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86
볼이 눌린 상태에서도 사납게 눈을 치켜뜨는 그녀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화국이 범죄자를 어떻게 심문하는지 너라면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어디까지 연루되었는지 털어놓는 게 좋아.”
“죽여.”
이 정도의 각오가 아니고서는 적국에 침투하여 6년을 버티지 못했을 터였다.
“인권을 제 발로 걷어차는군.”
헌병대장이 고개를 돌리자 검은 털을 가진 이형독종견이 침을 흘리며 다가왔다.
“앞으로 10분 동안 지옥을 경험할 거야. 그 후에 다시 얘기를 나누지. 멈추려면 지금뿐이다.”
“……죽여.”
수왕대의 연구원이 서류철을 열었다.
“실험 데이터 38-7. 실험 샘플 베스타크 제이시. 36세. 기록을 시작합니다.”
“으아아아아!”
제이시가 눈을 질끈 감으며 비명을 내지르는 그때, 인기척을 느낀 헌병대장이 빠르게 돌아섰다.
감각계 스키마를 구사하는 그조차도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 깨닫지 못한 인물의 정체는…….
“……뭐야, 너는?”
챙이 넓은 고깔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빗자루를 쥐고 있는 어린 소녀였다.
“인간아, 인간아.”
조화를 깨는 성인 여자의 목소리에 헌병대원들이 그제야 깨닫고 물러섰다.
‘꿈을 꾼 건가?’
마치 여태까지의 광경이 환상이었던 것처럼, 아이의 모습이 사라지고 요염한 얼굴이 시선을 강타했다.
“어째서 너희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니?”
상아탑 오대성.
인류안전집행부장 미라크 미네르바.
악의 교리 (4)
“저 여자는 뭐야?”
헌병대가 그녀를 포위하기 위해 발을 옮기자 헌병대장이 손을 들어 말렸다.
“멈춰.”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은, 헌병대장이 다른 헌병들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의 감각을 가졌음을 뜻했다.
‘대체 이건 뭐지?’
토할 것 같았고, 일단 그렇게 깨닫자 참을 수 없을 만큼 머리가 어지러웠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물어! 쉭! 쉭!”
수왕대의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그는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이, 이 녀석이 왜 이래?”
가라스를 이용해 개량에 개량을 거친 이형독종견은 맹수보다 용맹하고 주인의 말에 절대복종하도록 설계되었다.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하지만 가죽띠를 주렁주렁 매단 채찍으로 엉덩이를 때려 봐도 그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눈앞에 있는 여자를 필사적으로 부정하듯.
‘두려워하고 있다.’
헌병대장이 느꼈던 메스꺼운 기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녀의 몸에서 퍼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개가 사람보다 낫네.”
미네르바가 다가오자 이형독종견들이 마치 볼일이 생긴 듯 슬금슬금 숲의 구석으로 흩어졌다.
극한의 두려움에 내색조차 할 수 없는 움직임은 가라스의 창고에 먹이를 주는 사람들의 심리를 닮아 있었다.
“우엑!”
미네르바가 곁을 지나가자 결국 헌병대장이 참지 못하고 위액을 쏟아 냈다.
“대, 대장님?”
대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헌병대장은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그들이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토했기에 살았다.’
앞으로 3분 정도만 지나면 부하들은 이유조차 모른 채 여자의 기운에 짓눌려 즉사할 터였다.
“이리 오렴, 귀여운 강아지들아.”
잡히면 죽는다.
본능으로 깨달은 이형독종견들이 어울리지 않게 꽃 냄새를 맡으며 딴청을 부렸다.
강력한 맹독을 뿜어내는 이형독종견 한 마리가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다 결국 그녀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강력한 두 다리로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손길을 받아들이자 넓적한 개 다리가 바닥까지 굽혀졌다.
‘사신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여야 저런 기운을 몸에 담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외모, 마녀의 복장.
‘미라크 미네르바.’
아미 살기는 글렀다는 것을 헌병대장은 깨달았다.
“어머.”
이형독종견이 뒷다리를 완전히 눕힌 채로 와들와들 떨더니 곧 뜨거운 오줌이 바닥으로 뚝뚝 새어 나왔다.
“무섭니? 내가?”
흐응, 흐으으응……!
20년은 늙어 버린 개의 눈, 코, 입에서 물이 질질 새어 나오고, 헌병대원들이 하나둘씩 눈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그래, 어디 보자.”
엉덩이 쪽으로 걸어간 미네르바가 허리를 숙여 오줌이 뚝뚝 떨어지는 아래를 살폈다.
“수놈이네.”
깽! 깨개갱!
이형독종견이 최후의 비명을 내질렀다.
“죽어.”
마치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곧바로 개의 눈이 뒤집어지더니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세, 세상에…….”
나무둥치에 기댄 제이시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사방에서 죽어 나가는 생명들을 바라보았다.
피를 토하며 쓰러진 수왕대원들과 헌병대원들, 마지막으로 이형독종견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숨을 거두었다.
“설령 상아탑이라고 해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헌병대장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미네르바를 노려보았다.
“이제는 막을 수 없다. 이고르 통령의 은총 아래 북에이몬드 공화국은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그래.”
미네르바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튀기자 헌병대장의 생명이 육체에서 빠져나왔다.
“저세상에 가서 많이 하세요, 세계 지배.”
유일하게 목숨이 붙어 있는 제이시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물었다.
“당신…… 혹시 상아탑 주민인가요?”
미네르바는 빗자루의 통에서 곰방대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무시하는 거야?’
제이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빨리 북에이몬드를 쳐야 해요! 안 그러면 가라스들이 세상을 침범할 거라고요.”
허탈한 표정으로 연기를 내뿜은 미네르바가 말했다.
“알아.”
그리고 천천히 제이시에게 다가와 눈높이를 맞추더니 대번에 뺨을 걷어 올렸다.
찰싹 소리를 내며 고개가 돌아간 제이시가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쏘아붙였다.
“왜 때려요!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을!”
미네르바는 인간이 싫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저런 식으로 움직여 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이다.
‘차라리 개랑 뒹굴고 말지.’
그래도 미네르바는 내색하지 않는다.
“미안. 혹시 이렇게 하면 풀리나 해서.”
제이시는 분한 표정으로 이를 깨물었으나 이형독종견을 기운만으로 제압한 마녀에게 대들 생각은 없었다.
“당신을 알아요. 대마녀, 미라크 미네르바.”
상아탑의 오대성은 대부분 베일에 싸여 있지만, 미네르바는 상아탑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데뷔한 사람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죠? 이고르에게 가서 실험을 중단하라고 할 건가요? 아니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솔직히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일단 수도에 가서 통령을 만나면 뭐든 결착이 날 터였다.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미네르바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당신이 아직 모르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요. 아마 이대로 수도에 가면 낭패를 볼 거예요.”
“깔깔깔깔!”
마녀의 웃음소리가 숲에 퍼졌다.
“이봐, 꼬맹이 아가씨. 아, 미안. 네가 나보다 어리거든. 물론 액면가로는 내가 훨씬 젊지만.”
“…….”
“어쨌거나 대마녀 미네르바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면 감히 낭패라는 말은 입에 담지 못할걸.”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사지를 못 움직여도 주둥아리만 살아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줄 알지. 그게 너희들이야. 더 이상 날 끔찍하게 만들면 너도 저 인간들을 따라가게 될 거야.”
“죽…….”
울음에 잠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죽여 버리고 싶어요! 내 남편을 죽인 빌어먹을 북쪽 놈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여 버리고 싶다고요!”
제이시가 일그러진 얼굴로 사정했다.
“제발 데려가 주세요! 이제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1명이라도 더 죽일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분노.
미네르바가 유일하게 혐오스러워하지 않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정 상태였다.
“……네가 알고 있는 걸 말해 봐.”
제이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헌병대장이 보이지 않는 곳에도 눈이 있다고 했죠. 북은 이면 세계를 이용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야 제 정체가 들통날 리가 없으니까요.”
“네가 일 처리를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
“지금 저를 뭐로 보고 그러는 거예요! 첩보에 관한 마법은 모두 다 익힌 사람이라고요!”
아무리 악을 질러 봐도 미네르바를 상대로는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하아, 알았어. 그러니까 이고르가 마족들과 결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거지.”
낭패까지는 아니어도 껄끄러운 부분이기는 했다.
“데려가 줄게.”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인 미네르바가 입술 사이로 연기를 모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입 벌려.”
홀린 듯 제이시가 입술을 열자 미네르바가 얼굴을 기울이고 입맞춤을 했다.
‘아…….’
그녀의 폐를 거쳐 들어오는 연기의 냄새는 마치 풀을 태운 듯했고, 제이시는 생전 경험하지 못한 황홀경에 빠졌다.
해독 마법-마녀의 숨결.
잠시 의식을 잃었지만 찰나에 불과했다.
“됐어. 이제 움직일 수 있을 거야.”
발끝에서부터 신경이 느껴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자리에서 어색하게 일어난 제이시는 할 말이 없었다.
“저, 저기…….”
입술을 맞댄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녀의 몸으로 극상의 희열을 느꼈다는 사실에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마녀와 동침하지 마라.”
마녀가 주는 달콤함에 홀려 인생이 끝장난 인간들은 미네르바의 경우만 해도 부지기수였다.
“……인간을 싫어하거든.”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제이시를 뒤로하고 미네르바가 빗자루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허름한 나무 재질이 펑 하고 터지더니 뒷면에 추진 기관이 달린 2미터 길이의 지팡이로 변했다.
을 포기한 대가로 태성의 지성이 만들어 낸 인류 최고 발사체, 제트(Z).
상아탑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기에 반드시 옳을 수밖에 없는 이동 수단이었다.
“타. 군사시설에 들렀다가 수도로 진입한다.”
1미터 높이에 떠 있는 제트에 미네르바가 허벅지를 얹은 자세로 사뿐히 앉았다.
“아, 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물건으로 역사책에 소개되었기에 제이시도 침을 꿀꺽 삼키며 뒷자리에 앉았다.
“저기, 프레스 해야 하나요? 혹시 떨어지면…….”
“필요 없어.”
제트가 잠시 보랏빛으로 빛나더니 마치 부드러운 거푸집에 갇힌 듯 힘을 주지 않아도 몸이 고정되었다.
“간다.”
미네르바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제트의 추진 기관에서 엄청난 불꽃이 토해졌다.
“꺄아아아악!”
관성을 거의 느낄 수 없음에도 하늘이 빠르게 다가오는 광경에 제이시가 비명을 내질렀다.
‘너무 빨라!’
하늘을 한 바퀴 선회한 제트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이자 불과 4초 만에 쾅 하고 음속 폭음이 터졌다.
마하의 속도였다.
***
넋이 나간 얼굴의 바세토를 발견한 베르디의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입을 가렸다.
“여보…….”
대체 무슨 일을 당했기에 사람이 저 지경이 됐을까?
“나쁜 자식들…….”
바세토는 충격을 받은 듯 넋이 나간 얼굴이었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남편을 데려와야겠어요. 저러다 죽겠어.”
이성을 잃은 베르디의 엄마가 앞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시로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