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69
루버가 바라보는 승강기 안에 시로네와 미네르바가 나란히 서 있었다.
“미네르바 씨, 언제 오신 겁니까?”
먼저 승강기 밖으로 걸음을 옮긴 미네르바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녀가 차가운 눈으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자 누구도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 사람이 사신이라 불리는…….’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만 맡아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공포가 밀려들었다.
“잠깐만…….”
미네르바를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인 쯔오이가 놀란 표정으로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저런 사람하고 단둘이 승강기를 탔다고?’
시로네의 표정 또한 딱히 좋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느끼는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뇌의 환영이 무표정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몽인 루버가 천천히 다가가 물었다.
“오랜만입니다, 미네르바 씨. 하지만 상아탑 내부에서 이런 살인적인 마법을…….”
“이것으로 결정됐다.”
루버의 말을 끊은 미네르바가 뒤편에 서 있는 시로네를 흘끗 노려보더니 몸을 틀었다.
“인류안전집행부는 나네를 죽인다.”
시로네는 미네르바를 용서했다.
“가자, 뇌.”
그녀의 직속이라고 할 수 있는 성 뇌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네르바의 뒤를 따라 멀어져 갔다.
“다짜고짜 그게 무슨…….”
쯔오이가 황당하게 돌아보며 중얼거리는데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네요.”
태성의 능력 가이아를 통해 시로네가 무한의 경지에 도달했음은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이건…….’
마치 고개 한번 돌린 사이에 갓 태어난 아이가 갑자기 성인이 되어 버린 기분.
“너, 정말 그때 그 꼬맹이 맞아?”
당시에도 시로네는 세계에서 주목하는 유망주였지만 쯔오이의 기준에는 한참을 못 미쳤다.
“그때도 키는 똑같았는데요?”
“장난치지 말고! 어떻게 된 거야? 이런 경지에 도달했으면서 나네를 막아 내지 못했다는 게 말이 돼?”
미네르바가 의문스러워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게요.”
나네의 강함은 직접 상대한 사람만이 알 수 있기에 시로네도 설명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잘 왔네, 시로네 군. 나를 기억하는가?”
몽인 루버의 모습에 시로네는 눈을 가늘게 떴으나, 역시나 큰 감정의 동요는 없었다.
“상아탑 주민이셨군요.”
“통합우주관리부에서 일을 하고 있네. 별들 사이에 지위 고하는 없지만 리더는 필요하지. 앞으로는 자네의 지시에 따르게 될 것 같구먼.”
기존의 오대성이었던 통합우주관리부의 마하가루타가 해탈을 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트웰브 미니예요.”
보르보르의 머리 위에 앉아 있던 미니가 작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두 손을 흔들었다.
“2성급이고요, 스케일 마법을 전공하고 있어요.”
미니의 크기만 봐도 경지를 알 수 있었지만 지금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스케일은 무한이었다.
그녀에게 시로네는 전공의 정점에 도달한 인물이었기에 같은 별이라도 눈빛에는 사심이 가득했다.
“태성님에게 얘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심장이 뛰었는지 몰라요. 혹시 저에게 비법을 전수해 주신다면…….”
“지금 시간이 촉박하네.”
루버가 끼어들자 미니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48시간 안에 나네는 제단을 전부 해방시킬 것이야. 그 전에 태성에게 별의 칭호를 받도록 하게나.”
“그 정도로 급박하다면 우선 나네의 일부터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세계 최고의 마법사들이 모이는 상아탑, 그것도 5성급의 칭호를 받는 일임에도 시로네는 무심했다.
이미 예상했다는 듯 루버가 인자하게 웃었다.
“물론 그렇지만 오대성의 공석을 채우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위급하지. 태성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야. 나를 따라오게.”
통합우주관리부의 행사였기에 다른 부서에 있는 주민들은 그길로 해산했다.
루버와 나란히 걸어가는 시로네는 바닥에서 들리는 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후우! 후우!”
보르보르에게서 뛰어내린 미니가 전력으로 질주하며 시로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괜찮아요? 힘들어 보이는데.”
“아, 그게…… 스케일을 해제하면 너무 커져 버려서. 걱정하지 마세요. 저 달리기 빨라요.”
시로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여기에 타세요. 같이 가요.”
루버가 찌릿하게 노려보았으나 미니는 타오르는 열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시로네의 손바닥에 자리를 잡은 미니가 히죽 웃음을 짓자 루버가 고개를 흔들며 길을 걸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일을 할 수 있는 부서를 선택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일전에 만난 아르테의 말에 의하면, 상아탑에는 5개의 부서가 있고 나름의 철학대로 부서를 고른다고 했다.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오대성은 예외일세. 딱히 부서의 의미가 없다고 해야 정확하겠군.”
미니가 덧붙였다.
“통합우주관리부는 상아탑의 부서 중에서도 지휘부에 가까운 역할이에요. 다른 4개의 부서에서 들어온 안건에 대해 태성과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이거든요.”
“마하가루타 씨도 태성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을 했지. 자네도 꼭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상아탑의 꼭대기에 도착한 루버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위를 가리켰다.
“저 위로 가는 방법 정도는 알아야 할 걸세.”
시로네가 고개를 들자 유리 천장 밖으로 푸르스름한 창공만이 눈에 들어오는 전부였다.
“저곳 어딘가에 태성이 있단 말인가요?”
“태성의 허락이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곳. 유일하게 마하가루타 씨만이 임의로 출입을 허가받았지. 이제는 자네의 자격을 증명해야 할 것이야.”
하늘이 아닌 우주였기에 설령 마법사라고 해도 하늘을 날아서 갈 수는 없을 터였다.
‘나는 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답은 아니었다.
‘임의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태성이 문을 열어 주지 않아도 된다는 뜻.’
미니를 바닥에 내려 둔 시로네가 말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야훼의 빛이 손에 모여드는 것은 세상의 모든 정보가 그의 손바닥 위에 있다는 뜻.
“열려라.”
짧은 음성을 끝으로 시로네의 몸이 빛으로 돌변하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우와, 이건…….”
미니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루버도 무언가를 짐작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옳음을 구사하는 부처와는 다르다. 오히려 세상 만물이 그를 위해 기꺼이 진리를 포기하는 것 같구나.”
그렇기에 기적이다.
기존의 율법을 부정할 만큼, 이 우주는 시로네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루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먼저 모든 걸 주었기 때문이겠지.”
대지성전.
공간을 뛰어넘어 태성의 안식처에 도착한 시로네는 차분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에 별을 담은 듯한 청초한 외모의 여성이 순백의 옷을 흩날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왔구나, 헥사.”
시로네의 눈에 슬픔이 담겼다.
“미안하구나. 나의 아이라고 불러 주지 못해서.”
별에서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태성의 아이일 테지만 시로네만큼은 예외였다.
“이 세상에 너보다 더 가련한 존재가 또 있을까? 하지만 이 우주가 너의 부모라고 생각하렴.”
시로네의 뺨을 어루만지는 태성의 손은 차가웠지만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신이 된 기분이 어떠니?”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한 농담일 테지만 안드레의 1만 9천 세계를 경험한 시로네는 웃을 수 없었다.
“알고 싶은 게 있어요.”
태성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스쳤다.
“저는 유저(사용자)인가요?”
이것이야말로 무한의 너머에 있는 진실.
“아니면 시스템상에서만 존재하는 유령인가요.”
별을 향해 (4)
대지성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시로네의 질문 뒤에 오랜 정적이 흘렀다.
“시로네.”
태성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인간은 존재하는 것에 이름을 지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즉, 지성이죠.”
이름을 짓는 것이 지성의 전부다.
“하지만 무언가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수많은 학자들이 우주의 끝을 탐구하지만.
“언젠가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직 지성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인간의 한계일 뿐입니다.”
정답은 무한의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저라고 해도 우주 바깥에 있는 것을 단언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 여기에 있어요.”
바깥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서 당신이 바라보는 무한의 장막, 그 너머에 무엇이 보이는지는 말해 줄 수 있잖아요.”
“정말로 몰라요. 제가 시로네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적어도 짐작은 할 수 있지 않나요?”
“짐작을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태성은 단호했다.
“땅에 두 발을 딛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짐작을 할 수 있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세계의 끝에서는 그러면 안 돼요. 그건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시로네 군도 알고 있잖아요.”
세계의 본질을 짐작으로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장막 너머는 오직 무無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가 시작일 수도 있어요. 어째서 자신을 부정하는 거예요?”
“부정이 아니라 인정하고 싶은 거예요. 마하가루타 씨가 해탈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죠.”
마하가루타는 지금쯤 꿈에서 깨어났을 까, 아니면 영원한 무에서 소멸을 이루었을까.
“저는 무한의 영역에서 모든 걸 내려놓았기에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시로네가 슬픈 이유는 이것이었다.
“경계를 넘었다면 저도 돌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꿈 밖에서 꿈으로 돌아올 수는 없고, 그렇기에 나네가 옳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네에 맞서 이 세계를 지키려면, 아니 그를 뛰어넘으려면 헥사부터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태성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무한이란…….”
그리고 시로네를 돌아보며 물었다.
“무엇일까요? 공겁은? 인간은? 별은? 모든 것이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에요. 그저 있는 것인데, 우리의 필요에 따라 정의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무한이나 공겁도 우리가 지어 준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성의 검지가 시로네의 미간을 겨누었다.
“심지어 신조차도.”
“…….”
“인간에게 신이라는 개념은 복잡할 이유가 없어요. 믿음의 영역이고, 애초부터 그런 용도로 지은 이름이기 때문에. 하지만 막상 신의 영역에 들어간 당사자는, 그러니까 무한의 마법사라 불리는 시로네가 되면…….”
태성이 팔을 내렸다.
“온갖 모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죠. 당신은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룰 수 있어요. 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보라는 것이 애초부터 인간의 관점이라는 겁니다.”
시로네는 분명 신이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 정의 내릴 수 있는 신이었다.
“시로네 군이 질문을 던진 이유를 알아요. 제8감으로 깨달은 이데아는 그저 존재할 뿐이라서 있을 필요도, 없을 필요도 없고…….”
그렇기에 만물의 현상을 자유자재로 통제하지만.
“그것 또한 인간이 이름 지은 무한일 뿐이라서, 진정한 의미는 바깥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죠.”
태성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또한 헥사는 빛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즉 바꾸어서 풀이하자면…… 특정 개체가 아닌 시스템상에 흐르는 비정상적인 신호에 불과하다는 것.”
막상 태성에게 듣자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결국 저는…….”
태성의 표정이 풀어졌다.
“여기까지가 저의 가정입니다.”
“가정……이라고요?”
“그래요. 한번 해 보죠. 시로네 군이 알고 싶은 것. 세계의 끝에서 무한의 너머를 짐작해 볼게요.”
태성의 다정한 마음이 느껴졌다.
“시로네 군이라면 알겠지만, 저는 별의 환생입니다. 모든 별을 주관하는 제 이름은 가이아. 이를테면…… 제가 사실은 프로그램이라고 해 보죠. 가이아 프로그램.”
태성은 가정이라는 느낌을 강조했다.
“우주가 탄생하고 그 안에 자연계가 생깁니다. 그 자연계를 이루는 2개의 거대한 프로그램이 있어요. 하나는 바로 저, 행성을 주관하는 가이아. 그리고 또 하나는…….”
태성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항성 프로그램, 라입니다.”
라는 태양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가이아 프로그램은 항성 프로그램이 전달하는 에너지를 통해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자연계의 하위 시스템, 생물계가 탄생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생물계에서…….”
“아직 인간을 말하기에는 이릅니다.”
태성이 말을 끊었다.
“라를 동력으로 가이아가 환경을 만들면, 생물 프로그램 아르고네스가 셀을 퍼트립니다. 진화의 가짓수는 무한대지만 실체는 가장 단순한 정보 전달 물질.”
시로네의 눈이 커졌다.
“아르고네스?”
졸업 시험에서 곤충 마법을 전공으로 했던 피쇼가 스스로 숙주가 되었던 외계 생물체의 이름이었다.
“라의 동력, 가이아의 환경, 아르고네스의 셀. 이 3개의 요소를 무한대로 조합시키면 이 넓은 우주에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특정 공간이 반드시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일단 기본적인 준비가 끝나게 되는 거죠.”
“무엇을 위한 준비죠?”
“사용자가 이 세계를 사용할 준비.”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어디까지나 시로네의 짐작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말하는 거예요. 생물이 존재해도 정신을 구축하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우선 진짜 같아야 하고, 그럼에도 죽음의 공포를 상쇄시켜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