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7
시로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맛있겠다.’
루미나의 식구는 4명이지만 화전민촌에서는 한집에 모여 밥을 먹는 경우가 많기에 식기는 충분했다.
10여 명의 아이들이 식탁에 앉자 루미나의 엄마가 삶은 고기를 푸짐하게 덜어 주었다.
그 양을 보자 시로네는 퍼뜩 떠올렸다.
이만큼 음식을 차리려면 돈이 제법 나갈 터였다. 값을 지불하면 될 테지만,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 일이었다.
시로네의 마음을 읽은 알토르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몬스터의 가죽을 팔면 돈이 되니까. 내일부터 작업에 들어가려고. 물론 네 허락부터 받아야겠지만.”
“응? 아니야. 당연히 그래야지. 아, 그리고 그 몬스터의 이름은 울크야. 손톱이랑 송곳니는 꽤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어.”
알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로네라면 당연히 허락하리라 생각했고, 다른 부위도 돈이 된다고 하니 예상보다 큰 소득이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몬스터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식 또한 돈이다. 이름조차 모른 채 시장에 내놓았다가는 후려치기를 당할 것이 뻔했다.
자칫 무두질에 들어간 노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군. 아무튼 고맙다. 울크를 잡아 준 것도 그렇지만, 네가 없었다면 우리 마을은 꼼짝없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을 거야.”
이제 막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이 땅을 포기하고 옮기는 것은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로네는 마을을 구한 영웅이기도 했다.
“그런 말 하지 마. 여긴 나에게도 소중한 곳이니까.”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
삶은 힘들고, 그래서 얼굴을 붉힐 일도 귀족보다 더 많을 테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는 이들이 좋았다.
마틴이 고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애써 얻은 휴가가 이렇게 되어 버려서 미안하네. 차라리 내일 같이 산에 올라가지 않을래? 껍데기랑 손톱이랑 전부 벗기자. 그걸 판 돈으로 재밌게 노는 거야.”
시로네는 아쉬운 마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 포톤 캐논을 분석하고 싶었다.
“아니야. 충분히 쉬었거든. 덕분에 피로도 풀렸고. 내일 아침에 학교로 돌아가야겠어.”
***
저녁 식사가 끝나자 아이들은 해산했다. 달이 뜬 밤이라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밤새 장비를 손질해야 하고 수레도 점검해야 했다.
시로네는 동산에 앉아 능선 아래로 뻗은 화전민촌을 내려다보았다. 아이들이 횃불을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내일의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로 장난을 치며 떠드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리자 시로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여기 있었구나.”
달빛을 가린 그림자에 시로네가 고개를 돌렸다.
“어? 알토르, 어떻게 찾았어?”
“그냥 여기 있을 거 같아서. 예전부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을 좋아했잖아. 그나저나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내가 오는 것도 모르고.”
“어릴 적 생각. 아버지랑 왔을 때 참 많이 뛰어놀았는데. 저기 밭에서 술래잡기도 하고.”
“그랬지. 하지만 넌 혼자서 책을 읽는 시간이 훨씬 많았잖아. 물론 나 때문이겠지만.”
“아니야. 그건 내가 워낙 책을 좋아해서…….”
알토르는 사람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필요 없어. 모른다면 말이 안 되지. 예전부터 아이들은 너를 동경했으니까. 그래서 나도 질투가 난 적도 많았고. 너에게 미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아냐. 내가 이상했던 거야. 사람을 대하는 게 좀 어려웠어. 혼란한 시기였거든.”
열두 살에 마법을 접한 이후 끝없는 번뇌의 연속이었다.
알토르 또한 짐작이 가는 바가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로네의 마법을 보고 깨달은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줄 알았던 소년이 사실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안하다, 시로네.”
“괜찮다니까.”
“아니, 술자리에서 말이야.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둥, 가족을 생각하라는 둥. 너도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을 테지. 내가 주제넘었어.”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깊게 고민한 적은 없었어. 실패한 뒤의 상황도, 내가 얼마나 큰 행운을 얻은 것인지도.”
“넌 행운을 얻은 게 아니라 열심히 한 거야. 그래서 귀족들도 너를 도와주는 거고.”
“하지만 나만 생각한 것도 사실이지. 아직도 결론은 나지 않았어. 끝까지 고민해야 할 거야.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알토르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에게 냉혹한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로네다웠다.
“대단하구나, 마법사라는 건.”
시로네와 알토르는 화전민촌을 내려다보았다.
삶을 바라보는 방식은 달라도, 그들의 눈빛에는 똑같이 다정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어른들은 꼭두새벽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했고 마을에 남은 건 아이들뿐이었다.
루미나의 집에서 조식을 먹은 시로네는 아이들과 함께 산의 초입으로 향했다.
시로네를 배웅하는 와중에도 울크를 해체할 작업 도구를 잔뜩 짊어진 그들이었다.
알토르가 악수를 청했다.
“잘 가, 시로네. 꼭 마법사라 돼라.”
“그래. 너도 잘 지내.”
모든 친구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도 루미나만큼은 말이 없었다.
그녀의 어두운 표정을 보자 시로네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남녀 사이의 일이라는 건 머리로 되는 게 아니었다.
“루미나.”
시로네가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줘서 고마워. 학교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어. 다음에 또 해 줄 거지?”
루미나는 초탈의 미소를 지었다.
마음은 아프지만, 보낼 때를 모를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당연하지! 그러니까 자주 놀러 와. 마법사 됐다고 모르는 체하면 때려 줄 테니까.”
“그래, 꼭 다시 올게.”
루미나와 포옹한 시로네는 소박한 짐을 어깨에 지고 산길을 내려갔다.
그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더니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잘 있어! 건강하고!”
그렇게 시로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루미나는 그제야 고개를 떨어뜨렸다.
시로네가 떠난 것보다 더 슬픈 건, 이제는 그를 좋아할 수도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야, 괜찮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 내는 루미나의 모습에 알토르는 괜히 속이 상했다.
시로네를 향한 연심은 짐작했지만 이 정도로 진지했을 줄은 몰랐다.
“쳇! 그렇게 아쉬우면 말이라도 해 보든가. 뭣하면 내가 두들겨 패서라도 데려올 테니까.”
“아니, 괜찮아. 시로네는 우릴 떠난 게 아니니까.”
양손으로 눈물을 훔친 그녀가 고개를 들자 어느새 맑은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꿈을 향해 가고 있는 거잖아.”
시로네가 가는 길에 따스한 빛이 깃들기를.
***
학교로 돌아가는 동안 시로네는 화전민촌에서 던져진 화두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오젠트 가문의 지원으로 학교를 다니고, 부모님의 희생으로 고급 학문을 공부하고 있다.
‘마법사가 되고 싶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외면해도 되는 것일까?
“하아.”
학교에 도착했으나 여전히 심란한 시로네는 숙소가 아닌 연구회로 발길을 돌렸다.
‘애들은 카지노에서 재밌게 놀고 있겠지. 많이 잃지는 않아야 할 텐데…….’
집문서만은 걸지 않기를 바랐다.
이스타스의 미로를 지나 연구회가 있는 창고로 들어간 시로네는 철문 앞에 멈춰 섰다.
문틈을 타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얼마나 토론이 과열되었는지, 이루키는 전에 없이 흥분한 상태였다.
“이 멍청아! 영구 동력 기관은 불가능하다니까!”
“왜 그렇게 앞뒤가 꽉꽉 막혔냐? 내가 말하는 건 무한 동력이 아니라 제2종 영구기관이라고!”
“그건 엔트로피 법칙에 위배되지!”
“그럼 이건 뭐야? 내가 만든 이건 뭐냐고!”
네이드는 테이블에 놓인 태엽 마차를 가리켰다.
사실 마차라 부르기도 애매한, 바퀴 달린 철 상자였다.
시로네가 입을 열었다.
“어, 저기…….”
친구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더니 네이드가 거두절미하고 태엽 마차를 붙잡았다.
“시로네! 네가 보고 말해 줘. 내가 이걸 만들었다니까. 일단 이렇게 태엽을 감고 바닥에 내려 두면…….”
마차가 원운동을 하며 움직였다. 그런데도 감았던 태엽은 조금도 풀리지 않고 있었다.
이루키가 도끼눈을 치켜뜨며 삿대질을 했다.
“야! 시로네! 속지 마. 저거 완전 사기야!”
“뭐가 사기야? 너도 언제 멈추나 기다리다가 지쳐서 지금 나랑 이러고 있는 거잖아!”
“멍청아! 1~2시간 정도로 증명되는 거면 아무나 다 만들었지! 네가 만든 기관은 단지 효율이 엄청나게 높은 것뿐이잖아! 태엽도 돌려 보니까 더럽게 빡빡하던데! 전기 마찰력 이용한 거 모를 줄 알고?”
“뭐가 어째? 미니어처라서 한계가 있는 거지, 크게 만들면 성능을 100배는 높일 수 있다고!”
“얼마나 크게 만들 건데? 하늘만큼? 말에게 여물을 주고 끌고 가는 게 훨씬 효율적일걸!”
“가능성만 보여 주면 돼! 기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경량화를 향해 나아가게 되어 있어!”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시로네는 바닥을 빙빙 도는 마차를 살폈다.
당장은 아무 의미도 없는 고철일 테지만 언젠가는 수많은 학자들의 손을 거쳐 번듯한 명칭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누군가는, 다시 그 기술을 발전시켜 더 거대한 지식을 만들어 낼 터였다.
‘그런 거였어.’
내가 해낸 것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오만한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책을 사 주지 않았다면, 오젠트 가문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순간 이동 테스트가 없었다면, 이루키와 네이드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은 확률이 연결된 우연의 연속, 그 모든 사건이 자신을 이곳으로 인도했기에.
‘감사합니다.’
그는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올려다보며 자신을 이루는 모든 순간을 끌어안았다.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아. 다른 누군가의 거름이 되더라도 상관없다.’
마법을 선택한 대가는 성공이 아닌, 사랑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는 행복일 테니까.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카지노는 어떻게 됐어?”
“응? 카지노?”
격렬한 토론이 멈추고, 이루키가 대답을 회피하는 반면 네이드는 억울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되긴, 하루 만에 다 털리고 돌아왔지. 제길, 마지막 베팅만 성공했어도…….”
“그래서 내가 스페이드일 거라고 했잖아. 57퍼센트의 확률로 말이야.”
“웃기네! 네 말 들었다가 엄청나게 잃었거든? 그래서 감으로 밀어붙인 거지!”
“시행 횟수가 늘어날수록 오차는 줄어드는 거 몰라? 그때는 스페이드로 가는 게 맞았어.”
“그것도 총알이 있어야 가능한 거야. 자본금이 무한대가 아닌 이상 결국 실패한다고.”
“바로 그거야. 세상에 무한으로 소비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거지. 에너지도 마찬가지고.”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와!”
“하하하.”
시로네가 웃자 이루키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나저나 너 아까부터 왜 그렇게 실실 쪼개고 있어? 뭐 이상한 거라도 먹고 왔냐?”
시로네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친구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표정은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다녀왔어, 얘들아.”
드림 온(3)
***
제4훈련장.
이른 아침부터 훈련장에 나온 네이드와 이루키는 시로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네이드가 잠이 덜 깬 얼굴로 투덜거렸다.
“아, 뭐야. 아침부터 불러내고.”
“보여 줄 게 있다고 했지? 뭔지 감도 못 잡겠어. 안 본 지 고작 며칠이잖아.”
훈련장으로 들어온 시로네가 손을 들었다.
“벌써 와 있었네.”
“덕분에 잠 좀 설쳤지. 무슨 일이야? 별거 아니면 밥부터 사야 할 거야.”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일 자신할 게 없다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기다려 봐. 바로 해 볼게.”
훈련장 중앙으로 걸어간 시로네는 30미터 떨어진 산의 암벽을 살폈다.
‘저 정도면 되겠지?’
성공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자칫하면 학교 기물을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뭔데 저렇게 뜸을 들여?”
네이드가 다시 하품을 하는 가운데 시로네의 눈이 갑자기 부릅떠졌다. 이어서 오른손 위에 빛이 모여들고, 백광을 내는 구체로 탈바꿈했다.
“뭐야, 광자 출력? 출력을 높인 건가?”
“아니.”
이루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발산이 아니야. 저건…… 오히려 광자가 안으로 수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이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으나 듣고 보니 정말로 모여드는 형태였다.
“대, 대체…….”
네이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광자를 압축시킨 시로네가 힘껏 집어 던졌다.
빛의 구체가 섬광으로 뻗으면서 네이드와 이루키의 시야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굉음을 내며 바위가 폭발하고, 튀어 오른 파편이 한참 뒤에야 우수수 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