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8
친구들은 말을 잃었다.
잠이 완전히 깨 버린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꼬여 갔다.
“어, 어어?”
돌먼지가 사라지고 섬광이 강타한 자리가 보이자 이루키와 네이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가 암벽에 생긴 흉터를 확인했다.
묵직한 것이 박히고, 이내 폭발한 것처럼 주위가 함몰되어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마술이야? 아니면 진짜 마법?”
이루키도 믿기 어려웠다.
“묘하군. 빛에 이 정도의 충격을 담다니. 광자 계열은 퓨전이 어려운 걸로 알고 있는데.”
시로네가 다가왔다.
“이번에 내가 개발한 새로운 마법. 광자 출력이 아니라 포톤 캐논이야.”
“포톤 캐논. 그럴싸하군. 원리는?”
“그게…… 말하자면 좀 길어.”
시로네가 말을 아끼자 네이드가 잠이 확 깬 얼굴로 달려들어 어깨를 흔들었다.
“빨리 말해! 어떻게 한 거냐니까? 빛이 돌을 깨다니,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빛과 전기는 사촌지간이기에 네이드는 시로네가 무엇을 해낸 건지 명확히 깨닫고 있었다.
“말해 줄게. 대신…… 나랑 어디 좀 가지 않을래?”
***
학교를 나선 시로네 일행은 귀족 구역의 식당에서 가정식 파스타를 주문했다.
음식을 먹는 동안 시로네는 포톤 캐논을 개발한 경위를 설명했고, 이루키와 네이드는 파스타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경청했다.
1시간에 걸친 설명이 끝나자 생각에 잠겨 있던 이루키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질량을 발생시키는 미립자라. 아니, 질량을 ‘일으키는’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겠군. 질량 또한 물질이 가진 하나의 상태에 불과하다면 말이야.”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그래. 추상적이긴 하지만, 질량은 물질이 되기 위해 필요한 성질 중 하나일 거야. 그 성질이 물질을 만들고, 그 물질이 중력을 발생시키고, 그 중력하에서 우리가 무게를 느끼는 거지.”
네이드가 말했다.
“감각을 초월한 현상이라. 결국 초상감은 물질의 근원, 더 나아가서는 존재의 근원에 닿아 있었던 거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쇼크가 왔던 거고.”
“응. 덕분에 이제는 악몽을 꾸지 않아.”
“하긴…….”
네이드는 생각에 잠겼다.
빛에 질량을 부여한다는 것은 엄청난 발견이었다.
무엇보다 포톤 캐논은 시로네만 가능한 마법이었다. 학습을 통해 전지를 배운다고 해도 전능을 구조할 방법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초상감을 통해 직접 경험한 시로네만이 그 진의를 알 수 있다.
“굉장하다, 시로네. 이거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일일지도 몰라. 만약 특허를 낸다면 당장이라도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발견이라고!”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나랑 같이 도서관에 가 주면 안 될까?”
“응? 도서관?”
“학교 도서관은 징계 중이라 출입 금지잖아. 그래서 귀족 도서관에 가 보고 싶은데, 나는 못 들어가니까. 너희들이 데려가 줬으면 해서.”
“그거야 상관없지. 그런데 왜 못 들어가?”
평민은 귀족 도서관에 출입할 수 없다. 정학이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학교 도서관을 이용해도 되지만, 이제는 시로네도 생각이 달라졌다.
‘괜찮아, 더 올라가지 못해도. 내가 좋아하는 마법을 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
일부러 속인 적은 없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있었을 것이다.
평민이라는 게 밝혀졌을 때 받아야 하는 시선과 불합리한 대우,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소중한 친구들이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귀족이 아니야.”
네이드의 입이 멍하니 벌어지고, 이루키도 내색은 안 했지만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평민이지. 어릴 때 마구간에 버려진 나를 지금의 부모님이 키워 주셨어. 아버지는 평범한 산꾼이셔.”
시로네 정도의 재능이 마법을 늦게 배운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설마 평민이었을 줄이야.
특히나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구김살 없는 지금의 모습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미안해, 여태까지 말하지 않아서. 비난을 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더 이상은 속이고 싶지 않아.”
“충격적이긴 하군.”
이루키의 말에 네이드가 돌아보았다.
“야, 야.”
네이드야 귀족에서 중간 서열이지만 메르코다인 가문은 왕국 최고의 귀족이었다.
이루키가 포크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충격적인 건, 네가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다는 거야. 솔직히 평민이라는 건 나도 몰랐지만, 알고 싶지도 않아. 시로네가 아닌 것에는 관심 없다고. 굳이 이렇게 자리를 마련할 필요 없이 아무 때나 말해도 상관없었을 거야.”
네이드가 미소 지었다.
“그래, 시로네. 우리까지 걱정할 필요 없어. 물론 학교에 퍼지면 후폭풍이 상당하겠지만, 이제는 든든한 아군이 있잖아. 아무 생각 말고 올라가는 데만 집중하자고.”
막연한 기대는 있었지만 실제로 변하지 않는 모습에 시로네는 가슴이 뭉클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 줘서.”
이루키가 깨달은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미 선배는 알고 있지?”
“응. 사실…… 마법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만났어. 좀 안 좋은 일로 엮이긴 했지만.”
“킥킥, 이제야 모든 실마리가 풀리네. 그래서 특별 전형이었군. 마법을 늦게 배운 것도. 그런데도 이 정도 수준이라…… 확실히 날 꺾을 만해.”
이루키는 생각을 접고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전보다 즐거운 표정이었다.
“좋아, 도서관으로 가자. 정학 끝날 때까지 포톤 캐논을 미친 듯 파헤쳐 보자고.”
시로네와 네이드가 따라 일어섰다.
“좋았어!”
대마법사의 귀환(1)
토르미아 왕국의 수도, 바슈카.
왕성을 감싸는 지저 산맥에는 100년 전 완공된 지하 70미터 깊이의 던전이 있다.
어둠의 미궁이라 불리는 이곳은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빌토르 아케인의 은신처였다.
암흑 마법의 권위자인 아케인은 여러 국가와 싸움을 일삼다가 40년 전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홀연히 자취를 감춘 전설적 인물이었다.
당시 그의 마법사 등급은 비공인 3급.
일단 3급 이상이 되면 공인, 비공인을 가리지 않고 대마법사라는 칭고가 붙는다.
마법사의 등급은 업적과 명성으로 결정되는데, 마법협회에서 이를 관리하고 있다.
10급에서 9급에 필요한 점수는 업적과 명성 점수를 더해 1천 점, 그리고 4급에서 3급에 필요한 점수는 무려 2억 8천만 점이었다.
상급 마굴 소탕에 책정되는 업적이 500점, 왕을 알현하는 명성이 1천 점인 것으로 보면 3급 마법사가 어떤 존재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푸우. 푸우.”
녹색 액체가 담긴 유리 관 안에서 149세의 아케인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알몸이었고, 앙상한 것도 모자라 거죽마저 늘어져 있었다.
생명 유지 장치로 세포분열을 막지 않으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드디어 완성됐다, 암흑의 정수가.’
그는 책상 위의 크리스털을 노려보았다.
원래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흑요석처럼 검었다.
하루 한 번씩 연금 계열의 인젝션 마법으로 크리스털에 암흑의 힘을 축적시킨 덕분이었다.
‘기다려라, 알페아스! 이 치욕은 반드시 갚아 주마.’
쿠르르! 쿠르르!
녹색 액체가 전부 빠져나가고 유리 관이 열리자 아케인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땅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헐떡이던 그가 힘겹게 소리쳤다.
“카니스! 아린! 게 있느냐!”
한 쌍의 남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암흑 마법을 익혀서인지 음울한 분위기였다.
“부르셨습니까, 스승님.”
“옷. 내 옷을 다오.”
카니스가 연녹색 로브를 건넸다.
아린 앞에서도 개의치 않고 옷을 걸친 그가 엉거주춤 걸음을 옮기더니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 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제 살 것 같구나.”
“괜찮으십니까, 스승님?”
아케인은 카니스를 돌아보았다.
원래부터 흑발, 흑안의 동방 혈통이지만 홍채마저 검게 변한 이질적인 특징은 암흑 마법의 상징이었다.
‘멋진 눈이다. 그래서 제자로 삼은 것이지만.’
반면 아린은 썩 내키지 않았다. 재능은 있지만 마법사가 되기에는 너무 여렸다.
지금도 노인의 알몸을 보고 눈 둘 곳을 찾지 못하는 모습에 아케인은 혀를 찼다.
‘쯧쯧, 저런 걸 어따 써먹어? 쓸모없는 것 같으니라고.’
카니스의 단짝 친구만 아니었어도 저런 유약한 소녀를 데려오지는 않았을 터였다.
‘벌써 7년 전인가…….’
당시에도 하루 12시간 이상 생명 유지 장치를 이용해야 했던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어 수도 바슈카의 중심지로 들어갔다.
문화의 중심지답게 거리는 화려했으나 그 이면에는 도시의 어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빈민굴 라둠.
양극화가 심한 곳인 만큼 라둠의 주민들은 다른 도시의 거지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 이곳에서 음식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쓰레기통뿐이었다. 그마저도 경쟁이 치열해서, 생선 뼈다귀를 먹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아케인은 그곳에서 카니스와 아린을 만났다.
일상이 전쟁인 라둠에서 열 살인 카니스가 아린과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호전성이었다.
카니스의 눈은 세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고 있었고, 아케인은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을 던전에 데려와 자신의 수발을 들게 하며 마법을 가르친 것이다.
“시작하자꾸나.”
휴식을 끝낸 아케인이 말하자 카니스가 그의 어깨를 부축해서 들어 올렸다.
“됐다. 도와줄 필요 없다.”
지긋지긋한 노화에서 벗어나는 날이었으니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똑똑히 보아라, 암흑 마법의 위대함을.”
대마법사의 귀환(2)
아케인은 검은 크리스털을 쥐었다.
녹초가 되어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흥분감이 깃들어 있었다.
크리스털이 점차 물컹해지더니 아케인의 손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혈관처럼 갈라져 아케인의 전신을 휘감았다.
“크아아아아!”
아케인은 괴물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40년 동안 모은 에너지를 한 번에 흡수하는 것이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정신이 나가 버렸을 터였다.
암흑 마법의 핵심 개념은 흡수와 동화.
크리스털에 힘을 주입하는 것도, 그 힘을 다시 흡수하는 것도 암흑 마법이기에 가능한 것.
“으아아아!”
아케인의 그림자가 불길처럼 흔들리더니 찰나의 순간 파편처럼 폭발했다.
갈기갈기 찢어진 그림자 조각들이 바닥과 벽을 타고 무섭게 질주했다.
공기가 귀신처럼 울고, 카니스와 아린은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자 노쇠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아케인이 서 있었다.
딱히 젊어지거나 허리가 펴진 것은 아니지만, 혈색은 홍조를 띠었고 눈빛은 생명력으로 충만했다.
카니스는 압도적인 아우라에 몸을 떨었다.
‘이것이 대마법사의 기운인가?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은…….’
“흐흐.”
아케인은 만족했다. 알페아스에게 당하기 전의 강력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가자. 오늘부터 마법의 역사가 새로 쓰일 것이다.”
40년을 기다린 분노는 힘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아케인을 세상으로 내밀었다.
***
바슈카의 서쪽 감옥 인페르노.
D급에서 B급 사이의 중범죄자들이 수감되는 곳인 만큼 경계 또한 삼엄했다.
“정지! 여긴 출입 통제구역이다!”
2명의 경비가 창을 내밀었다. 비록 노인과 아이들이라도 허투루 대응할 수 없었다.
“신원을 밝혀라! 불응할 시에 체포하겠다!”
아케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새파란 애송이들이…….”
그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쭉 하고 늘어나 경비들의 그림자와 연결되었다.
그러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경비들이 눈을 까뒤집더니 쓰러졌다.
“흥, 간식거리도 안 되는군.”
아케인이 정문을 돌파하자 경계탑에서 지켜보고 있던 경비가 경고 종을 쳤다.
“침입자다! 공격해! 살인을 허가한다!”
사방에서 모여드는 경비들을 지켜보던 아케인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오랜만이군, 이런 기분도.”
아케인의 그림자가 촉수처럼 뻗어 나가더니 20명이 넘는 경비의 그림자를 관통했다.
“큭! 이건 뭐야?”
“갑자기 왜 이러지? 몸이 안 움직여!”
당황하던 경비들은 아케인이 손을 휘두르자 동료를 향해 돌아서더니 의지와 상관없이 무기를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으아아! 미쳤어? 위험하잖아!”
“나도 몰라! 내가 하는 게 아니야!”
아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남들과 전혀 다른 눈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경비들이 느끼는 공포의 감정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카니스, 스승님께서 이런 곳에 올 거란 얘기는 없으셨잖아. 왕국의 추적을 받을 거야.”
카니스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아케인을 향한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일단 가 보자.”
아케인은 뒷짐을 지고 전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경비와 연결된 그림자가 톡 끊어지자 난투를 벌이던 자들이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카니스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정신 지배.’
그림자를 매개로 상대를 지배하는 암흑 계열의 대표적인 마법 중 하나였다.
‘그림자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아. 나와 타인도, 사물과 사물의 경계선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