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44
“말 그대로입니다. 온갖 사체를 다 보았지만 이건 심했어요. 피가 한 방울도 없이 빠져서 피부만 남은 상태로 구겨져 있었으니까요.”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어쨌거나 검사님이 용의자가 될 일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자, 그럼 이쪽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밤의 악동들이 취조 의자에 앉아 경비들에게 심문을 받고 있었다.
“호오, 이게 누구신가?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마하의 기사님이 아니신가?”
구석에 설치된 사각의 링. 2미터가 넘는 거구의 중년 남성이 코너로 다가왔다.
제2치안대장 베노프였다.
“대장님, 이분은 용의자가 아니라…….”
“넌 빠져, 인마.”
장난스럽게 말했으나 명령은 명령이었기에 경비가 황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그래, 나도 알고 있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홀로 마족들을 처단하는 지옥의 용사.”
리안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마하의 기사는 전 세계적인 이슈였다.
“그렇게 베고, 베고, 베고 내려와서 자이브의 수도 로데닌에 도착했단 말이지. 흐음. 좋아, 좋아.”
“알고 싶은 게 뭡니까?”
베노프가 이빨을 드러내며 물었다.
“하필이면 우리 왕국인 이유가?”
“집에 가려고.”
직진으로 내려왔으니 직진으로 집에 간다.
“요즘 치안대 사정이 좋지 않아. 위에서는 쪼아 대지, 범인은 안 잡히지. 스트레스 때문에 나도 죽겠다고.”
베노프가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글러브를 낀 주먹으로 코너를 툭툭 쳤다.
“간단히 끝내지. 올라와서 한판 붙으면 바로 훈방. 아니면 날 새도록 조사를 받든지.”
결국 마하의 기사와 겨뤄 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대장님, 하지만 이런 식은…….”
베노프가 다시 말을 끊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 어떤가, 마하의 기사? 치안본부에서 검은 그렇고, 사나이답게 주먹으로 해보지?”
경비가 귓속말을 했다.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럽니다. 그냥 거절하세요. 저래 보여도 저 사람, 로데닌 콜로세움 챔피언입니다.”
“다 들려, 인마.”
취조 중인 경비는 물론이고 밤의 악동들까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리안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싸움은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이기는 것으로 강해질 수 있다면 리안의 마음에 깃든 공허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 그럼 뭐 때문에 싸우지?”
“모르겠습니다. 강함이란 그런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하하하! 역시나 이름 날린 기사치고 실속파는 없지. 그냥 말만 번지르르할 뿐이야.”
“그런 도발은 통하지 않습니다.”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리안이 어깨를 휘돌리며 링으로 걸어갔다.
“다만 귀찮은 것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의 일환이라면 올라가지 못할 것도 없죠.”
베노프의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바로 그거야. 올라와.”
그렇게 난데없는 격투기 대결이 준비되고, 경비들이 링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 진짜! 우리도 보게 해 달라고!”
말단 경비들이 악동들을 줄줄이 엮어 임시 수감소로 끌고 가는 소리가 들렸다.
링 위에 올라간 리안이 상의를 벗자 세컨드 역을 자처한 경비가 글러브를 끼워 주었다.
손가락 끝이 트인 오픈 핑거 글러브였다.
손목의 끈을 단단히 조이며 그가 말했다.
“일이 이렇게 돼서 죄송합니다. 대장님이 격투기광이거든요. 로데닌 챔피언 자격으로 중부 대륙 콜로세움에 참전하려고 했는데 일 때문에 무산됐어요. 치안대만 아니면 세계로 나갔을 분입니다.”
에둘러 조심하라는 표현이었다.
“상관없어요. 싸우는 건 직업이니까. 대신 이기면 바로 자게 해 주십시오.”
“하하! 격투기는 검하고 다르죠.”
마하의 검사에 대한 소문은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대장의 실력은 눈으로 확인한 무력이었다.
글러브를 팡팡 두드리며 링의 중앙으로 걸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베노프가 다가왔다.
“룰을 설명해 주지. 싸우다 죽어도 엄마한테 이르기 없기. 급소 공격은 반칙이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안 그래?”
짧게 고개를 끄덕인 리안이 링의 사이드로 물러섰다.
“제2치안본부배 격투기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적당히 마음껏 싸우십쇼.”
심판으로 들어온 경비가 엑스 자로 팔을 교차하더니 곧바로 링 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베노프가 쿵 하고 땅을 박차며 돌진했으나 리안은 가드를 올리고 상체만 흔들었다.
‘어디, 챔피언 실력 좀 볼까?’
위빙을 하는 리안의 가드에 잽의 파공음이 터졌다.
팡! 파파팡!
이어서 잽으로 이루어진 콤비네이션 공격이 경쾌한 리듬으로 팔 위를 두들겼다.
‘이거 재밌는데?’
리안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혼돈의 시대 (4)
“이제부터 시작이지!”
가드 위를 두들겨 육질을 확인한 베노프가 본격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잽과 달리 해머가 날아와 부딪치는 듯했고 리안의 상체가 링에 파묻힌 채로 출렁거렸다.
‘스키마.’
그것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적당히 할 수는 없나?’
그러는 사이에도 베노프의 주먹은 소나기처럼 가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무슨 철벽같군.’
단단한 부하들을 세워 놓았어도 이렇게 쳤으면 뼈가 부러져 시말서를 썼을 터였다.
“그래 봤자!”
베노프의 다리가 머리까지 올라왔다.
“부수면 그만이야!”
측면에서 충격이 들어오자 리안의 몸이 라인을 따라 휘청 밀려났다.
‘가드가 열렸다.’
충격을 감지하고 베노프가 쳐들어갔으나 리안의 격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슬슬 끓어오르는데?’
마족들과 싸우면서 터득했던 수많은 실전적 기술들은 깊은 곳에 감춰 두었다.
‘어디 붙어 봅시다.’
주먹과 주먹이 교환되면서 가죽 물주머니를 치는 듯한 소리가 치안대를 울렸다.
“와, 대장하고 막상막하라니.”
주먹을 뻗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공방전이 모두의 넋을 잃게 만들었다.
“기술도 뛰어나. 정타를 허용하지 않고 있어.”
쇠처럼 묵직한 주먹이 어깨를 스쳐 지나가고 자세를 낮출 때마다 공격이 허공을 갈랐다.
“우호! 우호! 우호!”
베노프가 밀고 들어가며 레프트 훅을 연거푸 리안의 옆구리에 쑤셔 박았다.
“크윽!”
뻐근한 느낌이 밀려드는가 싶더니 라이트스트레이트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튼 리안이 베노프의 팔을 붙잡은 채로 업어치기를 시도했다.
말리듯이 반대편으로 넘어간 베노프가 쿵 소리를 내며 대자로 쓰러졌다.
“이 자식이……!”
상체를 세우는 순간 리안이 그의 등 뒤로 돌아가 트라이앵글 초크를 걸었다.
“오냐, 한번 해보자…….”
상체를 튕긴 베노프가 초크에서 빠져나와 리안의 품으로 태클을 걸었다.
“이거지!”
그로부터 2분 동안, 수많은 그라운드 기술이 난무하며 두 거구가 바닥을 뒹굴었다.
‘젠장! 무슨 힘이 이래?’
근지구력을 매일 단련했지만 리안과 상대한 지 불과 2분 만에 근육에서 경련이 느껴졌다.
“포기하시죠. 지친 상태에서 싸우면 위험합니다.”
“크하하하! 애송이가!”
베노프의 근육이 불끈거렸다.
“그럼 소꿉놀이하는 줄 알았냐!”
젖 먹던 힘을 쥐어짜 내 구속을 풀어내자 리안이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멍청이! 얼굴이 비었잖아!’
허리를 뒤튼 베노프가 팔꿈치를 휘두르려는 그때, 두 다리가 붕 하고 떠올랐다.
“어어?”
리안의 상체가 아치를 그리며 뒤로 넘어가자 경비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저먼 스플렉스! 끝났다!’
목이 부러질 정도의 충격일 테지만 묘하게도 쿵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뭐, 뭐야?”
눈을 뜬 경비들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크으으으. 너, 너…….”
베노프의 정수리가 링 바닥에서 한 뼘 정도 떠 있었다.
“사람이 가능한 자세야?”
저먼 스플렉스를 시행하는 와중에 동작을 멈춘다는 것은 완력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게 되지?”
엉덩이가 하늘을 향한 채로 베노프가 물었다.
“검사의 신념입니다.”
이 자세로 버티겠다는 의지의 힘이었다.
“신념?”
생각에 잠긴 베노프가 잠시 울상을 짓더니 이내 밝은 미소를 드러냈다.
“졌다. 그만 끝내지.”
바닥을 거꾸로 구른 베노프가 일어서고, 리안은 뒤로 젖힌 상태에서 상체를 세웠다.
경이로운 과정을 지켜보던 베노프가 말했다.
“어때? 땀 좀 빼니까 개운하지?”
“네, 덕분에.”
오랜만에 스트레스가 풀렸다.
“땀을 흘렸더니 씻어야겠어. 조금 전에 씻었다고 들었네만, 같이 갈 텐가?”
“그러죠. 목욕은 몇 번을 해도 좋으니까요.”
이곳에 와서 배운 교훈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치안대원의 침대와 사막의 지하 구덩이를 비교하면 결례겠지만 리안의 눈은 새벽 일찍 뜨였다.
밖으로 나가자 새벽조의 일이 끝났는지 못 보던 경비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일찍 일어났군. 여독은 좀 풀렸나?”
치안대장 베노프는 낮밤이 없었다.
“네. 일찍 출발해야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지. 그것 외에 다른 할 일은 남아 있는가?”
“아뇨. 딱히…….”
가족들의 근황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렇군. 미안하지만 발목을 붙잡을 말을 좀 해야 되겠네. 이것도 인연인데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나 해서.”
“연쇄살인 사건 말이군요.”
“들었다니 얘기가 빠르겠군. 일단 나를 따라오게. 가면서 얘기하지.”
시체 안치실로 향하면서, 베노프는 어제 경비에게 들었던 것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일반인은 출입 금지지만 자네라면 믿을 만하니 보여 주지. 바로 이것일세.”
검시관이 자리를 비켜 주자 베노프가 캐비닛처럼 생긴 손잡이를 잡아 빼냈다.
“흐음.”
리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이 오는가?”
피가 말라 완전히 쪼그라든 시체는 미라 같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공포인지 황홀함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뱀파이어.”
베노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력한 용의종이지. 사실 자이브에서 뱀파이어의 습격이 보고되지 않은 것은 아니야.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특이하네. 이 정도로 피를 빨지는 않거든.”
리안의 생각에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뱀파이어가 피를 주식으로 한다고 해도 위장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나? 그래서 애매한 거야. 어쩌면 뱀파이어를 가장한 인간이 저지른 짓일 수도 있네.”
“인간이라면 확실한 변태네요.”
“그렇지. 왕성에서도 슬슬 심각성을 깨닫고 있어. 하지만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네. 공명심이 아니라, 솔직히 이런 놈은 잡아다가 박살을 내 버려야 돼.”
“뱀파이어일 수도 있죠. 대식가라서 피가 많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둘 다 염두에 두고 있어. 정말로 뱀파이어라면 일이 커지게 되지. 만약 순혈의 뱀파이어라면 치안대로는 감당이 안 돼. 근위부대 ‘신장’ 정도는 되어야 할 거야.”
베노프가 부탁하는 이유를 알았다.
‘뱀파이어라…….’
어차피 집에 가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고, 뱀파이어 또한 엄연히 마족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베노프가 리안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지. 부서에 임시로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 기다리게. 어차피 책상에 앉아 있을 일은 없을 테지만.”
리안은 다시 짐을 풀고 베노프가 지정해 준 자리에 앉아 몇 시간을 기다렸다.
점심을 먹은 뒤에 호출이 왔다.
“마차에 타게. 나랑 급히 갈 데가 있네.”
베노프의 얼굴이 아침보다 좋지 않았으나 리안은 군소리 없이 마차에 탔다.
도착한 곳은 한눈에도 갑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대저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