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10
말은 연결되어 있는 체스 판을 전부 사용할 수 있고, 그렇기에 지금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리석은 판단이다.”
발칸의 말에 군사들이 움찔했다.
“이렇게 대응하면, 방법이 없지 않은가?”
군사들이 말을 옮긴 것과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가로 7, 세로 16번 체스 판의 비숍이 움직였다.
‘도무지 알 수가 없군.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지?’
앞으로 말들이 2천 번 정도 더 움직이면 뭔가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2천 번에 도달하기까지 군사와 발칸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수는 무한했다.
‘예측은 불가능해.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확률적으로 완전히 열려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그런데 어째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을까?
‘결국은 총군사의 말대로 승부가 끝난다.’
문文과 무武, 양쪽의 신에게 축복을 받은 발칸을 군사들은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 사람의 눈에는…… 대체 무엇이 보이는 것일까?’
수백 장의 판이 깔린 끄트머리에서 발칸이 가부좌를 틀고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저곳이 약하군.’
수천 개의 말들 사이로 휘몰아치는 황금빛 선율이 그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판을 가득 채운 광채 속에서 유독 빛이 약한 지점으로 군사들이 말을 옮겼다.
“나약한 판단이다.”
말들이 배치되어 있는 형태를 통째로 연산하는 것은 서번트도 할 수 있다.
‘포기하면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군기는 확률을 부정한다.
군기가 보는 것은 형태가 아닌, 그 형태로 인해 시시각각 변화되는 군중의 시선.
“그만하자. 너희들은 이미 졌다.”
군사들이 옮긴 말의 위치를 통해 군기가 전하는 것은 발칸이라는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었다.
“황제께서는?”
“아, 제가 듣기로는 영내 산책을…….”
“따분해 죽겠군.”
발칸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오늘따라 하루가 왜 이렇게 긴 거야?”
시로네가 물었다.
“그렇게 어려운 상대인가요?”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어렵지.”
아가야가 검지를 들었다.
“군중기는 객관적인 확률이 아닌, 상대적인 대응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지. 즉, 상대가 있는 게임에서는 이길 자가 없어. 그런 자가 하비츠의 옆에 붙어 있다면, 의 율법에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할 터.”
“하지만 또한…….”
네스가 말했다.
“그렇기에 꺾을 만한 가치가 있는 적. 이번 도박은 기필코 우리가 승리할 거야.”
카드 게임을 하는 자들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분석에 들어가자. 우선 우리가 상대할 적부터 알아야겠지.”
우오린이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극악. 살면서 만나 본 적 있어?”
“흐음, 글쎄? 나쁜 사람들이라면 꽤 만나 봤지만…….”
미네르바가 자신을 가리켰다.
“나?”
“극악이 아니야.”
우오린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미네르바 너도 진짜 나쁜 애지만, 극악이라는 것은 그런 정도로 표현되는 성질이 것이 아니야.”
미네르바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서 아마도 듣고 싶지 않겠지만…….”
이것은 이야기.
“평생 외면하고 싶을 테지만.”
세상에서 가장 멀어진 인간, 극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
“살려 주세요! 남편이 죽어 가고 있어요!”
황성 마르사크의 평민 구역에서 한 여성이 거리로 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황급히 달려온 남자는 등에 북을 짊어지고 광대 복장을 한 50대의 노인이었다.
“아, 그게…….”
도움을 청하려던 여자는 약장수 복장을 한 남자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우리 남편이……!”
그녀는 구스타프 4기예 중의 1명인, 만물장수 제타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말해 보게! 이래 봬도 의술을 익혔으니. 사람은 살려야 하지 않겠나?”
제타로는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의사였다.
“정말 살릴 수 있어요?”
자신감 없이 덤빌 사안이 아니었기에 여자는 제타로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여기, 여기예요. 갑자기 거품을 물고 쓰러졌어요.”
마룻바닥에 남편이 쓰러져 있고 계단 쪽에서 어린 딸과 아들이 울고 있었다.
“일단 좀 살펴보겠네.”
남편의 혈색과 동공의 반응을 살핀 제타로는 대번에 증상을 알아차렸다.
“바스키아 바이러스군. 근 2개월 사이에 호수에 갔다 온 적이 있나?”
“네? 아, 네! 친구들과 낚시를 간 적이 있어요!”
제타로가 만물장수의 가방을 뒤지더니 갈색 액체가 들어 있는 호리병을 꺼냈다.
“이 약을…….”
“그걸 마시면 살 수 있나요?”
“아니, 이건 내 약일세. 지병이 좀 있어서.”
여자는 호리병의 뚜껑을 열고 약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제타로를 황당하게 쳐다보았다.
“남편을 살려 주세요! 살릴 수 있는 거죠?”
“바스키아 바이러스라. 치료법은…….”
메스를 꺼내며 주저하던 제타로가 입술을 깨물더니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알아아아아아!”
눈에 핏줄을 세우며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가 메스로 남편의 가슴팍을 난도질했다.
“꺄아아아!”
여자가 비명을 지르고, 피가 난자하는 풍경에 자식들이 눈을 뒤집어 까며 졸도했다.
“대, 대체…… 당신 무슨 짓을…….”
이미 백신을 먹은 제타로는 뜨거운 피를 한 바가지 얼굴에 뒤집어쓰고는 밖으로 나갔다.
“어이, 제타로. 배고픈데 뭐 좀 먹으러 갈래?”
허름한 옷을 입은 하비츠와 정장을 입은 나탸샤가 근위대를 대동한 채 다가왔다.
“황제 폐하, 또 1명의 생명이 사라졌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슬퍼서…….”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제타로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 곡조 뽑겠습니다.”
왼발로 깡충거리며 오른발을 밀어 북을 때리는 그가 나팔을 쥐고 불어 댔다.
“뚜르밥뚜두. 뚜르밥밥뚜.”
제국 최고의 명창이 연주하는 나팔 소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나쁜 자식들아! 남편 죽여 놓고 뭐 하는 거……!”
여자가 집에서 칼을 들고 튀어나오자 근위대가 곧바로 그녀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으아아아! 황제다!”
넋을 잃고 공연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자리를 떠났다.
“푸하하하! 푸하하하!”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웃긴 하비츠는 배꼽을 잡고 폭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악의 정의 (2)
***
“선악을 정의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어떤 사람이 선이고 어떤 사람이 악인가?”
우오린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 알겠어? 100의 선이 10의 선을 나쁘다고 하고, 10의 악이 100의 악을 나쁘다고 하고.”
세상은 온통 나쁜 놈들 천지인 것 같고.
“그저 자기만 옳지. 자기 자신이 절대로 옳을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중립에서 선으로 기울겠지만…….”
지성.
“그렇다고 깨달은 놈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는 것도 아니야.”
그렇기에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에서 보면 희극인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렇다면 극악의 시선은 어떨까? 인간의 삶을 가장 멀리서 지켜보면 말이야…….”
인간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보면 우리의 삶은 어떤 논리도, 개연성도 찾을 수 없는.
“그저 막장 코미디일 뿐인 거지.”
***
“푸하하! 진짜 최고였어! 역시 제타로야! 구스타프 4기예의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어!”
하비츠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웃음이 나온다는 말입니까? 그만 자중하시지요.”
제타로가 정색하자 하비츠의 웃음이 뚝 끊어졌다.
“…….”
중간에 끼인 나타샤가 눈꺼풀이 잘린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미소를 지었다.
“푸하하하! 그거 진짜 웃긴데! 최고의 희극인! 안 그런가, 나타샤?”
“두말할 여지가 없지요.”
제타로는 끝까지 웃음을 참았다.
‘남을 웃기려는 자는 스스로 웃어서는 아니 된다.’
구스타프 4기예, 로시카 제타로.
의사, 명창, 희극인 등 팔방미인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하비츠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제타로는 재밌어.”
가장 자신과 닮았기 때문이다.
“어이, 스모도! 빨리 이리 와 봐! 오늘 제타로가 무슨 짓을 했냐면…….”
황성에 도착하자 스모도가 마중을 나왔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코트리아 공화국 안 칠 거예요? 지금 발칸이 심심해서 죽으려고 합니다.”
하비츠가 말에서 내렸다.
“아직도 안 쳤어? 지금 쳐. 전쟁이야 발칸이 제일 재밌어하는 거니 알아서 하면 되잖아?”
“안 그래도 한 부대 집어넣었습니다. 일단 간이나 본다고요. 국경선에 가까운 파시파 도시를 점령할 겁니다.”
“발칸이 보냈으니 이기겠지. 알아서 해. 전리품은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고.”
“그 전리품 말인데요. 여자들이야 군대가 알아서 해 먹겠지만, 어느 정도는 불러들여서 국민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으면 하는데요.”
“왜? 돈 떨어졌어? 다른 나라에서 뺏으면 되잖아?”
“젊은 놈들도 재미 좀 봐야 전쟁터에 가고 싶을 거 아닙니까. 노예들을 가축화시키고, 그 돈을 가정에 배분하면 세금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하비츠가 엄지를 세웠다.
“역시 내정왕. 아, 그러고 보니 제타로가 공연하면서 1명 죽였어. 잘생기고 힘 좋은 놈으로 10명 추려서 여자한테 보내. 남편보다 쓸 만할 거야. 돈은 1억 골드 정도 주고.”
“알겠습니다.”
***
우오린이 머리를 두드렸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건 온통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즐거울까 하는 생각뿐.”
타인의 감정은 들어 있지 않다.
“사람을 죽이는 것, 남을 괴롭히는 것. 모두 악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것이 악의 정의는 아니야.”
악이란 무엇인가?
“무지無知.”
우오린의 정의에 의하면.
“멍청하다거나 배우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야. 무엇이 옳은지를 모르기 때문에 판단의 기준이 없다.”
따라서 무지는 곧 혼돈이고.
“당연히 죄책감도 없지. 자신들이 악이라는 사실조차도 모르니까. 의 기능은 뛰어나지만,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는 상당히 힘들어.”
율법의 바깥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정말 이럴 거야?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다 뒤집어 버리는 수가 있어.”
구스타프 제국의 환경부 차관 아르다크는 시녀들에게 일부러 빚을 지게 하여 잠자리로 끌어들이는 취미가 있었다.
“자꾸 이러지 마세요. 싫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하지만 유독 마리는 걸려들지 않았다.
“왜 이래? 좋은 게 좋은 거잖아. 집에 계신 노모를 생각해. 병을 고칠 수 있다니까?”
이미 수많은 시녀들이 아르다크에게 당한 수모와 수치를 마리에게 고했기 때문이다.
“그런 돈 필요 없어요. 어머니가 아픈 것도 가족의 일이에요. 제가 벌어서 할 테니까…….”
“이런 싸가지없는 것이!”
아르다크가 호통을 치며 손을 쳐들자 마리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움츠렸다.
“내가 너 따위 하나 어떻게 못 할 줄 알아? 나 환경부 차관이야. 지금 당장 광장에 목을 걸어 줄까?”
구스타프의 내정자는 대대로 폭군이었고, 차관급이 시녀 하나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살, 살려 주세요.”
“그러니까 돈을 빌려. 알았지? 합법적으로 하자고, 합법적으로.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거야.”
근위대가 소리쳤다.
“황제 폐하 납시오!”
화들짝 어깨를 들썩인 아르다크가 얼른 물러서고, 그 옆의 시녀도 나란히 고개를 숙였다.
“그래그래, 고생들이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