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33
“황제 폐하께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관리가 말했다.
“자네,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통과시킬 수 없어. 목숨이 걸린 일이야.”
“목숨이 걸린 건 관리님이죠. 만약 저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나중에 무슨 화가 닥칠지 몰라요.”
‘제길!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경비대장의 마음과 똑같은 감정을 느낀 관리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럼 황제 폐하와 어떻게 되는 사인가?”
후보생들이 창백한 얼굴로 바라보는 광경을 찬찬히 살핀 아벨라가 활짝 웃었다.
“소꿉친구요.”
“전하! 시녀장이 알현을 청하옵니다.”
대전의 문이 열리고 일흔이 넘은 노파가 죽은 표정으로 그랜드 홀을 가로질렀다.
왕좌에 앉은 발칸이 드르렁 코를 골고, 바닥에는 군사 전술 지도가 깔려 있었다.
하비츠와 다른 4기예들이 그곳에 도란도란 앉아 군사 조형물로 인형 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르릉! 쾅! 대포 펑!”
희극인 제타로가 기겁했다.
“으아아! 내 눈알이 빠졌잖아! 빨리 다시 끼워 줘! 눈알! 눈알을 모아 와!”
전투 인형 나타샤가 병장 말을 움직였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내정왕 스모도가 지도를 구겼다.
“파리스 왕국의 여자는 다 내 거야! 가만, 10~20대의 가임기 여성만 추려도 대략 447만 명이니까…….”
시녀장이 헛기침을 했다.
“흠흠, 황제 폐하.”
하비츠가 범선을 던지며 고개를 돌렸다.
“왜? 지금 바빠. 국정 회의 중이다.”
“혹시 오래전에 사귀신 친구 중에 유스 아벨라라는 이름이 있는지요.”
“누구라고? 흐음.”
만약 거짓을 고했다면 목이 떨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시녀장은 그저 합죽이처럼 입을 닫고 있었다.
‘죽으면 죽는 것이다.’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구스타프 제국의 시녀장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요건이었다.
“모르겠는데.”
시녀장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하오면…….”
발칸이 돌아누우며 잠꼬대처럼 말했다.
“그 왜, 있잖아요. 예전에 만났다는 여자애. 무슨 꽃 가게를 차린다니 어쩐다니…….”
하비츠가 눈을 크게 뜨며 일어섰다.
“유스 아벨라!”
4기예가 동시에 그를 돌아보았다.
“맞아! 아벨라였어! 그런데 왜? 갑자기 네가 그녀를 왜 찾는 거야?”
이름은 가물거리지만 당시에 소녀와 했던 약속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제가 찾는 것이 아니옵고, 이번에 시녀로 들어온 아이인데 전하를 알현하기를 원하옵니다.”
“아벨라가 나를 찾아왔다고?”
하비츠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꽃밭을 완성했구나!”
율법 살인 (3)
하비츠의 반응만으로도 아벨라라는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녀장은 다른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그녀를 그랜드 홀로 불러들였다.
한때는 하비츠가 늘 입에 달고 살았던 꽃밭 이야기였기에 구스타프 4기예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비츠 아저씨.”
아벨라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아벨라!”
마치 14년 전의 그날로 돌아간 것처럼 하비츠는 아벨라의 손을 붙잡았다.
“왔구나. 내가 얼마나 애가 탔는지 알아? 과연 꽃밭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게는…….”
“미안해, 아저씨.”
아벨라가 하비츠의 말을 끊자 그랜드 홀에 있던 모든 시녀들이 어깨를 움찔했다.
‘미쳤어. 전하의 말을 끊다니.’
그랜드 홀에서 황제를 직접 보필하는 시녀들 사이에서는 ‘하비츠 매뉴얼’이라는 게 떠돈다.
‘죽을 거야.’
혼돈에 대응하는 기준이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는 확률의 장난이 만들어 낸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지만…….
‘수칙 283항, 하비츠가 흥분해서 말할 때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말 것.’
시녀들에게는 이런 징크스만이 생명 줄이었다.
“응? 뭐가 미안해?”
그렇기에 오히려 되묻는 하비츠의 모습에 그녀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징크스가 깨졌어?’
아벨라가 씁쓸하게 웃었다.
“꽃 가게는 열었지만 아저씨가 사 준 꽃은 없어. 내가 잘못 키워서 죽어 버렸거든.”
“그래서 오지 못했던 거구나.”
“아니. 만나고 싶지 않았어. 그때 나는 너무 어렸는걸. 그냥 그런 인연인가 보다 하고 살았어.”
“그래…….”
하비츠는 조금 서운한 듯했다.
“그래도 꽃 가게를 열었잖아. 꽃은 얼마든지 사 줄 수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라.”
시녀장의 눈에 충격이 휘몰아쳤다.
‘전하께서 타인을 배려하는 말을 하다니.’
평생 황성에 몸을 담은 그녀조차도 이런 상황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하비츠라는 인물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말을 끊는 건 애초부터 상관없었다.
‘수많은 시녀를 죽였지만, 사실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유였던 것은 아닐까?’
시녀장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으니 다른 시녀들의 혼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째서 화를 내지 않지? 왜 죽이지 않는 거야?’
눈을 마주치지 마라, 부정어를 사용하지 마라 등, 수많은 징크스들이 깨지고 있었다.
‘한심하기는.’
시녀들의 군기를 읽은 발칸이 한쪽 눈을 찡그렸다.
‘죽을 짓을 해 놓고 왜 죽는지도 모르니 공포가 생기는 것이지. 전하도 사람이다. 친구들과 노는 게 즐겁고, 사랑이 뭔지도 알아.’
하비츠도 사람이다.
‘그냥 재밌게 놀고 싶은 사람이거늘. 하긴, 그저 남을 이용할 생각밖에 안 하니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이지.’
혼돈은 머리로 사귀는 게 아니다.
‘교감. 계산하지 않고, 감정 그대로를 솔직하게 드러내면 돼. 그게 전하가 사람을 대하는 전부다.’
물론 어른은 불가능하겠지만.
‘아벨라는 가능한 것이지.’
하비츠라는 혼돈과 감정의 가장 깊은 곳에서 교감을 했던 친구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왔으니 됐어. 약속을 지킨 거야.”
잡다한 사유는 내다 버린 하비츠가 지도가 깔린 곳에 앉아 바닥을 두드렸다.
“이리 와. 이제부터 세계를 정복할 건데, 너도 우리랑 같이 놀자. 내 친구들도 재밌어.”
제국의 황제가 허물없이 대하는 것은 감동이었으나 아벨라의 눈은 슬픔에 잠겼다.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많이 늙었지? 너는 키도 커지고 예뻐졌다. 세계 정복이 싫으면 다른 거 하고 놀까?”
아벨라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야.”
모두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발칸 또한 이번만큼은 아벨라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했다.
‘교감과 적의는 분명 다르다. 과연 전하께서 이번에도 화를 내지 않으실 것인가.’
하비츠는 눈을 깜박거렸다.
“사람들이 그래, 아저씨는 나쁘다고.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나에게는 지금 이런 모습도…….”
아벨라가 울먹이며 말했다.
“예전의 콧수염 아저씨 같아서 너무 좋은걸.”
“하하하! 그래, 네가 좋으면 됐잖아?”
하비츠의 웃음소리에 안도의 감정이 깃들자 발칸의 눈썹이 꿈틀했다.
‘호오? 이건…….’
아벨라는 허탈했다.
‘차라리 당신이 무서웠으면, 남들처럼 마음껏 미워하고 증오할 수 있었으면…….’
세상을 지옥에 빠트리려는 극악.
‘하지만 나에게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따듯한 아저씨였다.
‘내가 죽는 것도 아니잖아?’
하비츠의 품에서 아벨라는 평생 행복할 수 있겠지만 인류를 위해 그를 죽여야 했다.
‘그것이 알파피시.’
정신을 다잡은 그녀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예전처럼 아저씨랑 소꿉놀이를 할 수는 없어. 이제 나는 어른인걸.”
“그래? 그럼 뭐 할까?”
“어른의 놀이.”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는 하비츠를 향해 아벨라가 걸음을 옮겼다.
“아저씨, 나랑 결혼할래요?”
4기예의 시선이 하비츠에게 옮겨지고, 시녀들의 목에서 일제히 꺽 소리가 새어 나왔다.
‘미쳤어. 저 사이코랑 결혼을 한다고?’
하비츠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발칸은 하비츠의 혼돈에 14년 만에 싹튼 감정을 예견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친구로 만났지만…….’
아벨라와의 교감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마녀의 운명. 그 저주에서 해방시켜 준 사람과 맺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율법인가.’
진리의 어떤 궁극에 도달한 자는 강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하비츠도 강하다 할 것이다.
‘그래서 많이 외로우셨지.’
심심했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어쨌거나 하비츠와 교감을 나눌 상대는 세계를 통틀어 손에 꼽힐 터였다.
‘한편으로는 천생연분이야.’
아벨라가 볼을 부풀렸다.
“뭐예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쉽게 승낙하다니. 결혼이 뭔지는 아는 거예요?”
“당연히 알지. 나도 너 좋아하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하비츠가 아벨라의 어깨를 붙잡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너랑 결혼하고 싶어.”
그렇게 어릴 적 바닷가에서 만났던 소꿉친구는 14년 만에 부부가 되기로 약속한 것이다.
여름을 장악했던 폭염이 점차 거두어지고, 단풍이 물든 가을이 찾아왔다.
전쟁은 여전히 치열했지만 구스타프 제국 내에서는 황제의 결혼 준비로 한창이었다.
“황제 폐하 만세! 만만세!”
거리마다 아벨라가 좋아하는 꽃밭이 깔렸고 전국적인 축하 행렬 이벤트가 치러졌다.
결혼식을 20일 앞둔 무렵, 황성 마르사크가 꽃단장을 하는 가운데 크라우치가 움직였다.
천장의 복잡한 길을 집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그의 손에는 이 쥐여 있었다.
‘대상 변경.’
미네르바가 말했다.
“알파피시가 중요한 이유는 하비츠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을 소지한 채로 들어갈 수는 없어.”
다른 물건이라면 몸속에 숨겨도 되겠지만, 칼을 수개월 동안 소지하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운반조가 필요한 것이지.”
엘 크라우치.
“알파피시를 보내기 전에 전문가가 먼저 황성 내부에 자리를 잡고 있을 거야. 그리고 하비츠와 아벨라의 초야에, 을 넘기는 것이지.”
시로네가 물었다.
“운반조는 하비츠에게 접근할 수 없어요. 접선이 불가능할 텐데 어떻게 넘기죠?”
“대상 변경을 이용한다.”
미네르바가 을 꺼냈다.
“단도는 소지자의 살의를 빨아들여 율법을 뒤틀어. 그런데 만약, 중간에 대상이 변경된다면 어떻게 될까?”
시로네도 의문이었다.
“예를 들어 시로네 너를 죽이기 위해 을 발동한 상태에서 우오린을 찌른다면?”
“어떻게 되죠?”
“단도에 담긴 살의는 변하지 않아. 다만 소지자의 살의는 초기화된다. 물론 이것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어. 하지만 단도를 파괴했을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지지.”
“소멸은 불가능하다고 했죠.”
“그래. 설령 파괴한다고 해도, 은 완벽한 임의의 장소에 다시 나타나.”
이루키가 말했다.
“하지만 초기화를 시키면, 이 나타나는 장소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거로군.”
“바로 그거야. 초기화 상태에서 파괴된 은 단도에 담긴 살의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에게 나타난다. 따라서 율법을 통해 알파피시에게 을 전달할 수 있는 거지.”
이것이 ‘대상 변경’이다.
‘실행 시간은 20일 후인 결혼식 초야. 그때까지는 을 초기화시켜야 된다.’
현재 의 살의는 하비츠를 향하고 있지만 별다른 율법의 변화는 없다.
‘그만큼 어려운 적이라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