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63
시로네가 초췌한 안색으로 고개를 들었다.
“리안이 지켜 주고 있으니까, 나는 괜찮아.”
여전히 미동이 없는 리안의 상태를 살핀 성음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 검사도 죽었다. 아무도 너를 지켜 줄 수 없어.”
“그럼 할 수 없지.”
“뭐?”
시로네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 검이 깨졌으면…… 나도 죽는 수밖에.”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쓰러져 있던 리안의 어깨가 꿈틀, 경련을 일으켰다.
“리, 리안…….”
키도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미르가 뒤를 돌아본 곳에, 눈자위가 뒤집힌 리안이 이를 악물고 서 있었다.
“거기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마라.”
“크크크.”
이미르의 입가가 찢어졌다.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
예상이 적중한 것과는 상관없이 그저 조금 더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다.
“그래, 이제 방법을 알았어.”
그가 시로네와 성음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이 너의 이상이라는 거군. 그렇다면 부숴 주지. 네 눈앞에서 사지를 으스러뜨려 주마.”
이미르라면 능히 그리할 수 있을 터였다.
“내 심장에…….”
어금니가 으스러질 정도로 턱을 문 리안이 온몸에 힘을 불어 넣으며 말했다.
“신념의 왕국을.”
우득! 우득!
전신의 근육이 뒤틀리면서 피부에 수많은 소용돌이의 형상이 생기자 키도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세우소서.”
어떤 생물과도 다른 근육의 형태가 목을 타고 올라가면서 얼굴근육까지 흉악하게 비틀어 버렸다.
‘도깨비.’
성음의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주 좋아! 차라리 지금 이 녀석을 죽여서……!”
이미르의 말이 끝나기 전에 목이 돌아가고, 어느새 그의 얼굴을 강타한 리안의 모습이 뒤늦게 나타났다.
‘맞아, 그랬었지. 그 녀석…….’
까마득히 먼 옛날의 고통을 떠올리는 이미르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야차였어.’
진천에서는 야차를 도깨비라고 부른다.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
무지막지한 권의 폭풍이 몰아치자 눈앞에 스파크가 터지던 이미르의 시야가 완전히 백광으로 가득 찼다.
‘나도 100억 명이 넘는 인간의 총체지만.’
정말로 인간은 이상하다.
‘이렇게 나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오히려 마음은 끝을 알 수 없고.
‘파괴하는 것을 사랑하면서…….’
무언가를 지킬 때 가장 강해진다.
‘오젠트.’
스밀레.
“크하하하하하!”
이미르는 승부의 종착지를 직감했다.
“멋진 전투였다!”
사상 최대의 힘으로 주먹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리안의 눈빛이 강렬하게 불타올랐다.
신적초월-심권마하.
마음이 먼저 때리고.
‘이건 뭐야?’
세상 전체가 리안의 주먹을 따라 빨려 드는 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2개의 주먹이 정통으로 맞부딪치는 찰나의 순간, 이미르는 멋진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나 강력한 힘은…….’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퍼어어어어엉!
이미르가 주먹을 내지른 쪽의 몸통이 날아가는 폭음성이 안드레의 미궁을 뒤흔들었다.
두 개의 시선 (3)
“우와!”
키도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지금의 일격을 예술의 경지라 부르지 않을 사람은 몸통 절반이 날아간 이미르를 포함해도 없을 터였다.
“저, 저런…….”
마법사인 성음과 달리 육체의 궁극을 추구했던 문경은 리안의 주먹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전부 다 담아냈다.’
점과 점의 최단거리는 직선.
‘그렇다면 움직이는 두 점의 최단거리는?’
그것 또한 직선이다.
‘따라서 이미 완성된 직선에는 무한의 곡선이 전부 담겨 있는 것.’
조금 전 리안의 주먹이 그러했고, 리안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피하지 않은 게 아니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문경이 배운 검술 중에 초식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조금 전 리안의 공격을 보노라면 만 가지 곡선이 무슨 소용이냐는 자괴감이 들었다.
“푸우우우우!”
오른쪽 어깨부터 가슴, 옆구리까지 원형으로 소멸한 이미르가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고통스럽냐?”
이미르는 오히려 리안의 안부를 물었다.
“크으으으!”
야차의 상태에서 근육이 울퉁불퉁 뒤틀리더니 꼬였던 근섬유가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고통이란 것은 말이야.”
리안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이미르가 고개를 쳐들었다.
“감각의 극한이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죽음이라고 한다면, 고통은 삶 그 자체다.”
“흐으으으!”
어깨를 끌어안으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리안을 바라보며 이미르가 입꼬리를 올렸다.
“소중히 여겨라.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 생명도 사라진다.
“기다려…….”
리안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쳐들었다.
“아직 듣지 못했어. 오젠트가 왜…….”
이미르는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인가?
“조만간 알게 될 거다. 고통의 극점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이미르의 눈이 감기고 육체의 세포가 스스로를 살라 먹듯 줄어들기 시작했다.
소멸의 과정이 끝나고 난 자리에는 어금니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었다.
“기다려! 크윽!”
인간의 육체로 되돌아온 리안이 엄청난 고통에 몸을 웅크리자 키도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 어떡해! 지금 당장 나가야 해!”
“괜찮아. 그보다 시로네…….”
이미르는 소멸했으나 시로네의 상태는 전보다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폭발이 아니야.’
성음은 덜컥 두려웠다.
‘설마 죽는 건가?’
어쩌면 이대로 하얗게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고 시로네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혀 있어.”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시로네가 중얼거렸다.
“무언가가…… 막혀 있어.”
뚫지 못하면 죽을 테지만, 그것은 1만 9천 개 중의 어딘가에 있는 시로네가 할 일이었다.
“시로네! 일단 리안을 치료하러 갈게!”
마가 도적단과 박녀가 죽었고 이미르마저 사라졌으니 옳은 판단이었다.
키도가 리안을 업었으나 신장의 차이 때문에 아래에 깔린 모양새였다.
성음이 나섰다.
“기다려라. 내가…….”
갑자기 말이 끊어지고, 몸을 돌리던 키도가 황급히 걸음을 멈추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저건?”
어떤 화가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불꽃이 구체의 형태로 아른거리고 있었다.
“너무 늦었다, 시로네.”
그 불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넝마 밖으로 보이는 모든 곳에 문신을 새긴 청년이었다.
“정말로…… 너무 늦었구나.”
나네와 눈이 마주친 순간 리안과 키도가 동시에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범인이라면 따라잡지도 못할 속도였으나 나네의 눈빛은 여전히 무심할 따름이었다.
‘이길 수 없다. 절대로 이길 수 없어.’
미궁의 벽까지 한달음에 도착한 키도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내가 약해서가 아니야. 이 세상의 누구도 저 인간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런 확신이 들 정도의 눈빛이었다.
“황녀님, 저 문신은…….”
“그래. 알고 있다.”
상아탑 후보 중에서 가장 정보력이 월등한 성음이 시로네의 앞을 막아섰다.
“달리아, 아니 사이키델릭 나네. 그렇게 부른다지?”
“이름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앙케 라의 꿈을 삼킨 직후부터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나네에게 수렴하고 있음이다.
‘뭔가 다르다.’
비로소 상아탑 후보 3명이 한자리에 모인 상황이었고, 세 사람 모두 시작과 달라져 있었다.
나네는 성음이 막아서고 있는 시로네를 향했다.
“고통받는 중생을 생각하면 한시도 지체할 수 없지만, 약속을 지키러 왔다, 시로네.”
시로네가 멀어지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약속? 무슨 약속?”
“네가 찾는 곳에 내가 있을 것이다.”
라 에너미가 했던 말에 시로네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직도 모르겠는가?”
나네가 검지와 엄지로 원을 그렸다.
“내가 전체다.”
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단지 언어만으로 진리가 되어 뇌리에 꽂히는 느낌이었다.
“앙케 라…….”
형태도 느낌도 다르지만 결국 전체라면 나네와 앙케 라를 특별히 구별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성음이 나섰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그대 또한 우리의 경쟁자라면 승부를 겨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네의 깊이는 성음도 이미 파악했지만 관철시킨다는 점에서는 시로네보다 편했다.
“그만둬. 상대가 안 돼.”
성음을 무시하는 발언이 아니었다.
“죽을 거야.”
“……상관없다.”
시로네와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적을 고르라면 그녀는 나네를 선택할 터였다.
“너는 좋은 사람이다. 부디 나를 대신해 상아탑에 들어가서 꿈을 펼치도록 해라.”
문경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황녀님!”
“문경.”
성음이 그에게 처음으로 눈웃음을 지었다.
“내 시신은 네가 묻어도 좋다.”
“으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른 문경이 칼을 빼 들고 나네에게 돌진했다.
‘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황녀님!’
생애 최고의 일검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나네는 그저 내리꽂히는 섬광을 지켜보고 있었다.
‘차마 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경의 검이 순식간에 공간을 가로지르며 나네의 이마 1센티미터 앞에까지 접근했다.
‘죽인다! 내가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간격은 더욱 좁아지고, 0.5센티미터, 0.1센티미터, 급기야는 0.0000001센티미터까지.
‘벤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네는 선언했다.
설법-베는 검.
마치 시간을 비집고 태어난 듯 회색빛의 검이 태어나 문경의 검이 도달하기 전에 공간을 수직으로 쪼갰다.
‘죽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