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18
“아, 아뇨!”
잠시 머뭇거리던 아벨라가 실토했다.
“사실은…… 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었어요. 하비츠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저는 마녀가 됐을 거라고.”
“그 사람들은 죄가 없어. 그것도 알고 있어?”
아벨라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네.”
그녀가 아홉 살이었을 때에는 하비츠와 같은 것을 바라보고 같은 것을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성인이 되면 보이지 않는 외줄이 보이는 법이고, 아벨라는 그 모든 걸 이해하고 있었다.
시로네가 물었다.
“하비츠를 꽃집으로 부를 생각은 했나요?”
“아뇨. 어렸을 때의 약속인 걸요. 나중에 그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말이었는지 깨달았어요. 아저씨가 준 돈으로 산 꽃도 1년 만에 시들었는걸요. 그때는 며칠을 펑펑 울었지만.”
“문제는…….”
이루키가 말했다.
“하비츠에게는 여전히 그 약속이 유효하다는 거지. 지금도 아벨라가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이견은 없었다.
“그렇다면 성공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만…….”
시로네가 미네르바의 말을 끊었다.
“아벨라 씨, 현재 어머니께서는?”
“2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원체 몸이 약하셔서. 하지만 제가 꽃집을 열어서 행복해하셨죠.”
유스가 사라진 지 꽤나 시간이 흘렀으나 아벨라에게 남은 가족은 없다고 봐야 했다.
미네르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하비츠를 죽일 생각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의 의지입니다. 할 수 있겠어요?”
‘하비츠 아저씨…….’
하비츠가 마녀의 숙명을 깨는 대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는지 알고 있다.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야. 정말로 나쁜 사람이라고.’
아벨라가 눈을 감았다.
‘사람을 생매장시키고, 전쟁을 일으키고, 심지어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전부 죽여서…… 그래서…….’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거잖아.
‘갈등이 심하겠지.’
시로네는 우오린의 말을 이해했다.
‘악은 어떤 경우 매력적으로도 보인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각이에요, 아벨라 씨. 하비츠는 그저 끝없는 혼돈, 인간이 정의한 극악입니다.’
그렇기에 인간계에 있어서는 안 된다.
“하겠습니다.”
결정을 내린 아벨라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래, 죽자. 우리 같이 죽자, 아저씨.’
우오린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기회를 드릴게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강요해서 성공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아뇨, 결심했어요. 비록 하비츠 아저씨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저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들에게 속죄하는 마음도 있었다.
“할게요. 저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간도가 아벨라를 데리고 나가자 우오린이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알파피시는 확보했어. 이제 베타피시만 데려오면 모든 준비는 끝나는 셈이야.”
이루키가 턱을 괴고 말했다.
“……생존자가 있었군.”
시로네도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하비츠가 죽이라고 명령한 아무 죄도 없는 2만 2천 명. 하지만 설령 황제라도 혈족을 전부 찾아낼 수는 없어. 이미 찾아낸 거지, 하비츠를 가장 증오하는 자를?”
우오린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래. 14년 전의 대량 학살을 피해 도망친 그녀는 현재 아라크네 왕국에 거주하고 있어.”
율법적으로는 환상의 궁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라크네? 남반구잖아?”
구디오가 덧붙였다.
“남대륙해의 열도 10왕국을 대표하는 칠왕성이야. 정치 도피처로 유명한 휴양지이기도 하지.”
“세계 미인 대회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고.”
모두가 마이스를 주목했다.
“그냥…… 누가 우승할지 궁금해서. 이맘때잖아. 다른 감정은 없어.”
한숨을 내쉰 우오린이 말했다.
“문제는 그녀가 신분을 감추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시로네, 너에게 부탁하려고.”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베타피시를 데려와 줘. 오대성이라면 아라크네 정부의 망명 기록을 요청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에 대한 정보는?”
“본명은 애머리 제이스틴. 현재 어떤 이름을 쓰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어.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고, 망명 중에 당한 화상 흉터가 오른쪽 가슴 아래, 옆구리 쪽에 있다는 정도.”
특이한 상처라면 확실히 도움이 될 터였다.
“카샨에서는 거의 끝에서 끝이네. 국제 정거장의 대기 시간을 고려하면 날아가는 것과 차이가 없겠어.”
이루키가 물었다.
“그게 더 괴물 같은 거 아니냐?”
우오린이 눈웃음을 지었다.
“라투사를 타고 가. 도움이 될 거야.”
3티어급 몬스터, 괴조 카이드라.
남부 사막의 오아시스 뱅가드에 들렀을 때 함께 사막의 신 노스카르타를 뚫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추억이구나.’
문득 리안과 키도가 그리웠다.
“바로 출발할게. 라투사를 대기시켜 줘.”
이루키를 데리고 시로네가 문을 여는 그때, 마이스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우승자 수영복 색깔은 꼭 알아 와!”
쿵 하고 문이 닫혔다.
무풍지대 (1)
아가노스의 비행장에 도착하자 카이드라 사육사들이 이미 라투사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시로네를 배웅하러 따라온 이루키가 친구의 가방을 건네주며 말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아라크네 정부가 얼마나 협조하느냐에 따라서 시간이 달라지겠지. 그래도 얼마 안 걸릴 거야.”
상아탑이라면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우오린이 시로네를 굳이 지목한 이유이기도 했다.
“문제는 베타피시, 본명 애머리 제이스틴의 생각이야. 어쩌면…… 하비츠를 증오하지 않을 수도 있어.”
이루키도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혈족 전체가 죽어 나가는 와중에 유일한 생존자야. 증오보다는 공포가 더 크게 작용할 여지가 충분하지.”
이름까지 버리면서 타국에 숨어 있다는 사실도 심증에 힘을 실어 주었다.
“최대한 설득을 해 보겠지만, 그녀가 싫다면 어쩔 수 없어. 아벨라 씨와 마찬가지로 은 강요한다고 되는 무기가 아니니까.”
“그래. 우리도 대책을 마련해 볼게.”
어차피 시로네의 진심이 통하지 않는다면 누가 설득해도 데려오기는 불가능했다.
“위험한 임무는 아니니까 마음 좀 추스르고 와. 아라크네는 세계적인 휴양지니까. 요새 힘들었잖아.”
근래 시로네의 얼굴이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전투도 전투지만…….’
야훼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마족들과 부딪치는 것은 정신적 피로도가 엄청날 터였다.
“다녀올게.”
휴가라는 생각은 없지만 시로네는 굳이 내색하지 않고 카이드라에 탑승했다.
“오랜만이다, 라투사.”
노스카르타를 함께 넘었던 전우인 만큼 라투사가 반갑게 부리를 비벼 댔다.
“카이드라가 지치면 충분히 휴식을 취해. 괜히 우리 때문에 압박을 받을 필요 없어.”
시로네가 고삐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괜찮아. 지치면 내가 태우고 날지 뭐.”
라투사가 일어나면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이루키의 시선이 4미터 높이까지 올라갔다.
“가자!”
비행장 밖으로 몸을 날린 카이드라의 육중한 몸체가 수직으로 뚝 떨어졌다.
끼야아아아아!
곧바로 청명한 괴조음이 터지더니 라투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자기가 태우고 난다고?”
이루키는 괴조를 등에 업은 시로네의 모습을 상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
아라크네 왕국.
5성급 루비스트로 호텔.
“마야, 준비는 잘되고 있는 거지? 이번 곡 악보 봤어? 끝내주지 않아?”
마야는 3일 전 아라크네 왕국에 도착했다.
“네, 정말 좋더라고요. 신나고, 경쾌하고요.”
토르미아 왕국의 공연기획사 ‘엘보르’는 마야라는 대형 신인의 데뷔를 특별히 신경 썼다.
그리하여 잡힌 것이 아라크네에서 가장 큰 축제인 세계 미인 대회의 오프닝 무대였다.
“그럼, 그럼. 최고의 작곡가와 최고의 작사가가 협력한 결과물이니까.”
세계 미인 대회를 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적으로 평균 2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든다.
30대 중반의 잘생긴 노총각, 엘보르의 대표 팔머스가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시기도 딱 좋아. 빌어먹을 마족들 때문에 올해는 규모가 조금 축소되었지만, 각국 언론사의 취재 기사가 전 세계에 뿌려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노래만 잘해.”
“대표님.”
마야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저에게 정말 잘해 주시는 거 알아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하하, 내가 한 일이 뭐 있나? 나는 그냥 마야의 천부적인 노래 실력을 누구보다 빠르게 캐치…….”
“정말로 좋은데요, 노래도 좋고 다 좋은데요…….”
팔머스의 호의를 알기에 끙끙 앓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가사가 이상해요. 이렇게는 못 부를 것 같아요.”
“응? 가사?”
마야가 두 팔을 펼치며 소리쳤다.
“너무 퇴폐적이잖아요!”
“흐음.”
팔머스가 눈을 깜박거리며 가사를 상기해 보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자극적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래서 좋은데? 대놓고 하는 게 아니라면 야한 건 무조건 먹힌다고.”
“그래도 의미가 너무 심장해요. 신인 주제에 이런 말 하는 게 죄송스럽지만, 아무래도 이건…….”
팔머스는 입맛을 다셨다.
‘이게 문제란 말이야.’
나무랄 데 없는 외모에 노래는 당연히 규격 외, 무용도 되고 마법사 자격증에, 센스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왜 이렇게 숫기가 없단 말인가?
“마야, 그냥 눈 딱 감고 부르면 안 될까? 네 성격은 알고 있어. 그래서 내가 탈의 시퀀스도 삭제한 거잖아.”
탈의라고 해 봤자 어깨 라인과 가슴골이 보이는 정도지만 마야는 질색을 했다.
“차, 차라리 탈의를 할게요. 전적으로 제 문제지만, 정말로 자신이 없어서 그래요.”
퇴폐적인 말을 내뱉느니 속살을 보이겠다는 각오 앞에서는 팔머스도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가수에게 사심을 갖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지만, 솔직히 마야가 벗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알았어. 그럼 이렇게 하자. 시간이 없으니 지금 작사가를 데려올게. 함께 수정안을 생각해 보자고.”
“죄송해요, 대표님.”
팔머스가 씁쓸하게 웃었다.
“이게 내 일인데 뭐. 앞으로도 걸리는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 네가 편해야 결과가 좋은 거니까.”
그로부터 20분 뒤, 팔머스가 꼬장꼬장한 얼굴에 사각 안경을 쓴 남자를 데리고 왔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제가 추구하는 색깔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요.”
오디션 때와 달리 자기주장이 확고한 태도에 작사가 모스터도 순순히 테이블에 앉았다.
“그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나?”
곧바로 말이 나왔다.
“우선 어휘 선택요. 핥을 거야. 할짝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뭘 자꾸 핥아요? 그리고 중의적 의미들. 막대기처럼 딱딱한 남자. 열린 내 마음속에 들어와…….”
모스터가 황급히 손을 내밀었다.
“아, 마지막 것은 아니야.”
마야가 입술을 말아 물었다.
“……아무튼 그렇다고요.”
팔머스가 벽에 기대어 지켜보는 가운데 모스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릇 작가라는 작자들은, 그러니까 글자로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말이야…….”
뜬금없는 말에 마야가 눈을 깜박였다.
“대부분 또라이지. 사실 이 세상에 작가는 두 부류밖에 없어. 작가인 척하는 일반인, 일반인인 척하는 또라이.”
모스터가 검지와 중지로 관자놀이를 톡톡 찔렀다.
“작가의 머리에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흐르거든. 아주 논리적이며 더럽게 재미없는 생각, 그 논리를 파괴하는 짜릿하고 끔찍한 생각.”
그가 검지와 중지를 가위처럼 짤각거렸다.
“그 두 가지 생각이 전기처럼 상호작용하면서 논리적이면서 재밌는 스토리텔링이 되는 거지. 이중인격. 그렇게 미쳐 가는 거야.”
“그래서요?”
“너무나 아름다운 생각을 하다가도, 그것을 잔인하게 짓밟고 싶은 욕망도 공존하고. 중요한 건 균형을 맞추는 거야. 한쪽으로 치우치면 망해 버린다고.”
“……그래서요?”
덜컹 의자를 밀어내며 무릎을 꿇은 모스터가 마야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그 욕망에 져 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