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24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여자였다.
“흐음.”
포니가 호감의 신호를 보내자 란기가 의자를 가져와 그녀의 앞에 앉았다.
“알페아스 마법학교에 다닌다고 했지? 그러면…… 시로네라는 사람도 알고 있겠네?”
차갑던 포니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드러났다.
“네가 시로네를 어떻게 알아?”
“후후, 당연히 알지. 상아탑의 별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하긴…….”
마법의 문외한에게 상아탑은 생소한 기관이지만 포니는 그녀와 동질감을 느꼈다.
“어떤 사람이야, 시로네는?”
“어떤 사람이냐고?”
턱을 괴고 학창 시절을 떠올리던 그녀의 눈빛이 깊은 슬픔 속으로 잠겨 들었다.
“사실 아주 친하지는 않았어. 가끔 식당에서 몇 마디 나누는 정도. 오히려 싸웠던 적이 더 많았지.”
“우와, 그 시로네와 싸웠어?”
왠지 기분이 좋았다.
“당시만 해도 경쟁자였으니까. 하지만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된 건 졸업 시험이 끝난 뒤야. 시로네는 평민 출신이거든.”
포니가 덧붙였다.
“물론 마법에 신분 따위는 상관없어. 오직 실력만으로 자신을 관철시키는 세계니까.”
맹렬했던 눈빛이 다시 가라앉았다.
“우리 가문이, 그러니까 왕가가 실수를 했지. 고작 그런 이유로 수석이었던 시로네를 탈락시키고 나를 합격시키려고 압박을 했거든.”
‘하여튼 정치인들이란…….’
어디서 똑같이 찍어 내는 기계라도 있나?
“수치스러웠어. 그래서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지. 사건은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나는…….”
포니가 씁쓸하게 말했다.
“자살을 하기로 마음먹었어.”
란기의 눈이 크게 뜨이고, 옆에서 듣고 있던 미스 바이덴이 황급히 속삭였다.
“얘,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여기 듣는 귀가 몇인데.”
치부가 새어 나가면 결정타가 될 테지만 포니는 흔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천장에 밧줄을 묶어 두고 내 목을 걸었지.”
참가자들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지만 말소리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의자를 팍 밀어 버리고 중력에 내 몸을 맡긴 거야. 그런데 아래로 뚝 하고 떨어지는 순간, 멈추더라고.”
란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상해서 천천히 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시로네가 내 다리를 붙잡고 있었어. 나를 내려놓은 그 녀석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더군.”
포니의 말은 지극히 담담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포니.”
이제는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위로하려고 꺼낸 말이 아니었어. 정말로 내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지. 자신은 수석은커녕 마법사 자격증도 잃게 생겼는데, 그런 얘기를 했던 거야.”
포니는 아직도 믿을 수 없었다.
“시로네가 어떤 사람이냐고? 간단해. 마법사. 그리고 이 시대 최고의 마법사지.”
“지금도 마법을 좋아하는구나.”
“끝까지 하고 싶었어. 하지만 조금 더 나 자신을 믿고 싶어. 그게 순서일 거라고 생각해.”
끝없는 전투와 경쟁, 누구 하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 차가운 경계선의 세계.
하지만 돌이켜 보면, 포니의 인생에서 가장 위로를 받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립다. 학교…….”
포니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어리자 듣고 있던 경쟁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쳇, 저건 못 써먹겠어.’
치부라면 흘릴 테지만, 저런 드라마라면 오히려 포니의 매력을 높일 뿐이었다.
‘드래곤 패는 대마법사.’
란기는 시로네가 호텔에 남겨 두고 갔던 소설책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멋있는 사람이구나, 시로네는.”
포니가 깔깔 웃었다.
“그래, 마법사일 때는…… 솔직히 나도 부정하지는 못하겠어. 하지만 직접 보면 깜짝 놀랄걸. 평소에는 영락없는 시골 소년이니까.”
서로가 이해하는 상황은 다르지만, 란기도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마법사일 때라. 어떤 모습일까?’
란기가 상상에 잠겨 있는 그때 주변 지역을 조사한 경비대가 다시 들어왔다.
경비대장이 제이스틴을 소개했다.
“이번에 긴급 투입한 저격 전문가입니다. 이로써 여러분의 안전은 더욱 강화될 것이니, 안심하고 대회에 참가하시면 됩니다.”
테러 협박을 아는 자는 왕성에서도 소수였다.
“무슨 저격 전문가까지? 솔직히 누가 우리를 멀리서 쏘겠어요? 잡아간다면 모를까.”
제이스틴이 말했다.
“세상에 악당이 남자들만 있는 건 아니죠. 만전을 기하기 위한 조치이니 통제에 따라 주십시오.”
“아, 몰라, 몰라! 먹는 거, 마시는 거, 숨 쉬는 것까지 통제하면서 또 무슨 통제야?”
기밀 유지가 우선이니 설득은 불가능했다.
“이제부터 세계인의 대축제! 세계 미인 대회의 본선을 시작합니다!”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사회자가 퇴장하고 개회식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마야, 긴장감은 독이지만 너무 내려놓는 것도 안 돼. 내 말을 믿어. 할 수 있을 거야.”
마야의 차례가 되었다.
“소개합니다! 토르미아에서 온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 마야입니다!”
심호흡을 하고 관중석이 전부 보이는 곳에 홀로 서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침착하자. 이보다 더 힘든 것도 해냈잖아.’
마법학교 시절을 애써 떠올렸다.
‘그래, 혼자가 아니야.’
악기를 배치하는 연주자들의 모습이 고지 점령 시절에 함께 싸웠던 시로네 팀처럼 느껴졌다.
‘폭탄 드럼, 이루키.’
전공과 악기를 배치시키자 미소가 지어졌다.
‘홍안의 건반 에이미. 네이드는 전기기타가 제격이지. 그리고 베이스는…….’
언제나 팀의 중심을 잡아 주던 시로네.
‘언젠가…… 함께 연주할 수 있을까?’
그녀가 작사한 ‘빛 비’의 전주가 흐르고 천 명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 다행이다. 안 늦었네.”
뒤늦게 도착한 시로네가 자리에 앉는 순간 마야가 천천히 스텝을 밟으며 박자를 맞췄다.
“정말 멋있다, 마야. 꿈을 이뤘구나.”
시로네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좌우로 움직이던 마야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뭐, 뭐야? 왜 저래?”
무대 뒤에서 보고 있던 팔머스는 곧바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다.
“시로네.”
처음에는 환영을 보는가 싶었지만, 일등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분명 시로네였다.
‘정말로 시로네가 왔어.’
음악 소리도, 관객들의 환호성도, 심지어는 심장박동조차 들리지 않았다.
베타피시 (4)
“끝났어. 완전 망했다고.”
전주가 거의 끝나 가고 있음에도 마야가 움직일 기미가 없자 팔머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긴장감에 먹혀 버린 것인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현상은 신인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었다.
마야의 목소리가 나올 무렵이 되자 차마 현실을 바라볼 수 없는 팔머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소나기처럼…….”
새벽이 열리는 것 같은 청량한 목소리.
“응?”
팔머스가 눈을 뜨고, 강렬한 드럼 비트가 폭발하면서 노래가 시작되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모든 악기의 음을 뚫고 나가는 폭발적인 가창력이 관객석을 밀어내듯 뿜어졌다.
‘완벽한 정박에 들어갔다. 리허설 때보다 훨씬 좋잖아?’
어느새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는 마야의 목소리는 여태까지 들은 것 중에서 가장 진실했다.
‘두렵지 않아.’
진심에는 실수가 존재할 수 없기에.
‘수없이 연습했으니까.’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리듬은, 선율은, 노래의 시간은 무의식에 흐르고 있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처럼!”
점차 귀가 열리고 세상이 보이자, 노래 가사처럼 시로네가 웃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빛이 쏟아져 내려와!”
진심이 기술을 어떻게 바꾸는지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관객들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저 가수, 잘 부르는데?”
“그러게. 다른 초청 가수들도 이름 있는 자들인데, 신인인데도 수준이 높아.”
사람들의 칭찬에 시로네는 입이 근질거렸다.
‘저 사람이 내 동창이라고요.’
그녀가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까지는 그저 멀리서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고다! 마야!”
화려한 데뷔 무대였다.
***
대회장으로부터 14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일단의 무리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바람의 힘으로 저공비행하는 자들, 오직 근력으로 달리는 자들, 기계의 힘을 빌린 자들.
방법은 다양했지만 가히 화살이라 불릴 만한 그들의 속도는 거의 동등했다.
“모르타싱어 님, 곧 대회장에 도착합니다.”
천국의 언어였다.
“좋아. 2킬로미터 밖에서 대기한다.”
검은 정육면체의 그림이 그려진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성이 무리의 중심에서 말했다.
“예쁜 것들은 다 죽여 버려야 돼.”
십로회 서열 10위, 모르타싱어(1만 48세)였다.
“대응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세계 미인 대회는 아라크네의 주요 사업입니다.”
“그래 봤자 지국의 나라지. 천국의 신민을 지배하던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라 에너미는 제단을 세우기 위해 십로회와 영생자 커뮤니티를 끌어들였다.
리셋을 통해 손쉽게 인간 세상에 스며들 수 있다는 이유였으나, 라의 최종 선택은 나네였다.
‘하여튼 책임감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다니까.’
베론과 박녀는 죽어 버리고, 슈라는 나네의 제자가 되어 불도를 배우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천국에서 유정이도 데려오지. 그러면 이미 상황 끝났을 텐데.’
십로회 서열 2위.
하지만 당시에는 파계를 허하지 않았기에 분신에게 모든 걸 맡긴 채 늘어지게 자고 있을 터였다.
‘몰라! 이제 나도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다른 간부들도 괴팍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나네가 부처를 내려놓자 소수의 추종자만 데리고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버린 상황이었다.
‘나중에 딴소리하기만 해 봐!’
커뮤니티를 혼자 책임지게 된 모르타싱어는 사적인 감정으로 조직을 움직였다.
‘못생긴 것도 서러운데 미인 대회를 열어? 하여튼 지국의 인간들은 덜떨어져 가지고!’
배가 불룩 튀어나오고 호랑이처럼 수염을 기른 사내가 모르타싱어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 싸움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금강승의 경지에 오른 보리달마라는 자였고, 뒤편에는 외팔이 승려 혜가가 따르고 있었다.
“…….”
전통적인 3신민은 아니지만 어차피 천국은 수많은 천외종이 흘러드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경지만큼은 1만 살이 넘은 모르타싱어를 훨씬 상회했다.
“의미야 찾으면 그만이다. 내 뜻에 따를 생각이 없다면 여기서 나가라.”
이미 동급 수준의 다른 영생자들은 십로회의 간부를 따라 커뮤니티를 떠났다.
“구도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지요. 우리는 당신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십로회 중에 유일하게 경지가 아닌 규정외식에 의지하는 간부가 모르타싱어였다.
“동정할 필요 없어. 나는 충분히 강하니까.”
십로회는 강하다.
‘그래서 안쓰러운 것이지.’
완벽하게 비틀린 인간.
금강승조차 그녀의 규정외식은 파괴할 수 없었다.
***
대회 첫날은 각국 대표들을 소개하는 자리로, 베일에 싸인 여성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여러분! 미스 바이덴입니다!”
대기실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모습과 달리 그녀는 수줍은 소녀처럼 무대에 등장했다.
“우아아아! 최고다! 역시 바이덴이야!”
살며시 고개를 돌리고 홍조를 띠는 모습에 다른 참가자들은 속에서 헛물이 나왔다.
‘완전 가식. 아우, 입이 간질거려 죽겠네.’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터뷰를 마치고 미스 토르미아의 차례가 되었다.
“어? 이건 봐야지.”
테러 위협을 확인하며 대회장을 돌아다니던 시로네가 걸음을 멈추고 까치발을 세웠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번 미스 토리미아는 나라를 대표하는 미인답게 무려 왕족입니다!”
“왕족?”
“소개합니다! 알프레드 포니!”
한껏 치장한 포니가 무대로 걸어 나오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녀를 맞이했다.
“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