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34
어떤 방법으로도 죽일 수 없다는 뜻이겠지만, 크라우치에게는 마치 이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죽일 대상은 카테니아.’
이미 오르페라는 시녀를 죽이고 그녀의 삶을 살고 있는 크라우치는 또 한 번의 변신을 꾀했다.
‘카테니아가 되는 것이 베스트. 그렇게 된다면 하비츠에게 더욱 접근할 수 있다.’
아벨라가 하비츠와 약혼하면서 카테니아는 그녀의 시녀가 되어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여기다.’
아벨라의 방에 도착한 크라우치는 천장의 환풍구를 통해 복도에 착지했다.
벽에 걸린 횃불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알파피시는 모르고 있을 텐데. 하긴, 알리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군.’
율법은 너무나 민감하고 미세해서, 조금만 바뀌어도 돌이킬 수 없을 터였다.
“도둑고양이가 여기까지 숨어들었네?”
크라우치는 심장이 없지만, 초인적인 속도로 어깨를 들썩이는 척했다.
‘제길, 어느새.’
뒤를 돌아보자 구스타프 4기예의 일인, 전투 인형 나타샤가 고개를 갸웃한 채 서 있었다.
“어머, 나타샤 님. 안녕하세요.”
어쨌거나 크라우치는 오르페라는 시녀였기에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오르페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우와, 끝내준다! 어설픈 기운이 하나도 안 느껴져! 진짜 엄청난 연기네.”
다름 아닌 카샨의 황제, 테라제의 그림자였으나 그런 생각조차 머리에 담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지?’
크라우치의 생각을 읽은 듯 나타샤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발칸의 군기에 걸렸어. 매달 한 번씩 암살자를 고용해서 전하를 죽이라고 하거든.”
단수를 잡지 못하는 군중기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매달 한 번씩 암살 위험을 무릅쓴다는 것이었다.
‘암살자가 더해지면 내 살기도 군중기가 된다.’
이 또한 예상하고 있었기에 크라우치는 당황하지 않고 본색을 드러냈다.
“그래서 날 죽이러 온 건가?”
외모, 태도, 목소리까지 그대로였지만 나타샤는 전혀 다른 사람을 본 기분이었다.
“진짜 신기하네. 나 방금 소름 돋았어. 어쨌거나 그건 맞아. 하지만 누가 보낸 자객인지 알아 오라고 그랬어. 암살 대상이 전하인지, 아벨라인지도 파악하고.”
‘솔직한 성격이라 편하군.’
필요 없는 말까지 구구절절 늘어놓지만, 한편으로는 무시당하는 기분도 들었다.
“말해 주지.”
크라우치가 시녀복 안에서 을 꺼냈다.
“목을 자른 뒤에 말이야.”
“깔깔깔! 그것도 좋아.”
예상대로 나타샤는 긴장하지 않았으나 상황을 이용하는 어쌔신에게는 호기였다.
‘재미있군. 나타샤라…….’
어차피 대상 변경은 아무나 해도 그만, 나타샤로 분할 수 있다면 암살 성공률은 급증한다.
‘그게 된다면 인형 하나 정도는 깨져도 아깝지 않다.’
누구나 목숨은 하나이기에 생명이 2개인 크라우치는 상대의 사각을 완벽하게 찌를 수 있다.
“그럼 시작할까?”
나타샤가 안짱다리를 구부리면서 중심을 낮추자 두 팔이 천천히 어깨 위로 올라갔다.
“사신의 무도.”
율법 살인 (4)
나타샤의 기질이 변했다.
‘화신술인가?’
그녀의 머리 위로 검은색 후드를 쓴 해골의 상반신이 환영처럼 아른거렸다.
마치 건반을 치듯 열 손가락을 내밀고 있었고, 관절 마디에 걸린 수십 가닥의 강선이 나타샤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군.’
어떤 능력인지는 모르지만.
“너 또한 인형인가?”
나타샤가 광기의 미소를 지었다.
“놔! 풀어줘!”
구스타프의 천재 무용수였던 나타샤는 어느 날 괴한들에게 납치당했다.
“이 개자식들아! 누가 시켰어? 다프네지?”
무용계의 2인자 다프네, 하지만 라이벌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의 격차는 컸다.
“닥쳐! 알아 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나타샤의 스키마는 예술에 있어 완전무결했고, 정신은 정상 범주를 벗어난 괴팍함의 극치였다.
“빨리 묶어! 경호원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괴한들은 긴 책상에 나타샤를 엎드려 눕히고 쇠사슬로 사지를 구속했다.
“뭘 어쩌려고? 엉덩이라도 까게?”
괴한 중 1명이 쇠몽둥이를 꺼내 들었다.
“한다, 지금 한다?”
동료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괴성을 내지르며 온 힘을 다해 나타샤의 척추를 내리쳤다.
당시만 해도 있었던 나타샤의 눈꺼풀이 질근 감기고, 우직 소리가 뼈를 타고 전해졌다.
“독한 년. 비명도 안 질러.”
하체의 감각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타샤가 땀에 젖은 얼굴을 들었다.
“아파 죽겠는데 어떻게 비명을 질러!”
“닥치라고 했지!”
또다시 쇠몽둥이가 허리를 후려치자 나타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흐으으으!”
괴한의 얼굴도 땀으로 범벅이었다.
“젠장! 왜 이렇게 안 부러져?”
나타샤가 부러질 듯 고개를 틀며 소리쳤다.
“머저리 같은 자식아! 할 거면 제대로 한 방에 끝내! 뭐 하는 거야!”
“으아아아! 죽어라!”
괴한이 연거푸 허리를 내리쳤으나 이미 기세가 꺾여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으아아! 짜증 나!”
고통에 눈물을 질질 흘리는 나타샤가 손목에 감긴 쇠사슬을 끌어당겼다.
“여자 엉덩이 앞에 두고 몽둥이도 제대로 못 휘둘러! 혹시 너 고자냐?”
그녀의 조롱에 다시 정신을 차린 괴한이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수직으로 팔을 휘둘렀다.
“크윽!”
마침내 뻑 하고 척추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타샤는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척추를 끊은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지도, 복수하지도 않았다.
‘에이, 몰라. 대충 살면 되지 뭐.’
증오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다시 춤출 수 있었다.
크라우치가 다소곳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생명의 주체를 포기한 대가로 내가 얻은 것은 여러 개의 목숨.’
그리고 나타샤는…….
“같이 춤추자.”
사신의 인형이 되어, 신체의 모든 스테이터스를 초월의 영역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온다!’
살기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크라우치가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벌렸다.
“재밌는 리듬이네?”
장단을 뒤섞은 보폭에 엄청난 속도가 더해지자 마치 연결 동작을 끊어서 보는 듯했다.
“얼마나 오래 춤출 수 있을까?”
나타샤와 1초 이상 춤을 춘 사람은 손에 꼽았다.
‘빠른…….’
사신의 하얀 손가락이 율동을 이루자 나타샤의 모습이 잔상으로 흩어졌다.
‘……정도가 아니다!’
빡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크라우치의 귓가에 맴돌더니 시야가 핑그르르 돌았다.
‘제길!’
여분의 목숨을 이용해 반격할 틈도 없이 목이 떨어져 나가 천장 근처에서 회전했다.
“뭐야, 싱겁잖아?”
크라우치의 얼굴이 데굴데굴 벽에 부딪혔다.
‘이것이 구스타프 4기예…….’
특정 기술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하비츠의 4신장다운 실력이었다.
‘가히 움직임의 정점이다.’
쨍그랑!
선반에 장식되어 있는 2개의 도자기 인형 중 하나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흐음.”
야심한 밤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우오린의 입에서 비통한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우와, 이렇게 생겼구나.”
쓰러진 크라우치의 배를 가른 나타샤는 내부에 있는 복잡한 기계장치를 구경했다.
피 대신에 검은 기름이 흘러내렸다.
“맛없어.”
손으로 찍어 맛을 본 나타샤가 인상을 찡그리는데 순찰을 하던 시녀가 화들짝 놀랐다.
“꺅! 뭐, 뭐야?”
“응, 잘 왔다. 이거 치워. 쓰레기장에 버려.”
시녀가 고개를 들었다.
“네? 쓰레기장요?”
“고장 났거든. 고쳐 보려고 해도 안 되네.”
시녀에게 맡겨두고 자리를 떠나려던 나타샤가 퍼뜩 깨달은 듯 걸음을 멈췄다.
“맞다, 누가 보냈는지 알아 오라고 그랬는데.”
그녀의 어깨가 위로 으쓱했다.
“아무려면 어때?”
“끙, 뭐가 이렇게 무거워?”
장정들이 낑낑대며 포대 자루를 옮겼다.
“별 끔찍한 인형이 다 있군. 아까 잠깐 봤는데 진짜 살아 있는 것 같더라니까. 대체 뭐지?”
“신경 꺼, 오래 버티고 싶으면. 황성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갖다가는 미쳐 버리고 말 거야.”
그네처럼 포대를 흔들던 장정들이 신호에 맞추어 담벼락 위로 인형을 던졌다.
“후우, 가자고.”
장정들이 손을 털고 멀어지는 와중에도 포대 안에서는 움직임이 없었다.
비로소 꿈틀대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하비츠와 아벨라의 결혼식 날이었다.
“제길.”
포대가 쭉 하고 찢어지면서 얼굴의 머리채를 붙잡은 크라우치가 몸을 일으켰다.
‘강하다. 풍장도 쉽지 않겠어.’
히트맨처럼 무력에 의지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업계 최고라는 자부심은 산산조각 부서졌다.
‘그건 모방할 수 없겠지.’
나타샤의 무력을 깨달은 것만으로 목숨 하나를 잃어버린 가치는 충분했다.
‘중요한 건 의 초기화.’
이미 발칸이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기에 카테니아를 이용하는 방법은 불가능했다.
“죽어야겠군.”
삶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크라우치가 담벼락을 높이 뛰어넘었다.
***
구스타프 제국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이 마르사크의 정원에서 치러졌다.
하객만 1만 명이었고 금은보화와 명물들이 황성의 창고를 가득 채웠다.
구스타프는 황금으로 사례했다.
“어이, 나타샤.”
피로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발칸이 직접 행차하여 나타샤를 찾았다.
“암살자 말이야. 확실히 끝낸 거 맞아?”
“응. 목을 날려 버렸어. 배도 열어서 확인했고. 살아 있을 수는 없을걸. 그런데 왜?”
“아니, 그냥. 중요한 날이니까.”
발칸이 턱을 괴었다.
‘나타샤에게 맡겼으니 실수란 있을 수 없다. 죽인 것은 분명해. 하지만 문제는 인형이라는 거야.’
동방에는 인형에 혼을 불어 넣는 비술이 있다고 들었다.
‘진천 쪽인가? 상대도 제법이었다고 들었지만, 어째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지?’
군중기도 별다른 기미가 없었다.
“왜 그렇게 심각해? 계속 암살자를 고용하고 있잖아. 군기에서 안 잡히면 정말로 없는 거지.”
“그렇지 않아. 군기가 읽는 것은 살의, 인간의 존재 여부까지 장담할 수는 없어.”
제타로가 끼어들었다.
“살의가 없는 암살자가 황성에 머물고 있을 경우, 군기는 잡을 수 없다는 거군.”
스모도가 말했다.
“어쨌든 같은 말이야. 살의가 없는 암살자는 암살자가 아니니까. 확실한 건 누구도 전하를 죽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잖아?”
발칸은 고집을 부렸다.
“그게 이상해. 전하를 죽일 생각을 하지 않는데 왜 황성에 머물고 있을까?”
나타샤가 검지를 들었다.
“암살자가 황성에 머물고 있다는 것도 가정일 뿐이지. 너무 깊게 파고드는 것 같아.”
이번에는 발칸도 반박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