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
그러다가 눈앞에까지 다가온 검술 사범을 발견하고 사시나무 떨듯 오들거렸다.
“스승님, 이건 오햅니다!”
“이노오옴!”
검술 사범은 리안의 멱살을 붙잡는 것과 동시에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으아아아!”
리안의 몸이 원호를 그리며 떨어지는 순간 시로네는 한쪽 눈을 감았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바닥에 퍼져 버린 리안이 사지를 부르르 떨었다.
“따라와, 이눔의 시키야! 넌 수련이고 뭐고 정신 무장부터 다시 해야 돼.”
다리를 붙잡힌 채 끌려가는 리안이 뒤집어진 시야로 시로네를 향했다.
그리고 입술을 뻐끔거렸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입 모양만으로 전하는데도 시로네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두고 보자.
목숨보다 값진 기회(3)
그날 이후 시로네는 뒤통수가 근질근질했으나 리안은 나타나지 않았다.
풍문으로 들으니 검술 사범에게 붙잡혀 산으로 끌려갔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나서야 시로네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사람이란 망각의 동물이라,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금세 잊히기 마련이었다.
‘고작 그 정도로 앙심을 품겠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로네는 자신의 조국인 토르미아 왕국의 건국사를 읽었다.
네 달 동안 독파한 서적의 숫자는 여든두 권.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권을 거듭할수록 읽는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어.’
처음 한 권을 떼는 데 20일이 걸렸다.
하지만 그 한 권을 완벽히 이해하고 나자 그다음부터는 많은 것들이 편해졌다.
어떤 책도 완벽하게 새로운 내용은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딘가에서 읽었던 내용이 또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겁먹을 필요 없어. 처음이 힘들 뿐이야.’
이대로 이백 권 정도 기초를 다져 놓으면 남은 육백쉰 권은 쉽게 소화시킬 수 있을 듯했다.
시로네가 역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단연 마법사의 활약이었다.
학자가 이론을 연구한다면 마법사들은 그 이론을 현실로 구현해 내는 사람.
이런 관계에 따라 마법사의 직업군 또한 학문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했다.
그럼에도 모든 학자가 마법사가 아닌 이유는 극도로 예민한 정신 상태, 즉 스피릿 존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지식에 더해 마법사가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은 예민한 감각.
따라서 이미 스피릿 존을 터득한 시로네는 더욱 무섭게 지식을 쌓는 일에 몰두했다.
잡학의 호기심을 억누르고 역사만을 들이팠다.
‘지금은 참는 거야.’
훗날 지식의 척추가 완성되었을 때 얻게 될 무궁무진한 효율을 위해서였다.
그 효율이 마침내 빛을 발할 때, 자신은 과연 어떤 마법사가 되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노라면 자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후우.”
건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 내린 시로네는 만족한 표정으로 책을 덮었다.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너 이 자식! 내가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지옥에서 버텼다!”
당사자의 말을 빌리자면 지옥에서 돌아온 오젠트 리안이었다.
독기가 바짝 오른 얼굴이 악마의 화신이라고 해도 믿을 만했다.
시로네는 혀를 내둘렀다.
‘집요하다, 진짜.’
모르긴 해도 검술 사범에게 끌려갔을 당시와 똑같은 크기의 분노였다.
변한 점이라면 눈 밑이 퀭해지고 몸이 마른 정도랄까?
“정말 그것 때문에 오신 겁니까?”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알아? 절벽을 수없이 오르내렸지. 손에 힘이 풀려 죽는구나 싶을 때마다 복수할 생각으로 버텼다고!”
시로네는 불안했다.
하루하루 증오심을 키워 왔다면 지금 자신의 모습은 철천지원수 같을 터였다.
“대답 안 해? 내가 고작 고생 좀 했다고 이러는 것 같아? 어째서 고자질을 했냐고 묻잖아, 이 비겁한 자식아! 난 너 같은 놈을 보면 속이 부글거려!”
“고자질한 게 아니고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내가 너에게 부탁했잖아. 그때는 왜 사실대로 싫다고 말하지 못했지? 난 너를 믿었어.”
귀족의 편한 논리야 이골이 날 정도로 겪었기에 시로네는 설득을 포기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예상과 다른 태도에 리안은 살짝 당황했다.
딱 봐도 이제 막 가문에 들어온 평집사 같은데, 하는 짓이 너무 태연했다.
“그래, 너도 나를 무시한다 이거지? 어디서 들은 게 있는 모양인데, 내가 어떤 놈인지 똑똑히 보여 주마. 따라와.”
시로네는 리안을 따라나섰다.
분노의 정도를 보아하니 어딘가로 데려가 죽도록 때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굴리면 굴리는 대로 하자.’
부모님이 목숨 걸고 만들어 준 기회를 물거품으로 날릴 수는 없었다.
두려움이 느껴질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도착한 곳은 소규모 연무장이었다.
무를 숭상하는 가문이라 저택에는 크고 작은 연무장이 여러 개 있었는데 지금 도착한 곳은 리안의 전용으로, 곡소리를 내질러도 누구 하나 달려오지 않는 장소였다.
리안이 횃불을 켜는 동안 시로네는 마른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차라리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뜸을 들이니 속이 거북스러웠다.
일부러 그러는지도 모른다.
검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전투 대치 상태의 긴장감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까.
“자, 이거 받아라.”
연무장이 밝아지자 리안은 목검을 던졌다.
찰진 소리를 내며 시로네의 손에 달라붙은 목검은 도끼의 손잡이보다 두꺼웠다.
“이걸 왜 저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난 너처럼 비겁하지 않아. 장차 세계 최고의 검사가 될 몸이니까. 나를 무시한 대가를 검으로 치르는 것뿐이다.”
시로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가 뭐가 그렇게 비겁했습니까?”
“오젠트의 집사라면 오젠트를 지켜야 한다. 너는 스승님에게 맞기 싫어서 나를 팔았어. 사람이 곤경에 처해 있는데 고민조차 하지 않았지. 내가 아무리 가족에게 무시당해도 너 같은 놈에게까지 같은 취급을 당하지는 않아. 덤벼라. 실력 차이를 감안해서 일단 세 번은 받아 주고 시작하마.”
리안의 눈빛이 변했다.
단순 무식한 성격인 것 같아도 저 눈빛만큼은 명백한 오젠트 가문이었다.
투지에 반응한 시로네도 어느새 양손으로 목검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목검. 생각보다 단단하다.’
말인즉슨, 리안이 제시한 세 번의 기회가 끝나면 뼈가 부러진다는 뜻이었다.
온갖 잡념이 머리를 스쳤다.
‘어떡하지? 내가 뭘 할 수 있지?’
절망감 속에서도 시로네는 포기하지 않았다.
‘휘둘러 보는 수밖에.’
아무리 가능성이 낮은 일이라도 시도할 기회마저 내버릴 수는 없었기에.
“이야아압!”
검을 치켜세우고 돌진하는 시로네의 기세가 남달랐으나 리안은 코웃음을 쳤다.
자세도 그렇고 무게중심도 엉망이었다.
‘검을 잡아 본 적이 없군.’
시로네의 공격을 막아 내며 리안이 소리쳤다.
“하나!”
딱! 경쾌한 소리가 연무장에 퍼졌다.
시로네에게는 그 소리가 목을 죄어 오는 사자의 발걸음 소리처럼 들렸다.
뱃속의 공포심을 기합으로 토해 내며 연거푸 가로 베기를 시도했다.
“둘!”
이번에도 손쉽게 막아 낸 리안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것이 보였다.
시로네는 울컥했으나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고도의 집중 상태에 돌입했다.
‘스피릿 존.’
온갖 정보가 공감각으로 통합되면서 회심의 일격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리안은 코웃음을 쳤다.
‘세로 베기,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아무리 초심자라고 해도 이런 단순한 패턴이라면 못 막는 게 더 힘들 터였다.
목검을 들어 시로네의 공격을 막은 리안이 한 걸음을 내디디며 소리쳤다.
“자! 이제부터 내 차례……!”
콰지지직!
리안이 들고 있는 목검의 중앙부가 터져 나가고, 시로네의 목검 또한 부러졌다.
흩날리는 나무 파편들이 리안의 경악에 물든 얼굴 앞을 스쳐 지나갔다.
“어?”
황급히 정신을 차린 리안은 두어 걸음을 물러서서 목검을 살펴보았다.
단면의 결이 거칠게 일어서 있었다.
충격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부에서 돌아 버렸을 때 생기는 특징이었다.
“이건…… 검살이잖아?”
무기 파괴식 검살.
베기가 없는 검술은 없듯, 모든 유파에는 하나 이상의 무기 파괴식이 존재한다.
오젠트 가문에서는 이를 검살이라고 칭하며 오의를 직전으로만 전하고 있다.
오의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는 이유는 단지 힘이 세다고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대결에서는 힘의 가중만큼이나 힘의 흡수도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검살이 성공하려면 충격의 집중과, 거기에 대응하는 상대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포착해야 한다.
리안은 충격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검을 잡은 그조차 사람을 상대로 검살을 성공시킨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기분이 나쁜 건, 아직까지 가문에서 검살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너, 도대체 뭐야? 어디서 검술을 배운 거야?”
시로네는 부러진 목검을 떨어뜨렸다.
‘도박이 통했어.’
첫 번째 타격으로 감각을 느끼고, 두 번째 타격으로 상대의 타이밍을 계산했다.
그리고 세 번째에 해 버린 것이다. 3년간 수도 없이 연습했던 천둥패기를.
“검술을 배운 적은 없습니다!”
“닥쳐! 뼛속까지 야비한 자식! 그럼 어떻게 검살을 성공시켰지? 날 조롱하는 것이라면 가만두지 않겠다!”
“이건 천둥패기라는 것입니다.”
“천둥패기?”
“저의 아버지는 사냥꾼입니다. 산에서 살다 보니 저 또한 어릴 때부터 나무를 하러 다녔습니다. 체격이 크지 않아서 기술적으로 나무를 패야 했고, 그러다가 자연스레 익히게 된 기술입니다. 나무꾼들 사이에서는 이걸 가리켜 천둥패기라고 부릅니다.”
리안의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엉켰다.
‘산꾼? 나무를 하러 다녔다고?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난 15년 동안 검을 잡았어. 장작 좀 팼다고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잖아. 내 또래 중에도 검살을 성공시킨 놈은 1명도 없단 말이야. 있다고 해 봤자 기껏해야…….’
리안은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오젠트 라이.’
리안보다 두 살이 많은 오젠트 가문의 차남이었다.
또한 가문 역사상 최고의 재능이라고 평가받는 검술의 천재이기도 했다.
형의 환영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서 리안은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제길.’
라이는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검살을 성공시켰다.
가문의 경사였고, 아버지는 일주일 동안 성대한 파티를 열어 주었다.
리안은 그날의 감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결국에는 산꾼의 자식에게조차 따라잡히고 만 것이었다.
“인정할 수 없어!”
리안은 일갈을 내질러 라이의 환영을 날렸다.
정말로 노력했다.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검을 휘두르며 끝없이 시도했다.
‘그런데…… 왜?’
어째서 저놈은 되고 자신은 되지 않는 것인가.
“도련님, 제가 결례를 범한 것은…….”
“닥쳐! 아직 아무것도 안 끝났어! 누구 하나 진 사람은 없다고!”
리안은 연무장의 외곽으로 향했다.
다양한 무기가 구비되어 있는 그곳에서 그는 귀족이 사용하는 고급스러운 장검을 가지고 돌아왔다.
진검을 본 시로네는 섬뜩했다.
‘설마?’
물소리를 내며 빠져나온 검이 횃불을 빨아들여 용암처럼 이글거렸다.
날의 상태를 확인한 리안이 다시 검집에 넣더니 시로네에게 던졌다.
한 발짝 다가가 두 손으로 받은 시로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리안이 손가락을 뻗으며 말했다.
“둘 다 무기가 망가졌으니 승부를 가릴 수 없다. 네가 검살까지 익혔다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 줘야겠지. 앞으로 한 달 후, 이곳에서 진검으로 승부를 겨루자.”
시로네는 억장이 무너졌다.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기책을 펼친 것인데 상황이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목검과 진검은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리안은 더 이상 세 번의 기회를 주지도 않을 터였다.
‘죽을 수도 있어.’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낀 시로네의 머릿속에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도련님, 제발 생각을 바꿔 주세요! 저는 검술을 배운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주는 거다. 나무를 하다가 검살을 익혔다고? 그 말을 믿지도 않지만, 설령 그렇게 잘난 놈이라면 한 달 사이에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리안은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젠트 라이라면 가능할 테니까.
그는 시로네에게서 형의 환영을 보고 있었다.
‘그래, 각오가 부족했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