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97
‘저 사람이…….’
청사의 건물을 배경 삼아 서 있던 남에이몬드의 통령 알마레타가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오서 오십시오, 극빈이시여. 남에이몬드 공화국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민들이 지켜보는 와중에도 그녀는 시로네와 미네르바에게 두 번 고개를 숙였다.
‘사활을 걸었군.’
미네르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반면에 시로네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어, 저는 상아탑 소속…….”
통령을 무시한 미네르바가 측면에 서 있는 50대 초반의 남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랜만이다, 꼬맹아?”
남에이몬드 마법협회장, 루다 가르시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화염 마법을 극한까지 연마한 공인 제1급의 대마법사로, 그의 파이어볼은 마을 하나를 태운다고 한다.
“다시.”
미네르바가 고개를 더 숙이라는 듯 검지를 아래로 구부리며 말했다.
“…….”
가르시아는 미동이 없었다.
“다시.”
“최선을 다해 준비한 환영식입니다. 상호 간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은 하지 마시죠.”
시로네는 가르시아를 처음 볼 때부터 느꼈다.
‘강하다, 이 사람.’
토르미아의 마법협회장인 루피스트와 비교해도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기도였다.
“다시.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무시당한 것은 까맣게 잊은 알마레타가 난처한 표정으로 눈짓을 보냈다.
‘그냥 해요. 이 인간 성격 알잖아.’
가르시아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상아탑의 별이시여.”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던 미네르바가 턱짓으로 시로네를 가리켰다.
“한 명 더 있잖아.”
가르시아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법협회장 가르시아입니다.”
“네. 아리안 시로네입니다.”
말이 길어져 봤자 기분만 상할 터였다.
“이야, 네가 협회장이야? 많이 컸네. 내 앞에서 벌벌 떨던 게 엊그제 같은데.”
미네르바의 나이가 새삼 느껴졌다.
“벌벌 떨지는 않았습니다.”
“시로네, 이 녀석 이름은 잘 기억해 둬. 화염 계열에서는 세계 최고니까.”
통령을 거들떠도 보지 않던 미네르바가 직접 소개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신빙성이 있었다.
두 사람을 회의실로 안내한 알마레타의 얼굴이 거짓말처럼 냉정하게 변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도 되겠습니까?”
“남에게 물어보는 게 무슨 단도직입이야? 어쨌든 해 봐. 통령의 성의는 충분히 봤으니까.”
이 발언권을 갖기 위해 숙였던 고개였다.
“북의 통치권을 주십시오. 제단의 관리는 물론 타국의 비난을 받을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공화국이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돈이다.
“어떡할래, 시로네?”
남에이몬드에 맡기는 게 속은 편하지만 제단 쪽은 성전이 관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완벽하게 봉인된 것은 아니에요. 절대로 뚫리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통령은 절대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다만 남에이몬드의 국방력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알마레타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테이블 아래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그리고 이건 약소하지만.”
시로네의 인상이 대번에 구겨졌다.
“이런 식으로는…….”
하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미네르바가 상자를 가져와 뚜껑을 열었다.
금은보화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채권이었고, 국가 인장이 찍힌 곳에 금액이 적혀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네.”
“남에이몬드 국가 예산의 1할입니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상아탑을 만족시킬 자신 있습니다.”
시로네의 눈이 퀭해졌다.
‘국가 예산의 1할을 준다고? 로비 수준이 아니잖아. 이건 절대로 받으면 안 돼.’
채권을 비비던 미네르바가 톡 하고 던졌다.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역시. 미네르바 씨도 상아탑의 별이니까.’
잠시나마 그녀를 의심했던 것이 부끄러워지는 그때, 충격적인 말이 들렸다.
“국가 예산의 절반. 그 이하로는 안 돼.”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그들이 제시한 1할의 금액도 그렇지만, 1명의 인간이 평생을 살면서 그렇게 많은 돈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알마레타가 울상을 지으며 시로네를 바라보았다.
“그건 너무 과한 요구입니다. 예산의 절반을 가져가 버리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겠어요?”
“어떻게 생각해?”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절반이면 저도 허락할게요.”
“…….”
다시 거짓말처럼, 알마레타의 간절한 눈빛에서 감정이 빠르게 소거되었다.
“2할 5푼. 그 이상은 양보할 수 없어요.”
“우린 5할이라고 했어.”
“3할. 그 이상이라면 자국은 차라리 북에이몬드의 통치권을 포기하겠습니다.”
“4할. 이걸로 끝내자.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지. 매년 1할씩 4년에 걸쳐 지불하거나, 지금 국채를 넘기거나.”
“……지금 드리겠습니다.”
미네르바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제법 괜찮은 통령이야, 너는.”
1할씩 납부하는 4년 동안 타국에서 그 이상의 금액을 지불하리라고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계약을 끝내면 앞으로 상아탑에서 간섭할 일은 영원히 사라진다.
‘반대로 말하자면…….’
1년 예산의 4할을 주더라도 북에이몬드의 통치권을 갖는 게 훨씬 남는 장사라는 의미.
‘그래도 이것으로 남에이몬드가 폭주할 일은 없다. 이 정도 선에서 끝내는 게 좋겠지.’
의외인 점은 시로네가 상당히 빠른 시점에 자신의 의도를 눈치챘다는 것이다.
‘도통한 줄 알았더니, 의외로 실속파야.’
일국의 예산 4할이라면 미네르바가 평생 돈을 뿌리고 다녀도 소진할 수 없는 금액.
시로네는 돈의 문제가 아닌, 남에이몬드의 예산을 깎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미 칠왕성에 준하는 군사력이다. 북에이몬드를 흡수하면 또 다른 분란의 씨앗이 될 거야.’
알마레타가 새로 작성한 채권을 내밀었다.
“두 분 모두 상아탑 최고의 위치시니, 이것으로 뒤탈은 없을 것으로 믿겠습니다.”
국가 예산의 4할에 달하는 금액이 적혀 있었다.
파계 (3)
***
“이것으로 깔끔하게 한 건 해결!”
미네르바가 품속에 채권을 넣으려고 하자 시로네가 빠르게 손목을 붙잡았다.
“잠깐 기다려요.”
“알았어, 알았어. 어차피 반으로 나누려고 했어.”
“이런 돈이 도대체 왜 필요한데요?”
개인이 부릴 수 있는 사치의 한계를 초월하는 액수였다.
“너는 이제 막 부서를 맡아서 모르겠지만, 상아탑을 운용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깨지는 줄 알아? 코로나 왕국의 수입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그렇다고 대놓고 돈을 요구해요?”
“우리가 요구한 게 아니잖아? 정당한 거래야. 게다가 남에이몬드는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았어.”
예산의 4할이 깎이는 것은 국가 운영에 치명적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는 나라를 거저먹은 셈이었다.
“북에이몬드를 해방시킨 사람은 바로 너야. 너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계산하는 것도 별의 임무라고.”
별다른 견제 없이 북에이몬드를 넘겼다가는 국가 간의 밸런스가 무너질 터였다.
‘성전에 맡긴다고 해도 다를 건 없지.’
시로네의 손목을 뿌리친 그녀가 다시 채권을 꺼내더니 눈앞에서 흔들었다.
“안 가질 거면 내가 다 먹는다?”
“마음대로 하세요.”
통합우주관리부의 입장에서는 그저 인류 안전을 위해 잘 쓰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돌아가자. 태성에게 보고해야지.”
청사의 출구로 걸어가는 그때, 누군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뭐야?”
머리의 왼쪽을 밤톨처럼 깎았고 관자놀이 쪽에 스크래치를 새긴 사나운 인상의 청년이었다.
반대편의 머리는 수십 가닥으로 꼬아서 내렸는데, 끝에 짐승의 이빨 같은 장신구들이 달려 있었다.
‘마법사다.’
상대의 감정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노골적인 공격형의 스피릿 존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남에이몬드의 공인 마법사 스카이 위고라고 합니다.”
미네르바가 곧바로 받아쳤다.
“몰라. 어쩌라는 거야?”
남에이몬드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법사였기에 위고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쳇, 정말로 모른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로네를 돌아보았으나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릴 뿐이었다.
“실망스럽군요. 미네르바 씨야 대선배니 그렇다 치더라도 시로네, 당신은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미네르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미네르바 씨? 당신?”
남에이몬드 마법협회장인 가르시아조차 자신들을 이렇게 부르지는 못했다.
선을 넘었다는 것은 위고도 알고 있는지 즉각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무례하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저에게는 워낙 남 같지 않은 분들이라서.”
“우리가 왜 남 같지 않은데?”
“그야…… 저도 상아탑 후보였으니까요.”
시로네가 눈썹을 들었다.
“후보였다고요?”
일전에 아르테가 소개했던 후보군은 라 에너미를 시작으로 나네, 진성음, 시로네가 전부였다.
“이번에 상아탑에서 정한 후보군의 숫자는 총 10명. 그리고 저는 서열 9위였습니다.”
사실이라면 불쾌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아, 미안해요. 저도 후보에 대해서는…….”
미네르바가 시로네의 말을 끊었다.
“서열 9위 스카이 위고. 너처럼 이모탈 펑션을 개방한 언로커고, 스케일 마법사야.”
모른 체할 때는 언제고 정보가 술술 나오자 위고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기억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시로네도 의외였다.
“알고 있었어요?”
“딱히……. 스카이 가문이라면 다른 후보보다는 눈이 더 가기 마련이지. 미로의 아드리아스 가문과 비견되는 세계 최고의 구도자 가문이니까.”
미로라는 이름을 듣자 어느 정도인지 감이 왔다.
“미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우열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팽팽했지. 아드리아스의 성품이 수비적이라면 스카이는 공격적. 수렴과 발산의 차이라고 보면 될 거야.”
아드리아스에서 분가한 아르디노 가문의 욜가 또한 세계 최고의 수비력을 자랑했다.
“구도자 가문은 날 때부터 세상의 이치를 연구하기에, 이모탈 펑션에 들어갈 확률이 상당히 높지. 아마 스카이 정도면 국가 차원에서 밀어주고 있을걸.”
“흐음.”
시로네가 생각에 잠긴 사이 미네르바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우리를?”
미로가 위대한 이유는, 위대한 아드리아스 가문에서도 독보적으로 위대했기 때문.
스카이 가문의 명패를 내세운다고 해서 상아탑 오대성이 태도를 바꿀 이유는 전혀 없었다.
위고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으나 마치 반동처럼 활짝 웃는 표정으로 변했다.
“하하! 그렇죠. 저야 뭐, 상아탑에 들어가지 못한 일개 마법사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거 아세요? 우리들은 테스트를 받을 기회도 없었다는 것을.”
위고가 시로네를 가리켰다.
“듣기로는 시로네 씨도 저와 다르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라 에너미라는 절대적인 후보가 없었다면 말이죠.”
당시 시로네의 후보 서열은 4위.
나네와 성음의 카르 수치와 유사한 군에 묶여 있기는 했지만 운이 따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왜 화가 났는지 알겠네.’
카르 수치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오대성에 등극한 시로네가 증명하고 있었다.
‘나네와 성음을 제치고 별이 되었다.’
지금이야 야훼의 경지라지만, 테스트 당시만 해도 시로네의 실력은 지금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10명의 후보가 똑같이 테스트를 받았더라면 지금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는 위고였다.
“아하, 알았어.”
미네르바의 눈에 장난기가 담겼다.
“어떤 경우에는 기회가 전부니까. 그래서 어떡할 거야? 죽음의 대결? 이기는 사람이 오대성이 되는 걸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나는 새싹을 잔인하게 밟아 주는 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취미 생활이었다.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딱히 오대성이라는 자리에 미련도 없고요.”
위고는 애송이 취급하는 미네르바가 불쾌했다.
‘이미 격차는 벌어졌다.’
세계 최고의 학생들 중에서 5명을 더 추월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장 큰 성장의 기회를 놓친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