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2
시로네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푸…….”
네이드의 볼이 부풀더니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이루키, 봤냐? 시로네 표정 봤어? 이거 완전 걸작이다!”
이루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봤어! 봤어! 완전 겁에 질려 가지고. 너, 너희들……. 푸하하하! 시로네, 날 웃겨서 어쩌자는 거야?”
네이드는 너무 웃어서 아픈 배를 부여잡았다.
“으흐흐! 흐흐흐! 아, 생각할수록 미치겠네. 너,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크하하하!”
시로네는 잠시 멍한 표정이었다. 현실인지 꿈인지조차 모를 기분이었다.
“뭐야? 너희들, 나 기억하는 거야?”
“무슨 헛소리야? 또 이상한 악몽이라도 꿨냐? 너 지금 완전 웃긴 표정인 거 알아? 푸하하하!”
거기까지 들은 시로네는 맥이 탁 풀렸다.
거대한 안도감이 지나가자 이제는 화가 났다.
“에이, 씨! 그럼 빨리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도대체 왜 모르는 척을 한 거야?”
“네 반응이 하도 웃겨서 장난 좀 친 거지. 네가 이랬잖아. 나야. 나 시로네야.”
네이드가 흉내를 내자 이루키가 다시 웃으며 소파에 쓰러졌다.
그들을 나무랄 기력조차 없는 시로네는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진짜 무서워 죽는 줄 알았잖아.”
“좋아, 들어 보자. 무슨 일인데?”
네이드와 이루키가 비로소 들을 태도를 보이자 시로네는 조금 전 겪은 일을 말했다.
처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하던 아이들도, 시이나 선생님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점차 진지해졌다.
“흐음, 시이나 선생님까지 모른단 말이지? 하긴, 선생님이 장난을 칠 리는 없고 말이야.”
네이드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정신 계열 마법이라면 가능하지. 물론 전교생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까지는 나도 좀 의문이지만.”
시로네가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가능하다니까. 내가 직접 당하고 왔잖아.”
“흥분하지 마. 어쨌든 우리는 네 말을 믿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너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거지?”
네이드가 정정했다.
“우리를 제외하고 말이지. 이유가 뭘까? 그게 이 상황에 대한 힌트가 될 것 같은데.”
이루키가 검지를 들었다.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건, 우리가 2일 동안 학교에 없었다는 거야. 그리고 그사이에 학교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지. 과연 어떤 일일까?”
일행은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외출한 2일 동안 누군가가 전교생은 물론이고 교사진의 정신까지 조작했다?
당장은 납득이 되지 않는 가정이었다.
네이드가 말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한 것일지도? 사례를 보면 역사적으로 유사한 일들이 꽤 있거든.”
이루키는 회의적이었다.
“글쎄. 난 그런 사례도 결국 마법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런 종류라면 우리가 기억을 잃지 않은 이유는 어떻게 설명하지?”
“이스타스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 시로네랑 헤어진 뒤로 계속 여기에 있었잖아.”
시로네가 물었다.
“그게 이스타스랑 무슨 관계가 있어?”
“예전부터 이스타스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는 얘기가 돌았거든. 물론 실체는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따지는 게 좋아. 신변과 관련된 문제니까.”
이루키가 물었다.
“즉 우리도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거지?”
“응.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까.”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슬프겠지만 본인이 기억을 잃는 것도 큰일이었다.
네이드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래도…… 나가 보는 게 좋겠지?”
“나도 동의해. 숨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니까.”
시로네도 친구들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아픈 상황을 경험한 터라 주저했다.
“그러다가 너희들까지 나를 잊으면 어떡해? 그때는 정말 미쳐 버릴지도 몰라.”
“이렇게 하자. 미리 표시를 해 두는 거야. 기억을 잃더라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끔.”
어둠의 불청객(3)
네이드는 펜을 가져와 손바닥에 무언가를 적었다.
확인한 친구들도 똑같은 글귀를 새겼다.
-나는 기억을 잃었다. 키워드를 아는 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키워드는 북극성.
일행은 만족스러웠다. 설령 기억을 잃더라도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자, 됐지? 이제 나가 보자.”
이스타스를 떠나 교정으로 들어가자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흔한 풍경이었지만, 시로네 일행은 곧바로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평소라면 짝을 지어 돌아다닐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섬뜩한 건,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것 같지만 동선이 뒤죽박죽이라는 점이었다.
“얘들아, 저 애들…….”
“그래, 나도 느꼈어. 목적지가 없어. 그냥 되는 대로 걸어 다니고 있을 뿐이잖아?”
네이드는 인파 속에서 아는 사람을 찾았다. 클래스 파이브의 동기인 게이브였다.
“야, 게이브. 너 대체 어디 가는 거야?”
게이브가 다가왔으나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 무미건조한 말투로 되물었다.
“누구야, 너?”
네이드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미 시로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들었기에 개의치 않고 궁금한 점부터 물어보았다.
“그건 됐고, 지금 어디 가는 거냐고.”
‘내가 어디를 가?”
네이드가 답답한 듯 땅을 밟으며 말했다.
“지금 계속 가고 있었잖아. 목적지가 어디야?”
“내가?”
자신의 다리를 살핀 게이드는 문득 깨닫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는…… 어디지?”
“야, 정신 차려. 왜 그러는데? 요 며칠 무슨 일 있었어? 혹시 수상한 사람 못 봤냐고.”
“너, 나 알아?”
“당연히 알지. 모를 리가 있냐.”
게이브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네이드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 댔다.
“말해 줘! 내가 누구야? 아니, 여긴 도대체 어디야? 나…… 내 이름은 뭐지?”
겁에 질린 게이브가 머리를 감싸 쥐자 네이드는 뒤로 물러나 돌발 상황에 대비했다.
다행히 게이브는 공격성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다만 미쳐 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왜 자꾸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야!”
혀가 점차 꼬이던 게이브는 급기야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시로네는 그가 어떤 상태인지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반면에 네이드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뭐가 들린다는 거야? 환청인가?’
시로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아니야.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거야.”
“자신의 목소리?”
“언어라는 개념을 잊고 있어. 습관적으로 말은 내뱉지만, 의미를 모르는 거야. 그러니 겁을 먹을 수밖에.”
언어 체계를 완전히 망각한 게이브는 급기야 원시인처럼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시로네 일행은 오싹했다.
정신이 퇴화되는 속도로 봤을 때, 기억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자 게이브의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눈동자의 생기마저 사라졌다.
마지막에는 운동 능력까지 상실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
무서운 정적이 찾아왔다.
마치 밀랍 인형을 세워 둔 것처럼 어느 누구한테서도 생동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이루키가 말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무사하군. 낙관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조사해 볼 여지는 있겠어.”
그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시로네는 사람들을 1명씩 살펴보았다.
마치 스톱 마법처럼 세상이 멈춘 기분, 하지만 시간은 확실히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가끔씩 눈을 깜박이는 것을 보면 신체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생각이 정지한 거야.”
이것 또한 마법이라면, 사회현상적으로는 스톱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
어린아이도 마음만 먹는다면 이 자리의 모두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행은 몇 가지 실험을 해 보았다.
한 후배에게 간지럼을 태우자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간지럼을 멈추면 곧바로 굳은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눈을 찌를 듯이 위협했을 때는 눈꺼풀을 깜박이기도 했다.
“반사중추는 살아 있어. 뇌 기능의 문제는 아니야. 기억이 사라지니 사고도 없는 거지. 완전히 텅 비었다고.”
“그렇다면 체력도 한계가 있다는 얘긴데. 서 있는 상태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야. 대체 어쩌려는 거지?”
“그 전에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가 먼저겠지. 일단 조금 더 돌아다녀 보자.”
시로네 일행은 졸업반 쪽으로 향했다. 마법 수준이 높은 자들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오르막길에 도착하자 졸업반 학생들이 강철문의 아치를 우르르 빠져나오고 있었다.
일행은 황급히 수풀에 몸을 숨겼다.
졸업반 학생을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피아 구별은 한눈에 가능했다.
홀린 듯 걸음을 옮기는 자들과 달리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시로네 일행은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강하다.’
쌍검을 찬 남자, 앵무 도적단의 루카스가 따라오는 학생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살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지만 이런 살풍경은 처음이네. 전부 좀비가 되어 버렸잖아?”
어비스 노바에 노출되면 24시간 내에 모든 기억이 차단당한다.
차단 순서는 가장 최근의, 가장 인상적인 기억부터였다.
기억이 없이는 사고도 없기에 아케인은 무생물화 마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무방비의 학생을 인솔하는 건 정신 계열에 특화되어 있는 아린의 임무였다.
정신 지배 마법으로 모두를 고급반 교정까지 끌고 온 그녀는 수많은 학생들이 멈춘 곳에서 다시 한번 마법을 시전했다.
‘포획의 그림자.’
아린의 그림자가 촉수처럼 구불구불 흐르면서 사람들의 그림자를 꿰어 나갔다.
시로네 일행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괴물이다. 스피릿 존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바꾸다니. 수업 시간에 들은 적은 있지만…….’
사방식에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형태. 하지만 정신 계열 마법에서는 정석인 촉수형이었다.
스피릿 존을 가느다란 실처럼 풀어서 사용하기에 변화가 자유롭지만 그런 만큼 시간은 오래 걸려서, 고급반 학생들의 그림자를 전부 꿰뚫으려면 최소 20분 이상이 걸렸다.
아린이 작업을 하는 동안 루카스는 여학생들의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그러다가 에이미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앞머리가 한쪽 눈을 가린 소녀의 외모는 학생들 중에서도 발군이었다.
무엇보다 기억이 차단당한 상태에서도 초점이 또렷했다.
“오호, 마음에 드는데?”
카니스가 쏘아붙였다.
“루카스, 그만해라. 품위 없는 짓은 자제해.”
에이미에게 다가가던 루카스가 우뚝 멈추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나한테 한 소리냐?”
“쓸데없는 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푸!”
루카스는 맥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앵무 도적단의 위상이 이 정도로 떨어진 것인가?
“어이, 꼬맹아. 뭐가 그렇게 심각해? 듣자 하니 어차피 복수극이라던데, 재미 좀 보자는 게 뭐가 어때서?”
“스승님의 긍지를 되찾기 위한 복수다. 질 나쁜 짓은 내가 용서하지 않아.”
“용서하지 않으면? 나한테 어쩔 건데?”
“계약을 파기하겠다.”
“하하! 꼬마야,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아케인에게 고용된 거지 너에게 고용된 게 아니야.”
“뭐든 마찬가지야. 아린이 포획의 그림자를 시전하는 중이야. 작전에 방해가 된다면 얼마든지 해고할 수 있어. 거기에 불만이 있다면…….”
카니스의 눈동자에 심연의 소용돌이가 생겼다.
“지금 여기서 죽여 주마.”
“…….”
루카스의 눈에도 잠시 살기가 번뜩였으나 이내 표정을 풀고 물러섰다.
앵무 도적단의 부단장으로 수많은 마법사를 처치한 그였지만, 그렇기에 스피릿 존 안에서 적개심을 드러내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관두자. 돈 못 받으면 나만 손해니까.”
카니스가 다시 한번 주의를 주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의 일을 방해하지 마라. 그때는 정말 참지 않을 테니까.”
“크크, 거 동업자끼리 더럽게 깐깐하네. 그나저나 아케인은 대체 어디 간 거야?”
“스승님은 중요한 준비 중이셔. 이런 간단한 일은 우리끼리 해결하라는 뜻이야.”
어비스 노바로 소진한 정신력을 회복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 봤자 좋을 게 없었다.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건성으로 대답하고 몸을 돌린 루카스의 눈이 짧은 순간 강렬하게 빛났다.
‘흥, 완전히 녹초가 되었겠지.’
마법사와 싸운 경험을 토대로 루카스도 등가교환에 대해 빠삭했다.
수백 명의 기억을 차단하는 마법이라면 평범한 마법사는 시도조차 못하는 수준이니, 아케인이 대마법사라고 해도 온전할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