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43
“어딜 가려고?”
달망이 몸을 뒤트는 우오린을 향해 톱날 대검을 휘두르는 그때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피리리리리리!
창의 구멍에서 나는 독특한 음파는 사소하지만, 우오린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소리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속도로 무언가가 굴러오더니 달망의 목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다.
“여단장님!”
마족들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수레바퀴의 그림자가 크게 반경을 선회했다.
수십 명의 마족들이 토막으로 잘려 나가면서 마침내 키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인간 여자 황제. 오랜만이군.”
키도가 예리한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올리자 우오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가 왜 여기에?”
“얘기는 나중에. 일단 처리하자고.”
마족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사막을 떠돌며 키도의 전투 경험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입으로 숫자를 세는 속도만큼 마족들이 빠르게 죽어 가자 날개를 단 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보통 놈이 아니다! 하늘에서 공격해!”
“오만한 마족이여.”
키도가 팽이처럼 몸을 돌리더니 사막 위를 등으로 굴러다녔다.
“땅에서 나는 것을 먹는 주제에…….”
화신술, 지박령.
“어찌하여 하늘에 기대는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땅에서 올라와 그들의 발목을 붙잡은 것처럼 마족들이 지상으로 끌려왔다.
“으아아아! 뭐야!”
마치 1톤의 쇠구슬을 단 기분이었다.
“베고, 베고, 베고, 베고, 베고.”
창이 회전하고, 육체가 회전하고, 세상이 회전하는 듯한 광경을 우오린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더 강해졌어.’
자칭 고블린의 왕은, 풍장과 상대했던 그때하고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베고, 베고, 어라?”
사막의 한복판에 마족의 시체들이 토막이 난 가운데 오직 키도만이 회전하고 있었다.
구르는 상태에서 튕기듯 몸을 돌린 키도가 두 다리로 사막을 밟았다.
“엇차!”
우오린의 앞에 정지하자 부연 먼지구름이 퍼지면서 그녀의 전신을 뒤덮었다.
“…….”
“푸하하하! 고블린 전통 화장법이야.”
싸울 때 진흙을 바르는 게 고블린의 전통이었다.
“뭐가 됐든…….”
우오린이 먼지를 털며 물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키도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려 여단장의 살점을 떨어내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우오린의 눈살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깨달음을 얻으려고 수행 중이야. 인간의 왕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나?”
물론 알고 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깨달음?”
“사랑.”
키도가 다가왔다.
“고블린은 강하지만 인간처럼 사랑하지는 않아. 섭식과 번식의 굴레를 벗어난 사랑을 찾고 있어.”
안드레의 미궁에서 시로네를 지킬 때, 키도는 처음으로 인간의 감정을 느꼈다.
“흐음, 그런 것치고는 마족의 고기를 너무 맛있게 먹는 거 아냐?”
“하하하! 당연하지. 먹어야 사니까.”
아직 깨달음에 도달하기란 요원한 듯했다.
‘야만적이야.’
키도는 바지를 입지 않았기에 고블린의 물건이 다리 사이에서 덜렁거렸다.
‘되게 크네. 키는 작은데.’
우오린의 시선을 느낀 키도는 불편해하기는커녕 자랑스럽게 허리를 내밀었다.
“고블린의 왕이라고.”
“……아무튼 고마워. 도움을 받았으니 사례할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원하는 거 없어. 있다면 진정한 사랑일까? 하지만 네가 나에게 그것을 줄 수는 없잖아?”
우오린은 다시 한 번 키도의 아래를 살핀 뒤에 기겁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좀 그렇고, 인간 여자라도 소개시켜 줄까?”
“하하! 됐어! 내 사랑은 내가 찾을 거야. 그리고 꼭 인간일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키도가 몸을 돌리며 손을 흔들었다.
“즐거운 여행 해라. 마족 조심하고.”
“잠깐만.”
우오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쓸모가 있을 거야.’
키도는 강하고, 시로네의 친구였으며, 무엇보다 ‘기억의 맛’이라는 능력이 있다.
“나랑 같이 황성에 가지 않을래?”
“황성?”
키도의 입술이 빼꼼 벌어졌다.
혼돈의 시대 (3)
***
자이브 왕국의 수도, 로데닌.
자유도시답게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해가 질 무렵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수도로 입장하고 있었다.
“잠깐! 거기 정지!”
하지만 리안은 예외였다.
“저 말입니까?”
“그럼 이곳에 자네처럼 더러운 사람이 또 있나? 들어와서 거지가 되는 건 상관없지만, 거지가 들어오는 건 안 돼.”
비가 와서 피 냄새는 씻겼으나 우산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저는 거지가 아니라 방랑 검사입니다.”
경비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방랑 검사? 자네, 검을 찬 거지와 거지가 검을 찬 것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나?”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저는 귀족입니다. 토르미아에서 왔고, 오젠트라는 가문의 검사입니다.”
결국 리안이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 주자 경비의 눈빛이 대번에 바뀌었다.
“아, 죄송합니다. 워낙에 몰골이, 아니 차림새가 귀족하고 거리가 멀어서.”
리안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해합니다.”
“로데닌에 들어가시면 몸을 씻으십시오. 신분증이 있다고 해도 불편할 일이 많을 겁니다.”
리안은 누구라도 할 법한 조언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흐린 날이 많은 왕국답게 자이브에는 밤에 즐길 거리가 다양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이 돌아다녔다.
‘마냥 활기찬 것만은 아니군.’
리안의 눈썰미는 큰길에서 이어지는 작은 골목의 어둠을 간파해 냈다.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전부 거지는 아닐 터였다.
“엄마야! 괴물이야!”
우산을 쓰고 걸어가던 두 여성이 리안을 보자마자 넘어질 듯 길을 비켰다.
“……씻긴 씻어야겠어.”
거구의 덩치, 어깨까지 늘어뜨린 머리, 대검을 차고 있으니 영락없는 악당이었다.
목욕탕을 찾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길을 걷는데 뒤편에서 말발굽 소리가 다가왔다.
“저기, 저 사람이에요!”
조금 전에 놀라서 달아났던 여자 중에 한 명이 타고 있었다.
“이랴! 이랴!”
부딪칠 듯 빠르게 달리던 마차가 리안의 눈앞에서 급하게 정지했다.
말의 거친 숨결을 얼굴로 받으며 기다리자 마차에서 일단의 병력이 내렸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이미 신분을 증명하고 들어왔기에 번거로웠다.
“무슨 일입니까?”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정체 모를 괴한이 밤길을 돌아다니며 여성들을 물색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리안은, 그냥 걸었을 뿐이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방랑 검사입니다. 여기 신분증이 있습니다.”
성문에서 학습한 대로 신분증을 제시하자 치안대의 표정도 한결 누그러졌다.
“토르미아. 상당히 먼 곳에서 오셨군요.”
운을 띄운 병사가 말을 이었다.
“근래 수도에 흉흉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연쇄살인이고, 수법이 변태적이죠. 그러니…….”
“제가 범인이라는 겁니까? 저는 이제 막 로데닌에 도착했습니다. 성문 경비대가 확인해 줄 겁니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다만 검사께서도 아시겠지만, 치안본부에서 제1급 수배령을 발동한 상태입니다.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연행해 행적을 기록하게 되어있습니다.”
수도에 들어가면 반드시 면도를 먼저 하라는 성문 경비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귀찮은 건 마찬가지지만.’
치안대는 연쇄살인마의 뒤꽁무니도 쫓지 못하고 있었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실적이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리안은 따지지 않았다.
그런 실적 위주의 노동력이 모여 도시의 치안을 이룬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됐어.’
야밤에 목욕탕을 찾느니 치안본부에 가면 몸을 씻고 면도도 할 수 있을 터였다.
“수사에 협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비는 리안을 신고한 여자를 마차에서 내리게 했다.
“이제부터 저희가 맡겠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안전하게 귀가하십시오.”
여자가 리안을 쏘아보았다.
“날 죽이려고 했어요! 이 살인마! 나를 납치해서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야!”
수염을 깎으면 말끔한 인상이 드러날 테지만, 마족과 혈투를 벌인 기도는 쉽게 지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검사들도 오금을 저릴 정도의 기운이라면 여자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낀 건 당연했다.
“숙식은 제공하는 겁니까?”
리안의 의도를 깨달은 경비가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좋은 여관만큼은 못하겠지만요. 어차피 몽타주를 만들려면 면도를 해야겠군요.”
리안을 태운 마차가 빠르게 돌길을 달렸다.
로데닌 제2치안본부.
수도 서쪽에 자리한 3층 건물로 들어가자 따스한 온기에 절로 잠이 쏟아졌다.
“일단 씻고 싶은데요.”
“알겠습니다. 욕실로 안내하죠.”
대중목욕탕으로 들어가자 야간 순찰을 끝낸 건장한 경비들이 몸을 씻고 있었다.
무거운 철갑을 지고 사는 자들답게 근육이 발달했고 가슴은 바늘조차 들어가지 않을 듯 탱탱했다.
“후우, 얼마 만의 목욕이야?”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를 떠올리며 리안이 옷을 벗자 탕 속에 있던 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몸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그들이지만 리안의 육체는 라인부터 달랐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되지?’
1만이 넘는 마족을 대직도로 베어 온 리안의 몸은 생물의 범주를 넘어 공학적이었다.
‘운동으로 만든 몸이 아니야. 검이 깎은 육체다.’
완벽한 역삼각형의 몸매를 뒤틀었을 때 나오는 운동에너지가 눈에 보이는 기분이었다.
사내들이 몸을 훔쳐보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으나 리안은 애써 외면하며 몸을 씻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긴 수염이 발밑에 떨어지고. 사포 같은 돌 비누로 묵은 때를 벗겨 냈다.
“후우, 시원하다.”
머리를 털며 밖으로 나오자 이미 소문을 들은 수많은 경비들이 모여 있었다.
“끝났습니까? 아…….”
리안을 연행했던 경비가 대직도를 넘겨주다가 리안의 몸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하의 기사. 그 전신을 보고 있다니.’
평생의 영광이었다.
“미처 알아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빗속이라 이름을 정확히 보지 못해서.”
한편으로는 과실이지만 상대가 마하의 기사였기에 자백하는 게 한결 수월했다.
“괜찮습니다.”
치안대의 보급품을 입은 리안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자 경비는 실수를 인정했다.
‘그 여자, 이런 거물을 살인마라고 신고하다니. 하긴, 나조차도 피부가 떨리는데…….’
목욕을 마친 리안의 인상은 유순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정직해 보였다.
“가시죠. 최대한 빨리 조사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전과 달라진 대우에 앞으로는 몸을 씻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한 리안이었다.
“그런데 살인 사건이라니. 정확히 어떤 겁니까?”
변태적인 수법이라고 들었다.
“두 달 전부터 7일에 한 번씩 여성들이 납치되고 있어요.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는데, 놀랍게도 피가 전부 빨린 채로 죽어 있습니다.”
“피가 빨린 채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