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19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마야가 놀라 일으켜 세웠으나 그는 무게중심을 바짝 낮추고 무릎을 펴지 않았다.
“오디션에서 전율을 느꼈어. 엄청난 소재다! 과연 저 천상의 목소리로 이런 표현을 하면 어떻게 될까? 파괴적인 충동이 너무 강해서 쓸 수밖에 없었어!”
“변태예요? 왜 그런 생각을……!”
“날 믿어! 반드시 먹힐 거야! 아름다운 자네의 목소리로 제발 내 가사를 노래해 주게!”
마야가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팔머스는 문을 열고 경비를 부르고 있었다.
“데리고 나가.”
끌려가는 와중에도 모스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발, 마야! 자네가 그 가사를 부르는 걸 꿈에서도 보고 있단 말이야!”
문이 닫혔다.
“하아.”
진이 빠진 마야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팔머스가 입맛을 다시며 다가왔다.
“미안해. 전적으로 우리의 실수다. 새로운 작사가는 내가 어떻게든 조달해 볼게.”
개인의 열망에 불타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하지만 베테랑 모스터조차 돈을 포기하고 욕망을 선택할 정도의 소재라는 뜻도 된다.’
숫기 없는 모습조차 무기로 써먹을 수 있다면 마야의 뜻대로 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좋아, 순수하게 가자.”
마야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3일밖에 안 남았는데 시간 내에 가사를 완성시킬 수 있겠어요?”
“회사 인력을 총동원해야겠지. 모스터만큼 감각적으로 뽑아내는 사람도 드물긴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었다.
“그럼 혹시 제가 써 봐도 될까요?”
“응? 마야, 네가?”
“네. 사실 모스터 씨가 말한 두 가지 생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 보고 싶어서요.”
“흐음. 그거, 나쁘지는 않은데.”
이왕 작사가 엎어진 김에 마야 본래의 모습에 기대어 보는 것도 전략 중의 하나였다.
“좋아, 일단 작업을 해 봐. 최종 심사에 올려 줄게. 대신 연습은 꾸준히 해야 된다?”
마야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시로네.’
꼭 쓰고 싶은 가사가 있었다.
***
끼이이이이!
카이드라의 괴조음이 시로네의 아침잠을 깨웠다.
“흐아아암!”
잠들기 전에만 해도 차가웠던 공기는 어느새 적도의 따스한 열기로 바뀌어 있었다.
“우와!”
태양이 깨진 듯 무풍지대의 수면 위로 수만 개의 빛이 떠다니고 있었다.
숲과 암벽이 어우러진 섬들이 폭죽처럼 오색찬란한 새들을 하늘로 뿌려 대고 있었다.
“멋진 곳이구나.”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임무가 우선이지.”
열도 10왕국을 동쪽에서부터 차근차근 지나간 시로네는 아라크네 왕국의 상공에서 라투사와 작별했다.
“고마웠어. 카샨에 도착하면 맛있는 거 사 줄게.”
끼이이.
카이드라의 머리를 쓰다듬은 시로네가 더 늦기 전에 몸을 날려 지상으로 낙하했다.
아라크네의 수도 ‘뱅골’을 조준하며 내려가자 거리를 가득 채운 인파와 음악 소리가 들렸다.
“페스티벌이다.”
미네르바와 달리 왕성의 성벽을 뚫고 들어가는 무례는 성향에 맞지 않았기에 시로네는 건물에 착지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축제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누구도 하늘에서 떨어진 이방인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곳이 아라크네 왕국.”
남부 대륙의 해안선에서 동쪽으로 뻗은 열도 10왕국 중에서 세 번째에 위치한 섬이었다.
‘오래전에 남방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원주민들이 아라크네의 시초.’
그래서인지 문명의 선진을 이끄는 대륙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음에도 남방의 풍습이 남아 있었다.
“내려가 볼까?”
골목 쪽으로 뛰어내린 시로네가 큰길가로 나오자 개방형 마차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비키니를 입은 아라크네 무용수들이 허리를 흔드는 가운데 사회자가 말했다.
“여러분! 미스 야크마입니다!”
세계 미인 대회에 참가한 야크마 공화국의 대표가 지나가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미스 야크마! 얼굴 좀 보여 줘요!”
주인공은 커튼에 가려져 있었고 누군가의 요청에 실루엣이 손을 흔들었다.
“나한테 손을 흔들었어! 사랑합니다! 누군지 몰라도 무조건 사랑해요!”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미스 토르미아!”
시로네의 시선이 저절로 돌아갔다.
‘우리 왕국이다!’
역시나 실루엣만 보였지만 무릎에 손을 얹은 옆모습이 단아한 여성이었다.
‘누굴까? 되게 궁금하네.’
모두가 품고 있는 궁금증은 세계 미인 대회가 열리는 날 풀리게 될 터였다.
“미스 남에이몬드!”
사회자의 목소리가 남국의 하늘을 수놓았다.
무풍지대 (2)
아라크네의 무용수들이 춤을 출 때마다 깃털 장식이 현란하게 흔들렸다.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드는 광경 속에서 누군가가 불쑥 시로네의 옆으로 다가왔다.
“가히…… 아름답지 아니한가?”
머리가 까치집처럼 삐죽삐죽 자라 있고 짧은 수염이 듬성듬성한 30대의 남성이었다.
“아, 네.”
“여행 경비를 마련할 수 있는 나이 때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 대회를 관전했지. 눈이 즐겁나? 뇌가 즐거운 거야. 한 가지 단점만 빼면 말일세.”
“단점요?”
남자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장가를 못 갔어.”
시로네가 자리를 떠나려는데 남자가 팔을 붙잡아 끌어당기더니 속삭였다.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야. 이 대회에 참가하는 여성들은 지, 덕, 체를 갖춘 최고의 신붓감이라고. 그러니 내가 어떻게 장가를 가겠어? 주위에서는 꿈 깨라고 하지만, 꿈이라는 것은 꾸라고 있는 게 아니겠나?”
자칭 세계 미인 대회 마니아는 살면서 억울한 일이 많은 모양이었다.
“내 꿈이 뭔지 아나? 놀랍게도 아주 현실적이지. 저 여성들 중 1명과 데이트를 하는 거야. 벌써 적금도 들었어.”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밤마다 꿈에 나오지. 최고의 미녀와 데이트를 할 수 있다면 그날 죽어도 좋아. 이게 꿈이야! 남자가 품을 수 있는 가장 원대한 꿈이라고!”
“저기, 제가 좀 바쁜 일이 있어서…….”
“자네도 대회에 꼭 오게. 이걸 가져가.”
크로스백의 지퍼를 열고 남자가 무언가를 뒤적거리자 시로네가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입장권 티켓을 주려는 것 같았으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출입이 가능한 시로네였다.
“자, 받게.”
남자가 꺼낸 것은 티켓이 아닌 길거리 어디서나 주울 수 있는 대회 전단지였다.
“……아, 네. 감사합니다.”
기계처럼 몸을 돌린 남자가 손나팔을 만들더니 행렬에 대고 소리쳤다.
“사랑해요! 미스 메르헨!”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 시로네는 한적한 곳으로 빠져나와 혀를 내둘렀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왕성으로 향하는 길에 전단지를 보자 역대 우승자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우와, 정말 예쁘다.’
인간의 매력이야 백인백색이지만, 그들의 외모는 확실히 독보적인 구석이 있었다.
“어?”
하지만 시로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은 건 초상화가 아닌 각국 초청 가수의 명단이었다.
“마야라고?”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봐도 역시나 토르미아에서 온 가수의 이름은 마야였다.
‘그러고 보니…….’
유명한 기획사와 계약했다는 이루키의 말이 떠오르자 비로소 대회에 관심이 생겼다.
‘이건 확인을 해 봐야겠다.’
정말로 시로네가 아는 그녀라면 시간을 내서라도 한 번은 가 볼 생각이었다.
‘마야였으면 좋겠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저 멀리 행렬의 끄트머리에서 소란이 일었다.
“미인 대회를 폐지하라!”
검은 복면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팻말을 위로 세우고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상품화하지 마라! 아라크네 정부는 즉각 참가자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라!”
슬로건만 들어도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여기도 난리가 아니네.’
토르미아에도 미인 대회가 있고, 그럴 때마다 비판의 목소리도 꾸준히 들렸다.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시로네가 살면서 깨달은 사실은, 세상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찾는 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아우, 머리 아파.”
인간.
부처도 야훼도 풀지 못한 숙제가 아니던가.
***
아라크네 왕성에서 야근했던 관리들은 새벽부터 악을 지르느라 목이 전부 쉬어 있었다.
“빨리! 아직도 먼지가 있잖은가!”
기록적인 왕성 대청소를 하는 이유는, 상아탑의 오대성이 온다는 첩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진짜 죽을 맛이네! 다른 나라 왕이 와도 이렇게 들들 볶지는 않았는데.’
말단이면 귀족이라도 예외 없이 먼지떨이를 들었고 시녀들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끄응!”
노동을 피한 자들은 소수였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차라리 더하다고 볼 수 있었다.
“왜 하필 별이 온단 말인가?”
그랜드 홀에서 의복을 정제하고 기다리는 아라크네의 왕 파로니카가 팔걸이를 내리쳤다.
금으로 만든 귀걸이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그는 대륙과 남방의 혈통을 두루 갖춘 강직한 인상이었다.
“전하, 고정하십시오. 오대성은 쉽게 영접할 인물이 아닙니다.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 않겠습니까?”
칠왕성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아라크네가 타국에 비해 두드러지게 강력한 것은 아니다.
열도 10왕국은 ‘카르트시아’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고 그들의 대표가 아라크네일 뿐이었다.
“그거야 그렇지만…….”
따라서 오대성이 아라크네에 온다는 것은 다른 열도 10왕국에 좋은 위세가 될 터였다.
“나는 실속파란 말이지.”
성전의 발키리가 구스타프 제국의 확장을 치열하게 막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아마도 전쟁에 관한 일이겠지.’
만약 성전이 직접 관여했다면 그에 대한 응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일부러 별을 보낸 거야. 이러면 자국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우오린은 살림꾼이다.
“게다가…….”
집정관이 다시 아뢰었다.
“현재 왕국에서 가장 큰 행사가 방해를 받을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오대성이라면, 우리가 얻을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테러 협박을 말하는 건가? 흐음.”
“제가 듣기로 시로네라는 별은 다른 별과 달리 그렇게 깐깐한 성격은 아니라고 합니다. 남에이몬드가 막대한 금액을 전달하고 북에이몬드의 통치권을 얻었다는 소문도 있고요. 이는 물욕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남에이몬드하고는 상황이 달라. 고작 이런 일로 그런 큰돈을 지불할 수는 없네.”
“물론 그러합니다. 그러니 돈이 아닌 다른 것을 제공해서 마음을 녹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다른 것…… 그렇군. 가능하겠는가?”
집정관이 눈웃음을 지었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랜드 홀을 빠져나간 집정관이 향한 곳은 세계 미인 대회를 주최하는 최고 관리자의 집무실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집정관님. 공사가 다망하실 텐데 이런 곳까지 찾아 주시고…….”
“부탁할 게 있어서 왔네.”
일단 불안했다.
“부탁이라 하심은……?”
“미스 아라크네, 바르호 란기. 우리가 그 아이를 좀 중요한 일에 써야겠는데.”
불안이 현실이 되었다.
“……상아탑의 별입니까?”
“이해가 빠르니 마음에 드는군.”
관리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미스 아라크네가 타국의 요인을 접대하는 것은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그 미스 아라크네를 누가 만들었는데? 전하의 명일세. 당장 준비시켜서 보내.”
“다른 여자는 안 되겠습니까? 여태까지 미스 아라크네가 접대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것만 바라보고 더러운 꼴 다 보면서 여기까지 올라온 아이란 말입니다.”
“이봐요, 관리자.”
집정관의 눈빛에 관리자의 어깨가 흠칫했다.
“내가 당신더러 죽으라고 합니까? 하늘의 별을 따 달라고 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안되는 게 어디 있어! 목에 칼이 들어와야 정신을 차릴 텐가!”
입술을 짓깨문 관리자가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설득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말을 해도 그 아이가 거절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