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71
시로네가 흐뭇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태성이 마지막 행성을 소개했다.
“이번 것은 단연 자연계가 만든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로네가 살고 있는 행성에서도 극히 찾아보기 힘든 수많은 절경들이 끝없이 이어진 행성이었다.
“화산, 태풍, 조수, 지각변동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 중에 단연 최상이죠. 현재는 안정기에 접어들어서 친구들을 데리고 가도 안전해요. 물론…… 산을 오르다가 발을 삐끗할 수는 있겠지만.”
산봉우리가 구름 위로 삐죽삐죽 솟아올라 있고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는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거대한 강을 따라서 밀림이 조성되어 있고, 끝없이 펼쳐진 벌판 위로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으음…… 그렇군요.”
시로네는 처음 태성의 말을 듣고 떠올린 생각을 철회했다.
‘가지고 싶은 게 있었어.’
정말로 가지고 싶었다.
설령 마테리얼로 만든다고 해도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저런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별에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자원도 풍부해요. 이곳에 없는 물질도 많고요. 대량 반입은 별의 균형을 파괴하기에 허가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쓰는 정도라면 채취해도 상관없어요. 여유가 생기면 연금술을 배워 보는 것도 좋겠죠.”
별의 소개를 끝마친 태성이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만약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면…….”
“저 별로 할게요.”
시로네가 손을 들어 천장을 가리키자 태성이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름을 지어 주세요.”
“행성의 이름은…….”
시로네의 눈빛이 잠시 젖어 들었다.
“헥사.”
더 이상 외로운 이름이 아니기를.
“멋진 이름이네요. 그럼 이제부터 행성 헥사는 시로네의 것입니다. 이는 우주의 별을 주관하는 제가 보증하는 것으로, 어떤 자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태성은 시간을 확인했다.
“제단이 열리기까지 하루가 조금 더 남았네요. 그동안 치열하게 싸웠지요.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좋아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정리하라는 의미 같아서 시로네는 조급해졌다.
“아뇨. 차라리 제가 다시 나네에게 가겠어요. 이번에는 확실히 결판을 짓겠습니다.”
태성이 고개를 저었다.
“시로네가 패하면 어느 누구도 나네를 막을 수 없어요. 때를 기다리세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는 것을 여기서 지켜보고만 있으란 말인가요?”
“멸망하지 않습니다.”
태성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시로네, 인간은 약한 존재지만, 나약하지는 않아요. 여태까지 수많은 위기를 헤쳐 나온 그들이라면 호락호락 세상을 내어 주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태성이 지상을 내려다보자 시로네도 유리 바닥 너머의 푸른 행성으로 눈길을 돌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대정화기 (2)
***
태성과 시로네가 내려다보는 행성은 크게 5개의 대륙으로 구분된다.
우선은 상아탑이 있는 북극.
그리고 그 아래에 세계 70개국 중에 절반 이상의 나라가 속해 있는 대륙이 있다.
대륙은 북부, 중부, 남부, 중동으로 구분되는데 북부 대륙에는 삼황계인 카샨과 구스타프 제국이 서로 국경선을 맞닿은 상태로 서쪽과 동쪽을 점령하고 있다.
국가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인 중부 대륙에는 21개의 왕국이 있으며 시로네의 고향인 토르미아 왕국도 포함된다.
남부 대륙은 중부 대륙보다 상대적으로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국력은 중부보다 떨어지는 감이 있다.
하지만 대륙 최남단에 있는 아이론 왕국만큼은 칠왕성 중의 하나로 남부를 대표하는 강력한 국가였다.
중동 대륙의 유일한 왕국인 파라스 또한 칠왕성 중의 하나이며 아카드 사막을 카샨과 분할 점령하고 있다.
중동에서 바다를 건너게 되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육지가 나오는데, 이를 동방이라 한다.
동방의 북쪽에는 삼황계인 진천 제국이 있으며 그 아래로 6개의 왕국이 치열한 2인자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동방의 아래에 있는 섬나라를 지나 적도를 건너면 강난의 고향이기도 한 남방이 나온다.
14개의 왕국이 있으나 지배력은 약한 편이고 대신에 수천 개의 부족들이 고유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간다.
마지막으로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 어떤 생물도 서식할 수 없다는 미지의 대륙 남극이 있다.
그리고 지금.
앙케 라가 대정화기의 포문을 열었을 때부터 차근차근 진행되었던 대업이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있었다.
북극의 코로나 왕국을 제외한 세계 69개국의 나라에 설치된 3,600개의 제단이 열리려고 하는 것이다.
***
아이론 왕국.
칠왕성 중의 하나인 아이론 왕국은 마르샤의 앵무 용병단이 도적단으로 전락한 아픈 기억이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과거의 일.
언더 코드에서 시로네를 구출한 마르샤는 우오린과의 계약을 발동, 이제는 어엿한 S급 용병단으로 아이론 왕국에서 각별한 우대를 받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절벽 아래에서 제단을 내려다보던 프리먼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이제 실력으로 2인자는 아니지만, 여전히 그는 마르샤의 곁을 지키는 부단장이었다.
중키의 날렵한 사내가 보고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1천 개 이상의 제단이 발견되고 있으며 아이론 왕국에만 200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지금 막 완공되었다.
“가능한 일인가?”
왕국 사업이라도 족히 1년은 걸릴 정도로 거대한 제단이 동시다발적으로 지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산 하나를 완전히 깎아서 평지로 만든 토목공사만 해도 인력으로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마법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가장 정답에 근접한 답변이었지만 그럼에도 프리먼은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신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더 이상 눈썹이 나지 않는 창백한 얼굴이 일그러지자 단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병장기를 움켜쥐었다.
“침투할까요?”
마르샤가 직접 지시한 일이니 설령 저곳에 신이 머물러 있다고 해도 가야 할 것이다.
“들어간다.”
프리먼의 지시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단원들이 날짐승처럼 자세를 낮추고 절벽을 향해 돌진했다.
“멈춰.”
목소리는 작았지만 초인적인 감각을 소유한 20명의 대원들의 발길이 일말의 오차 없이 정지했다.
“단장.”
앵무 용병단의 단장 클레이 마르샤가 곰방대를 물고 숲을 헤치며 걸어왔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프리먼이 물었으나 마르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절벽 아래의 제단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생각이 짧았어. 우리가 품을 물건이 아니야.”
상류사회에서 흘러나온 흉흉한 소문들이 아이론 왕국을 세기말적 분위기로 몰고 가고 있었으나, 용병단의 존재 가치는 어디까지나 돈이었다.
대원이 물었다.
“단장,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가 품지 못할 물건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탁월한 계산가인 마르샤가 계획을 중간에 철회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긴급 첩보가 들어왔어. 타 지역의 제단을 조사하고 있던 아이론 왕국의 특수부대가 전멸했다.”
“전멸이라고요?”
타국과의 전쟁이라면 모를까 자국 내에서 아이론의 부대가 전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대체 누가…….”
프리먼이 말을 꺼내려는 그때, 마르샤가 미간을 찡그리며 절벽 아래를 가리켰다.
깨끗하게 닦은 길 위에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은 채로 제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유심히 살피던 프리먼이 마르샤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하얀 목덜미로 침을 꿀꺽 넘기고 있었다.
“지금 당장 철수해.”
“무슨 일이야?”
“설명할 시간 없어. 저건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아니면 뭔데?”
“나도 몰라.”
솔직한 감상이었다.
언더 코더에서 미로의 실력을 접했을 때, 마르샤는 인간이 이보다 더 깊은 경지에 들어갈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건…….’
미로를 능가한다.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앙상한 체구의 노인에게 세상의 모든 풍경이 끌려들어 가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로가 아무리 거대해도…….’
노인보다 무겁지는 못할 것이다.
“불청객이 왔구먼.”
십로회의 서열 1위, 베론.
아미타 반야의 번질번질한 눈동자가 절벽 쪽으로 돌아갔을 때 단원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죽는다.’
마르샤의 말에는 일말의 거짓도 없었다.
“튀어!”
순식간에 앵무 용병단 전원이 절벽 위에서 모습을 감추자 베론이 혀를 끌끌 찼다.
“요즘 젊은것들은 패기가 없어.”
베론의 지팡이가 다시 땅을 찍어 나갔다.
“언제까지 노인네 등골이나 빼먹으려고.”
제단에 도착한 베론이 가장 낮은 층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오래 살았구먼.”
십로회의 간부들은 모두 1만 년 이상을 살았지만 누구도 베론의 수명을 알지 못했다.
‘어찌하여 나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고?’
이 세계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베론이 합죽이처럼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눈앞에 붉은 빛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회장님.”
십로회 서열 7위, 사도 반야 슈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뱀처럼 매끈한 몸매였고 거짓을 다룰 때면 검은 눈동자가 길쭉하고 차가워졌다.
“제단을 개방할 준비가 끝났습니다.”
“…….”
“앙케 라의 지시대로 제단을 건설했지만, 영생자 사회에서도 말들이 많습니다.”
앙케 라는 신이 되기 위해, 나네는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서로를 받아들였다.
“라가 신이 되어 이 세계가 유일해지는 게 우리가 바라던 일. 하지만 지금은…….”
거대한 허무가 밀려오고 있다.
“누군가는 해탈하고, 누군가는 윤회하고, 이제는 누군가가 아예 닫으려고 하는군.”
베론에게는 이 세계가 전부였다.
“언제나 그렇듯 의미를 찾아야겠지. 영생자에게 삶의 의미란 필멸자의 목숨과 같은 것이니까.”
“하오면 나네의 공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없지.”
베론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그래서 이제부터 만들어 볼 생각이네.”
제단의 계단을 밟아 나가는 베론이 뒤를 따르는 슈라에게 물었다.
“자네는 운명을 어떻게 생각하나?”
“시간의 조화가 빚어낸 착각…… 정도일까요? 인과율에 벗어나는 건 없으니까요.”
베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정신 또한 시간의 흐름에 휩쓸리는 모래 알갱이에 지나지 않지. 물고기들이 역류한다고 해서 해수의 흐름이 바뀌지는 않아.”
슈라는 경청했다.
“현재에 씨앗을 뿌리면 미래에 싹이 나겠지. 인간은 그것을 대단한 능력이라고 착각하지만…….”
베론은 제단의 중턱에서 숨을 골랐다.
“사실은 씨앗을 뿌린 순간부터 이미 정해져 버린 것. 바꾸는 게 아니야. 그렇게 흘러가는 거지.”
우리가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미래가 우리에게 들이닥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의 자유의지에 진실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정상을 앞에 두고 베론이 고개를 돌렸다.
“미래를 바꾼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미래를 파괴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씨앗을 뿌려도 싹이 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미래를 살아간다는 것.”
“회장님.”
사도 반야의 경지에 오른 슈라지만 아미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다.
“이 세계의 주인이 그만 닫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응당 받아들여야 할 일.”
베론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의지다.”
현세에 대한 집착, 영생자.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유구한 세월 동안 이 세계에 몸담아 왔던 자신의 의미일 것이라고.
“정正.”
베론은 생각했다.
아미타 화신술-철극.
“크윽!”
율법의 집중을 느낀 슈라는 높은 제단의 꼭대기에서 곧장 뛰어내려 지상에 도착했다.
‘엄청난 사유의 집중.’
베론의 활짝 열린 턱이 부르르 떨리며 쉰 목소리가 거칠게 새어 나왔다.
“그하아아아아!”
세상의 율법이 뒤틀리면서 베론이 내리찍은 지팡이의 극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의 의지는 시간의 파도에 뽑히지 않을 만큼 강력한 구속력으로 이곳에 심기게 될 터였다.
-어리석구나, 아미타여.
천공에서 거대한 목소리가 퍼졌다.
이어서 하늘의 구름이 모조리 응집하여 나네의 얼굴 형상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