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96
메이레이가 눈을 깜박이며 돌아보았다.
“아뇨, 방금 무슨 소리가…….”
“소리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마법사는 방을 빙 둘러보았고, 확실히 소란과는 거리가 먼 정갈한 풍경이었다.
‘생리 현상인가?’
여자라면 부끄러울 수도 있으리라.
“알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르십시오.”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이레이의 태연한 눈빛에 인간의 감정이 사라져 있음을 마법사는 파악하지 못했다.
“그럼…….”
문이 닫히자 그나마 인간성을 지니고 있던 얼굴이 완벽한 인형의 얼굴로 돌변했다.
“대법관님.”
한쪽 귀를 막은 상태로 메이레이가 답하자 테라포스의 대법관이 계시를 전했다.
-조금 전에 생물계를 초월하는 위력이 감지되었다.
“그렇군요. 누구입니까?”
-인류의 대표, 헥사.
“…….”
대법관이 고민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의회의 판결을 어떻습니까?”
인간들의 성서에 테라포스가 악신이라 불리는 이유는, 실제로 그들이 수많은 문명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침략자가 아니다.
오히려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존재였고, 그렇기에 태성은 한때 이런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사용자 보호 시스템.
이는 테라포스 종족의 대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절대 3원칙을 통해서도 추론할 수 있다.
하나, 우리는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며, 필요할 경우 인류사에 직접 관여한다.
하나, 우리는 선과 악의 대결에서 악이 완벽하게 승리했을 시, 그 문명을 파계한다.
하나, 우리는 의지를 가진 특정 생물이 상위 시스템을 침범했을 시, 적극적으로 저지한다.
테라포스의 존재 이유는 종족이 아닌 마치 우주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느낌을 준다.
또한 그 균형의 기준은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넘어 존재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어느 하나의 변수로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치열한 생물의 삶에 반칙이 저질러지지 않도록.’
율법의 심판자.
수많은 신탁을 통해 테라포스를 이해하게 된 메이레이는 차분하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헥사의 파계는 절대 3원칙 마지막 문항에 위배되지만, 두 번째 문항에 초점을 맞추는 법관도 있다.
절대 3원칙에 우선순위는 없으며, 그렇기에 항에 번호가 붙지 않고 모두 1번의 위치를 갖는다.
-결국 악이 이기면 우리가 파계한다. 선악의 대립이 최후에 달한 지금, 인류의 대표인 헥사라면 유예의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다.
“일리가 있군요. 악이 승리하면 모든 게 끝나지만, 헥사의 파계는 적극적인 저지 정도니까요.”
-의회보다 네가 낫군.
당연히 농담이었고, 지금의 말을 통해서 테라포스의 대법관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그만큼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
테라포스는 우주의 모든 소리를 수집할 수 있고 메이레이의 마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 심판의 날이 앞당겨질 수도 있겠지. 물론 최종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제가 할 일은 뭐죠?”
-시온으로 가라. 악의 대립에 맞서기 위해서는 너의 귀가 필요할 것이다. 선이 역전할 일말의 여지가 생긴다면, 의회도 생각을 달리할지 모르지.
“알겠습니다.”
아직 교신이 끊어지지 않은 것을 깨달은 메이레이가 황급히 물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테라포스가 인류를 인도했다면, 테라포스를 인도하는 절대 3원칙은 누가 만든 것이죠?”
인간이기에 생기는 당연한 호기심.
-네가 짐작하는 대로다.
교신이 끊어졌다.
“앙케 라…….”
그리고 이제는 나네였다.
매섭게 전방을 노려보던 메이레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협회장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
마라두크의 성을 점령한 시로네와 미네르바는 지하 8층에서 ‘불판’을 찾았다.
직경 수백 미터에 달하는 용광로 안에는 용암이 이글거렸고 망자들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끔찍하군요.”
야훼의 빛이 열기를 차단하지 않았다면 서 있는 상태에서 몸이 불탔을 것이다.
“끔찍한 만큼 강한 마족이 탄생하겠지. 아마도 저곳에서 지옥 불을 끌어다 쓰는 모양이야.”
벽에 설치되어 있는 수십 개의 배수로에서 용암이 끝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상류에서 불줄기를 차단하면 마라두크의 영역에 있는 마족들은 힘을 쓰지 못할 거야. 아마 다른 군단장의 영역으로 편성되겠지.”
“다시 돌아와서 화로를 열면요?”
“그렇게 못 하도록 해야지. 북에이몬드는 이미 무정부 상태이니 남에이몬드의 통령에게 지시를 내리자. 성전에서 따로 주둔군을 파견해도 좋고.”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네요.”
“사는 게 다 그렇지. 별들이 바쁜 이유를 알겠지? 행성을 몇 바퀴를 돌아도 끝이 없다니까.”
시로네는 ‘불판’의 통제장치로 다가갔다.
“되게 구식이네요.”
“알잖아? 마魔는 인간이 쓰다 버린 것들을 재활용해서 살아가는 거야.”
“…….”
수백 개의 톱니바퀴로 맞물려 있는 스위치를 잡아당기려는 그때 불판에서 소리가 들렸다.
“사, 살려…….”
1명의 마족이 용광로의 불길을 헤치며 바닥으로 기어올라 왔다.
“살려 주십시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끔찍한 몰골의 마족이 바닥을 기어오는 동안 시로네는 스위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아아, 야훼여…….”
마족이 갑자기 솟구치며 이빨을 드러냈다.
“네가 뭐가 그렇게 잘났어!”
포톤 캐논에 맞은 마족이 직선으로 날아가 용광로의 한복판에 풍덩 빠져들었다.
“깨끗한 척하지 마! 너도 우리랑 똑같아! 증오한다! 오만한 야훼……!”
마족이 원질로 녹아내렸다.
“…….”
슬픈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시로네의 손이 천천히 스위치를 내렸다.
쿠룽. 쿠룽. 쿠룽.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렸다.
파계 (2)
***
남南에이몬드 공화국.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알마레타의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상기되어 있었다.
‘드디어 통일이 오는가?’
첩자의 정보에 의하면 이고르는 이미 사망했고 몇 시간 전에 수도 파시아가 해방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오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 앞에서 냉철함은 사라졌다.
통령을 기다리는 장관들도 각자의 채널을 통해 해방 소식을 들었으나, 정확한 사안을 아는 사람은 소수였다.
“과연 믿을 수 있는 정보일까요? 이상한 구석이 많아요. 우리 쪽이 손해를 보는 일은 없겠습니다만.”
마족의 침략을 피한 나라는 세계에서 손에 꼽지만 장관들에게는 전쟁도 호황이었다.
‘돈은 많이 벌리니까.’
죽음이 목전까지 다가온 국민들은 의회의 세금 인상안을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북파 간첩 400명 중에 1명만이 해방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너무 들떠 있는 거 아닌가요?”
제이시만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마족의 감시를 피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실력도 출중하고 애국심도 깊죠. 이고르가 사망한 건 사실이에요.”
내무 장관이 국방 장관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랍니까?”
때마침 알마레타가 들어왔다.
“제가 설명하죠.”
장관들이 일어서자 그녀가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의장대로 올라갔다.
“북에이몬드가 해방된 것은 사실입니다.”
“단정 지을 근거라도 있습니까?”
“이고르는 이미 오래전에 사망했으니까요.”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본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 사태를 주도한 핵심 세력은 레지스탕스도 아나키스트도 아닌, 상아탑입니다.”
장관들 사이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가 브리핑하겠습니다.”
국방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장대로 걸어가자 알마레타가 자리를 비켜 주었다.
30분가량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현재 수도에 거주하는 마족의 숫자는 10단위 이하일 것으로 추정되며, 2명의 별들은 제단을 봉인하러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장관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고작 하루 만에…… 단둘이서 파시아를 해방시켰다고?”
“괴물 같은 놈들.”
상아탑의 별이란 작자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인가?
“브리핑 감사합니다.”
국방 장관이 자리로 돌아가자 통령 알마레타가 연단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모두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우리는 분단 이후 가장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현재 북은 무정부 상태예요. 1분1초가 아까운 시점입니다.”
내무 장관이 말했다.
“당장 군사를 출진시켜 북을 점령해야겠죠. 원래부터 우리 땅이었습니다. 타국에 넘겨줄 수는 없어요.”
알마레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하는 바입니다. 단, 우리가 독단적으로 행동하면 상아탑에서 나설 것입니다. 상호 합의를 거쳐야 해요.”
좋은 말로 상호 합의라는 표현을 썼지만 별들을 상대한 경험이 있는 장관들은 끙 소리를 냈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되겠군.’
외교 장관이 말했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줄 것은 주더라도 북에 대한 간섭권만큼은 확실하게 찾아올 자신이 있습니다.”
별을 다룬다는 말은 어폐가 있지만, 외교 장관은 상아탑을 상대로 극적인 타결을 이뤄 낸 적이 있었다.
“아뇨. 이번만큼은 제가 직접 협상할 것입니다.”
“통령께서요?”
별들이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보통 일국의 수장이 수모를 당하기를 자처하지는 않았다.
“대체 어떤 별들입니까? 우리도 아는 분들인가요?”
“그건…… 특수 기밀입니다.”
상아탑의 별이라고 해도 한때는 특정 국가에 소속된 국민이자 마법사.
장관급이 모인 자리에서 그들의 신상을 미리 밝히는 것은 어쨌거나 국가에 좋지 않았다.
외교 장관이 경험자답게 말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야 우리도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지 않겠습니까? 별이 몇 개입니까?”
그의 지론에 따르면 상아탑의 별들은 별의 개수에 따라 성향이 조금씩 달랐다.
“별의 개수는 10개입니다.”
“10개라…….”
기억을 더듬으며 눈을 굴리던 외교 장관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잠시만요. 두 사람인데 어떻게 별이 10개가…….”
외교 장관의 얼굴이 박제된 것처럼 굳었다.
“10개?”
5 더하기 5는 10이라는 기초적인 산수가 머릿속에 지나가고, 모든 장관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대충 아시겠죠?”
장관들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알마레타가 문을 향해 턱짓을 하며 말했다.
“뭐 해요, 빨리 안 움직이고?”
시로네와 미네르바는 제트를 타고 남에이몬드의 영공을 빠르게 종단했다.
“저기가 수도 가르단이야.”
초원의 한복판에 세워진 거대한 도시였다.
“바슈카보다 크네요.”
“공화국이니까. 사회비용을 감당하고도 개발 속도는 왕국보다 훨씬 빠르지. 국방력은 월등히 높고.”
토르미아도 강대국에 속하지만, 남에이몬드의 국방력은 칠왕성에 준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도 토르미아가 더 좋아요.”
“후후, 누가 뭐래?”
상아탑의 별에게 국가는 의미가 없지만 인간미를 되찾은 시로네의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
“성문 앞에서 내리죠.”
“괜찮아. 상아탑의 별은 영공도 프리 패스니까. 그리고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군대의 행렬이 정부 청사까지 이어져 있었다.
“수장과 면담하는 건 처음이지? 아마 군인들은 지금 제정신이 아닐 거야. 상부에서 미친 듯이 쪼아 댈 테니까.”
“굳이 이렇게 환대할 필요가 있나요?”
“없지. 뜯어낼 것이 있으니까 저러는 거야. 휘둘리지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소리보다 빠르게 성벽을 넘어 정부 청사에 도착하자 장교가 열중쉬어 자세로 소리쳤다.
“극빈을 맞이하라!”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미리 공수한 시민들이 꽃가루를 뿌리며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다.
“신경 꺼. 앞만 보고 걸어.”
단지 호의가 아님을 알고 있는 시로네도 신중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관, 차관, 각 부처의 전문가 및 책임자, 장군의 계급장을 달고 있는 사령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