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72
“크윽!”
슈라가 사도 반야의 화신술을 발동하자 수많은 십자가들이 구체의 형태로 방어막을 형성했다.
결합의 게슈탈트-신의 교살.
벽지의 얼룩을 보고 유의미한 형태를 떠올리듯, 그녀의 율법은 거짓을 조합하여 실제에 가까운 현상을 일으킨다.
‘절대로 파괴되지 않아! 미로도 부수지 못했어!’
비록 그곳이 자신의 능력에 특화되어 있는 언더 코드의 세계였다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설법-진眞.
나네의 미간에서 도화지처럼 하얀 검이 섬광의 속도로 신의 교살에 내리꽂혔다.
“뭐……!”
치밀하게 조립되어 있던 십자가들이 화학작용처럼 분리되면서 슈라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게 나네.’
앙케 라의 꿈을 삼켜 이 우주에서 가장 옳음에 근접한 슈라의 천적이었다.
“아아아…….”
슈라가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어깨를 떨자 나네의 시선이 베론에게 옮겨졌다.
눈에 보이는 현상은 없었지만 이미 철극은 완성이 되어 시공간에 못 박혀 있었다.
-내가 부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베론의 눈빛에는 자부심과 경외감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당신의 세상이지만, 나 하나 정도라면 부정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오.”
나네의 카르 수치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휩쓸릴 것이다.
얼마나 많은 리셋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시간의 파도에 스러질 것은 자명한 이치.
버틸 수 있는 건 헥사가 유일했다.
“그렇다면 받아들이면 그만. 나는 그저 알고 싶은 것이오, 인간의 정신이란 그토록 하찮은 것이었는지.”
베론이 세상에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었다.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 기록조차 남지 않는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투쟁하는 것이 영생자의 삶이니.”
슈라는 퍼뜩 깨달았다.
‘그래서 제단이 열리기 전에…….’
돌이킬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는 유일한 지점에 철극을 박아 고정불변의 기준을 만든 것이었다.
‘수백 개의 미래가 뒤섞여도, 시작은 언제나 여기다.’
시로네가 만든 나네의 0.1퍼센트, 베론은 그 첨예한 빈틈을 정확하게 찔렀다.
어쩌면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슈라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대정화기 (3)
‘실로 가공할 집착.’
십로회의 간부들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 낸 자들, 따라서 베론의 집착 또한 의미에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나네예요.’
이미 각국의 지배자들이 제단을 파악하고 있음에도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막을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를 막을 방법은 없다.’
-가련한 자여.
베론의 철극은 나네가 도모하는 미래에 걸림돌이 될 테지만 목소리에 원망의 감정은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동정.’
집착에서 고통이 생긴다면, 베론의 철극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집착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내가 너를 고통에서 구원하리라.
나네의 형상을 띠는 구름이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베론을 향해 돌진하는 자세를 취했다.
“슈라, 떠나라.”
“아뇨. 회장님을 지키겠습니다.”
베론은 입가를 비죽, 좌우로 밀어냈다.
“때로는 거짓말이 서툴구나.”
“…….”
“이런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윤회를 거치지 않고 인간이 된 순간부터 오늘만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베론의 턱이 풍선처럼 부풀더니 눈동자가 두꺼비처럼 반쯤 튀어나왔다.
“부처를 죽이는 자만이 부처가 될 수 있다. 나네의 옳음 또한 지금의 옳음일 뿐.”
베론의 입술 사이로 피처럼 붉고 길쭉한 혓바닥이 튀어나오자 슈라의 어깨가 떨렸다.
‘회장님은 진심이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베론이 전력으로 무언가를 도모한 적은 5천 년도 훨씬 전의 일이었다.
“나네를 죽이고, 내가 새로운 부처가 된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신장 2킬로미터가 넘는 나네의 구름이 지상으로 돌진하자 초목이 무섭게 흔들렸다.
“회장님!”
슈라가 소리치는 그때 베론이 광기의 눈동자를 치켜뜨며 지팡이를 쳐들었다.
“이것이 나의 극.”
지팡이로 땅을 내리찍자 대기가 고무 판처럼 흔들리더니 나네의 구름에 뻥 하고 구멍이 뚫렸다.
슈라의 머릿속에 대피 경보가 울렸다.
‘시작이다.’
전투의 규모를 예측하건대 최소한 반경 100킬로미터 밖으로는 벗어나야 마땅한 상황이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전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네 또한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기에 이 대결의 끝을 마지막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갈!”
베론의 지팡이가 두 번째로 땅을 찍자 나네의 구름이 허공에 한 점으로 뭉치더니 폭발을 일으켰다.
거대한 띠가 지평선 끝까지 퍼지는 것을 올려다보며 베론이 중얼거렸다.
“……진짜가 오는가?”
구름이 사라진 자리에 오색찬란한 광채가 탄생하면서 나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법-여래.
슈라의 입술이 멍하니 벌어졌다.
‘아득히 먼 곳에서 온 것 같구나.’
나네를 중심으로 빛의 검이 펼쳐지며 원을 그리자 태양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위가 밝아졌다.
설법-무량.
일순 광채가 폭발하면서 태양광에 맞먹을 정도로 많은 빛의 검이 지상으로 쏘아졌다.
“우오오오오오!”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빛살을 올려다보며 베론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쿠르르르르릉.
천둥 같은 소리가 지상에서부터 솟구치고, 순식간에 반경 1킬로미터가 초토화되었다.
‘회장님은?’
자욱한 연무가 밀려나고 강강한 목소리가 터졌다.
“고작 이 정도로 부처를 자처하는가!”
베론이 지팡이를 회전시키며 빛의 검을 튕겨 내자 설법 무량이 난반사를 일으켰다.
“흐윽!”
슈라는 눈을 질끈 감았으나 워낙에 밝은 빛이라 눈꺼풀을 뚫고 풍경의 실루엣이 보였다.
‘여래를 상대로도 대등하다. 이거 어쩌면…….’
아직 누구도 신이 되지 못했기에, 나네 또한 강함의 끝을 알 수 없을 뿐 불멸자는 아니었다.
“오직 나라는 것에 갇혀 있으니…….”
나네가 미소를 머금으며 두 팔을 펼치자 그의 머리 위로 회색의 검이 부르르 진동했다.
“무아無我를 어찌 깨닫겠는가?”
설법-관貫.
천공에서부터 회색의 선이 그어지고, 어느새 베론의 지팡이를 동강 낸 검이 가슴팍으로 밀려들었다.
“으…….”
10개의 손가락을 활짝 펼친 베론이 가슴을 관통하기 직전 합장하며 칼날을 붙잡았다.
“으아아아아아아!”
율법이 손바닥 사이에 집중되면서 칼날의 침투를 막았으나 육체는 무서운 속도로 뒤로 밀렸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무려 1킬로미터를 밀려나는 와중에도 베론의 율법은 더욱 강하게 압축되고 있었다.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
칼날을 짓이기려는 그때, 나네가 허무한 표정으로 회전하며 다시 베론을 향해 수인을 맺었다.
“설법. 거巨.”
회색의 검이 끝을 모르고 커지면서 베론의 손바닥 사이가 점점 벌어지고, 밀려나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우아아아아아!”
“저건…….”
대지성전에서 지상을 살피고 있는 시로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남반구, 아이론 왕국의 어느 지점에서 치솟은 회색의 검이 행성의 7.8배의 크기로 진동하고 있었다.
‘아니, 전진하고 있다.’
마법사의 감각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미약하지만 분명 초당 1킬로미터씩 나아가고 있었다.
“저걸 버티는 아미타도 대단하군요.”
태성이 물었다.
“어떤가요? 직접 상대해 봤으니 알겠지요. 만약 시로네라면 지금의 설법을 막을 수 있을까요?”
“네.”
스케일의 경지로 봤을 때 얼추 비슷했고, 그렇기에 아직 우주가 닫히지 않은 것이다.
“실체가 아닌 실체의 확장. 율법적으로 방어는 가능해요.”
“흐음.”
태성은 시로네의 의견을 경청했다.
“하지만 끝없이 강해지고 있어요. 결국에는 저도 감당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겠죠.”
그것이야말로 태성이 하고 싶은 말이었으나 아직은 입 밖으로 내뱉을 시기가 아니었다.
혼자도 다수도 아닌, 모두가 맞서 싸워야 한다.
‘비록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흐으으으으!”
나네의 설법 관이 행성에 새긴 18킬로미터의 스크래치의 끝에서 베론은 잔혹하게 얼굴을 구겼다.
‘막아 낼 수 없는가?’
그가 지나온 길을 따라 지평선 끝까지 터널이 생겼고, 열기로 주변에는 불길이 이글거렸다.
‘들어온다.’
이제는 규모를 측정할 수 없는 칼날이 손바닥 사이를 뚫고 가슴팍에 닿자 뜨거운 고통이 밀려들었다.
‘여기가 나의 끝이라.’
문득 떠올랐다.
‘어째서 나는…… 그토록 삶에 집착했을까?’
꾸르륵. 꾸르륵.
베론에게 아직 이름이 없을 무렵, 그는 단지 복스럽게 생긴 독 두꺼비에 지나지 않았다.
꾸륵!
연못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다가 가끔 날파리들이 지나가면 혀를 뻗어 삼키는 시스템.
‘먹고 싶다. 번식하고 싶다.’
매일 같은 욕망을 지닌 채 하루를 되풀이하는 것도 딱히 나쁜 삶은 아니었다.
‘천적! 천적! 천적! 천적!’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독 두꺼비의 천적인 뱀이 베론을 한입에 꿀떡 삼켰을 때였다.
…….
뱀의 맹독은 두꺼비의 독보다 더욱 무서웠고, 갑갑한 위장 속에서 그는 공포에 질린 채 눈만 껌벅거렸다.
‘죽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이유는, 그렇게 되도록 태어난 생물의 숙명일 터였다.
‘괴로워. 답답해. 녹아내린다.’
수많은 독 두꺼비가 그랬듯이, 베론 또한 뱀의 위장 속에서 양분이 되어야 마땅할 일이었다.
‘죽는다고?’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이 소멸하는 것이다.
끼에에에에! 끼에에에에!
마비 독에 의식을 잃어 가는 상황에서 베론은 크게 입을 벌리고 울부짖었다.
‘죽고 싶지 않아! 이대로…… 이대로……!’
점액질에 스며드는 독성의 농도가 강해지자 뱀의 위장이 더욱 강하게 압박해 왔다.
살려 줘.
천적은 먹잇감을 소화시키는 모든 능력을 날 때부터 타고나지만 이번에는 꽤나 독했다.
뱀은 거칠게 꿈틀거리며 소화를 촉진시켰고, 어쩌면 그렇게 끝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뱀의 가죽을 뚫고 베론의 등을 찍었다.
꾸르르륵! 꾸르르륵!
뱀의 위장이 다시 베론을 뱉어 내기 시작하고, 점액질이 송곳니로부터 피부가 찢어지는 것을 막았다.
바깥으로 빠져나온 베론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뱀은 천적 살쾡이에게 물어뜯기고 있었다.
‘살았다!’
베론이 발버둥치지 않았다면 뱀은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고, 살쾡이도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으리라.
‘살았다! 살았다!’
미친 듯이 도망쳐서 호숫가의 깊은 곳으로 숨어든 베론은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꾸르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