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65
‘그것이 다시 통합되고 있다.’
거핀의 의도를 완벽하게 깨닫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상황에 나네가 걸음을 옮겼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끔찍한 소멸만이 기다리는 이 악몽 속에서, 대체 어떤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인가?”
나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네가 틀렸을 것이다.”
설법-종終.
우주를 소멸시키는 개념을 담은 붉은 검이 천장을 뚫고 치솟더니 빛의 속도로 지상에 내리꽂혔다.
수직의 섬광이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빨랐기에 반응은 불가능.
“크윽!”
그럼에도 키도의 신음성이 들린 이유는 나네의 진리가 땅을 관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나네의 설법, 종終이 지상 바로 위에서 무언가에 막힌 듯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성음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시로네.”
맑은 물처럼 투명해지고 있는 시로네의 육체를 바라보며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마지막까지…….”
만약 나네의 카르가 완벽했다면 이 우주에 그의 진리를 부정할 수 있는 생명체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종終이 꽂히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나네의 깨달음을 부정하는 또 하나의 의견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살고 싶다.”
시로네가 퍼트리고 있는 생명의 기운이 나네가 완벽에 도달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다.
성음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어리석었어.”
강한 것도, 약한 것도, 모두 생명의 윤회를 끝없이 맴도는 한낱 주사위 놀음에 불과.
그렇기에 시로네는 생명 그 자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켜 우주의 소멸을 막아 내고 있었다.
“안 돼.”
성음이 고개를 저으며 울먹거렸다.
“그렇게 떠나 버리면 안 된다, 시로네.”
찬란한 의지로 나네의 진리를 막아 내고 있지만 결국 시로네는 무한으로 퍼져 버릴 터였다.
“네가 틀렸다, 시로네.”
나네가 손바닥을 아래로 짓누르자 설법 종終이 땅을 향해 무섭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동시에 시로네가 발산하는 십자가의 빛이 더욱 강렬해졌으나 이 또한 소멸을 앞당길 뿐이었다.
“찰나의 희망으로는 세계를 구원할 수 없어.”
고작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으로 세상의 고통이 사라진다면 나네는 수천 번이고 육체를 보시했을 터였다.
“인간의 감정이란 것도 지나고 나면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다. 누가 너를 기억하겠는가?”
생명에게 살아 있는 상태란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어느 누구도 시로네를 기리지 않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짐을 떠밀며 고통을 돌려 막고 있을 뿐이다.”
무한히 윤회하고, 그렇기에 모두가 고통스럽다.
“내가 끊을 것이다.”
시로네의 정신이 옅어지면서 나네의 설법 종終이 무서운 기세로 지상을 파고들었다.
“끝인가…….”
문경이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그때, 이제는 연기처럼 풀어져 버린 시로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삶에 의미가 없더라도, 나는 이 악몽 속에서 끝까지 생명을 지킬 거야.”
“어째서? 눈을 감아 버리면 끝나는 세상에서 굳이 고통을 감내하며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 따위는 없어.”
그저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는…….”
완벽하게 빛으로 퍼져 버린 시로네의 육체가 사라지자 목소리가 환청처럼 공간을 맴돌았다.
-이유 없이 존재하니까.
“안 돼! 시로네!”
성음이 달려가 빛으로 퍼져 버린 공간을 허우적거렸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유가 없다고?”
나네를 가로막는 존재는 사라졌지만 그는 설법 종終을 완벽하게 내리찍지 않았다.
“시로네, 그것은 내가 아는 어떤 진리보다도…….”
옳지 않은 결과의 도출이었다.
“그것이 깨달음이냐? 그것이 정말로 거핀의 의도라는 말이냐? 이유 없이 살고, 이유 없이 죽고, 이유 없이 번식하고, 이유 없이 먹는다는 것이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네에게는 답답한 일이었지만, 시로네를 아는 모든 자들에게는 참담한 슬픔이었다.
키도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제 끝인가.”
“아니.”
반면에 리안은 여전히 투지를 불태우며 시로네가 사라진 자리의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라질 리가 없어.”
야차의 의지는 현실을 부정할 정도로 강력하지만 디나이로 시로네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포기해라. 시로네는 무한이 된 거야.”
성음이 서글픈 눈빛으로 주위를 감싸고 있는 투명한 공기를 돌아보았다.
어디에도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그렇게 거대한 정신이 되어 세상에 완벽히 스며들어 버린 것이다.
나네가 말했다.
“슬퍼하지 마라. 이 또한 한낱 꿈이니, 굳이 존재하여 슬픔을 감당할 이유가 무에 있겠는가?”
설법 종終의 손잡이에 손을 얹은 나네가 모든 체중을 실어 강하게 짓눌렀다.
“이것으로 끝이다.”
우주의 끝을 목도하는 누구라도 아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문경은 아예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어째서…….”
나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그곳을 확인했을 때, 종말의 검이 나네의 손바닥을 천천히 밀어내며 올라오고 있었다.
“어째서 관철시킬 수 없는가?”
여전히 나네의 카르는 완벽하지 않았다.
“아직도 내 진리를 부정하는 게 남았다는 말인가?”
“리안! 저기……!”
키도가 가리키는 전방에, 미약한 빛의 입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끝나지 않았어.”
제2940번 세계가 펑 하고 폭발하자 더욱 많은 빛의 입자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이어서 제8765번 세계가 폭발하고, 32번 세계, 10837번 세계, 8546번 세계, 4109번 세계…….
펑펑펑펑펑펑펑!
1만 9천 개의 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해방되자 빛의 무리가 사람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성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가 아니야.”
공겁의 삼매에서 시작된 이모탈 펑션이 각각의 세계를 깨트리며 거슬러 올라오는 것이었다.
키도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시로네에에에!”
빛에는 의지가 없다.
따라서 광자의 응집에 불과한 현상이 정확히 시로네의 형상을 조립할 수 있는 이유는…….
“헥사.”
원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으으으으!”
무한으로 퍼져 있던 정신이 다시 육체를 이루면서 시로네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돌아왔어! 시로네가 돌아왔다고!”
기다리던 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지고한 정신에서 생물로 격하되는 과정은 당사자에게 끔찍했다.
‘섭식과 번식.’
다만 이미 경험했던 일이기에, 생물의 시스템이 장착되는 과정은 전보다 유연했다.
“나네, 세상을 동정하는 너의 마음도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존재할 거다.”
시로네의 또렷한 눈빛을 확인한 성음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말, 말도 안 돼. 저건…….”
불가능한 일이다.
무한으로 확장된 정신이 되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같은 언로커인 성음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딱 한 가지…….’
유일한 방법을 떠올린 성음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시로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한의 마법사.
두 개의 시선 (5)
‘정말로…….’
가능한 경지였던가?
거핀은 이미 말소되었기에 수많은 마법사들에게 가설로만 존재하는 이름.
무한의 마법사.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지만, 진천우주국의 수장은 실제로 존재했던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온 우주를 담았는가?”
나네의 질문은 무심했으나 그의 눈빛에는 어딘가 모르게 기대하는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무엇을 깨달았지?”
시로네가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생명.”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존재하는 것이 죄는 아니다, 나네.”
같은 언어라도 시로네가 내뱉은 말에는 다른 깊이가 담겨 있었고, 이해하는 것도 나네였다.
“단지 태어났다는 이유로 고통을 받는 게 전부라면, 공겁의 굴레에서 영원히 윤회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라면…….”
시로네는 울었다.
“그건 너무나 슬픈 일이니까.”
나네의 눈에 실망감이 스쳤다.
“우주를 담아 얻은 것이 고작 마음인가? 오히려 그 마음이야말로 고통의 근원이 아니던가?”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우주가 아무리 크다 해도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보다 크지 않다.”
부정할 수 있는가?
“마음은 우주를 초월한다.”
모든 이치를 거의 깨달은 나네는 시로네의 말을 최선을 다해 곱씹어 보았다.
“우주가 사라지면 마음도 사라진다.”
존재하기에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일견 옳을지언정 거의 틀렸다, 시로네.”
나네의 설법, 우주를 끝내는 종말의 개념이 담긴 검이 여전히 땅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검이 탄생했다.
“신神은 무심無心하다.”
이 세상의 모든 감정을 제거하는 철색의 검, 무정無情이 머리 위로 솟구치더니 종말의 검에 흡수되었다.
나네의 의지가 강해지면서 땅이 진동하고, 바야흐로 세상의 종말이 오는 느낌이 피부로 들이닥쳤다.
문경이 어금니를 짓깨물었다.
“제길! 저걸 어떻게 막으라는 거야?”
나네의 검화는 현상을 초월한 개념의 영역에서 세계를 압박하고 있었다.
“내가 물러서지 않는 것은 아집이 아니다. 네가 깨달은 그 사랑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고통에 몰아넣을지 알고 있는가? 대가 없는 고통이다. 그들이 가엽지도 않은가?”
우주 소멸까지 남은 거리 0.00001나노미터.
“시작도 끝도 없는, 그저 윤회다.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을 끝내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인가?”
99.9999……퍼센트를 질주하는 나네의 정확한 카르 수치는, 소수점 밑으로 18만 4천 자리까지 뻗어 가고 있었다.
시로네가 말했다.
“우리의 죄가 아니니까.”
인간이 만든 선악이고 인간이 만든 고통일지라도, 존재하는 것에 원죄는 없다.
그렇기에 원인이 없는 시로네는…….
“내가 사랑하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자의 죄를 사하는 것으로 나네의 공을 부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또한 공허하다.”
나네의 배후에서 수십 자루의 검이 펼쳐지더니 시로네를 향해 쇄도했다.
파괴, 소멸, 해체…… 어떤 존재를 지우기 위해 필요한 모든 개념들이 쏘아지고 있었다.
동시에 제1번 세계의 입구가 폭발했다.
“허억!”
시공간을 뛰어넘는 양자의 정보 터널이 개통되면서 박애의 깨달음이 밀려들었다.
그러자 90퍼센트가 훌쩍 넘었던 시로네의 카르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카르 수치 86.24퍼센트.
모든 것에 희생했기에 목적이 없고, 남아 있는 것은 그저 순수한 감정 하나.
‘사랑.’
제283번 세계의 입구가 폭발하면서 카르 수치가 74.31퍼센트로 추락했다.
앞으로 존재할 생명과, 선과 악과, 하찮은 것도 거창한 것도 없는 절대 박애를 향해.
제847번 세계의 입구가 폭발했다.
“아아아아아!”
카르 수치 49.24퍼센트.
시로네의 정신이 동물의 수준까지 격하되었으나, 그렇기에 우리가 마지막까지 가져야 하는 것은 선명했다.
카르 수치 24.11퍼센트.
완벽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떠한 존재도 차별하지 않는 지고지순한 감정.
‘공허하지 않다, 나네!’
나네는 거의 옳지만, 설령 고통이 전부인 세계라도 우리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