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27
“감사합니다, 헤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넉살에 마르샤도 피식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도 이제 어른이네.’
그래도 동생 같은 녀석이었다.
“대신 이쪽에서도 조건이 있어. 딱히 대단한 건 아닌데, 아무래도 너를 통하는 게 빠를 거 같아서.”
“무슨 일인데요?”
마르샤의 표정이 처음으로 심각해졌다.
“너, 페르미 소식 알고 있냐?”
언더코더에서 함께 싸웠던 전적이 있으니 마르샤가 아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뇨. 졸업 시험 끝나고 떠났다고만 들었어요.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 녀석, 이 바닥에서 별칭이 뭔지 알아?”
마르샤가 담배를 세웠다.
“신흥 마약왕.”
시로네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중부 대륙은 이미 먹혔고 남부 대륙까지 퍼지고 있어. 중독성이 약할수록 단가를 올리지. 의외로 이게 먹혀. 일반인들도 손을 대거든. 마족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를 공략한 거야.”
“하지만 어째서 마약이죠? 돈이 필요하다면 감가상각의 거래로도 얼마든지…….”
“바보야, 네가 이 바닥을 몰라서 그렇지, 그런 수준이 아니야. 카샨의 여황과 했던 계약금은 이미 까고도 남아.”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었다.
‘망가진 것인가?’
졸업 시험의 충격으로 마법사의 신념도, 욜가의 의지도 잃어버린 것인가?
“누나는 어떻게 알았어요?”
“앵무가 세력이 커지면서 별의별 인간들이 들어오지. 그중에 소수가 약에 손을 댄 모양이야. 알다시피 우리 용병단은 약은 절대 엄금이라서.”
마르샤가 손짓을 하자 가무잡잡한 피부에 어깨가 벌어진 남자가 다가왔다.
앵무 용병단 3번대 조장, 세이크(쥐, 호랑이)였다.
“반갑다. 세이크라고 한다.”
간단하게 소개한 그가 팔뚝을 걷어 왼팔에 새겨진 쥐를 뜻하는 상형문자를 보여 주었다.
“나는 문文족의 전사다. 선택받은 전사들은 열두 가지의 동물 중에 두 가지를 몸에 새길 수 있지.”
일종의 샤머니즘이었다.
“정확히는 전투용 여섯 가지 중에서 하나, 지원용 여섯 가지 중에서 하나야. 쥐는 터널사이트를 발동할 수 있다. 빛의 방향성을 꺾을 수 있어.”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천장 내부를 볼 수 있다. 투시가 아니야. 저 바닥의 틈새를 따라서 배수로를 타고 올라가 환기 시설을 거쳐서 보는 거지. 어쨌든 이런 식으로 의심 가는 부하들을 유심히 감시했다. 그리고 약을 거래하는 놈들의 코인을 찾아냈어. 이런 모양이다.”
세이크가 코인을 꺼낸 즉시 알아차렸다.
“금화륜…….”
팅 하고 코인을 튕긴 그가 중간에 낚아챘다.
“역시 알고 있군. 이게 어디서 사용했던 문장인지 찾는 데에만 한 달이 걸렸어. 토르미아에 있는 마법학교, 즉 페르미의 모교에서 그가 사용했던 문양이다.”
페르미일 것이다.
‘누군가가 도용한 게 아니야. 그 녀석이 아니면 이 정도 속도로 마약 루트를 확장시킬 수 없어.’
시로네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페르미, 너 정말…….”
아무리 잇속에 밝아도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약을 이용해서 장사를 할 줄은 몰랐다.
마르샤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의 조건은 이거야. 현재 마약 제조 공장도, 페르미의 소재도 파악되지 않고 있어. 페르미를 만나게 되면 나에게 자리를 알선해 줘.”
“만나서 어쩌려고요?”
“회유를 하거나, 원한다면 동업도. 물론 마약 밀매 같은 방식은 아니겠지만…… 페르미는 뛰어나니까.”
언더코더에서 느낀 점이었다.
“알았어요.”
욜가로 인해 헥사가 존재할 수 있었기에, 페르미를 한 번은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정리된 건가? 제이스틴 용병단은 짐 싸. 안 그래도 맡기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시로네가 마르샤를 말렸다.
“그 전에 아라크네에서 남은 일이 있어요. 그것만 끝내고 출발하죠.”
베타피시라는 기존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세계 미인 대회를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남은 일? 무슨 일?”
시로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
시로네가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 주위에는 관객보다 경호원들이 더 많이 보였다.
테러가 일어난 시점에서 흥행은 물 건너간 셈이지만, 대회를 완주해야 내년을 기약할 수 있을 터였다.
‘저 사람은 오늘도 왔네.’
퍼레이드에서 봤던 남자는 오늘도 전단지를 돌리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아라크네를 대표하는 바르호 란기!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란기를 우승자로!”
다만 구호는 바뀌어 있었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야.’
아침 일찍 참가자들은 벙커에서 대회장으로 이동해 있었고 그들 모두의 안전은 이제 시로네의 몫이었다.
‘달래는 건 재능이 없는데.’
문 앞에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노크를 했으나 들어오라는 소리조차 없었다.
“저기, 시로네인데요.”
재차 응답이 없어 문고리를 돌렸더니 저절로 문이 열리며 문틈이 벌어졌다.
“들어가겠습니다.”
얼굴부터 빼꼼 내민 시로네의 눈앞에 수많은 여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프라이즈!”
펑펑 종이 폭죽이 터지면서 종이 가루가 시로네의 머리 위로 나풀나풀 떨어졌다.
“놀랐죠? 우리가 준비한 환영식이에요! 빨리 들어오세요!”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미스 올드힐이 치아를 드러내며 시로네를 잡아끌었다.
참가자 전원이 모여 있었고, 개중에는 속옷만 입은 여성들도 있었다.
“어, 저기…….”
눈을 마주친 포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나 때문이야. 어제 란기 씨랑 대화하다가 네 얘기가 나와서…….”
란기가 미안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네가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내가 솔직하게 말했어.”
“그건 괜찮아.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것은 좀…….”
관계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회 20분 전입니다.”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몇몇 참가자들이 속옷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으아아!”
거대한 공포에 질린 시로네가 황급히 몸을 돌리자 여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시로네는 순진하네. 편하게 있어도 괜찮아. 우리는 이게 직업이고, 남자 디자이너도 많은걸.”
팬티를 보지 않는 것은 마법사만이 아니었다.
“물론 아무나 출입이 가능한 건 아니야. 하지만 시로네는 음흉하지 않으니까…….”
란기가 수줍게 돌아서며 옷을 갈아입을 채비를 했다.
“나는 안 괜찮아! 야! 너 빨리 나가!”
얼굴이 홍시처럼 달아오른 포니가 시로네의 등을 떠미는 그때였다.
‘살기?’
황급히 몸을 돌리자 거짓말처럼 기운이 사라졌다.
“야, 야! 너 그렇게 막 돌면 어떡해!”
‘포니는 느끼지 못했어?’
오직 시로네를 향한 적의였고, 영문을 모르는 여자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호호호! 어때? 막상 보니까 별것 없지? 그래도 좋은 구경 했으니 대회 끝날 때까지 지켜 줘야 해?”
전혀 별것 없지 않았으나 시로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아…….”
시로네의 신음에 포니가 더욱 크게 소리쳤다.
“나가라고!”
어째서 생각하지 못했을까?
‘테러범의 얼굴을 확인한 것은 아니야. 그리고 그녀의 규정외식이 신체의 일부분을 강탈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얼굴과 교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
여자들의 목선을 면밀히 살폈으나 위화감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신적인 변화라도…….’
얼굴의 외형만 교체했다면 뇌는 테러범의 것일 테지만, 참가자들의 성격을 모르니 확인이 불가능했다.
‘살기를 흘린 것은 아마도 실수.’
테러범이 여기에 있다면 시로네가 멀어질수록 당할 위험도가 급증한다.
“걱정하지 마, 포니.”
시로네가 진지하게 말했다.
“눈으로 본다고, 진정 보는 것은 아니니까.”
참가자들이 시로네에게 고개를 돌리고, 포니가 멍한 표정으로 어깨를 떨었다.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시로네의 귀를 붙잡은 그녀가 손수 문을 열며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나가, 이 변태! 빨리 나가……!”
“잠깐만.”
그녀의 손목을 끌어당긴 시로네가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 아침부터 조금 이상해진 참가자 없었어?”
콤플렉스 (2)
포니가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이상해진 사람이라니?”
“어쩌면 테러범이 저곳에 섞여 있을 수도 있어.”
테러범의 규정외식이 어떤 능력을 기반으로 하는지는 포니도 알고 있었다.
“가능할까? 그런 시도를 할 만큼 빈틈이 있지는 않았는데. 보안이 정말 삼엄했거든.”
포니는 결코 약하지 않지만, 테러범의 실력은 그녀의 예상을 훨씬 초월했다.
“대회장에 도착해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어. 뭔가 짚이는 거 없어?”
포니가 문을 돌아보었다.
“짚이는 거라면 너무 많아서 문제지. 어제 그런 일을 겪고 모두 충격을 받았어. 애써 밝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도…….”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얼굴을 교체한 것이라면 말을 할 수 없을 거야. 눈빛도 조금 몽롱할 거고.”
테러범에게 붙잡힌 인질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몸이 바뀌는 순간 공포에 비명을 질렀을 터였다.
“있어, 유독 오늘 아침부터 말이 없던 사람이.”
“누구야?”
포니는 기억을 더듬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은 사람은 오전 9시를 기준으로 현재까지 3명이야. 미스 바이덴, 미스 남에이몬드, 미스 야크마.”
“으음, 3명이라.”
“차라리 키를 비교하면 되잖아? 얼굴이 바뀌었어도 몸은 테러범이니까. 눈으로 어디까지 구별할 수 있어?”
“플러스마이너스 0.3센티미터 정도. 하지만 테러범은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정확한 신장을 파악할 수 없어.”
“결국 직접 찾아야 한다는 거네. 그럼 내가 한 사람씩 불러내는 건 어때?”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 인질로 잡혀 있는 여성이 다칠 수도 있고, 만약 자포자기해서 마구잡이 테러라도 저지르면…….”
“그럼 어떡할 거야?”
“얼굴을 교체하는 것은 정밀한 작업이야. 가까운 곳에 히든피스가 숨겨져 있을 거야. 내가 찾을 동안 참가자들의 동태를 주시해 줘.”
“알았어. 지금 들어갈게. 시간을 끌면 의심받을 테니까.”
시로네가 복도를 달려가자 포니가 표정을 고치고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참가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시로네 씨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돌려보냈어.”
“왜? 정말 같이 있어도 되는데.”
“흥, 나는 사양이야.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동창 앞에서는 절대로 옷 안 갈아입어.”
그렇게 둘러대며 수영복을 꺼내 갈아입자 다른 참가자들도 의심하지 않았다.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대회 시작 5분 전이었다.
‘반경 내의 공간을 특정 숫자로 쪼개는 능력. 반드시 건물 안에 있을 거야.’
시로네의 생각에 반경 100미터 안이었다.
‘퀀텀 슈퍼포지션을 쓰면 좋을 텐데.’
눈으로 보이는 것을 안 볼 수 없듯, 공진으로 진화한 감각을 입도로 떨어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완전히 다른 세계였고, 시로네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의지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
‘타임 바이브레이션!’
1초를 진동시킨 시로네는 시간이 반복되는 구간 동안 주위에 있는 모든 방을 탐색했다.
‘없어! 여기도 없다!’
끝없는 1초였다.
그렇게 건물 전체를 돌아본 끝에 대기실에 도착했을 때, 참가자들은 대회장으로 떠난 상태였다.
‘아니야. 없을 수가 없어.’
둘 중의 하나였다.
‘정말로 없거나, 타깃도 이동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타깃이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라면 스피릿 존에 잡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제길!’
대회장 바깥에서 들리는 함성 소리에 결국 시로네는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