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79
인간, 그것도 여자의 위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충격에 가시아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는 절대로 못 지나가!”
강난이 채찍처럼 정강이를 휘두를 때마다 마족들의 무릎이 부서지고 머리통이 폭발했다.
“……그런가?”
마족에게 잔인함이란, 인간이 배를 채우기 위해 기꺼이 돼지를 씹는 것만큼이나 당연했다.
“전군 진격하라!”
모든 마족들이 강난의 앞에서 좌우로 갈라지며 미궁의 깊은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안 돼! 거기는……!”
끔찍한 상상을 한 강난이 창백한 얼굴로 소리치는 그때, 가시아스가 대검을 휘둘렀다.
“우오오오오오!”
배에 톱날이 박히자 강난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크아아앙!”
늑대의 소리를 내며 복부를 끌어당긴 강난이 두 팔꿈치와 무릎으로 칼날을 물었다.
람무아이 타격기-아랑의.
늑대의 환영을 노려보는 가시아스가 그 상태로 검을 휘둘러 벽을 무너뜨렸다.
쿠르르르릉!
“크으으으!”
바닥을 구른 강난이 엎드린 상태로 복부를 붙잡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그때, 쨍 하고 톱날 대검이 부러졌다.
‘지옥철로 만든 검을 부수다니.’
전사로서 그녀를 인정하지만, 사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비겁해질 수 있는 게 마족이었다.
“미안하지만, 여기까지다.”
강난이 벌떡 일어섰다.
“가올드!”
아무리 미궁이 복잡해도 이 정도의 병력이라면 결국 누군가는 최하층에 도달하고 말 터였다.
“사단장님! 여깁니다!”
바로 아래층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강난이 계단을 내려가자, 가올드의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 돼에에에!”
복도의 끝에서 소리친 강난이 땅이 부서져라 박차며 몸을 날리는 순간.
쿠우우우웅!
피라미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
사위는 고요했고, 저 멀리 위층에서 마족들이 달리는 소리만이 벽을 타고 전해져 왔다.
“어…….”
강난은 조심스럽게 가올드의 방으로 들어갔다.
마족들이 전부 피 떡으로 짓이겨져 있고, 구석에는 사단장 가시아스로 추정되는 고깃덩어리가 보였다.
그들 모두를 살피며 마침내 고정된 시선 속, 뼈만 남을 정도로 앙상한 가올드가 앉아 있었다.
“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고통으로 일그러진 가올드의 얼굴을 보자 덜컥 두려움부터 밀려들었다.
“똥개야.”
가올드가 손을 들자 손등의 신경이 꿈틀거리면서 손가락이 미친 듯이 떨리는 게 보였다.
“혹시…….”
탁한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내뱉은 그가 검지와 중지를 남긴 채 손가락을 천천히 접었다.
“담배 남은 거 있냐?”
“흐으으으!”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리기도 전에, 강난은 울상을 지으며 가올드에게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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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1)
토르미아 왕국.
수도 바슈카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광산지대로 이름이 알려진 마팔 지역이 나온다.
왕국 철광석 생산량의 45퍼센트를 담당할 만큼 중요한 지역이지만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다.
말인즉슨 마족의 피해가 가장 극심하다는 뜻이었고, 현재 마팔에는 수백 명의 전쟁고아들이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다.
“여기야, 여기.”
갱도가 무너져 폐광으로 변해 버린 곳에 인부들이 숙식하던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도르킨 고아원의 아이들 7명이 문을 열자 풀어진 머리에 초췌한 몰골의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지금은 기댈 곳이 없이 세상을 떠돌고 있지만, 한때는 라둠의 스펙트럼의 장관이었다.
화花족 플라리노.
고대 병기 ‘생화’가 부러지면서 강력한 쇼크가 그녀의 정신을 강타했으나, 그녀는 결국 살아남았다.
라둠의 수장이라는 직위는 왕국의 적이었고, 그렇게 숨어든 곳이 이곳 마팔의 폐광이었다.
“안녕? 배고프지? 이거 먹어.”
고아원의 아이들이 먹다 남은 음식들을 보자기에 싸서 건네주었다.
음식을 허겁지겁 위장에 채워 넣은 플라리노가 아이들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숙였다.
“항상 이렇게 챙겨 주시고, 감사합니다.”
극단적 수동성은 아이들이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했고,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신기했다.
“괜찮아. 우리 고아원 강아지들도 먹는 건데 뭐.”
그저 아름답고 주인의 말에 복종하면, 그들 또한 목숨 바쳐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는 착각.
꽃만이 할 수 있는 그 착각이 일족의 가장 큰 실패였다.
“그나저나 이제 우리 뭐 할까?”
“술래잡기하자. 플라리노, 네가 우리를 찾아.”
그래도 아이들은 순수하기에, 플라리노도 이곳에서 오랫동안 지낼 만했다.
“네. 그럼 제가 찾을게요.”
아이들이 플라리노의 손을 잡고 오두막을 나가려는 그때, 문이 열리면서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큰 소년이 들어왔다.
“야, 너희들!”
고아원은 열두 살까지 들어올 수 있으나 그의 얼굴은 족히 열여섯 살은 되어 보였다.
나이를 속이는 것은 예사였고, 원장 도르킨도 아이들을 통제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윽! 뭐, 뭐야?”
오두막의 사건을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았기에 갑자기 도깨비처럼 인상을 쓰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전부 따라와. 원장님이 저 여자 좀 데리고 오래.”
도르킨 고아원.
제단이 열리고 신설된 고아원으로, 원장은 60세가 넘은 도르킨이라는 남자였다.
‘아이들은 정말이지 끔찍해.’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굳이 고아원을 설립한 이유는 왕국에서 지원하는 보조금 때문이었다.
‘하지만 짭짤하단 말이야.’
성공은 위기에서 오는 법이다.
“원장님, 그 여자 데려왔어요.”
소문을 들은 바에 의하면 머리가 좀 모자라서 아이들이 시키는 것은 다 들어준다고 한다.
아이들 또한 머리가 좀 모자란다고 생각한 도르킨은 흘려들었으나, 열여섯 살의 보고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었다.
“들어오라고 하려무나.”
인자한 목소리로 말하자 문이 열리고 플라리노가 어색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오?”
도르킨의 눈이 대번에 변했다.
그저 바보였다면 고아원에 박아 두고 잡일이나 시킬 생각이었으나 귀족 중에서도 이런 미모는 극히 드물었다.
‘몸 팔던 여자가 미친 겐가?’
겁에 질린 채로 시선을 내리고 있는 플라리노를 주시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우리 고아원의 음식을 훔쳐 먹었다지?”
정확히 말하면 개밥이었다.
“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순순히 저자세로 나오자 도르킨도 숨기고 있던 감정을 드러내며 손을 들었다.
“그럼 뭘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겠군.”
“…….”
플라리노는 새로운 주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나,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뭐, 뭐예요, 아저씨는!”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플라리노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생화가 꺾였을 당시의 충격이 온전히 떠올랐다.
“어, 어떻게 여길?”
토르미아 마법협회장 루피스트였다.
“어떻게 여길? 처음부터 네가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전부 알고 있었어.”
다만 상아탑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잠시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생화의 씨앗, 어디다 뒀어? 벌써 심었나?”
플라리노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공포였고, 그녀가 슬금슬금 물러서자 도르킨이 나섰다.
“어이, 당신 뭐야? 이 여자 기둥서방이라도 되나?”
상처가 새겨진 인상도 그렇고 대화를 들어 봤을 때도,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넌 닥치고 있어. 이 여자는 내가 데려간다.”
한때는 뒷골목을 주름잡았던 도르킨인지라 순순히 여자를 넘겨줄 수는 없었다.
“새파랗게 어린 게 말하는 본새 좀 보소? 너, 여기가 어딘지 알아? 왕성에서 직접 지원하는 왕국 지정……!”
루피스트가 손등을 후리자 쾅 소리를 내며 도르킨의 머리가 벽에 정통으로 처박혔다.
“아우우우우……!”
쪼그린 채로 몸을 떠는 노인을 가볍게 무시한 루피스트가 플라리노에게 성큼 다가왔다.
“날…… 죽이러 온 건가요?”
“죽여? 왜 죽여, 너같이 유능한 인재를?”
용뢰에서 실시하는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화족은 최대한 많을수록 좋았다.
“생화의 씨앗이나 내놔. 순순히 지시에 따르면 마법협회장으로서 안전은 보장해 주지.”
도르킨이 고통도 잊은 채 고개를 돌렸다.
“마, 마법협회장?”
이런 다 무너져 가는 마을에 마법협회장이 왔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이유가 여자 때문이라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대체 저 여자가 누구기에?’
플라리노가 턱을 떨며 말했다.
“어차피…… 또 꺾어 버릴 거면서…….”
그녀에게 루피스트는 공포 그 자체였다.
“화족들을 모을 거야. 너희들이 살 수 있는 마을을 제공하지. 그리고 해야 할 일도 있다.”
“해야 할 일……?”
파격적인 대우였기에 그 대가도 비참하리라 여겼으나 루피스트는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꽃밭을 건설할 거야.”
물론 그곳에 심길 것은 아름다운 꽃이 아닌, 강철로 만든 고대 병기일 터였다.
“…….”
“잘 생각해. 동맹이다. 아마도 너희 화족들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자 마지막 기회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으나 플라리노의 눈빛에서 읽은 루피스트는 몸을 돌렸다.
“따라와. 수도로 간다.”
두 사람이 문으로 향하자 도르킨이 황급히 일어섰다.
“저, 저기…… 협회장님.”
상부에 오늘의 일이 들어가면 고아원은 그날로 문을 닫을 것이고 자신은 감옥행이었다.
루피스트가 문 앞에서 일렀다.
“예민한 시국이다. 네가 어떤 쓰레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나대지 마라.”
도르킨은 곧바로 의중을 헤아렸다.
“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것입니다.”
역겹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루피스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어느 조직이나 사람이 부족해. 지금은 쓰레기고 범죄자고, 가릴 처지가 아니야.’
루피스트의 시스템 지론에 의하면 인간은 마치 코인을 투입해야 작동하는 기계와 같다.
도르킨 같은 인간조차도 일단 돈이 투입되면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고아도 미래의 자원. 관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마련해 두는 게 좋아.’
설령 오염된 시스템이라도, 돈이 들어간 이상 함부로 파괴할 수 없는 게 왕국의 사정이었다.
‘그 녀석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
세상이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기 때문일까, 오늘따라 원수처럼 끔찍한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
“정말 괜찮은 거예요?”
가올드를 끌어안은 채 한참이나 울음을 터뜨렸던 강난이 퍼뜩 생각난 듯 몸을 일으켰다.
“괜찮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라는 거냐?”
여전히 가올드의 몸은 고통에 절어 있었다.
“여태까지 일어날 기미조차 없더니……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던 거예요?”
“문이 열렸어.”
언더 코더의 기억은 떠올릴 수 없지만, 현실로 되돌아온 끝에 감각이 말해 주는 정보가 있었다.
아마도 끝없이 나아갔고, 마침내 사망자의 경계를 넘어 지옥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저 뜨거운 고통 속에서, 주위에 있던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의 불에 융해되는 와중에도…….
“그냥 계속 걸었지.”
삶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가올드의 영혼은 결코 녹아내리지 않았고, 영원한 고통만을 감내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왔다.”
제단이 열리면서 심령권이 생성되었고, 가올드에게는 그 지점이 지옥의 끝이었다.
“지금 그게 할 소리예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정을 했음에도 담담한 말투에, 강난은 오히려 황당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걸.”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인 가올드가 손가락으로 심지를 비벼서 꺼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