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06
“네가 보살펴 주지 않으면 죽겠지.”
슈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흥! 부처도 죽기는 싫은 모양이죠? 결국 지금까지 했던 말도 다 거짓이군요?”
“거짓으로 바라보면 모든 게 거짓이고, 진실로 바라보면 모든 게 진실이지.”
나네가 고개를 돌렸다.
“실상은 너와 내가 보는 것이 다르지 않다.”
“…….”
베론을 대할 때처럼, 나네의 눈빛 앞에서는 그녀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끙, 기다려요. 일단 숨어야 하니까…….”
게슈탈트의 능력으로 환영의 방어막을 친 슈라가 나네의 옷깃을 물고 동굴로 기어갔다.
하늘을 바라보며 나네가 웃었다.
“날씨가 좋구나.”
나네는 살았다.
동굴에 숨어 3일 정도가 지나자 슈라의 하체는 허벅지까지 재생되었다.
아직은 걸음이 불편했기에, 슈라는 입에 한가득 물을 담고 두 팔로 동굴을 기었다.
“읍. 읍.”
아직 뼈가 붙지 않은 나네가 입을 열자 그녀가 입속에 담긴 물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좋은 물이다.”
“당연하죠. 특별히 암반수를 떠 왔으니까요. 이제 그만 일어나면 안 돼요? 설법으로 치료할 수 있잖아요.”
“생각을 좀 했다.”
흙이 묻은 몸을 혓바닥으로 핥고 있던 슈라가 화색을 드러내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세계의 비밀을 알아냈어요?”
“그랬으면 이미 세상을 닫았겠지. 그보다는, 어째서 완벽할 수 없었는가에 대해.”
슈라가 실망했다.
“에이, 그건 이미 깨졌잖아요.”
“돌이켜 보면 처음부터 잘못되었던 것 같다. 옳음이란 도달하는 것이 아니야. 그냥 옳은 것이지.”
슈라가 눈을 깜박거렸다.
“그래서 거짓과 진리, 어느 쪽으로 올라가도 진짜에는 도달하지 못했던 거군요.”
제11감, 궁감.
“그래. 저것을 하늘이라 한들, 하늘이 아니라 한들, 하늘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법이다.”
슈라가 부처의 흉내를 냈다.
“이데아를 보지 말고 이데아가 되어라. 그것이 진정한 옳음이니라.”
나네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통합을 알았으니 부처라 해도 되겠다.”
“헤헤, 그럼 이제 어떡하실 건가요?”
“우선 내가 쌓은 것을 전부 무너뜨려야지.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옳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히잉, 아까운데.”
부처의 경지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하나였다.
“이제는 중생의 고통을 마음으로 느낀다. 눈물을 흘릴 수 있기에, 조금도 아깝지 않다.”
설법 복復을 발동하자 나네의 뼈가 달라붙고, 슈라의 하반신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슈라는 조금 부끄러웠다.
“이런 꼴은 싫은데…….”
나네가 웃으며 다독였다.
“가자.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동굴 밖으로 나간 나네는 잠시 햇빛에 눈을 적응시키더니 수인을 맺으며 선포했다.
“전 우주에 고한다.”
나네의 마지막 설법이었다.
“현재의 율법으로는 중생의 고통을 온전히 구원할 수 없는 바, 특단의 조치를 내리겠다.”
거대한 음성이었다.
“모든 존재의 파계를 허하노라.”
세계의 주인이 시스템의 유지를 포기했다는 사실이 전 우주에 메아리쳤다.
반대로 말하자면, 나네가 더 이상 이 세계의 관리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로써 부처는 사라지지만…….’
슈라는 하늘로 치솟은 언言의 검이 율법의 파동을 일으키는 것을 지켜보았다.
‘진정한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얻었다.’
그래서일까.
진리를 잃어버린 평범한 인간이 되었음에도, 나네는 따듯한 눈으로 세상을 담고 있었다.
연쇄 작용 (2)
***
시온에 도착한 메이레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한쪽 귀를 막고 무릎을 꿇었다.
“대법관님.”
시로네의 파계에 대한 징벌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고 있던 테라포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황이 역전되었다.
“들었습니다.”
나네의 설법은 마음의 율법, 양자 전송을 통해서 전 우주의 생명체에게 각인되었다.
마음에서 작용하는 현상이기에, 대부분은 정보를 얻었다는 생각조차 못 하지만 파계를 아는 자들은 깨달았다.
‘이제는 파계할 수 있다.’
-앙케 라, 정확히는 라의 꿈을 삼킨 나네가 스스로 절대 3원칙의 세 번째 조항을 파기했다.
“시로네는 어떻게 되는 거죠?”
-파계를 승인한다. 물론, 가올드도 마찬가지. 물론 테라포스의 심판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대법관이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그때는 행성이 아닌, 시스템 전체의 존멸을 걸고 판결을 진행해야 하겠지.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시온을 도와 악을 막아라. 미로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테라포스가 전 우주를 파괴하는 날이 오지 않도록…….
통신이 끊어졌다.
“나네가 살아남았어.”
가올드 일행은 이틀 동안 중천동을 수색했으나 나네와 슈라를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카이드라를 타고 남극으로 향하는 도중에 설법을 들은 뒤에야 생존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부처는 이제 없지.”
미로는 호기임을 직감했다.
“슈라가 살아 있다는 가정하에 나네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이제는 게임을 끝낼 수 있다. 시온에 돌아가면 악에 대한 총공세를 감행할 거야.”
제단을 봉인하고 극악을 처단하면, 세상에는 다시 찬란한 선의 꽃이 필 것이다.
카이드라의 조종석에 앉은 줄루가 말했다.
“제단의 봉인은 야훼가 맡겠지만, 그것을 떠나서라도 마족은 강하다요. 쉽지 않은 싸움이야.”
미로를 제외한 모두가 가올드를 돌아보았다.
‘분명 마족은 강하다. 하지만 가올드라면…….’
만을 초월한 마법사, 부처를 꺾은 자라면 20억이 넘는 지옥의 군대도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유일한 문제라면…….’
세인은 보이지 않는 선을 사이에 두고 내외하고 있는 가올드와 미로를 번갈아 살폈다.
전투가 끝난 이후로 한마디 말도 섞지 않더니 이제는 아예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혼란스럽겠지.’
미로가 모든 것을 감당하던 시절에는 오히려 단순했다.
‘하지만 이제는 판도가 변했어.’
미로에게는 가올드가 반드시 필요하고, 가올드는 여전히 미로를 사랑하고 있다.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도 들었다.
‘너도 마음이 없지는 않잖아?’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국 미로의 정신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인간은 가올드였다.
미로는 세인의 시선을 느꼈지만 끝까지 모른 체하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진짜 미치겠네.’
남의 일이라고 등이나 떠밀고 말이야.
물론 그녀에게 남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라면 가올드가 유일하지만, 티끌보다 작은 마음에 불과했다.
그 티끌이 너무나 작아서 사랑인지 우정인지 동정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차라리 그냥 그때 연애 좀 하다가 말아 버릴걸.’
알페아스 마법학교 시절.
생존 테스트 6단계인 초열에서 가올드의 고백을 받아 주는 정도라면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랬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어쩌면.
‘그래서 이제는 복잡해지는 거야.’
차라리 가올드가 미로의 사랑을 얻은 상태에서 지금의 결과에 도달했다면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저 녀석을 받아들이면…….’
가올드는 어떻게 되는가?
미로에 대한 마음 하나로 버텨 온 그가 마침내 쟁취했을 때, 그를 이루는 율법은 붕괴된다.
‘죽을 수도 있고. 어쨌거나…….’
부처마저 꺾을 수 있는 강인한 정신은 무뎌질 수밖에 없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폐인이 되어 버릴 것이다.
‘알고 있을까?’
가올드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 녀석도 나를 외면하고 있는 거야.’
두 번이나 지옥을 헤쳐 나온 끝에 마침내 미로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그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다.
‘그래도 싸워 보겠다고.’
문득 가올드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본 미로는 처연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이 망하든 말든, 너는 상관없잖아.’
남은 인생을 사랑하는 여자와 보내다가 언제든 세상을 떠 버려도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괜찮아. 네가 원하면 내가 그렇게 할게.’
고통은 충분하지 않은가?
‘이미 세상을 위해 많은 걸 해 줬잖아. 폐인이 되면 내가 돌볼 거고, 네가 죽으면 내가 옆에 묻힐게.’
하지만 가올드의 선택은 마지막까지 곁에 남아 미로를 위해 싸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를 사랑할 수도 없다고?’
이런 상황이 올 것 같아서 그렇게 가올드를 피해 다녔던 것이건만,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하아.”
미로의 한숨에 아리우스가 어깨를 들썩였다.
‘저 불쌍한 인간…….’
***
“시로네! 출동이다! 준비해!”
미네르바가 시로네의 집으로 쳐들어왔을 때, 이미 시로네는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뭐야? 빠르네?”
나네의 설법을 듣고 깨닫기 전에 이미 태성에게 정황을 들어 알고 있었다.
‘가올드 씨가 돌아왔다.’
만을 초월했고 부처를 꺾었으며, 나네가 파계를 허하는 것으로 이제 세상의 주인은 없다.
가올드의 충격파가 율법에 연쇄 작용을 일으키면서 결국 시로네도 테라포스의 심판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이게 끝이 아니겠죠.”
미네르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처가 사라진 것은 시작일 뿐이야. 옳은 자가 없다면 어떤 것도 허용되는 혼돈의 세상이 온다.”
“극악이 강해지겠군요.”
미네르바가 의 서류를 넘겨주었다.
“우리가 차단해야 돼. 카샨으로 가자. 을 사용한다고 해도 성전의 도움이 없이는 안 돼.”
어차피 우오린에게 갈 생각이었기에 시로네는 군소리 없이 미네르바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상아탑 1층의 마법진에서 코로나 왕국으로 빠져나가려는 그때, 이제는 익숙한 4명이 다가왔다.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
미네르바가 입꼬리를 올렸다.
“어머, 이게 웬일이야? 14년 동안 화이트 여관을 떠나지 않던 화석들이 여길 찾아오고?”
대머리 노인, 아가야가 말했다.
“게임이 끝났어. 결과를 말해 주려고.”
“호오, 승자가 누구야?”
붉은 수염을 기른 구디오가 말했다.
“게임을 유지하려는 자.”
박애.
비록 카드 게임일 뿐이지만 치열한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듣기 싫은 결과는 아니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해골처럼 앙상한 사내, 네스가 말했다.
“현실이 변했으니 시뮬레이션을 다시 돌려 보려고. 이번에는 게임을 끝내려는 자가…….”
“그보다 더 재밌는 판이 있는데, 같이 갈래?”
의 율법이 정확히 극악을 조준하려면 카드 게임을 하는 자들이 필수였다.
눈이 찢어진 사내, 마이스가 물었다.
“이것보다 더 재밌는 도박이 있다고?”
“아무리 재밌어도 시뮬레이션이잖아? 이제는 슬슬 진짜 판에서 실력을 발휘해야지.”
“어떤 판인데?”
“반드시 빼앗으려는 자를 파산시키는 것.”
“…….”
마이어스가 동료들을 돌아보며 의중을 물었으나 미네르바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진짜로 도박에 미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