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1
예고 없이 찾아온 정학이지만 신의 입자를 깨달은 것만으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정식 마법사가 되었을 때에야 빛을 발할 터.
내일부터는 클래스 포로 진급하기 위해 다시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네이드나 이루키도 마찬가지겠지.’
알페아스 마법학교는 학기가 끝날 때마다 전반기 성적을 반영하여 진급자를 결정하는데, 커트라인은 무려 전 과목 80점 이상이었다.
평균이 아닌 모든 과목의 점수를 80점 이상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 적성에 따라 취약한 과목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학교의 교육 방침은 확고했다.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기초 분야의 지식을 일정 수준 이상 섭렵한 상태여야 한다는 것.
따라서 졸업생이라면 각 계열의 기초 마법은 대부분 활용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이것이 바로 마법사회에서 학교 출신을 우대하는 이유였다.
일선에서 활동하는 마법사 중에는 비마법학교 출신도 상당수 포진되어 있다.
마법사의 직전 제자이거나, 특별한 깨달음을 얻거나, 어둠의 루트를 통해서 마법을 훈련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장점이라면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실전에 적합한 전문 마법을 구사한다는 것.
누구를 고용할 것인가는 고용주의 성향과 업무 특성에 따라 달라질 테지만, 활용 범위가 넓은 마법학교 출신이 취업에 유리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렇듯 학교가 제시한 전 과목 80점은 사회 정세를 고려한 기준이기도 했다.
시로네는 머리를 싸맸다.
“하아, 그럼 뭐야? 나 같은 경우는 평균 30점 이상을 올려야 한다는 거잖아.”
신의 입자를 깨달았다고 해도 엄연히 학교였기에, 진급하려면 전 과목 80점이 필요했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야. 지식의 척추를 목적 지향적으로 활용하면 점수를 높일 수 있겠지.’
무엇보다 시로네에게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루키와 네이드는 진급할 확률이 높아. 만약 나 혼자 클래스 파이브에 남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지운 시로네는 애써 긍정적인 부분만 찾으려고 했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 과정이야. 게다가 클래스 포에 들어가면 졸업반 신청도 할 수 있어. 그러면 에이미와의 약속도 지킬…….’
그 순간 퍼뜩 깨달았다.
“맞다! 에이미!”
발표회가 끝난 이후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너무 들떠서 그녀가 참석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무심했어. 서운했겠네.’
돌이켜 보면 힘든 도전을 할 때마다 늘 멀리서 응원해 주던 고마운 친구였다.
“좋아! 지금 가자!”
졸업반에 가는 건 떨리는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제대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숙소를 나서는 시로네의 눈에 장난기가 어렸다.
“깜짝 놀라겠지?”
***
시로네는 에이미와 세리엘에게 줄 커피를 두 손에 들고 오르막길을 올랐다.
꼭대기에 도착하자 강철문이라 불리는 아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가까이에서 보자 멀리서 가늠했을 때보다 훨씬 크고 압도적인 구조물이었다.
‘이곳이 마법학교의 정점.’
마법사의 정신을 상징하는 조형물이기에 아래를 지나갈 때는 마음까지 숙연해졌다.
때마침 6교시 수업이 끝났는지 졸업반 학생들이 건물 밖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중앙 현관에서 대화를 나누는 에이미와 세리엘을 발견한 시로네가 소리쳤다.
“에이미! 에이미!”
졸업반 학생들이 고개를 돌렸으나 두 사람은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시로네는 살그머니 뒤로 돌아서 그들의 눈앞에 커피를 내밀었다.
“짜잔! 깜짝 선물!”
에이미의 눈이 크게 뜨이자 유쾌하게 웃은 시로네가 세리엘에게도 커피를 건넸다.
“자, 선배님 것도 있어요.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잠시 지켜보던 세리엘이 고개를 기울이고, 에이미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누구야, 너? 왜 우리에게 이런 걸 주는 거야?”
어둠의 불청객(2)
시로네는 장난이라 생각했다.
“미안해. 정신이 없어서 기별을 못 했어. 그래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잖아.”
에이미는 더욱 경계했다. 그러다가 시로네가 접근하자 황급히 그의 팔을 밀어냈다.
“저리 치워! 뭐가 들어 있는 줄 알고!”
커피가 쏟아졌다.
시로네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선을 넘었고, 실제로 그녀의 얼굴 또한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너 누군데 이런 짓을 하는 거야? 그리고 세리엘에게는 선배라고 하면서 왜 나한테는 반말이야?”
세리엘도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너 고급반이니? 스토킹인지 테러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좀 아니지 않아? 그리고 선배한테는 존댓말을 써야지. 날라리도 아니고.”
마치 처음 보는 사이처럼 말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시로네는 어안이 벙벙했다.
“세리엘 선배님, 저예요, 시로네. 저 모르세요? 에이미, 나 정말 몰라? 장난치는 거지?”
에이미가 시로네의 멱살을 붙잡았다.
“우리가 너를 어떻게 알아? 학생이면 제발 공부 좀 해라. 짜증 나게 때와 장소도 구분 못 해? 졸업반에 올라와서 한동안 조용하다 했더니…….”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이다.
이상한 애들하고 어울리면서 헛짓거리나 하고 다니니까 교내의 남학생들이 다시 접근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응?”
그 녀석.
‘누구였더라? 분명…….’
어떤 사람과 모종의 거래를 했던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되새길 수 있는 건 친절했던 감정의 흐릿한 잔상뿐.
“거짓말하지 마!”
시로네는 멱살을 잡은 손을 뿌리쳤다.
“아야.”
에이미가 손목을 쥐고 아픈 표정을 지었으나 시로네는 그런 모습조차 미웠다.
사실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장난이라면 정말 질 나쁜 장난이었다.
“왜 이런 식으로 놀리는 거야? 싫으면 차라리 싫다고 말을 해! 나도 기분 나쁘잖아!”
세리엘이 시로네를 두 손으로 밀쳤다.
“너! 저리 가!”
다른 누구도 아닌 세리엘이었기에 시로네는 저항조차 없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 친구를 왜 못살게 구는 거야? 그것도 선배한테! 너 클래스가 어디야? 정말 혼나 볼래?”
시로네는 울상이 되었다.
‘세리엘 선배님…….’
에이미의 둘도 없는 단짝 친구.
뛰어난 실력자이지만, 연애소설을 보며 눈물을 질질 짜는 천생 소녀였다.
시로네는 기억하고 있었다, 힘든 고비가 있을 때마다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응원해 주던 그녀의 모습을.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타인을 대하는 눈빛은 바늘처럼 날카로웠고, 앙다문 입술에는 적개심까지 배어 있었다.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야! 거짓말이야!”
이곳에 더 있다가는 미쳐 버릴 것 같은 기분에 시로네는 땅을 박차고 달렸다.
세리엘이 소리쳤다.
“다시는 찾아오지 마! 한 번만 더 까불면 선생님한테 전부 말해 버릴 테니까!”
그러고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숨을 몰아쉬며 에이미에게 말했다.
“뭐 저런 애가 다 있니? 순하게 생겼는데 엄청 집요하네. 어머, 에이미. 너 괜찮아?”
“응? 아, 괜찮아.”
에이미는 잡고 있던 손목을 풀었다.
여전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멀어지는 시로네의 모습에서 묘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누굴까? 정말 나를 아는 것 같던데.”
세리엘이 손을 저었다.
“네가 모르는데 어떻게 알아? 그냥 미친 척 부딪쳐 본 거겠지. 요즘 저런 애들 많다니까. 언감생심 누구를 넘보려고. 네 옆에는…… 어라?”
누군가를 떠올리지 못한 세리엘이 눈을 깜박거리는 그때 수업 종이 울렸다.
에이미가 말했다.
“일단 들어가자. 이따가 얘기해.”
“그래. 오랜만에 수다 좀 떨려고 했는데, 이상한 애 때문에 쉬는 시간 다 지나갔네.”
세리엘을 따라 건물로 들어가던 에이미는 현관 앞에서 다시 몸을 돌렸다.
“…….”
시로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한참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시로네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강철문을 지나 고급반 구역에 도착하자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건물로 들어가는 마크와 마리아를 발견한 시로네는 빠르게 따라가 복도에서 소리쳤다.
“마크! 마크!”
마크와 마리아가 동시에 돌아섰다.
“마크! 나 알지? 내가 누구야! 빨리 말해 봐!”
마크는 당황한 듯 마리아를 돌아보았으나 그녀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저기…… 누구세요?”
시로네의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나야, 나라고.”
“그러니까 누구신데요? 말을 해야 제가 알죠.”
“나야! 시로네라고! 클래스 파이브! 너랑 같이 시험도 봤잖아! 정말 몰라?”
마크의 인상이 구겨졌으나 클래스 파이브라는 소리에 따지지는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 네.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라고! 왜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거야!”
‘뭘 어쩌라는 거야? 짜증 나게.’
성질대로라면 선배고 뭐고 받아 버릴 테지만 남들의 이목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때 시이나가 복도를 걸어오며 물었다.
“너희들, 수업 시작했는데 아직도 교실로 안 들어가고 뭐 하고 있어?”
시로네는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선생님! 저예요, 시로네!”
시이나가 어떻게 자신을 잊겠는가?
그녀는 강하니까. 공인 6급의 마법사니까.
하지만 되돌아온 말은 잔인했다.
“시로네? 그런 학생은 고급반에 없는데.”
“선, 선생님. 저라고요.”
시이나는 기억을 되짚어 보았으나 역시나 모르는 이름, 모르는 얼굴이었다.
“뭔가 착오가 생긴 것 같구나. 신입생이 왔다는 얘기는 못 들었거든.”
마크의 눈빛이 달라졌다.
졸지에 수상한 사람이 되었음을 깨달은 시로네는 덜컥 겁이 났다.
“죄송해요! 제가 착각했어요!”
“얘! 잠깐 거기 서!”
시이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시로네는 필사적으로 학교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모두가 시로네를 잊었다.
“흐윽, 흑…….”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흐르고, 길을 잃은 아이처럼 주위의 모든 인간이 두려웠다.
‘정말이야? 아무도 날…….’
그때 친구들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네이드! 이루키!’
한 줄기 희망을 품은 시로네는 이스타스로 들어갔다.
혼란스러운 정신 속에서 몇 번이나 방정식을 더듬은 끝에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에 도착했다.
선뜻 문을 열 수 없었다.
‘친구들은 괜찮을 거야. 당연하지, 왜 아니겠어?’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농담을 주고받지 않았던가? 세상 모두가 자신을 잊어도 그들은 달라야 했다.
‘만약 나를 모른다면…….’
끔찍한 상상을 한 시로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나 큰 절망일지 굳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가자, 수다를 떨고 있던 네이드와 이루키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로네가 주먹을 쥐고 말했다.
“네이드, 이루키. 나야. 나 시로네야.”
친구들이 대답 없이 눈만 깜박이자 시로네를 지탱하고 있던 감정의 둑이 무너졌다.
“왜 말이 없어? 너희들은 나 기억하고 있지? 잊어버린 거 아니지?”
네이드는 이루키와 눈을 맞췄다. 그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시로네에게 다가왔다.
“저기…… 너 누구냐?”
시로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정말 몰라? 아까까지 같이 있었잖아. 어제도 그제도 같이 공부했잖아!”
“미안한데 우리는 너 몰라. 혹시 다른 연구회에서 염탐하라고 보냈냐? 괜히 행패 부리지 말고 나가 줘.”
이루키가 퍼뜩 소리쳤다.
“잠깐! 어쩌면 그럴 가능성도 있어. 이스타스의 길은 어떻게 찾았지? 빨리 말해! 너 도대체 누구야?”
“너, 너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