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36
이미 죽은 자에게 소리쳐 봤자 달라질 것은 없기에 스모도가 몸을 돌려 지하 감옥을 나섰다.
“발칸에게 알려야 해!”
나타샤가 제비처럼 그를 낚아채며 질주했다.
***
“준비는 끝난 거야?”
개구쟁이처럼 신이 나 있는 하비츠의 목소리에 아벨라는 마음이 아팠다.
댕. 댕. 댕.
그때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시작이다.’
마치 약한 최면에 걸려 있었던 것처럼, 종소리를 듣는 순간 살심이 끓어올랐다.
“네. 모든 준비가 끝났어요.”
하비츠의 사지를 구속시킨 아벨라가 다리 사이에 그의 허리를 끼운 채로 상체를 세웠다.
“흐흐흐, 황제를 올라탄 여인이군. 그래서…… 이제 뭘 할 거지?”
“기다리면 알아요.”
아벨라의 목소리는 차가웠으나 하비츠는 그조차 유희로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 울렸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크라우치가 사라졌다는 것.
‘은…….’
나타샤를 찌르는 것으로 대상 변경이 되어 사용자의 살의가 초기화되었을 것이고.
‘깨졌겠지.’
크라우치가 목숨을 걸고 파괴시킨 은 타깃을 증오하는 가장 가까운 사용자를 찾아…….
“아저씨.”
아벨라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미안해요.”
을 역수로 잡고 있는 아벨라가 차가운 시선으로 하비츠를 내려다보았다.
“…….”
당장이라도 자신을 찌를 듯이 수직으로 세워진 단도를 올려다보며 하비츠가 눈을 깜박거렸다.
“내가 생각한 놀이가 아니구나.”
아벨라의 두 눈에 명확한 살의가 심겨 있었다.
“아저씨가 나에게 많은 것을 해 준 것 알아. 마녀의 운명을 벗게 해 주었고, 예쁜 가게도 차릴 수 있었고…….”
단도의 끝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아저씨는 여태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 그리고 앞으로도…….”
“쉬.”
어깨를 움찔한 아벨라가 내려다보자 하비츠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했으면, 그렇게 하면 되는 거잖아.”
아벨라는 거대한 공포를 느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외줄을 타는 게 어른이라면, 그 외줄이 끊어지고 무한한 자유를 향해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당신을 죽일 거야!”
“알아. 그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이잖아.”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야!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니까, 그래서 죽어야 하니까…….’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모르겠어.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비츠란 인간은 누구인지, 과연 나 따위가 이 사람을 죽일 자격이 있는 것인지…….
‘그 자격은 누가 주는 건데!’
만약 하비츠를 죽이면 세상은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완벽한 혼돈.
태어나서 처음으로 율법에서 이탈해 버린 아벨라는 광활한 자유로움에 전율했다.
“전하!”
쾅 하고 문이 열리며 구스타프 4기예 전원이 방으로 쳐들어왔다.
“뭐……!”
상상은 했지만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모두가 넋을 잃었다.
“발칸.”
하비츠가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오늘은 나와 아벨라의 날이야.”
“무슨 소리요? 당신, 이제 곧 죽을 것 같은데.”
“나가라.”
하비츠는 다시 단도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죽으면 아벨라가 황제야.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줘. 전 세계를 꽃밭으로 만들어도 좋겠지.”
제타로가 어깨를 들썩였다.
“푸히히히! 그거 엄청 웃기네! 꽃밭이라니.”
발칸 또한 절친한 친구가 아내와 단둘이 초야를 보내고 싶다는데 말릴 도리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허무할 정도로 짧은 대답을 남겨 두고 몸을 돌리자 남은 세 사람이 뒤를 따랐다.
“…….”
방문이 닫혔다.
‘뭐야? 가 버린 거야? 진짜로?’
“아벨라.”
흠칫 놀란 아벨라가 시선을 돌렸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편하게 해. 예전부터 내가 해 주고 싶었던 일이야.”
“흐윽…….”
아벨라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 왜 나에게 잘해 줘? 수많은 사람을 죽였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냐고!”
“친구니까.”
이유는 단순했다.
“가끔 친구들이랑 너무 재밌게 놀다 보면, 죽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거야.”
아벨라의 머릿속에서 여태까지 그녀를 이루고 있던 무언가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흑! 흑!”
떨어지는 눈물을 붙잡지 않은 채 그녀가 상체를 활처럼 펼치며 단도를 들었다.
“으아아아아!”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를 내며 온 힘을 다해 몸을 웅크리자 법살이 푹 하고 박혔다.
하비츠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았다.
그의 귓가를 스치면서 침대에 박힌 단도가 갑자기 거친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크윽!”
아벨라가 손을 떼는 즉시 이 파괴되었다.
‘어, 어째서?’
***
카샨, 아가노스.
“우오린.”
미네르바가 간도를 대동하고 방문을 거칠게 열자 도자기 인형의 파편을 담고 있는 우오린이 보였다.
“……돌아오지 못했구나.”
간도도 이번만은 그녀를 대신해 청소하지 않았다.
“하나 남으면, 은퇴시킬 생각이었는데.”
“그에게 은퇴는 죽음이었을 거야. 가장 멋진 은퇴식이었다고 생각하자.”
우오린은 파편을 고이 모았다.
“마르사크 쪽은 어때?”
미네르바가 엄지를 세웠다.
“대상 박탈에 성공했어. 알파피시가 제대로 임무를 완수한 모양이야.”
“……그래.”
자리에서 일어난 우오린의 얼굴에는 어느덧 비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간도, 팀과 엑스마키나 팀을 소집해 줘. 이제부터 진짜 승부야.”
“알겠습니다.”
하비츠 암살 계획의 시작이었다.
그해 겨울 (1)
시로네와 미네르바는 세계 각지를 떠돌며 의 흔적을 찾아 헤맸다.
“대상 박탈.”
제트에 앉은 미네르바가 말했다.
“사용자의 살의가 초기화되는 것을 대상 변경이라 하지. 그리고 단도를 파괴했을 때.”
시로네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은 목표를 제거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인물 앞에 다시 나타나죠.”
“그런데 신규 사용자가 변심에 의해 대상을 죽이지 않을 경우, 은 스스로 파괴되어 사용자를 박탈한다.”
이후의 일은 시로네도 알지 못했다.
“의 살의는 율법을 뒤틀 정도로 강력해. 그래서 죽일 수 없는 순간 깨져 버리는 거지. 인간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울화통이 터진 거야.”
“증오군요.”
“그래. 대상 박탈이 일어날 경우 의 증오는 극대화된다. 하비츠가 율법에서 벗어나 있다고 해도, 대상 박탈 상태의 이라면 만만치 않은 승부가 될 거야.”
시로네는 정면을 돌아보았다.
“어디에 있을까요?”
“대상 박탈은 기능의 최대치. 하지만 단점은 사람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야.”
“그럼 찾을 방도가 없잖아요.”
“어렵지만, 사막에서 바늘 찾기는 아니야. 만약 이 지금 탄생했다면…….”
미네르바의 눈이 슬픔에 잠겼다.
“그 일대는 이미 초토화가 되었을 테니까.”
***
시로네 팀이 을 회수하는 동안 엑스마키나 팀은 최종 점검에 들어갔다.
벽에는 알고리즘이 그려진 수천 장에 달하는 종이가 붙어 있었고 테이블에는 서류가 산더미였다.
“알파피시, 즉 파일럿 피시는 가장 먼저 수족관에 들어가 베타피시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죠.”
이루키가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아벨라가 변심했다는 것은 하비츠 또한 그녀를 받아들였다는 뜻이에요.”
칠판에 기록을 하고 있던 구디오가 말했다.
“마녀의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라면 하비츠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란 전략이 주효했어.”
이루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비츠가 얼마나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이것으로 어느 정도는 율법에 구속될 거예요.”
그 환경을 만들기 위한 알파피시였다.
“그 대가로 크라우치를 잃었지만…….”
잠시 애도를 표한 이루키가 마지막 서류를 금고에 넣고 일어섰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을 회수하기 전까지 하비츠를 저격할 최고의 율법을 만드는 것.”
아가야가 문을 열었다.
“대상 박탈 상태의 은 율법을 뒤틀지 않는다고 하더군. 대신 율법 그 자체가 되지.”
구디오, 마이스, 네스가 뒤를 따랐다.
“구스타프 4기예 외에도 하비츠를 지키는 수많은 방탄 부대와 시설이 있어. 마르사크에 거주하는 한, 저격은 어떻게도 불가능해.”
알파피시가 아니고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철옹성.
“그 철옹성에 빈틈을 만드는 게 우리의 역할이죠.”
마지막으로 방을 나선 이루키는 지하에 있는 엑스마키나 장치에 도착했다.
‘반드시 찾아내 주겠어, 그 빈틈.’
증기를 뿜어내며 문이 열리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5명의 서번트가 들어갔다.
***
동방, 문 왕국.
칠왕성 중의 하나인 문은 진천 제국을 제외한 동방 7왕국의 리더로 주술의 첨단을 달리는 나라였다.
“으으으. 죽음, 죽음이 눈에 보입니다.”
치악산 초입, 왕실 주술사가 종을 붙잡은 손을 벌벌 떨었다.
“오를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심연보다 깊은 어둠뿐.”
치악산.
산세가 험하여 예로부터 사람이 살지 않고, 그 자리를 흉흉한 마수들이 지키고 있는 천혜의 산이었다.
“알았으니까 빨리 좀 가요. 뒤에서 기다리잖아.”
미네르바가 뒤편에 길게 이어진 문국의 병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로 가실 겁니까? 제가 왕실 주술사이기는 하나 이 기운은 막아 낼 수 없습니다.”
시로네는 눈으로 뒤덮인 산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미네르바 씨의…….’
처음 미네르바를 만났을 때의, 정신을 잃을 것 같던 살기가 산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게 이런 일이 있었으면 빨리빨리 보고를 했어야 될 거 아냐? 하여튼 왕들이란.”
문 왕국에 재앙이 찾아온 것은 두 달 전, 하지만 왕국은 외교적인 이유로 불문에 부쳤다.
민가의 소문에 의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에서 마수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의 작품일 거야.”
미네르바가 시로네의 옆에 섰다.
“살의의 대상을 죽이지 못한 원한은 끝없이 증폭되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지.”
굳이 이 움직일 필요도 없이, 어지간한 생물은 살의만으로 죽어 버릴 터였다.
“일단 올라가죠. 확인해 봐야겠어요.”
산짐승이 만든 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서, 시로네는 수많은 짐승들의 사체에 눈이 쌓인 것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