나, 나도 제안에 응할게.”
브리즈와 아트리아가 연달아서 카드를 꺼내 놓자 마르코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이런 식으로 하면 뒤끝이 좋지 않아. 같이 화이트에서 얼굴 보고 살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