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66
‘마음이 우주보다 크다.’
우리에게 우리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카르 수치 1.4퍼센트.
“시, 시로네…….”
붉게 충혈된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시로네를 바라보며, 모두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무한의 마법사를 이해할 수 없듯 지금 시로네에게 벌어지는 일을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엄청난 것을…… 짊어지고 있어.”
카르 수치 0.24퍼센트.
“으아아아아아!”
동물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미물로, 미물에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최하의 위상으로.
하지만 그렇기에 사랑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카르 수치 0.0000017퍼센트.
“큰일이다! 안드레가 붕괴되겠어!”
제9999번 세계의 입구를 지나 1만 단위의 세계가 연달아 폭발하자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헛된 희망을 주는가?”
나네의 설법 종終이 무지막지한 풍압을 퍼트리며 땅을 향해 전진해 나갔다.
“네가 주는 희망이 고통의 씨앗임을 어찌 모르는가?”
“그 고통이…….”
카르 수치 0.0000000000000001퍼센트.
“존재의 증거다.”
카르 수치가 0을 향해 곤두박질치면서 시로네의 정신에 기준이랄 것이 사라졌다.
일말의 주관도 없다.
만물에 평등한 사랑을 분배하는 그에게 감각은 더 이상 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하고.
‘합쳐진다.’
시간과 공간, 시폭감과 박지감이 통합되면서 새로운 감각이 그의 정신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생물이 가질 수 있는 여덟 번째 감각, 슈퍼퀄리어.
초감超感을 통해서 전달되는 모든 정보들이 이 세계의 실체를 까발리는 듯했다.
‘이데아.’
진리를 감각하는 자에게 주관은 있을 수 없다.
“나가! 지금 나가지 않으면……!”
마침내 제19000번 세계까지 폭발하면서, 안드레의 갇혀 있던 시공간이 완벽하게 해방되었다.
시공간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이며 모두를 집어삼키려는 그때 성음이 에테르 파동을 시전했다.
“내가 막겠다.”
그녀가 펼친 공간의 장벽 너머로 시공간을 초월한 수많은 사건들이 중첩되기 시작했다.
“제길! 이거 완전 지옥이잖아?”
시공간의 폭풍에 휩쓸렸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가 성음의 공간 바깥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그때, 사건의 뒤섞임 속에서 고고하게 서로를 마주 보는 시로네와 나네의 모습이 언뜻 스쳤다.
“버틸 수 있는가?”
카르 수치가 완벽에 가까운 나네는 시로네가 시공의 폭풍에 휩쓸리지 않는 이유를 짐작했다.
빛에 휩싸여 있는 시로네가 말했다.
“이 정도면 네가 원하는 대답이 되었을까?”
시공간을 차단하는 빛이 거대한 구체로 확장되자 시공의 폭풍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황녀님! 사라지고 있습니다!”
폭발하듯 퍼져 나간 빛무리 속에서 설법의 검이 재처럼 흩날리고 현실의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전부 날려 버렸어.”
안드레의 동굴은 흔적조차 없었고 관광지로 조성되었던 구조물들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한복판에 서 있는 시로네를 향해 퍼져 나갔던 빛들이 빨려들기 시작했다.
“저, 저건…….”
빛이 정신의 원천인 뇌를 감싸고, 창백하지만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빛의 물방울들이 끝없이 점멸하고 있었다.
설법의 검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던 나네가 천천히 시로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훼인가?”
인지를 초월한 감각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빛의 이름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무한의 마법사만이 구사할 수 있는 전능이었다.
“부정당한 것은 아니다.”
나네보다 카르 수치가 높은 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그를 부정할 수 있는 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너를 부정할 수도 없구나.”
유일한 진리는 아직 이 세계에 성립되지 않았다.
“이제 알겠다, 내가 신이 될 수 없는 이유.”
거핀은 질문을 남긴 것이 아니었다.
“아리안 시로네.”
아니, 헥사라는 존재 자체가 완벽한 진리를 가로막는 최후의 장벽이었던 것이다.
시로네와 나네, 나네와 시로네.
“공이라고 생각한다.”
우주는 허무로 가득하다.
“사랑이야.”
마음이 우주를 초월한다.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지만, 같은 진리를 바라보는 2개의 시선은 이토록 극단적이었다.
“모순. 누구도 정답을 얻을 수 없다.”
편견이 사라진 시로네의 카르는 너무나 미약하지만, 나네가 도달할 수 없는 유일한 지점이기도 했다.
“나는 절대로 옳을 수 없고.”
나네의 손끝이 시로네를 가리켰다.
“너는 절대로 틀릴 수 없다는 것인가?”
그리하여 생물은 여전히 우주의 가장 낮은 위상에서 끝없이 존재의 가치를 번뇌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2개의 기준이 존립할 수는 없는 법이다. 너와 내가 공존하면 수많은 생명이 고통을 받는다.”
“물러설 생각은 없어.”
“…….”
마하가루타는 나네의 깨달음이 자신의 깨달음을 섭렵한 끝에 나온 정반합의 최극단이라 했다.
하지만 시로네의 경지는 나네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정반대 지점에서 빛나고 있었다.
“시로네, 네가 생명을 긍휼하게 여기는 만큼 나 또한 그들을 동정하고 있다.”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겠지. 어느 한쪽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현세의 고통은 계속될 것.”
나네가 활을 쏘는 자세로 두 팔을 벌리자 엄청난 위력을 담은 거대한 검이 탄생했다.
“그러니…….”
몸을 돌려세운 나네가 두 팔을 벌리자 철색의 검이 휘어지듯 아치를 그리며 탄생했다.
“내가 관철시키겠다.”
나네의 설법 파破가 일그러진 형태에서 튕기듯 시로네를 향해 튀어 나갔다.
직선적인 공격이지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일격일 터였고, 순식간에 시로네의 미간에 침투했다.
‘멈춰.’
시로네를 뚫을 기세로 날아온 파破가 공간 속에 얼어붙자 성음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시간을 멈췄어.”
스톱이라 부르는 마법이었다.
‘이미 나를 추월했다.’
스케일 마법의 공간 계열에 에테르 파동이 있다면 시간 계열의 정점은 스톱이라 할 것이다.
“그렇게 풀이했나?”
극상의 마법을 눈앞에 두고 차분할 수 있는 사람은 나네가 유일했다.
“그럼 이 질문에는 뭐라 답할 것인가?”
나네의 왼편에 가장 차가운 개념이, 오른편에 가장 뜨거운 개념이 수십 자루의 검으로 변해 튀어 나갔다.
“설법 상극.”
검이 지나가는 자리를 따라 사막의 모래가 땡땡 얼어붙고 반대편에는 불길이 치솟았다.
“원점.”
우주의 모든 정보를 담은 야훼의 빛이 스피릿 존을 따라 확장되면서 두 손에 작은 빛의 구체가 떠올랐다.
심적 구현-구화球化.
초인지를 감각하는 시로네는 모든 현상을 물질처럼 통제하고, 그 개념은 우주의 기본 형태인 구체를 통해서 발현된다.
“인과의 시작에서 돌린다.”
야훼의 구체 2개가 합쳐지면서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자 태극의 개념이 세상을 회전시켰다.
“크으으으으!”
열기와 냉기가 뒤섞이면서 우주의 규칙에 위배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무無로 풀어졌다.
키도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저게 도대체 무슨 싸움이야?”
누구도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이유는, 현상을 초월한 개념의 충돌이기 때문.
나네 또한 극한의 0에 수렴하는 카르의 경지가 자신과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네의 혀에 새겨진 검이 빛을 잃어 갔다.
“……여기서 관철시킬 수는 없겠구나.”
아득한 싸움이 될 것 같았다.
별을 향해 (1)
나네가 말했다.
“시로네, 네가 나를 부정하는 한 나는 신이 될 수 없겠지만,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시로네와 나네, 어느 누구도 고통으로부터 이 세상을 해방시킬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제부터 세계는 끔찍한 고통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최대한 빨리 이 싸움을 끝낼 것이다.”
시로네는 감당할 생각이었다.
“삶의 끝이 허무라도,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하는 한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
나네의 손끝이 시로네를 가리켰다.
“그렇다면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너다.”
어쩌면.
“대정화기. 우리가 만든 죄악이 현실이 되어 너를 덮칠 것이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
나네의 몸이 연기처럼 풀어졌다.
“악몽이 너무 길지 않기를 바라마.”
나네가 사라진 자리에 사막의 모래 폭풍이 불어와 그가 있던 흔적을 지웠다.
“악몽이라고?”
율법의 양극단에서 균형을 맞췄지만 역시나 자유로운 쪽은 나네였다.
‘무엇을 해도 지는 싸움이다.’
세상을 공으로 정의한 나네는 어떤 참혹한 일도 저지를 수 있는 반면 시로네는 그들 모두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니야, 시로네.”
리안이 다가와 시로네의 어깨를 짚었다.
“세상 모두가 너를 외면해도, 나는 너를 따른다.”
얼마나 아득한 싸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리안이 곁에 있을 터였다.
“나도 동감이다.”
성음이 시로네에게 다가오며 팔을 내밀자 리안의 대직도가 공간을 뛰어넘어 손에 잡혔다.
그것을 리안에게 던진 그녀가 말했다.
“앞으로 인류는 거대한 적에 대항해야 한다. 진천 제국의 황녀로서 좌시할 수는 없는 일.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께 말을 전해 주마.”
진천 제국의 황제라면 성음조차 움직일 수 없는 인물이지만 문경은 묵묵히 그녀의 뒤를 지키고만 있었다.
“상아탑으로 가라. 네가 우리의 삶을 유예시켰으니,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상아탑.”
애초부터 상아탑의 별이 되는 것에 집착한 후보는 아무도 없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모두 함께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어.’
무한의 마법사라는 전대미문의 경지에 오른 시로네조차 나네의 대업을 완벽하게 막아 낼 수 없었다.
어느 한쪽으로 승부가 나지 않는 이상 수많은 희생이 따를 것은 자명한 일.
“상아탑으로 가겠어.”
성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다. 내가 데려다주지.”
에테르 파동이라면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상아탑으로 직행할 수 있을 것이다.
키도가 말했다.
“나는 상아탑으로 가지 않을 거야.”
시로네는 키도의 눈빛을 보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떠날 생각이구나, 키도.”
“내가 깨달은 것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어. 지금은 너무 혼란스러워. 이해할 수 있겠지, 시로네?”
단지 아는 것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다시 앎으로 가는 여정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당연하지. 너의 삶이니까.”
키도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리안이 대직도를 등에 꽂으며 말했다.
“시로네, 나도 상아탑으로는 가지 않을 거야.”
이번에도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지.”
이미르를 쓰러뜨렸지만 고작 어금니에 불과, 최후의 전쟁에서 시로네를 지키려면 더욱 강해져야 한다.
“시로네, 너는 상아탑의 별이 될 거야.”
어쩌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초감을 연 시로네였기에 리안도 잠시 곁을 떠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너에게 어울리는 기사가 되어야겠지. 항상 뒤만 쫓는 것 같지만, 이번에도 나에게 시간을 줘.”
문경은 리안의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직도 더 올라갈 경지가 남았다고 보는 것인가?’
이미르의 몸통을 박살 낸 리안의 무력은 진천의 검사인 그가 보기에도 따라잡을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리안과 키도는 의지가 되는 동료지만 나네의 대업을 막기 위해서는 그리움을 감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