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02
“그런가요?”
뇌가 환영 마법을 고속으로 전개하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인물들이 룰렛처럼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멈춘 것은 시로네였다.
“장난이 많이 늘었다?”
뇌가 미네르바의 부서에 들어간 이유는 인류 안전을 집행하기 위해서였다.
“나네를 지우기로 한 걸로 아는데요?”
“후후, 꽤나 증오하나 보네? 아니지, 정말로 증오하는 건 나네가 품은 앙케 라인가?”
뇌는 유도신문에 넘어가지 않았다.
“헥사에게 모든 걸 맡길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유일하게 거핀의 정보를 백업해 두고 있는 뇌의 말이었기에 흘려들을 수 없었다.
“알고 있어. 너처럼 생긴 게 내 머리 안에도 있거든?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들었는데요.”
“게임을 끝낼 가능성은 봤어. 하지만 도박에 돈을 거는 것과 현실은 다르지. 선악공애, 어느 쪽에든 거대한 충격을 주어야 균형을 깨트릴 수 있어.”
“그래서, 애愛를 도와 악惡을 친다?”
“그럼 공空을 도와 선善을 칠까?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수 중에서 가장 합리적이야.”
“로 가능할 것이라 보십니까?”
미네르바는 입을 다물었다.
“악은 합리적인 판단으로 넘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설령 율법을 바꾼다고 해도…….”
“알고 있어. 방법을 찾고 있단 말이야. 일단 시로네의 파계가 어떤 판결을 받을지 기다려 봐야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미네르바가 중얼거렸다.
“뭔가 계기가 생기면 좋겠지만.”
***
동방 중천동.
진천 제국령에 편입되어 있지만, 제국으로서도 손을 못 대는 율법적 성지였다.
구름을 뚫고 올라온 수만 개의 봉우리는 한때 율법의 일가를 이룬 자들이 마음을 닦는 장소였다.
이름하여 수도사의 산맥.
하지만 중천동의 수도사들이 시온으로 떠난 지금, 남은 것은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소시민과…….
“크하하하! 인간이다! 인간!”
그들을 학살하는 마족들이었다.
“민간인을 대피시켜라!”
진천 제국의 군대가 빠르게 대처했으나 중천동을 점령한 마족의 숫자는 40만에 달했다.
‘징글징글한 놈들.’
인구수로 세계 1, 2위를 다투는 진천이지만 중천동을 방어하는 병력은 고작 2만이 한계였다.
“막아! 목숨을 걸고 싸워라!”
수도사는 떠났지만 율법의 성지가 마족에게 함락되어 버린다면 인류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크아아아아!”
대하처럼 밀고 들어오는 마족들의 공세에 제국군은 수비의 이점조차 살리지 못했다.
지옥의 군대 제4군단 소속 7사단장 가르타스는 전신에 뾰족한 바늘이 피부를 뚫고 나온 괴인이었다.
“이 멍청아! 고작 그것밖에 못 괴롭히나!”
인간의 사지를 절단하고 있던 아귀가 가르타스의 일갈에 몸을 흠칫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 죽은 시체의 투구를 들어 때리려고 하자 가르타스가 가시가 튀어나온 발로 아귀의 몸통을 꿰뚫더니 멀리 날려 버렸다.
“으아아아아!”
“상상력이 없어! 최소한……!”
병사의 머리를 붙잡고 땅바닥에 짓누른 그가 마치 지우개를 갈듯 엄청난 속도로 비벼 댔다.
“이 정도는 하란 말이야!”
그 처참한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제국군의 지휘관 박기의 눈이 돌아갔다.
“이 자식아! 인간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말을 타고 언덕을 내려오는 박기의 모습에 가르타스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괜찮은 장난감이군.”
“내 죽어도 너의 목은 가져가리라!”
육체술을 4성까지 익힌 박기의 실력은 대단했고, 순식간에 수십 합이 치러졌다.
“끝이다!”
그의 창이 목을 관통했다.
“크크크, 기분 좋은데?”
가르타스가 그대로 걸어오더니 거대한 육체로 말과 박기를 동시에 끌어안았다.
키헤에에엥!
투레질과 동시에 말이 쇼크로 즉사하고, 수많은 가시가 박기의 갑옷을 관통했다.
“크윽!”
“어때? 기분 끝내주지?”
죽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가시로 몸을 뚫는 것은 국가를 막론하는 대표적인 고문이었다.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몸을 들썩거릴 때마다 고통은 심해졌고, 결국 박기도 포기한 채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즐거운가?”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얼굴에 문신을 새긴 남자가 슬픈 표정으로 서 있었다.
“크악!”
박기를 뽑아서 떨어뜨린 가르타스가 오만상을 일그러뜨리며 전신을 돌려세웠다.
“부처…….”
마에게 야훼가 증오의 대상이라면 부처는 공포의 대상.
“무엇이 그리 즐거운가?”
나네의 뒤편에서는 슈라가 수많은 마족들을 게슈탈트의 능력으로 학살하고 있었다.
“왜 왔지? 네가 해방시킨 제단이 아니던가? 인간들에게 공포를 깨우치게 하려고 말이야.”
나네는 거핀의 문을 찾아 이곳에 왔다.
“그러니 우리는 싸울 이유가…….”
“설법. 통痛.”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기괴한 보랏빛 검이 튀어 나가 가르타스의 명치에 박혔다.
“크아아아아아!”
눈알이 빠져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뜬 가르타스가 배를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아파! 아파아아아아!”
“그래. 그것이 고통이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도 박기는 나네가 단 일격에 사단장을 제압해 버린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이것이 부처인가…….’
나네가 걸음을 옮기자 가르타스가 기겁했다.
“나,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네가 원하는 대로 했잖아! 아니, 했잖아요!”
“내가 원하는 것?”
“크아아아아!”
명치에 박힌 검이 진동하면서 마魔가 흩어질 정도의 고통이 전신에 차올랐다.
“그만! 제발 그만……!”
“똑똑히 들어라, 지옥의 졸개야.”
나네가 다섯 손가락의 끝으로 가르타스의 정수리를 짚자 고개가 굳었다.
“너희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니, 최소한 너희들이 참회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나네의 얼굴이 슬픔으로 구겨졌다.
“내가 세상을 닫을 이유도 없어.”
“안 돼! 차라리 날 죽……!”
“멸하라.”
설법이 발동되자 가르타스의 육체가 펑 소리를 내며 영원한 무의 세계로 흩어졌다.
부처의 등장을 깨달은 마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전투를 끝낸 슈라가 다가왔다.
“아직 숨이 붙어 있습니다.”
박기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부처시여…….”
나네가 듣겠다는 듯 얼굴을 가져다 댔다.
“제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정말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요?”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나네의 손이 박기의 가슴을 짚었다.
“한낱 꿈일 뿐이야.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거라. 일단 눈을 뜨면, 이 순간을 떠올리며 실소를 지을 것이니.”
“……그런가요?”
고통에 전율하던 박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빨리 깼으면 좋겠네요.”
세상에서 가장 편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그는, 아마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터였다.
합장을 하며 명복을 빌어 준 나네가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체로 인산인해를 이룬 풍경은 이면 세계의 지옥에서 보던 것과 닮아 있었다.
“더 이상 생존자는 없습니다.”
슈라는 이 말이 위로가 되리라 생각했다.
“좋은 일인가?”
하지만 나네는 되물었다.
“어, 물론 전쟁은 끔찍하죠. 수많은 생명이 고통을 당하고, 소중한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나네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더니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절규가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설법의 진동에 중천동이 뒤흔들리고, 뜻을 헤아리지 못한 슈라는 그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마음이 아프다.”
마의 세계로 떨어졌을 중생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아픈데도, 나는…….”
나네가 슬픈 표정으로 슈라를 돌아보았다.
“눈물을 흘릴 수가 없구나.”
공空의 아이러니.
그렇게 나네는 의문하고 있었다.
공의 의문 (3)
***
태평양을 종단하는 괴조 카이드라의 아래로 태양에 반사되는 수많은 별빛들이 넘실거렸다.
조종석에 앉은 줄루가 길을 인도했고, 우묵 들어간 등뼈에 강난과 가올드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오랜 정적을 깨고 강난이 입을 열었다.
“너무 실망하지 마요.”
줄루가 살며시 고개를 돌렸으나 가올드는 그저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어설픈 위로를 접은 강난이 본심을 드러냈다.
“아니, 지들이 수도사면 수도사지, 우리를 거부한다는 게 말이 돼요?”
시온에 들렀으나 돌아온 대답은 접근 불가, 결국 미로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율법의 균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요.”
“흥, 그럼 아르민 씨나 쿠안 씨는 뭔데요? 설령 시온이라도 무력 부대는 필요한 법이에요.”
가올드 일행의 실력이라면 오히려 시온에서 두 팔 벌려 환영해야 마땅했다.
‘그래서 더 이해가 안 가는 거야.’
아르민은 미로가 출타 중이라는 말로 둘러댔지만 결국 그녀의 지시가 아니고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균형 때문이 아니야.”
가올드가 눈을 뜨자 강난이 물었다.
“그럼 뭔데요?”
“나를 만나는 게 어색해서 그래.”
강난의 눈이 가늘어졌다.
“농담이 나와요? 아무리 잘렸어도 전 토르미아 마법협회장이 문전 박대를 당했는데?”
가올드는 넓은 바다를 돌아보았다.
“얼굴을 보기가 껄끄러운 거지. 천국에서 그렇게 지지고 볶고 했으니. 게다가 나한테 진 빚도 있고.”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줄루가 말했다.
“미로가 가올드에게 자자고 했다요.”
강난의 고개가 부러질 듯 돌아갔다.
“네? 도대체 언제요?”
“네가 도개교를 넘어 잡혀갔을 때. 둘이 대판 싸웠다요. 천하의 미로도 그때는 감정적이었지.”
강난이 구한 목숨이었다.
“그, 그래서…….”
“안 했어. 가올드는 너를 구하러 갔고, 미로는 멀쩡히 돌아오면 그때 자겠다고 했다요. 그리고 이제…….”
가올드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잠깐만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인류 최고의 구도자가 고작 그런 이유로 우리를 거부하는 게?”
줄루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연이든 아니든 미로가 가올드를 피하는 건 사실이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강난은 가올드를 바라보았다.
‘역시 지금도 미로 씨를…….’
지옥이든 현실이든, 가올드에게는 끔찍한 고통만이 전부인 똑같은 세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돌아온 이유는 단 하나, 이곳에 미로가 살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
나네와 슈라는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동방 중천동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올랐다.
‘저곳에…….’
거핀의 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