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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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습니다.”
아가노스의 넓은 방을 하염없이 걸어 다니던 시로네가 관리의 말에 몸을 날렸다.
‘왔다! 왔어!’
아가노스의 내성 문에 도착하자 미네르바와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 우오린이 나와 있었다.
제국의 여황이 마중을 나올 필요는 없지만 우오린은 그저 기분이 좋았다.
‘시로네의 친구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친구를 알게 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아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다.
“내성 문 개방.”
거대한 문이 열리는 사이로 이루키가 모습을 드러내자 미네르바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저 애가 이루키?”
시로네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서번트.
‘확실히 평범한 외모는 아니네.’
연한 갈색 머리에 짝짝이 눈, 몸은 빼빼 말랐고 체구보다 코트가 커서 소매가 나풀거렸다.
세인과 닮았으리라 상상했던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키가 손을 들었다.
“오랜만이다, 시로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미네르바가 돌아보았을 때 시로네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이루키…….”
같은 편이다.
어떤 미래가 펼쳐지더라도 절대로 변하지 않고 자신의 곁을 지켜 줄 친구였다.
“이루키……이이…….”
시로네는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 건가.’
미네르바는 다시 이루키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사람.’
가르시아조차 경탄했던 무한의 마법사의 정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시로네가 1초 만에 무너져 버리는 것을 보자 그녀도 이루키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우냐?”
서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이루키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시로네를 끌어안았다.
“힘들었지? 고생했다.”
충분한 위로였고, 말문이 막힌 시로네는 그저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우오린이 웃으며 다가왔다.
“반가워요. 카샨의 여황, 테라제 우오린이에요.”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로네의 친구 이루키입니다.”
삼황계의 정점을 앞에 두고도 이루키는 똑바로 눈을 마주 보며 악수를 청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 역사를 담은 자의 눈빛인가? 이런 여자를 상대로 잘도 버텼구나, 시로네.’
우오린도 한눈에 파악했다.
‘엄청난 강심장. 친구인데도 정말 다르구나.’
서로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선을 교환하는 가운데 시로네가 해맑게 말했다.
“이루키는 토르미아 왕국 용뢰 소속의 연구원이야.”
우오린이 접수했다는 듯 눈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알고 있지. 힘든 여행이었을 텐데 어려운 요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해요.”
“어려운지 쉬운지는 들어 봐야 알겠죠. 일단 자리를 마련해 주시죠. 빨리 시작하고 싶으니까요.”
아직 회포가 풀리기도 전이었으나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비로소 화색이 돌았다.
“좋아요. 간도가 안내할 겁니다.”
도착한 곳은 패닉 룸이었다.
협소했으나 밀담을 나누기에는 좋았고, 초면인 사람들은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인사가 끝나자 우오린이 회의를 진행했다.
“시로네가 편지에 적었겠지만 아무래도 직접 듣는 편이 판단에 도움이 되겠죠.”
전쟁의 전황은 물론, 극악에 대한 개념, 엑스마키나와 의 설명까지 이어졌다.
“흐음, 율법을 바꾸는 무기라.”
역시나 서번트인 이루키가 가장 관심을 드러낸 부분은 고대 병기 엑스마키나였다.
구디오가 말했다.
“불러 놓고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자네가 엑스마키나를 얼마나 잘 다룰지는 미지수야. 테스트를 치러야 하네. 팀워크도 점검을 해야 하고.”
이루키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엑스마키나를 다루려면 세계 최강의 두뇌가 필요했다.
“만약 탈락하면 그냥 돌아가야 할 수도 있어. 누구의 추천이 문제가 아니야.”
“당연하죠. 저는 언제라도 상관없어요.”
네스가 핵심을 꺼냈다.
“덧붙여 오늘 들은 엑스마키나에 대한 이야기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함구해 주게.”
테스트에 탈락한 이루키가 자국에 정보를 발설하면 모든 전략이 물거품이었다.
“……그러죠.”
이루키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문제였으나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가 찾고 있는 알파피시와 베타피시에 대한 정보도 제공할 수 없네. 개요는 여기까지. 그럼 이제 엑스마키나로 가지.”
“그것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뜨려다 말고 이루키를 돌아보았다.
“알파피시와 베타피시.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을 찾고 있는지는 알 것 같아요.”
아가야가 물었다.
“어째서 굳이 사람이라고 단정 짓지? 하비츠를 죽이려면 수많은 율법이 필요할 텐데?”
“어떤 식으로 율법을 바꾼다고 해도 결국 선악을 정의하는 건 인간이니까요.”
네스와 눈을 마주친 구디오가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를 찾는 것 같은가?”
“혼돈의 순수성에 파문을 일으킬 2개의 감정.”
이루키가 검지와 중지를 펼쳤다.
“하비츠를 가장 사랑하는 자와, 하비츠를 가장 증오하는 자. 이 성공하려면 이 두 사람이 반드시 필요해요.”
“…….”
핵심 전략의 노출에,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자, 시작하죠.”
이루키가 패닉 룸의 출구로 향하자 시로네와 우오린이 서로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알파피시(Alpha fish) (1)
엑스마키나는 가로 4미터, 세로 4미터, 높이 4미터의 정육방면체였고 중량은 7톤에 달했다.
매끄러운 금속 재질이었고 검은색 표면에 천사의 언어 헤나가 금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거대한 메타게이트 같네요.”
시로네의 말에 미네르바가 동의했다.
“대천사 카리엘이 만들었어도 기술력은 어디까지나 메카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니까.”
우오린이 덧붙였다.
“메카족은 정육방면체를 좋아하지. 기술적인 이유일 수도 있지만, 이 형태 자체가 메카라고 볼 수 있어.”
마법 창고 이스타스는 물론 천국에서 접했던 메카족의 문명을 떠올리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시작하자.”
사신이 엑스마키나를 개방하자 5명이 들어갈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미 시연을 해 봤던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고 이루키가 마지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루키, 힘내.”
2층에 네 사람이 일렬로 나란히 앉고 1층의 중앙에 이루키가 자리를 잡았다.
양쪽 팔걸이에 달린 반구형의 유리에 손바닥을 올리자 천장에서 드론을 닮은 장치가 내려왔다.
뇌파 감지 장치가 코까지 가린 상태에서 이루키가 오른손을 뒤집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할 필요 없네.”
사신의 목소리를 끝으로 엑스마키나의 출구가 닫히고 잠시 후 무시무시한 기계음이 들렸다.
웅웅웅웅웅웅웅웅!
넓은 창고를 가득 채우는 소음에 시로네가 귀를 막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는 더욱 세졌고, 7톤의 중량이 흔들릴 정도가 되자 사신이 소리쳤다.
“이런 젠장! 무리하지 말라니까!”
소음이 너무 심해 입술만 움직이는 듯했으나 사태의 심각성은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루키…….”
20분이 빠르게 지나가고 마침내 지옥 같은 소리가 사라지면서 출구가 열렸다.
진한 수증기를 뿜어내며 철문이 열리자 이루키가 곧바로 튀어나왔다.
“우엑! 우엑!”
바닥에 엎드려 위액을 토해 내는 모습에 사람들이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이루키! 괜찮아?”
충격을 받은 눈동자로 땅바닥을 내려다보는 그는 아직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시로네가 원망의 눈으로 고개를 돌리자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씁쓸한 표정으로 내려왔다.
구디오가 이루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합격이다.”
가히 괴물적이라 할 수 있는 뇌 기능이었다.
“우리가 제시한 튜토리얼은 4명이 하는 카드 게임의 승자를 조작하는 것.”
“그런데요?”
“중간에 이루키가 먼저 치고 나갔어. 지루하다나? 그래서 우리도 판을 키웠지.”
네스가 말했다.
“테스트는 이래. 300명이 참가하는 카드 게임의 토너먼트에서 최종 승자를 우리가 지정한 대로 바꾸는 것.”
아가야가 덧붙였다.
“매 게임의 승패는 물론, 300명의 실시간 자금 현황, 심지어 뽑기 추첨까지 조작해야 하는 난이도야. 욕심에 눈이 먼 자, 어리석은 자, 아름다운 여성 등, 우리가 지정한 17명의 인물들을 차례대로 최종 우승자로 만드는 것으로 테스트를 통과했네.”
“……그런 시뮬레이션을 20분 만에 했다고요?”
현실이라면 족히 한 달은 걸리는 정보량이었고 듣는 것만으로 머리가 욱신거렸다.
“아우, 죽겠네. 머리가 핑핑 돌아.”
입술을 닦아 내며 일어서는 이루키를 부축한 시로네가 버럭 성질을 냈다.
“솔직히 말해! 오버 드라이브 했지?”
피질에서 발생하는 스파크가 동공을 통해 빠져나갈 정도라면 누구도 오래 살 수 없다.
“괜찮아. 이 정도쯤이야.”
만초월이란 특정 계의 장벽을 뛰어넘는 것으로, 오버 드라이브 또한 해당된다.
다만 이루키가 파계하는 것은 자연계가 아닌 생물계, 그것도 자신의 육체인 것이다.
“뭐가 이 정도쯤이야! 실전도 아니고 테스트에서 무리를 하면 어떡해? 나는…….”
졸업 시험에서 이루키가 오버 드라이브를 감행했던 기억은 시로네에게 아픔으로 남아 있다.
“만약 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시로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시로네, 아버지가 그러더라. 세상에는 이렇게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나에게 왔다고 내 것은 아니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은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시로네는 처음 이루키를 만난 날을 떠올렸다.
‘그래, 너는 그런 사람이었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한마음으로 그를 인정했다.
‘치기 어린 행동이라고 생각했더니…….’
거대한 재능만큼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진 청년, 함께 싸울 파트너로 손색이 없었다.
이루키가 시로네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쨌든 이제 적응했어. 앞으로 이런 추태는 없을 거니까 안심하라고.”
네스가 말했다.
“아니, 정말 잘한 거야. 우리가 처음 엑스마키나를 가동했을 때는 거의 1시간을 뻗어 있었으니까.”
아가야가 말했다.
“본격적인 훈련은 내일부터 하도록 하고, 오늘은 브리핑을 좀 하지. 우리를 따라오게.”
팀으로 받아들인 이상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이루키도 알아야 했다.
“이따 보자, 시로네.”
그들의 뒤를 따라가는 이루키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
도망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
첨탑에서 내려다보는 제국의 수도는 반딧불처럼 작은 몇몇 빛을 제외하고 심해처럼 어두웠다.
‘에이미…….’
이루키가 굳이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를 알고 있기에 시로네도 잠을 잘 수 없었다.
“미안. 회의가 늦어졌어.”
이루키가 첨탑의 꼭대기에서 미끄럼틀을 타듯 내려와 떨어지기 직전 난간에 발을 대고 멈췄다.
“엇차. 여기가 네 방이야?”
팔베개를 하고 경사에 누운 이루키의 눈에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담겼다.
“좋네. 답답하지도 않고.”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회의는 잘 끝났어?”
“상당히 치밀한 전략이야. 알파피시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하비츠를 가장 사랑하는 자?”
“응. 알파피시는 파일럿 피시라고도 불러. 관상어를 키울 때 먼저 들어가 수족관의 환경을 조성하는 물고기지.”
이루키가 검지를 들었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중요하니까. 하비츠를 증오하는 자, 베타피시는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지만…….”
말이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일 얘기를 접고 시로네가 원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른 애들도 잘 지내고 있어. 네이드는 용뢰에서 기술 개발 중이고, 단테는 토르미아 국가정보원에 취직했지. 몇 번 같이 밥은 먹었는데…….”
알페아스 마법학교 시절이 그리웠다.
“마야는 타국의 유명 기획사의 제안을 뿌리치고 토르미아 왕국의 공연 기획사와 계약했어. 페르미는 왕국을 떠난 것 같고, 그리고 또…….”
국가 전반의 사건을 담당하는 용뢰였기에 이루키 또한 동창생들의 근황에 대해서 빠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