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38
오직 검에 대한 일념으로 조국을 버린 그는 4년 전 구스타프 제국에 정착했다.
‘검의 본질은 오직 베는 것.’
별칭은 버서커.
구스타프가 공인하는 제1급의 검사이자 60만 군대의 사령관으로서, 자신의 검을 증명하고 있었다.
발칸은 가이를 이해했다.
‘설령 가족이라도 광전사의 검에 자비는 없을 것이다.’
바슈켄을 함락시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코트리아 공화국이 최후의 수성전을 치르는 동안 카샨은 엑스마키나를 은밀히 이동시켰다.
위치는 바슈켄에서 84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고, 다음 날 이루키와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도착했다.
“은 제대로 전달된 거겠지?”
이루키가 답했다.
“시로네라면 실수하지 않을 거예요. 하이강 언덕에서 저격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하이강은 낮은 구릉지로, 바슈켄에서 142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역이었다.
“엑스마키나의 반경 내의 최적지예요. 시로네와 미네르바 씨가 세밀한 작업을 돕기로 했어요.”
네스가 말했다.
“이 80킬로미터 지점을 통과한 순간부터 진짜 승부야.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야.”
“코트리아 공화국을 함락시키기 위해 하비츠가 출진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방어막은 단단해요.”
정상적으로는 이 수많은 난관을 뚫고 하비츠의 심장에 박힐 수 없을 터였다.
“저격 시간은 7일 3시간 31분 28.463초. 이 좌표가 우리가 찾아낸 유일한 빈틈이에요.”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시간이 있어. 우리가 놓친 부분이 없는지 마지막까지 점검해 보자고.”
***
“더, 더 화력을 퍼부어라! 거의 끝났어! 코트리아 놈들의 겁에 질린 모습이 보이는가!”
겨울의 추위가 정점에 다다를 무렵, 구스타프 제국의 제1 보병 부대는 성을 함락하기 직전이었다.
코트리아 공화국은 자국의 대검호를 보내 일기토를 유도했으나 오젠트 가이에게 12합 만에 목이 잘리고 말았다.
“괴, 괴물이다!”
몸보다 무거운 철갑을 두르고 장검을 휘두르는 가이의 모습은 흡사 악귀였다.
1천의 군대 중에 무려 2할이 그의 손에 죽어 나갔고 결국 코트리아는 성문을 단단하게 잠갔다.
“쳇! 어째서 시간을 끌지?”
여기까지 전세가 기울어졌으면 이미 백기를 펄럭거려야 정상이었다.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것인가?’
발칸에게서 엑스마키나가 가동되었다는 보고도 없었기에 더욱 의아했다.
“상관없지.”
시체의 바다 위에서 가이가 검을 갈무리하고 주둔지를 향해 몸을 돌렸다.
“뭐든 뚫어 버리면 그만이다.”
비록 검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지만 검사의 기질만큼은 여전히 오젠트 가문의 것이었다.
***
바슈켄의 귀족 구역을 장악한 구스타프 제국의 관료들은 전리품을 회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꺄악! 살려 주세요!”
값비싼 물건이 깨지든 말든 보따리째로 쓸어 담았고, 젊은 여자들은 그 자리에서 노예가 되었다.
최고 귀족들이 광장에 모여 무릎을 꿇고 있는 가운데 하비츠와 아벨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악독한 녀석! 세상이 네 마음대로 될 것 같으냐!”
제1급 귀족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으나 곧바로 군대의 창에 고슴도치가 되었다.
“…….”
그 광경을 바라보는 아벨라의 시선은 차분했다.
‘이것이 내 숙명.’
하비츠에게 세례를 받은 이후 머릿속의 외줄이 끊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살풍경 속에서도 마음의 요동이 적은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일 터였다.
“아벨라.”
하비츠가 다정하게 아벨라의 어깨를 감쌌다.
“성을 점령하면 이 나라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너에게 전부 다 줄게.”
하비츠가 세상의 전부였으므로, 아벨라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됐어요.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꽃 한 송이면 돼요.”
“좋아. 그럼…….”
하비츠가 죽은 귀족에게 걸어갔다.
“아빠! 아빠!”
어린 자식들이 아버지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으나 하비츠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이 나쁜 자식! 내가 반드시…… 커억!”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이 폐부를 뚫었다.
“흐음, 이제 뭘 하고 논다.”
아벨라와 결혼한 이후 하비츠는 행복했으나 그의 잔혹성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
발칸이 입꼬리를 올렸다.
‘화가 나서 죽이는 게 아니거든.’
하비츠에게 있어 세상이란 그저 왔다가 떠나가는, 광장이자 놀이터였다.
“안 돼! 내 딸은 풀어 줘! 차라리 나를……!”
누군가의 가족들이 죽고, 노예가 되고, 그 광경을 바라보며 하비츠가 노래를 불렀다.
“내 사랑의 쉼터…….”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
“나의 꽃이 되어 내 마음속에 피어요.”
섬세하게 떨리는 입술의 바이브레이션조차 세상을 조롱하는 것 같아서…….
“인간이 아니야! 너는 악마야! 악마라고!”
희생자들의 가족은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건방진 것들이 어디서!”
또다시 창이 날아들고, 노래가 끝날 무렵에는 귀족의 절반이 죽어 있었다.
“좋아.”
차분하게 노래를 마무리한 하비츠가 광장을 돌아보더니 골목을 가리켰다.
“저자를 데려오라.”
다리가 불편해 도망치지도 못한 거지가 벽에 기대어 몸을 떨고 있었다.
“으아아! 살려 주십시오!”
하비츠가 무릎을 꿇고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제부터 네가 이 나라의 왕이다.”
“으아아…… 으아…….”
그러고는 자신의 보검을 직접 거지의 허리에 채워 주며 지시를 내렸다.
“왕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 이 검으로 너의 가치를 증명해라. 그리하면 모두가 너를 경배하리니.”
배고픈 삶이지만 눈치는 빨랐기에, 거지는 겁에 질린 눈으로 귀족들을 돌아보았다.
‘지배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절뚝절뚝 걸음을 옮겨 귀족들에게 다가가자 혐오의 시선이 사방에서 쏘아졌다.
거지가 검을 꺼내 들더니 나이가 지긋한 중년 여성의 턱에 칼끝을 겨누었다.
“나, 나를 경배해라.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나를 따르겠다고 맹세해.”
“퉤!”
중년 여성이 뱉은 침이 거지의 얼굴에 묻었다.
“이게!”
이성이 끊어지면서 검이 수직으로 내려오더니 여성의 얼굴을 정확히 반으로 쪼갰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은 없었고, 거친 숨을 토해 낸 거지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머리를 조아려! 나에게 복종하란 말이다!”
“우……!”
모두가 거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우리들의 왕이시여!”
최고 귀족들이 경배하는 광경에 거지는 정신이 날아갈 정도로 쾌감을 느꼈다.
“푸하하하! 그래! 내가 왕이다! 내가 이제…… 헉!”
어느새 다가온 하비츠가 뒤에서 어깨를 끌어안더니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어때? 왕도 재밌지?”
“네? 아, 네! 최곱니다! 전하! 평생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거지는 신이 났다.
“아니, 네가 왕이니까 날 받들어 모실 필요는 없지. 너는 그냥 재밌게 놀면 돼.”
하비츠가 귀족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부 네 거다. 즐겨 봐.”
병사들에게 돌아오면서, 하비츠가 황제의 망토를 벗어 하늘 높이 던졌다.
제타로가 물었다.
“왜 그래요? 어디 불편합니까?”
“아니, 이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황제 노릇은 이골이 났어. 이제부터 거지가 될 거야.”
“으흐흐흐! 그거 재밌겠는데?”
제타로가 고개를 돌리자 스모도와 나타샤도 화색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칸이 말했다.
“너무 심취하지는 말아요. 아직 전쟁이…….”
“가자! 거지의 반란이다!”
이미 놀이에 푹 빠진 세 사람이 민가로 뛰어가자 발칸이 아벨라에게 말했다.
“좀 말려 보지 그래요?”
아벨라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 성격을 누가 말려요?”
귀족의 등에 업힌 거지가 보검을 휘둘렀다.
“이제부터 여자들은 내 몸을 씻긴다. 남자들은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구해 오도록!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혼돈의 극치였다.
그해 겨울 (3)
***
하이강 구릉지.
베타피시 제이스틴은 눈앞에 펼쳐진 초원을 내려다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아버지.’
마치 가축이 멱을 딸 때 내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그녀의 눈앞에서 목이 잘렸다.
‘어머니.’
끔찍하게 유린당했다.
‘소중했던 내 가족들, 그 가족들의 가족들까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그녀의 인생은 융단폭격을 맞은 셈이다.
‘나도 편했던 것은 아니야.’
그 폭격 속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보다 자신의 목숨이 소중했기 때문이리라.
‘미안해요. 엄마, 아빠.’
외면하고 살았던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순간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살고 싶었어.’
어린 나이였다고 위로하기에는, 그녀가 살아온 삶이 온갖 비겁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를 대신해 죽었을 이름 모를 누군가.’
어떤 아이를 제이스틴으로 착각했기에 하비츠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터였다.
“제이스틴 씨, 시간이 됐어요.”
시로네와 미네르바가 양쪽에서 다가왔다.
‘내가 끝낸다!’
번쩍 치켜뜬 그녀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강렬한 증오가 서려 있었다.
“이것으로…….”
시로네가 붉은 금속 상자의 뚜껑을 열자 이 피비린내를 일으키며 부르르 진동했다.
***
“이상하다고?”
바슈켄의 성을 공략하던 제1사령관 가이가 발칸에게 직접 찾아와 보고를 올렸다.
“네. 이미 성은 고립되어 있는데도 엑스마키나를 발동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흐음.”
가이는 광인이다.
‘하지만 그래서 신뢰가 간다.’
냉정하게 군기를 읽는 능력은 없지만 전쟁에 관한 직관은 발칸과 맞먹을 정도로 예민했다.
“무엇을 꾸미고 있지?”
“엑스마키나를 발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는 것일지도…….”
발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런 제길!”
가이가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시죠?”
남에게 발설할 사안이 아니었다.
“아니다. 너는 지금 당장 기동대를 이끌고 외성 문으로 가라. 누구도 수도에 들여보내서는 안 돼.”
“이미 외성 문은 뚫었습니다. 성전의 추가 병력도 보고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발칸이 덧붙였다.
“실망할 일은 없을 거야.”
가이에게 그거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