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05
가장 먼저, 주위에 있던 수십 개의 높은 봉우리들이 쏟아져 내리듯 지평선까지 짓눌렸다.
‘아, 그렇구나.’
천문학적인 수치의 마찰력이 작용하는 찰나의 순간에 나네는 깨달았다.
‘그래서 울 수 없었구나.’
어떤 물질도 녹여 버리는 고열이 대기를 팽창시키는 시간 속에서, 나네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앙!
중천동이 폭발했다.
“꺄아아아아!”
대지성전에 태성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또 1명이, 만을 초월했다.’
충격에 눈을 커다랗게 뜬 상태에서도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세계의 균형을 깨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수도사의 성지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세상에…….”
슈라가 내려다보는 중천동은 마치 신이 숟가락으로 땅을 떠 버린 듯 구덩이만 남은 상태였다.
열기를 빨아들인 강난이 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미로가 정신력을 모조리 쏟아부어 날아오르지 않았다면 전부 녹아 버렸을 터였다.
“살아 있기는 한 거예요?”
줄루가 구덩이의 한복판을 가리켰다.
“저기 있다요.”
지상을 살핀 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나, 나네가…….”
가올드가 내려다보는 발치에 대자로 뻗어 연거푸 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쓰러졌다고?”
눈으로 보고서도 현실 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가운데 미로만이 사실을 직시했다.
‘가올드, 너…….’
부처를 꺾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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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작용 (1)
폭발의 열기가 사라지자 미로 일행과 슈라는 가올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부처가 꺾인 초유의 상황 앞에서 그들의 감각은 작은 신호조차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행불행의 전체를 경험한 끝에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나네.”
줄루가 말했다.
“하지만…… 가올드보다 고통스럽지는 못했다요.”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지만 모든 고통을 이해하지는 못했고, 승부는 거기에서 갈렸다.
세인이 말했다.
“가올드가 허락하지 않는 한, 나네는 이 세상을 닫을 수가 없는 거군요.”
설법이 깨진 이유였다.
“그래. 지금 당장은.”
줄루의 부연에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돌려 가올드와 나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프냐?”
가올드가 나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전신이 심각한 골절을 당했고 입에서는 쉬지 않고 핏물이 용천했으나 눈은 평화로워 보였다.
“우주에서 제일.”
피식 웃음을 터뜨린 가올드가 나네의 옆에 털썩 주저앉더니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순간 기침이 터졌다.
“컥! 컥!”
만滿을 초월한 후폭풍이 밀려들면서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육신인데도 불을 빨아들이는가?”
기침을 멈춘 가올드가 아주 맛있다는 듯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담배를 빨았다.
“사는 고통에 비하면 담배쯤이야. 너야말로 오래는 못 버티겠어.”
가올드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두렵냐? 죽는 거 말이야.”
부처에게 물을 말이 아니었으나, 그렇기에 더더욱 가올드는 직접 듣고 싶었다.
“딱히.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은 가올드가 활짝 열린 지평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살아 볼 생각은 없냐? 공이니 뭐니 다 팽개치고, 지지고 볶으면서, 사람들하고 부대끼면서 말이야.”
강난의 눈이 슬픔에 잠겼다.
‘그렇겠지.’
어찌 나네가 밉겠는가?
‘사실은 가장 죽고 싶은 사람이 당신이니까. 그리고 나네는…….’
그런 가올드의 심정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자였다.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아. 너의 고통은 가히 끝없다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삶을 선택했지만…….”
중생의 삶을 떠올린 나네의 눈에서 피가 스며든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세상 모두가 너처럼 강하지는 않아.”
고통의 무게가 같다고 하여도, 모든 사람이 강인한 의지로 버티는 건 아니기에.
“……그렇겠지.”
숨을 쉬는 횟수만큼 죽음을 생각했던 가올드 또한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염병. 뭐가 그렇게 복잡하냐?”
가올드가 담배를 팽개쳤다.
“남들이 고통을 받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그럼 네 고통은 뭔데?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
나네는 단호했다.
“그게 옳다는 것을 아니까.”
나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알았으나, 가올드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설마?”
가올드가 이대로 나네를 살려 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로는 문득 불안해졌다.
‘율법의 연쇄 작용.’
부처가 존재하면 야훼도 존재하고, 결국 선은 끝까지 악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내가 직접 하겠어요.”
“미로.”
줄루가 차갑게 말했다.
“알고 있잖아? 우리에게 자격은 없다요.”
가올드만이 부처보다 고통스러웠다.
그렇기에 부처를 인정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오로지 그의 몫일 터였다.
“인류의 미래가 걸린 일이에요. 게임을 끝내지 못하면 수많은 자들이 고통을 받을 거라고요.”
“그것 또한 너의 신념이지, 가올드의 신념이 아니다요. 그는 인류가 아니야. 인간이지.”
“하지만……!”
“미로야, 그만 인정해라.”
줄루가 감정 없는 눈동자로 돌아보았다.
“인간이 이긴 것이다.”
중동어였다.
부처를 꺾은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극선은 입술을 깨물었다.
‘가올드, 내 얘기를 좀 들어 봐…….’
나네가 말했다.
“그만 끝내라. 네가 관철시킨 세상이니, 나 또한 인간에게 물려주고 떠나겠다.”
가올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너도 나쁜 놈은 아니야.”
미로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가올드으, 제발…….’
“다만.”
그 순간 마치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가올드가 고개를 돌려 미로를 바라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네가 여기에 살고 있으면 뭔가를 하기가 어렵나 봐.”
“응?”
듣고 있던 자들이 동시에 미로를 돌아보았으나, 그럴수록 그녀는 시선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나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걸로 충분하다.”
인간이 이겼으니, 세상을 정의하는 기준 또한 지극히 인간적이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네가 사랑하는 자가 극선이어서 다행이군.”
극선, 반드시 주는 자.
“그딴 건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가올드에게 미로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심장마저 뽑아서 바치는 막돼먹은 여자일 뿐이었다.
가올드가 손을 들자 공기가 날카롭게 갈리면서 칼의 강도로 응축되었다.
“잘 가라.”
나네가 눈을 감는 즉시 에어 커트가 바람을 가르며 그의 목을 노렸다.
카카카카카카!
공기에 불똥이 튀면서 칼날이 멈추고, 잠시 후 흐릿한 방패의 환영이 실체화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하아! 하아!”
방패 뒤에 숨은 슈라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네를 내려다보았다.
‘곧 죽는다.’
판단을 명확히 하고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모르겠어.’
나네의 죽음이 현실로 닥쳤을 때 마음속에 피어오른 일말의 의심.
그녀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행동의 동기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일단 빠져나간다.’
게슈탈트의 방패로 가올드를 밀어내려는 그때, 믿을 수 없는 압력이 그녀를 짓눌렀다.
‘이게 뭐야?’
나네를 상대로 정신력을 소진했음에도 파계의 위력은 슈라가 감당할 정도가 아니었다.
“끼야아아아!”
수백 개의 역십자가로 조립된 거대한 신의 교살이 탄생하는 것과 동시에 납작하게 짓눌렸다.
쿠우우우우웅!
단단한 공기가 땅을 그대로 압축시키는 마찰력에 의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슈라를 잡아!”
가올드의 의도가 아니었기에, 이제는 줄루도 지상으로 향하는 미로를 막지 않았다.
중천동의 거대한 구덩이의 중심에 작은 딸 구덩이가 생기고, 미로 일행은 연기를 헤치고 들어갔다.
“어떻게 됐어?”
가올드가 먼 곳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잡았어.”
그리고 지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반만.”
미로가 시선을 내렸다.
“꼬리 끊기? 간사하기는…….”
깔끔하게 허리 아래로 끊어진 슈라의 하반신이 피를 쏟으며 펄떡거리고 있었다.
슈라의 앙다문 이빨 사이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히익! 히익!”
상반신만 남은 채 어깨를 흔들며 기어가고 있지만 속도는 바람처럼 빨랐다.
중천동 산맥의 절벽을 지나 복잡한 나뭇길을 지나갈 무렵, 그녀의 등에 누워 있는 나네가 물었다.
“왜 나를 살렸지?”
“몰라! 모른다고! 지금부터 생각해 볼 거야!”
나네가 배시시 웃었다.
“때로는 거짓말이 서툴군.”
이래서 의심이 드는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어? 죽으면 죽는 거지! 그런데…… 그런데……!’
뭔지는 알고 가야 할 것 아닌가?
‘거짓! 거짓! 거짓!’
슈라가 두 팔로 땅을 박차며 몸을 날리자 허리통에서 피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이 세계에 진실 따위는 없어!”
만물은 주파수에 불과하고, 우리가 실체라 믿는 것들은 그 신호가 만들어 내는 허상일 뿐이다.
“모든 게 거짓이야!”
뱀으로 태어나 화신술을 터득해 인간이 되기까지, 슈라는 수많은 거짓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거짓의 신이 궁극적으로 도달한 최종 결론은.
‘도대체 진짜는 뭔데?’
어쨌거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흐으응. 흐응.”
핏자국을 차단한 슈라가 이를 악물고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다.
“하악! 하악!”
바닥에 턱을 대고 1미터 길이의 혀를 뽑아내며 숨을 헐떡인 그녀가 등 쪽으로 고개를 꺾었다.
“괜찮아요?”
“……아직 죽지는 않았다.”
나네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