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21
“처음 봤을 때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는 한, 제가 배신을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배신이 아니에요. 사귀자는 뜻도 아니고요.”
란기가 최후의 언어를 사용했으나 시로네는 크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어요. 술을 많이 드신 것 같아요. 오늘은 여기서 주무세요.”
자리를 뜨는 모습에 란기는 겁이 났다.
“아뇨! 그러지 마세요. 마법사님 대신에 제가 여기서 잠을 잘 수는 없어요.”
“약속했잖아요.”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평생 우리 둘만 간직하기로.”
“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도 넋을 잃고 있던 란기가 의자에 털썩 내려앉았다.
“진짜야? 정말로 이게 끝이야?”
나쁜 결과는 아니고, 둘만의 약속이라는 말도 그녀를 구원했지만 어째서 짜증이 나는 것일까?
“멍청이! 착한 척한다고 누가 알아줘? 살면서 평생 동안 안타까워할걸!”
누리는 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한 란기가 스위트룸의 침대로 뛰어들어 대자로 드러누웠다.
“아, 좋다! 그래, 지금은 내가 왕보다 높은 사람이다!”
사지를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실크의 감촉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시로네가 읽던 책이 보였다.
“놔두고 갔네. 무슨 책이야?”
페이지의 중간 부분을 펼쳐 보니 소설이었다.
란기는 고개를 갸웃하며 표지의 제목을 확인했다.
드래곤 패는 대마법사
“하하…….”
허탈한 동작으로 팔을 떨어뜨린 그녀는 결국 천장을 향해 실컷 웃고 말았다.
“푸하하하하!”
어쩌면 아케인의 말이 옳다.
“드래곤 패는……! 푸히히히!”
마법사는 영원한 소년이다.
***
다음 날 아침.
호텔 옥상에서 사색에 잠겨 있던 시로네는 해가 뜨는 것을 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란기의 방문으로 촉이 왔기에 왕성에 도착한 시로네의 표정은 전보다 단단해져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위대한 별이시여.”
아라크네의 왕 파로니카가 거구의 상체를 굽히며 시로네를 맞이했다.
“어제 요청한 건은 어떻게 됐나요? 제이스틴이라는 사람을 찾았나요?”
“그게, 생각보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렇군요.”
다른 별들 같으면 멱살잡이를 했을 터, 역시나 쉽다고 생각하며 파로니카가 운을 띄웠다.
“사실 근래 왕국에 안 좋은 일이 있어 인력이 부족한 관계로 속도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시로네는 듣고만 있었다.
“테러 협박이지요. 세계 미인 대회를 중지시키지 않으면 대회장을 피바다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상아탑의 별에게 요청한다는 것은 아라크네의 경찰력으로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염치없는 부탁이기는 합니다만, 오대성께서 직접 나서서 해결해 주시면……. 흐읍!”
시로네의 눈빛에서 숨이 멎을 듯한 살기를 느낀 파로니카가 입을 다물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기운인가…….’
상아탑의 별을 처음 대하는 것이 아닌데도 얼어붙은 혈액이 혈관을 찢고 나오는 아픔이었다.
“제가 찾고 있는 사람은…….”
만약 란기와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파로니카를 더욱 강하게 몰아붙였을 것이다.
“세계의 운명을 쥔 사람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어요.”
‘진짜로 죽는다!’
파로니카는 눈앞의 청년이 상아탑의 오대성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받아들였다.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애머리 제이스틴에 대한 프로필을 대령하겠습니다.”
이미 찾아 놓지 않았다면 협상도 없었을 테니까.
‘후우, 이 일도 정말 힘들구나.’
그제야 눈에서 살기를 빼낸 시로네가 몸을 돌리며 테러 협박 건에 대해 생각했다.
‘따로 알아보기는 해야겠다.’
대형 참사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야의 소중한 데뷔 무대가 위험에 빠지는 것은 싫었다.
‘란기 씨도 걱정되고.’
어쨌거나 일단은 베타피시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베타피시 (1)
아라크네 국정원이 서류를 제출했다.
현재 수도 뱅골 인근의 작은 상업 도시 티마로스에서 용병 길드를 이끌고 있는 듯했다.
‘제이스틴 용병단이라…….’
이름을 바꾸지 않은 대신 성을 버렸고, 대원들은 고작해야 10명 남짓이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삶이지만, 그녀가 평화를 얻기 위해 버린 것은 너무나 많았을 터였다.
“티마로스가 어디죠?”
파로니카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뱅골에서 동쪽으로 1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출입 허가를 명하겠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테러 건은 급한 불부터 끄고 상의하기로 하죠.”
시로네가 서류를 챙기며 그랜드 홀을 빠져나간 뒤에야 파로니카는 숨통이 트였다.
“후우, 무시무시한 사내로군.”
집정관이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전하. 미스 아라크네까지 넘겼는데도 이런 식으로 안면 몰수를 할 줄은…….”
“아니, 이것으로 됐어. 테러라는 말을 입에 올렸으니 손 놓고 구경만 하지는 않겠지.”
그렇더라도 시로네의 기운은 칠왕성의 기개를 가볍게 짓밟을 정도로 강력했다.
‘세계를 짊어진 자의 눈빛인가?’
처음 상아탑의 별 중에서 시로네가 온다고 했을 때는 쾌재를 부른 그들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대성을 상대로 이 정도로 절충했으면 우리도 선방한 거 아닌가?”
집정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왕성에서 수직으로 날아오른 시로네는 지평선 자락에 있는 작은 도시를 향해 똑바로 날았다.
입구의 아치에 도착하자 이미 기별을 받은 경비대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경례를 올렸다.
“어서 오십시오. 하시는 일에 어떠한 차질도 없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혹시 필요하신 건?”
“그냥 좀 둘러볼게요.”
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티마로스의 영광입니다. 제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가까운 경비대를 찾아 주십시오.”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치를 지나가자 비포장도로를 따라 수많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세계 미인 대회 기간이라 그런가?’
본국보다 타국의 손님들이 더 많았고, 그래서인지 시장은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를 헤치고 길드 구역을 찾아가자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
대장간, 연금술, 약품, 회복 길드 등을 지나가자 마침내 그가 찾던 곳이 나왔다.
제이스틴 용병 길드
작은 도시 하나를 지키는 일은 경비대로 충분하기에 한눈에도 일거리가 많지는 않아 보이는 건물이었다.
“실례합니다.”
텅 빈 테이블이 듬성듬성 놓여 있고 카운터는 비워진 상태였다.
구석의 테이블에서 일단의 무리가 술병을 옆에 두고 카드 게임을 하다 고개를 돌렸다.
“뭐야, 너는?”
초면에 하기에 민망한 말을 던진 사내는 애꾸였고, 취기가 올라 혀가 꼬부라져 있었다.
‘얼마나 찾는 사람이 없으면…….’
잠시 생각하던 시로네가 물었다.
“사람을 좀 찾고 있는데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테이블의 우편에 앉아 있던 뚱뚱한 여자가 벌떡 일어나며 다가왔다.
“어머, 손님이었네. 이쪽으로 와요.”
카운터를 꿰차고 들어온 그녀가 방명록을 턱 하고 올리자 먼지가 풀풀 피어올랐다.
“사람 찾는 건 우리가 전문이죠. 누굴 찾으시죠?”
“애머리 제이스틴요.”
여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카드 게임을 하던 용병들의 손동작이 우뚝 멈췄다.
여자가 다시 물었다.
“죄송한데, 누구라고요?”
“애머리 제이스틴요. 여기 용병대의 대장이 제이스틴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 같던데요.”
애꾸가 말했다.
“문 닫아.”
쿵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고, 언제 왔는지 모를 흑발의 남자가 칼을 꺼내 든 채 입구를 지켰다.
‘상당한 실력이다.’
물론 느끼지 못한 기척은 아니지만, 그가 몸담은 실버링 길드와 비교해도 수준이 높았다.
“제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애송아.”
애꾸가 마정탄을 장착한 건을 겨누었다.
“누구에게 들었지, 애머리라는 성?”
그의 질문을 통해 제이스틴이 자신의 과거를 부하들에게 털어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즉, 상당한 신뢰 관계로 묶인 용병단. 이거 말을 조심해야겠는걸.’
시로네가 두 손을 들었다.
“싸우려고 온 게 아니에요. 제이스틴 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온 겁니다. 의뢰라고 해도 좋아요.”
“경고했을 텐데.”
애꾸의 건이 찰칵 소리를 내고, 다른 2명의 남자가 서슬 퍼런 장검을 뽑아 들었다.
“제대로 말하라고.”
동시에 마정탄이 불을 뿜으며 쏘아지고, 입구를 지키던 흑발의 남자가 단도를 쥐고 덤볐다.
“이런……!”
순간 이동으로 마정탄을 피하자 폭음성을 내며 벽이 폭발했다.
“조심해! 마법사다!”
“마법사?”
장검을 든 남자들이 벽에 선 자세로 달리더니 시로네의 좌우에서 몸을 날렸다.
“그래 봤자 꼬맹이지!”
흉악한 소리를 내며 장검이 엑스 자로 그어졌으나 이미 시로네는 자리에 없었다.
“싸울 필요 없다고……!”
마정탄의 폭음 소리에 시로네의 목소리가 파묻히고 사방의 벽이 폭발했다.
‘당신들 가게잖아!’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아니면 그만큼 위험하다고 판단했거나…….’
아직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제이스틴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죽여! 뒷감당은 내가 할 테니!”
여자가 소리치고, 흑발의 남자가 단도를 역수로 쥔 상태로 시로네를 압박했다.
‘역시, 이 사람이 제일 세다.’
말이 통할 상황이 아님을 깨달은 시로네가 샤이닝 체인을 뽑아 그의 몸을 묶었다.
“크윽! 이게 뭐……! 으아아아!”
동시에 흑발의 몸이 거꾸로 뒤집히고, 더욱 길어진 체인이 길드 내부를 휘저으며 사람들을 포박했다.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이 자식아!”
장검을 든 사내들의 발목을 묶어 바닥에 고정시키고 마지막으로 애꾸의 두 손을 뒤로 칭칭 감았다.
“후우.”
시로네가 숨을 고르는 그때, 카운터 아래로 숨었던 여자가 피리를 꺼내더니 독침을 쏘았다.
“푸욱!”
맹독을 바른 침이 쇄도했으나 슬로 마법을 시전한 시로네의 눈에는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
눈앞에서 검지와 엄지로 침을 붙잡자 샤이닝 체인에 묶여 있던 남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 손으로 잡았어.”
슬로 마법, 그것도 시분할 상태에서 나는 침을 손으로 잡는 것은 그들의 경험상 불가능했다.
‘1퍼센트를 늦추려고 평생을 바친다던데…….’
광자 계열의 천재였던 알페아스 정도는 되어야 시간의 속도가 몽환적으로 느려지는 것이다.
“너…… 도대체 누구야?”
질문을 던지는 애꾸의 눈동자가 짧게 옆을 향하자 카운터의 여자가 다시 독침을 장전했다.
“꺄악!”
샤이닝 체인이 먼저 그녀의 몸을 휘감으면서 거꾸로 매단 상태로 천장까지 끌어 올렸다.
“좋아, 알았어! 내가 애머리 제이스틴이다! 그러니 이제 풀어 줘! 나랑 얘기 하자고!”
사실이라면 검증이 필요했다.
“상처를 보여 줄 수 있나요?”
용병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 녀석, 다 알고 왔어.’
그때 후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이제 막 등목을 끝낸 듯 머리에 물기가 있는 여성이 들어왔다.
“이 자식들아! 집문서라도 날렸냐? 왜 이렇게 소란……!”
세파에 시달린 강건한 인상이었고 스나이퍼용으로 개조한 건을 어깨에 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