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91
수장궁에 모인 병력의 숫자는 단위면적으로 확인했을 때도 족히 500만은 훌쩍 넘을 듯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건데요?”
미네르바가 검지를 구부렸다.
“쪼오기.”
시로네가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는 그때, 미네르바의 몸이 붕 뜨면서 제트를 이탈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미네르바의 몸에 저항이 걸리자 상대적으로 제트가 앞서 나가면서 수장궁의 입구로 쇄도했다.
‘진짜로 하는 거야?’
800만의 군대를 고작 단둘이서 상대한다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신 차려! 곧바로 간다!”
제트에서 이탈했으나 엄청난 관성은 미네르바의 몸을 여전히 수장궁 쪽으로 이끌었다.
끼이이이잉!
마하의 속도가 내는 파공음에, 입구에 있던 마족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습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트가 처박히면서 일대에 있던 마족 2세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크아아아아!”
남은 병력.
7,999,954(칠백구십구만 구천구백오십사)명.
파멸의 군주 (1)
수장궁의 입구를 향해 날아가는 미네르바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이긴 거다?”
제트가 먼저 도달했으나, 시로네는 이미 전투에 완벽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제가 대장을 맡을게요.”
“좋을 대로. 하지만 가는 것도 쉽지 않을걸.”
대답 없이 광익을 펄럭인 시로네가 수장궁의 끝을 향해 멀어지고, 미네르바가 입구에 안착했다.
사선으로 꽂혀 있는 제트를 뽑아 들자마자 그녀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맹독이 퍼져 나왔다.
“자, 청소를 시작해 볼까?”
맹독을 뚫고, 신장 2미터의 근육질을 자랑하는 마족들이 그녀의 주위를 에워쌌다.
“산 채로 씹어 주마!”
살이 썩어 가는 와중에도 마족은 두려움이 없었고, 그렇기에 800만의 군대는 최강의 800만이었다.
‘솔직히 조금 후들거리는데.’
미네르바의 입가에 굳은 미소가 지어졌다.
독재자의 욕심이 한껏 스며든 수장궁의 부지면적은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이었다.
지상에 바글거리는 마족들을 모두 무시한 채 시로네는 지도자의 궁전으로 향했다.
‘대장을 잡는 수밖에 없어.’
800만.
입으로 읊조리기는 쉽지만 800만의 군대를 정확히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게다가 지금 지상에 있는 자들은 인간의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무력을 가진 마족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던 게 아닌가?’
사탄의 군대가 20억이라는 것은, 마족 1명이 인간 2명만 죽여도 전 세계 인구가 몰살당하는 수준이었다.
시온이 심령권을 축소시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면 끔찍했다.
“뭐지?”
시로네가 날아가는 궤도의 하늘 저편에서 불길한 불꽃이 이글거렸다.
“그어어어어.”
공간이 열리면서 벌레가 파먹은 듯한 얼굴이 현실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대장 르노.
지옥의 군대를 수송하는 마족으로, 입속에 사백 마리의 마족을 담을 수 있다.
“야훼여……!”
벌어진 입속에서 바글거리는 마족들을 보자 시로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광폭!’
빛의 장막이 폭발적으로 박동하면서 입속을 파고들자 마족들의 비명이 고막을 멀게 했다.
“키야아아아아!”
피와 살점으로 채워진 시야가 갑자기 펑 하고 열리며 폭죽처럼 마족들이 터져 나갔다.
남은 병력, 7,999,231명.
……끝도 없는 것이다.
순식간에 400명의 마족들을 공중분해 시켰으나 어떤 마족도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다.
‘질릴 정도야…….’
야훼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그렇기에 선악을 초월하지만…….
마魔에게는 자비가 없다.
‘아타락시아!’
거대한 헤일로가 탄생하면서 오색찬란한 정보들이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개시와 동시에 완성된 마법진을 지상으로 겨눈 시로네가 포톤 캐논을 내질렀다.
그아아아아앙!
공기가 울부짖으면서 직경 수십 미터의 섬광이 사선으로 내리꽂혔고, 그 상태로 땅을 긁었다.
“크아아아아아!”
인간보다 월등히 강한 마족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으나 시로네의 스케일을 넘지 못했다.
273명, 398명, 113명, 198명…… 초당 죽어 나가는 마족의 평균 숫자는 대략 200명에 달했다.
섬광의 증폭이 끝날 무렵 마족의 사상자는 2천 명이 넘었고, 여단장 소다스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아름다워…….”
남은 병력, 7,996,973명.
“진짜 미쳐 버리겠네.”
시로네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실제로 경험한 압도적인 숫자의 병력의 힘을 느끼자 미네르바가 걱정되었다.
수장궁의 입구 쪽을 돌아보았으나 눈에 밟히는 것은 다른 높이를 가진 마족들의 군체였다.
군데군데 10미터가 넘는 것들이 보였다.
‘정말로 할 수 있을까?’
시로네가 생각에 잠긴 그때, 24군단 7사단 제44여단에서 일제히 하늘을 노려보았다.
“저기 야훼가 있다! 쏴라!”
털이 하나도 없고 코가 뭉개진 아귀들이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리자 오물들이 화망을 그리며 쏘아졌다.
‘마를 멸한다!’
스피릿 존의 형태로 야훼의 빛이 확장되자 독성을 지닌 오물들이 재로 변했다.
미네르바가 걱정되었다.
‘한 번만, 한 번만 하자.’
야훼의 경지에 도달한 시로네가 동시에 펼칠 수 있는 퀀텀 슈퍼포지션의 한계는 10만 명.
‘이걸로는 턱도 없지만.’
그들 모두가 천사의 징벌을 시전한다면 비로소 군대의 힘이 약해지는 게 눈에 보일 것이다.
‘잠깐이면 돼.’
문제는 퀀텀 슈퍼포지션을 수행하는 본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어차피 이대로는 미네르바도 오래 버티지 못할 터였다.
‘퀀텀 슈퍼포지션!’
10만 중첩.
순간 정신이 핑 하고 돌더니 시로네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땅에 떨어졌다.
착지의 충격을 막아 내는 것 정도가 본체가 할 수 있는 마법의 전부.
“지금이야!”
10만 명의 시로네가 섬광으로 변해 하늘로 치솟더니 대천사의 화신을 피워 올렸다.
동시에 여단장 소다스가 시로네의 본체를 끌어안았다.
“잡았다!”
화신술-천사의 징벌.
남은 병력, 5,668,227명.
마치 빛의 소나기가 내리는 듯한 광경이 수장궁을 수놓으면서 모든 마족들이 청각을 잃었다.
남은 병력, 4,340,976명.
얼마나 큰 굉음인지 알 수 없었고 단지 깨달은 것은, 지상에 재앙과도 같은 충격이 발생했다는 것.
남은 병력, 3,365,763명.
“크아아아!”
사이클이 진행될수록 사망자의 숫자가 줄었으나 이미 광장에는 원형 탈모처럼 공간이 생긴 상태였다.
“크윽!”
소다스가 시로네의 목을 양손으로 조이자 10만의 시로네가 동시에 포격을 멈추었다.
‘정확히 빈틈을 노렸어.’
스피릿 존으로 접근을 감지하지 못한 건 아니었으나 생각의 속도가 따라 주지 못했다.
‘강하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악마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청초한 얼굴에, 살결에서는 과일처럼 상큼한 향기가 났다.
“뭐 해? 계속해.”
시로네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고?”
소다스가 몸을 완전히 밀착시키더니 한 손을 아래로 넘겨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널 지켜 줄 테니까, 다 죽여 버리라고.”
이번에는 무슨 속셈인지 의심스러웠지만 소다스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어차피 여단장급은 당하지 않을 테고, 남은 놈들이야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테니까.”
인간이 마魔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네 부하들이잖아.”
소다스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실 나는…… 참회하고 싶어. 이제 마족으로 사는 것은 끔찍해. 그러니까 제발…… 나에게도 한 번만 기회를…….”
‘언제나 그런 식으로 말하지.’
하지만 이고르는 이렇게 말했다.
-참회하는 악마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내 더러운 몸을 당신의 빛으로 정화시킬 수 있다면, 나도 어쩌면…….”
소다스의 눈동자가 위로 올라갔다.
“아아, 이것이 야훼의 몸…….”
아래로 손을 내린 것과 달리 소다스가 힘을 불어 넣은 쪽은 목을 쥐고 있는 오른손이었다.
‘죽어라!’
시로네의 목을 부러뜨리려는 그때.
“허억!”
야훼의 빛이 퍼지면서 목을 움켜쥔 손부터 재로 변해 흩날리기 시작했다.
“흐으으으윽!”
퀀텀 슈퍼포지션은 이미 해제한 상태였다.
“또…….”
시로네의 목소리에 괴로워하던 소다스가 힘겹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거짓말했잖아.”
전과 20범의 사기꾼을 믿을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악마가 참회한다고?’
부모는 믿는다.
엄마, 이제 다시는 안 그럴게요, 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빌면, 전과 20범이든 200범이든 믿을 수밖에 없는 것.
‘달라질 수 있다고, 이번만은 진짜라고…….’
그렇기에 시로네는 결코 변할 수 없는 인간의 아픈 자식, 마魔를 소멸시키면서도 오히려 슬펐다.
“아니에요.”
애절한 눈망울로 시로네를 내려다보는 소다스가 재로 변해 가는 손으로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정말로 참회하려고 했어요.”
“으아아아아!”
야훼의 빛이 퍼지면서 소다스와 주위에 있던 모든 마족들이 타들어 갔다.
“허억! 허억!”
무상심의 호흡법으로 정신을 안정시키는 동안에도 적들은 끝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할 만하냐?”
무릎을 꿇은 시로네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미네르바가 뒤편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 또한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마족에게 잡아 뜯긴 옷이 너덜너덜했다.
슈퍼퀄리어의 감각은 마음을 물질처럼 다룰 수 있고, 시로네는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았다.
“아직까지는. 미네르바 씨는 어때요?”
“나도 뭐…… 그럭저럭.”
기 싸움을 할 때가 아니었다.
“저를 지켜 주세요. 다시 퀀텀 슈퍼포지션을 발동해서 마족들을 쓸어 내면…….”
“소용없어. 아직도 모르겠냐? 야훼의 빛은 그 자체로 마족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미네르바가 곰방대를 앞으로 겨누었다.
“그건 마족들이 비실체이기 때문이지. 나름 타격은 입겠지만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고.”
“그럼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아니.”
미네르바가 녹색 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
“조금 더 건설적인 방법이 있지.”
연기가 오는 것을 차단한 시로네가 사방의 적들에게 천사의 징벌을 가했다.
“뭘 어쩌려고요?”
남은 병력, 3,363,305명.
“금지된 술법을 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