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90
시로네는 가족들과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베르디를 돌아보았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1명의 개인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조건으로 전체를 살릴 수 있다면…….
‘할 수 없기에 나네도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만약 그럴 가능성이 1퍼센트라도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도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흥, 카르 따위 있지도 않은 주제에.”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그럼 이제 저에게 맡겨 주시는 거죠?”
“알 게 뭐야? 어차피 네가 까라면 까는 게 인류안전집행부야. 그 대가로 우리가 얻은 건 저돌성이지.”
가장 사람을 많이 죽이는 부서였다.
“도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시로네가 확실하게 못을 박자 미네르바가 피식 웃으며 돌아보았다.
“못 당하겠군. 사용하는 법은 알고?”
“네? 그냥…… 간절한 마음이 담기면 저절로 발동되는 거 아닌가요?”
“딴에는 그렇지. 시정잡배나 죽이려면 그 정도로 충분하지만, 아마 이번에 이 죽일 상대는 차원이 다를걸.”
시로네는 성전의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카샨의 여황이 주시하는 극악은 구스타프 하비츠 17세. 이번에 구스타프의 황제가 된 인물이다.”
“삼황계…….”
“우오린과 알고 지낸다니 이해가 빠르겠군. 놈들의 수완도 보통이 아니야. 의 율법을 피하기 위한 수많은 책략이 들어갈 것이란 말이지.”
“그렇군요.”
시로네도 황제가 죽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확실히 그렇다. 북에이몬드에서 구스타프 황궁으로, 거기에서 다시 수많은 호위를 뚫고 황제를 죽이려면…….’
대체 율법이 어떻게 바뀌어야 가능할까?
가능성 (3)
“의 율법이 만능은 아니야.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율법을 피하려고 노력하니까.”
미네르바가 말했다.
“원인과 결과는 끝없이 맞물리지. 그걸 극단적으로 비트는 게 액싱이고. 하지만 모든 걸 베는 액싱이 있다고 해도, 모든 걸 막는 액싱도 있잖아?”
미네르바가 양손의 검지를 교차했다.
“충돌했을 때는 그 두 가지가 중첩되는 새로운 율법이 탄생하게 되는 거지.”
은 율법을 관철시키는 게 아니라 대상의 율법과 맞물려 작용해야 한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행성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네 달이 걸려.”
“어라? 의외로 빠르네요?”
인과의 꼬리를 물고 나아가야 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세계 일주였다.
미네르바도 동의했다.
“응. 상당히 강력한 액싱이야. 하지만 심할 경우는 1년이 넘을 때도 있어. 예를 들어 의 대상이 쉬지 않고 세계를 돌아다니면?”
끝없는 술래잡기가 될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어. 대상이 외교관이었거든. 그때 깨달은 것은, 의 율법이 아무리 빨라도 특정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까?”
“직접 가져갔군요.”
“정답. ‘초기화’가 중요한 이유야. 대상을 지운 다음 인위적으로 사건을 설계하는 거지.”
“하지만 가능할까요? 설령 의 주인이 죽는다고 해도 이미 율법은 발동했잖아요?”
“한 가지 방법이 있어. 내가 ‘대상 변경’이라고 부르는 방법인데, 이걸 사용하면 초기화를 시킬 수 있어.”
“흐음.”
시로네는 생각에 잠겼다.
“상당히 까다로운 무기네요.”
“S급 오브제의 특징이지. 까다롭다기보다는 너무 효과적이라 극대화시킬 여지가 많은 거야. 아르망도 그렇잖아? 누구나 강해질 수 있지만 100퍼센트 기능을 발휘하려면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시로네는 아르망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오직 하나…….’
무기를 만든 장본인, 미라크 미네르바였다.
“좋아요. 당분간 같이 움직여요. 을 사용할 일이 생기면 우오린에게 설명해 주세요.”
카샨의 여황이라면 미네르바의 설명을 토대로 최적의 방법을 설계할 터였다.
한편, 시로네와 미네르바가 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무렵, 제이시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정말로…… 가능하다고?”
마족들이 깨끗하게 씻겨 나간 풍경 속에서 인부들이 가족들과 즐거운 상봉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도대체 왜……!”
내 남편은 죽어야 했나요.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다면! 도대체 왜! 왜 우리 남편은 구해 주지 않은 거야!”
제이시의 목소리를 들은 시로네가 고개를 돌리고, 미네르바의 눈빛이 차갑게 잠겼다.
‘가능성…….’
전체를 구원하는 가능성을 보인 것만으로도 시로네는 신에 가깝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를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누군가는 고통을 받을 것이고, 그 고통은 윤회의 겁을 따라 끝없이 순환할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걸렸지만…….’
미네르바는 마녀가 되었다.
‘내일은 너다.’
불치병에 걸렸거나, 자연재해를 당했거나,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거나.
다음 차례는 누가 될 것인지 알 수 없는, 고통이라는 이름의 폭탄을 돌려 막는 것이 생물의 삶.
그렇기에 시간의 끝에서 지켜보면 이 세상은 그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고…….
여전히 나네는 옳다.
‘지금 당장 제비를 잘 뽑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네를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제이시도 그랬을 것이다.
‘알고 있는가? 지금의 제이시는…….’
그리고 미네르바는.
‘이 세상이 너무나 원망스럽다는 사실을.’
제이시가 울부짖었다.
“왜 나야! 왜!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데,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거야!”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 때문이야.’
나네를 막아섰기 때문에 생기는 고통이었고, 앞으로 폭탄의 개수는 더욱 늘어날 터였다.
‘강해지고 싶다.’
아니, 차라리 무릎을 꿇고 빌어서라도 나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시로네는 무섭게 주먹을 움켜쥐며 각오를 다졌다.
“네 탓이 아니야.”
미네르바가 시로네의 어깨를 짚었다.
“나네의 탓도 아니지.”
모순.
모든 걸 베는 액싱과 모든 걸 막는 액싱이 충돌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율법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그런 상태일 뿐이야.”
모순의 상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다고 결과가 없는 것은 아니야. 이게 결과야. 받아들이고, 나아가라.”
미네르바는 녹초가 될 때까지 울고 있는 제이시를 무릎 위에 눕히고 곰방대를 물었다.
“잠시 자고 있어라. 이게 도움이 될 거야.”
마녀의 숨결이 그녀의 입술을 통해 새어 들어가자 제이시의 동공이 평온하게 풀어졌다.
“이대로 두면 나쁜 선택을 할지도 모르니까.”
제이시를 마법으로 공중에 띄운 미네르바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말했다.
“수도로 가자. 이번 일을 마무리 지어야지.”
마녀의 빗자루 제트가 고단의 시체를 털어 버리고 빠르게 날아들었다.
“같이 타고 갈래?”
제이시를 태워야 하기에 자리가 좁을 듯했다.
“아뇨. 출발하세요. 따라갈게요.”
세계기록에 등재되어 있는 제트라는 것을 알면서도 따라오겠다고 하는 말에 미네르바가 웃었다.
“좋아. 너무 늦으면 내 식대로 처리한다?”
미네르바가 몸을 날려 제트에 앉자마자 강력한 가스가 사출되면서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쇠가 갈리는 소리에 이어 음속 폭음이 터지자 시로네는 베르디를 돌아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다시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무너질 것 같던 마음을 다잡은 시로네는 다시 창공을 돌아보며 무릎을 구부렸다.
광익.
빛의 날개가 수십 미터 길이로 뻗어 나가자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저런…….”
단지 날기 위해서라면 엄청난 용량 초과지만 미네르바를 따라가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했다.
한 쌍의 날개가 하늘까지 치솟는 것을 모두가 올려다보는 그때, 무서운 속도로 빛이 내려앉았다.
퍼어어어어엉!
굉음이 터지면서 시로네의 몸이 불과 1초도 되지 않은 시간에 구름을 뚫고 사라졌다.
“세상에…….”
잠시 후 또 한 번의 음속 폭음이 터졌다.
‘역시 빠르네. 나도 마하로 날고 있는데.’
광익이 공기를 때릴 때마다 시로네의 몸이 수백 미터를 쭉 밀려 나갔다.
사이클을 2배로 올린 끝에야 저 멀리 제트의 불꽃이 만들어 낸 연기를 포착할 수 있었다.
“어머? 정말로 따라왔네?”
마치 지나가다 지인을 만난 것처럼 미네르바가 옆을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미 목소리가 전달될 상황이 아니었고, 시로네와 미네르바는 서로의 입 모양을 읽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데리고 갈 거예요?”
제이시가 빨래처럼 걸려 있었고 당장 추락할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걱정 마. 의외로 탑승감이 좋거든. 제이시는…….”
미네르바는 빠르게 흐르는 산맥의 풍경을 내려다보더니 제트의 율법을 풀었다.
“여기다 두고 가면 되겠네.”
시로네가 황급히 고개를 틀었으나 이미 제이시는 저 멀리 점으로 보이는 상태였다.
“……괜찮은 거죠?”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반박할 말이 없는 시로네가 앞을 돌아보는데 미네르바가 제트의 추진력을 올렸다.
“지는 사람이 소원 들어주기.”
제트가 10미터 길이로 뻗어 나가면서 미네르바가 점차 시로네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뭐든지 들어주기야.”
눈을 찡긋한 그녀가 사라진 듯 앞으로 튀어 나가자 시로네도 호승심이 끓어올랐다.
“그렇다 이거지…….”
딱히 소원은 없지만,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는 상황만은 절실히 면하고 싶었다.
광익의 질량이 늘어나면서 고체의 강도로 대기를 후려치자 시로네의 몸이 대포처럼 쏘아졌다.
‘저기다!’
북에이몬드의 수도가 눈에 들어왔다.
***
수도 파시아.
통령이 거주하는 수장궁은 780채의 건물이 전부 연결되어 있는 다목적 요새였다.
혁명의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인공 구조물 중의 하나로 수도의 300만 인구를 모두 수용할 정도였다.
우겨 넣는다는 표현이 정확할 테지만, 이고르는 국민 전원이 자신을 직접 칭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인간 이고르의 경우였지만, 통령이 마족으로 바뀐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했다.
“군단장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제24군단장, 파멸의 마라두크.
뭇 여성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에, 연보랏빛 머릿결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남자였다.
몸에 달라붙는 흑빛의 갑옷 테두리를 따라 황금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왕좌의 왼편에는 한 자루의 보검이 주인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얼마나 모였지?”
“심령권에서 빠져나온 병력의 숫자는 총 800만입니다.”
일국의 군대 수십 배에 해당하는 숫자였으나 사탄의 군대가 20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군단급도 되지 않았다.
“인간을 치기에는 충분하다.”
보검을 허리에 장착한 마라두크가 계단을 내려오자 4명의 사단장이 일제히 좌우로 물러섰다.
완벽한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방이지만 바깥의 함성에 의해 유리창이 진동하고 있었다.
“내가 선봉장이 되어 세계를 파멸시키리라.”
창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막혀 있던 소리가 대포처럼 쏘아져 들어왔다.
“인간을 죽여라! 인간을 죽여라!”
수장궁 너머로 펼쳐진 800만의 군대가 악에 받친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시로네는 파시아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
“……저게 뭐야?”
대부분의 거리가 텅 비어 있는 반면에 수장궁 쪽에는 개미보다 많은 마족들이 와글거렸다.
미네르바가 말했다.
“수도는 끝났다고 봐야겠군. 레지스탕스조차 보이지 않아. 수도방위군도 이미 궤멸했을 거야.”
“생존자는 없을까요?”
“있겠지. 하지만 수장궁 쪽은 아닐 거야. 저기에 사람이 끼어들었다가는 곧바로 먹혀 버릴걸.”
“생존자를 찾아야겠어요.”
“그것도 좋은 선택.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수장궁의 마족 2세들이 국경선을 넘으면 상황이 복잡해져.”
사회로 침투하여 암암리에 움직일 것이다.
“폐쇄적인 사회라 실험이 가능했겠지만, 그래서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는 거야. 일단 치자.”
“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