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40
“아니, 됐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엑스마키나와 의 결합. 그리고 이쪽이 내세울 수 있는 건 완벽한 혼돈.”
어쩌면 하비츠가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해 겨울 (4)
시로네가 자세를 풀고 가이에게 다가갔다.
“저는 리안의 친구…….”
가이의 검이 섬광처럼 번쩍이자 수직의 바람이 예리한 기세로 몰아쳤다.
단순한 바람이지만 피부를 베기에는 충분했고, 옆으로 피한 시로네가 고개를 틀었다.
“안 되지. 전쟁 중에 긴장을 풀면.”
시로네가 말을 빨리했다.
“저는 리안의 친구 시로네라고 합니다. 오젠트 가문의 장남은 왕성의 일로 타국에 첩자로 있다고 들었는데요.”
사실이라면 가이는 적이 아니었다.
“첩자?”
가이가 검을 어깨에 올린 채로 웃었다.
“누가 그러더냐, 내가 첩자라고?”
“그야 가족들이…….”
가이의 웃음이 뚝 그쳤다.
“들은 적이 있지, 귀여운 막냇동생에게 친구가 생겼다고. 아마도 그 녀석이 현재 상아탑의 오대성이라지?”
비꼬는 투였으나 시로네는 예의를 차렸다.
“네. 제가 그 오대성입니다.”
가이가 자세를 낮췄다.
“리안은 잘 있냐?”
“1년 전에 헤어진 이후로 정확한 소식은 듣지 못했어요. 하지만 어디에 있든 잘 해낼 겁니다.”
“그래? 애석하군.”
가이가 흔들린다고 느낀 순간 그의 발밑의 땅이 펑 소리를 내며 솟구쳤다.
“유언이라도 전해 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가이의 모습에 시로네가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느려!”
칼날이 목을 베고 지나갔다.
“……뭐지?”
시폭감이 1초 전의 과거를 현재로 느끼면서 수십 미터를 후퇴한 시로네가 숨을 헐떡거렸다.
“아하, 시간.”
대마법사의 목을 포도송이처럼 따 왔던 가이는 마법의 기이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이건 어때?”
흑발의 천재, 일곱 장의 스키마에 모조리 ‘접기’를 가하자 투명한 공기에 사람의 음각이 펑 하고 찍혔다.
빛보다 빠를 수는 없지만, 칼날은 시로네가 어떤 생각을 시작하기도 전에 날아들었다.
‘머릿속에 신을 담고 있다고 한들, 그릇은 어디까지나 피육일 뿐이지.’
아찔하다는 것이 유일한 생각이었고, 9개의 감각이 열리기도 전에 섬광이 가로로 그어졌다.
쿠우우우우우!
태양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지금 공기가 불에 타는 굉음과 같을 듯했다.
“짜증 나게 하는군.”
미네르바가 시로네의 뒷고대를 붙잡은 채 끝없이 뒤로 물러났다.
어설픈 간격으로는 가이의 움직임을 간파조차 할 수 없었기에 그녀가 멈춘 곳은 280미터 지점이었다.
“괜찮아?”
“아뇨. 죽을 뻔했어요.”
시로네는 솔직하게 말했다.
“저렇게 강한 검사는 처음이에요.”
리안과 싸운다면 이런 기분일까?
“경험 부족이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군. 우리가 마법의 정점이라면 저건 검술의 정점이야.”
미네르바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솔직히 같은 급수라면 나도 검사는 피하는 편이야. 정신이 얼마나 강력하든, 육체는 직접적이지. 거리를 두고 전략적으로 맞서야 할 거야.”
낮은 급수의 검사라면 정면 대결로 눌러 버리지만, 본래는 이것이 검사를 대하는 정석이었다.
‘혹은, 그에 준하는 검사가 우리 편에 있거나.’
리안이 보고 싶었다.
“최소 300미터 이상 떨어져. 그러지 않으면 마법이 구현될 때까지의 반응시간을 얻지 못할 거야.”
“아뇨. 싸우고 싶지 않아요.”
가이가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리안의 형이에요. 어째서 구스타프에 있는지 모르지만 여기서 싸우는 건 손해예요.”
“꼬마야.”
300미터 거리에서 가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리안을 잘 모르는구나. 내가 검을 선택하는 것으로 가족을 버렸듯, 리안도 마찬가지다.”
시로네는 음향 마법을 사용했다.
“아뇨. 저는 리안을 알아요. 만약 이런 이유로 싸우는 것이라면 저에게 실망할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나야 놈이 어떻게 자랐는지를 모르니. 하지만 말이야, 그렇다고 여기서 죽을 수는 없잖아?”
가이가 돌진할 자세를 취했다.
“이번에는 죽인다.”
멀리서도 한눈에 볼 수 있는 무시무시한 투기에 시로네가 눈을 매섭게 떴다.
“정말로 토르미아를 버린 건가요? 만약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이라면…….”
“쉬.”
작은 목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무슨 오대성이 이렇게 말이 많아?”
잡설을 늘어놓으면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에 시로네도 입을 다물었다.
“무조건 피해야 돼. 양쪽에서 협공하자.”
미네르바가 곰방대를 깊게 빨아들이고, 가이의 살기가 대직도처럼 수직으로 상승했다.
***
엑스마키나 내부에 비상 경고음이 울렸다.
“제길! 대체 뭐야?”
이루키는 엑스마키나의 초월적인 연산 능력이 도출한 결과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실패? 어째서?”
수천 번을 돌렸던 시뮬레이션이거늘, 막상 실전에 들어가자 하비츠를 죽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구디오가 이를 악물었다.
“애초부터 변수가 허수였어. 계산대로라면 하비츠는 아벨라를 지키기 위해 수도를 빠져나가야 해.”
그러다가 에 심장을 관통당하는 것이 엑스마키나가 계산한 율법이었다.
“알파피시의 올가미로도 하비츠를 율법에 묶어 둘 수는 없다는 것인가?”
이루키가 소리쳤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러요!”
“어떡하려고?”
“어쨌든 바슈켄에 들어왔어요. 의 율법을 뒤틀면 다시 하비츠를 쫓는 게 가능해요!”
네스의 해골 같은 눈이 크게 뜨였다.
“안 돼! 너무 위험해!”
에 작용하는 율법은 반경 200킬로미터 내의 모든 율법이 맞물려 있는 거대함이다.
“할 수 있으니까…….”
네 것이 아니다, 라고 알비노는 말했다.
“하는 겁니다.”
오버 드라이브를 시행한 이루키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캔슬레이션!’
엑스마키나를 통해 의 위치를 추적한 그의 스피릿 존이 율법을 취소시켰다.
“으아아아아!”
일개 마법을 취소시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무게였고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루키! 멈춰! 멈춰야 해!”
하비츠를 향해 똑바로 날아가던 의 궤적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곡선을 그렸다.
“좌표만 다시 설정하면 돼요!”
나머지는 의 증오가 알아서 해 줄 것이다.
‘머리가 터지겠어!’
엑스마키나에 뇌수가 폭발하는 게 먼저인지, 이 좌표를 바꾸는 게 먼저인지.
“이루키! 여기서 죽으면 미래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
‘아니, 죽어야 할 곳은 여기야!’
지금 해내지 못하면 이성의 종말이 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혼돈의 세계가 열린다.’
눈앞이 핏물로 붉게 차오르면서 엑스마키나의 모니터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간다아아아아아!”
마침내 의 궤적이 하비츠가 있는 곳으로 향하면서 혼돈을 다시 겨누었다.
“해냈다!”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장하다, 이루키! 네가 해낸 거야!’
선두에 앉아 있는 이루키에게서 반응이 없자 아가야가 일어나서 살폈다.
“이루키! 이루키!”
눈, 코, 귀에서 쉬지 않고 피가 흘러나오는 채로 경련하고 있었다.
“죽어라, 죽어라!”
이 심장을 노리고 있는 와중에도 하비츠는 무아지경에 빠져 닥치는 대로 살인했다.
“나 참…….”
발칸이 입맛을 다시는 그때, 병사가 달려왔다.
“군사님!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지금 주거 외곽 구역으로…….”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공기를 찢는 듯한 비명 소리가 천공을 수놓았다.
“뭐야!”
가시거리의 끄트머리에서 한 자루의 단도가 날개 한쪽을 잃은 벌레처럼 주위를 돌아다니며 병사들의 몸을 뚫고 있었다.
아벨라가 상황을 깨닫고 소리쳤다.
“여보! 이제 그만하고 가요!”
동작을 멈춘 하비츠가 날아다니는 단도를 발견했다.
‘술래잡기?’
단도의 궤적만 봐도 얼마나 하비츠를 죽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도망쳐야지.’
입가를 찢은 하비츠가 아벨라의 손을 붙잡았다.
“푸하하하! 발칸! 탈출한다!”
혼돈에서 물고기처럼 튀어 오른 생각이었고, 그 생각은 언제나 하비츠에게 옳다.
“나타샤! 전하를 데리고 가!”
나타샤가 하비츠의 후방을 지키는 가운데 근위부대가 우르르 도시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 비명을 지르며 따라왔다.
“제길! 뭐가 이렇게 빨라?”
바늘로 종이를 꿰듯 사람들 사이를 관통한 단도가 하비츠를 향해 똑바로 날아들었다.
“사신의 무도.”
자리에 멈춘 나타샤가 을 돌아보며 화신술을 펼치자 검은 로브를 입은 해골이 떠올랐다.
“부숴 버리겠어!”
스프링처럼 바닥을 박차고 튀어 나간 그녀가 을 향해 손을 내밀자 낑 소리를 내며 공기가 울었다.
“이런……!”
나타샤의 손을 피해 몸을 휘감던 이 그녀를 무시한 채 하비츠에게 날아갔다.
“전하!”
발칸이 소리치고.
“응?”
하비츠가 눈을 깜박이며 돌아본 곳에 의 칼날이 섬뜩한 빛을 내며 도착해 있었다.
“뭐야?”
동시에 세상이 회색빛으로 얼어붙었다.
“아아아아아아.”
하늘에서 들리는 장송곡에 이어 검은 옷을 입은 12명이 하비츠가 서 있는 땅에서 솟아올랐다.
“우리는 시옥.”
매초의 0.666초.
“그분을 맞이하라.”
용암 속에서 피부가 벗겨진 듯한 인형이 떠오르더니 불타는 눈동자를 치켜떴다.
“가엽구나, 율법의 희생양이여.”
하비츠는 사탄을 잠시 바라보더니 얼음처럼 굳어 있는 아벨라를 콕콕 찔러 보았다.
눌렀다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뭐야, 너는?”
“나는 너를 포함한 모든 마魔의 근원. 사탄이다. 오늘 너를 구원하러 친히 왔느니라.”
“나를 구원해? 뭐로부터?”
“죽음.”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사탄의 손이 허공에 멈춰 있는 법살을 가리켰다.
“나조차도 만질 수 없는 증오의 칼날. 너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나와 거래를 하는 게 어떠한가?”
사탄이 검지를 눈앞에 가져다 댔다.
“내 부하가 되어 세상을 처단하라. 마족과 함께 힘을 합쳐 이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흐음.”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던 하비츠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