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45
오젠트 가문보다 부지가 넓지는 않았지만 자이브의 수도 한복판에 세우기에는 과분한 크기였다.
“여기는?”
“자이브 제1계급, 바르크 가문일세. 마하의 기사 건을 상부에 보고하자 연락이 왔어.”
“뱀파이어와 관련된 일인가요?”
정치적인 일로 불려 다니는 건 질색이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집사가 문을 열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가주님에게는 기별을 받았습니다. 아가씨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택에 들어가자 10대의 소녀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 뭐야! 나 오늘 쇼핑해야 된단 말이야! 왜 못 나가게 하는 건데?”
가주의 외동딸 바르크 아이린이었다.
“아가씨,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근래 흉흉한 사건이 일어나서 외출을 자제하라는…….”
“그렇다고 낮에도 못 나가게 하면 어떻게 해? 정말 아빠는 너무해!”
“아, 오늘은 특별히 일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리안과 베노프를 돌아본 집사가 다시 아이린에게 고개를 숙이며 소개했다.
“오늘부터 아가씨를 호위할 마하의 기사, 오젠트 리안 님이십니다. 검술에 있어서 최고의 명가인…….”
“됐어! 지금 있는 내 기사들로 충분해! 대체 얼마나 나를 숨 막히게 만들 생각이야?”
리안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민간인 호위를 하라고요?”
베노프가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엄밀히 따지면 민간인은 아니지. 왕성 장관의 따님이니까. 안주인은 경제 부서의 고문이시고.”
그렇더라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엊그제 익명으로 경고장이 날아왔어. 뱀파이어를 조심하라는 내용이었지. 장난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야.”
그가 말을 아낀 이유였다.
“내 사정 좀 봐주게. 범인 색출을 위한 기동대를 편성할 거야. 그동안만 있어 줘.”
대화를 들은 아이린이 고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뭐야, 지금 나 까인 거야? 어처구니가 없네. 이봐요, 아저씨. 내가 누군 줄 알아요?”
“장관의 따님.”
아이린이 콧방귀를 뀌었다.
“알긴 아네. 하지만 나는 함부로 외간 남자 들이지 않거든요? 그리고 덩치 큰 사람 질색이에요. 그것만으로 이미 오디션 탈락이라고요!”
“오디션?”
아이린의 뒤를 지키는 자들은 하나같이 미남이고 몸매가 늘씬했다.
“이봐, 꼬마야. 일단 나는 자이브 국민이 아니야. 그리고 몸매가 좋다고 전투력이 강한 건 아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저씨가 아니고 오빠야.”
“푸하하하! 자기가 오빠래. 몇 살인데요?”
리안이 자신 있게 답했다.
“스물둘.”
“으엑, 완전 노땅이잖아.”
“…….”
다른 의미로 이곳에 있기 싫었다.
“어이, 마하의 기사 씨. 하기 싫으면 빠져. 아가씨는 우리들로 충분하니까.”
정장을 멋지게 빼입은 기사가 손을 휘저으며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
다름 아닌 장관의 딸이라, 여기서 주목을 받으면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무엇보다…….’
눈이라도 맞으면 대박이 터진 셈이다.
“아니, 좋아요.”
아이린이 한 걸음 나섰다.
“당신을 고용하겠어요. 마침 인력이 부족했거든요. 우리 토나스를 지켜 줘요.”
“토나스가 누군데?”
아이린이 저택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토나스! 이리 와!”
시커먼 털을 가진 도베르만이 혓바닥을 내밀며 달려와 아이린의 품에 안겼다.
“환장하겠군.”
베노프가 이마를 짚는 가운데 아이린이 당당한 눈빛으로 리안을 가리켰다.
“자! 지키세요!”
리안은 단호했다.
“싫어. 무례를 사과하고 내 호위를 받든가, 아니면 나는 그냥 돌아가겠다.”
“흥! 누구 맘대로 정해요? 어차피 아저씨도 우리 아빠 명령으로 여기 온 거 아니에요?”
“너도 죽기는 싫을 거 아냐.”
리안의 차가운 눈빛에 아이린이 어깨를 움찔했다.
“아버님이 나를 부른 건 뱀파이어를 제압할 수 있는 인력이 태부족하기 때문이야. 너도 짐작하고 있으니까 저런 반반한 애들만 불러 모아서 버티는 거잖아.”
뱀파이어의 희생양은 대부분 아름다웠다.
“무, 무슨…….”
아이린이 눈을 굴리는 동안 뒤편에 서 있던 기사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어이, 근육질. 듣자 하니까 아까부터 열 받게 하는데, 우리가 잘생긴 데 뭐 보태 준 거라도 있냐?”
“피라미는 빠져.”
“……아가씨, 저희가 대신 오디션을 봐도 되겠습니까?”
아이린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소리쳤다.
“좋아! 본때를 보여 줘!”
기사들이 주먹을 어루만지며 한 걸음을 옮기려는데 리안의 눈이 부릅떠졌다.
신적초월-심권 난타.
마음이 먼저 치고.
-심권! 심권! 심권! 심권! 심권! 심권! 심권! 심권! 심권! 심권! 심권! 심권!
행동에 나설 필요도 없었다.
“뭐 하고 있어? 빨리 저 건방진 아저씨를…….”
미간을 찡그리며 뒤를 살핀 아이린이 눈을 의심하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흐으으으……!”
수십 발의 주먹에 강타당한 기분을 느낀 기사들이 전부 무릎을 꿇은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둠의 일족 (1)
아이린을 호위하는 기사들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차가운 바닥에 고꾸라졌다.
“어떻게 된 거야?”
아이린이 황당하게 물었으나 치안대장 베노프조차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눈의 기술? 아니, 그것과는 달라.’
실제로 타격을 입은 것 같은 기사들의 표정에는 선명한 고통이 떠올라 있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몸에 충격은 없으니까.”
정말로 심권이 발동되었으면 그들의 육체는 쓰러진 정도가 아니라 박살이 나 버렸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약골들일 줄은.’
리안은 입맛을 다셨다.
사막을 종단하며 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기사들의 실력이 수준 이하였다.
“좋아.”
아이린이 생각을 고쳤다.
“실력은 제법 있는 것 같네. 내 호위를 맡게 해 주지. 오늘부터 24시간 나를 지켜.”
리안의 말대로 죽기는 싫은 것이다.
‘경고장이 왔다고 했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아이린이 죽었을 때 찝찝한 쪽은 리안이었다.
“내 호위를 받고 싶으면 무례를 사과해라.”
뒤끝이 있는 성격은 아니지만 제대로 호위하려면 그녀도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사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사과야?”
리안은 더 이상 할 얘기 없다는 듯 몸을 돌려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알, 알았어! 알았다고!”
성격은 모났어도 태세 전환이 빠르다면 차라리 영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미안해. 됐지?”
“뭐가 미안한지 정확히 말을 해.”
아이린이 질색했다.
“좀 쿨해지면 안 돼요? 이래서 아저씨들은 싫다니까. 계속 질척거리잖아.”
“더 질척거려 줄까?”
더 이상 깊은 관계가 되는 건 사양이었다.
“내가 좀…….”
아이린이 고개를 틀며 말했다.
“건방지게 대했어요. 그걸 꼭 들어야 아나?”
시작치고는 괜찮다고 생각한 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좋아. 경고장이 왔다고 했지? 보여 줘 봐.”
아이린이 품에서 편지를 꺼내자 베노프가 리안의 곁으로 다가왔다.
다음 희생자는 당신입니다.
신문의 글자를 오려서 만든 짧은 문장에 리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건? 범인이 쓴 거 같잖아?”
베노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일단 연쇄살인마는 살인 예고장을 보낸 적이 없어. 갑자기 자신을 드러낼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장난일 수도 있죠. 장관이라면 정적도 많을 테니까요. 정치적인 수작이나…….”
아이린이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나섰다.
“아뇨. 우리 아빠는 정적 없어요. 왜냐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분이니까. 그리고 아마 그 경고는 사실일 거예요.”
리안이 경고장을 넘겨주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여태까지 희생자들의 특징이 뭐였는지 알아요? 10대에서 20대 사이. 아름답고, 부유하죠. 무엇보다 피부가 좋아서 화장을 안 해도 된다는 거예요.”
“그게 어쨌다는 거야?”
아이린이 답답한 듯 자신을 가리켰다.
“나잖아, 나! 예쁘지! 돈 많지! 살결도 부드럽지! 살인마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나밖에 더 있어요?”
“…….”
죽여 달라고 시위를 하는 듯했다.
“아이린 아가씨의 말에 일리가 있어. 희생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거야.”
리안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냄새에 극히 민감한 인간이거나…….”
“뱀파이어라는 뜻이지. 인간이 해독할 수 있는 특정 화학 성분이 놈들에게는 약점이 되거든.”
“관심을 뱀파이어 쪽으로 돌리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죠. 그렇다면 철두철미하군요.”
“맞아. 문제는 아직 목격자조차 없다는 거야. 수사망을 좁힐 수 없으니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어.”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사정이 대충 파악되었다.
“오늘 밤이 정확히 7일째 되는 날이군요. 일단은 제가 이곳을 지키겠습니다.”
아이린의 눈에 안도의 기색이 드러났다.
“음, 그럼 부탁 좀 하겠네. 경고장이 가짜일 수도 있기 때문에 병력 집중이 어려워.”
“걱정하지 마세요. 저 혼자로 충분합니다.”
마하의 기사가 지키고 있다면 바르크 가문은 잠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터였다.
베노프가 아이린에게 말했다.
“아가씨. 리안의 말을 잘 따라 주십시오. 어디를 가도 이런 실력자는 구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아저씨 하는 거 봐서요.”
베노프가 입맛을 다시며 저택을 나서자 아이린이 본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지금부터 쇼핑할 거니까 나갈 준비해요. 제발 그 촌스러운 옷은 벗고 턱시도로…… 꺅!”
본색은 리안도 가지고 있었기에, 아이린을 어깨에 걸친 채 계단을 올라갔다.
“쇼핑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금부터 방에 들어가서 한 발짝도 나오지 마.”
“변태! 허락 없이 여자 몸을 만지다니! 나중에 아빠에게 다 말할 거예요!”
“제발 그래 주라.”
여태까지 아이린을 이렇게 휘두른 사람은 처음이었기에 집사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뭐 하세요? 방으로 안내하세요.”
“아, 네!”
리안의 턱짓에 계단을 뛰어오른 집사가 복도의 끝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엄마야!”
침대에 털썩 파묻힌 아이린이 곧바로 몸을 돌리더니 한쪽 다리를 구부리며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해 봐요. 지금 엄청 기분 좋죠? 나처럼 예쁜 소녀를 함부로 다루면서 쾌감을 느끼는 거죠?”
리안은 집사를 돌아보았다.
“집에 있는 거울 전부 가져오세요. 그리고 홀에 퍼져 있는 기사들, 일어나는 즉시 나에게 오라고 해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거울은 왜……?”
“잠입에 대비하는 겁니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시각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모습을 투명하게 감출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물의 눈이었고, 거울에 비친 모습까지는 감출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평집사들이 30개의 거울을 가져와 아이린의 방에 사각을 없애는 동안 리안은 기사들의 위치를 재배치했다.
‘이 정도면 뭐…….’
손을 탁탁 털고 침대를 돌아보자 아이린이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냐?”
“친구들 불러도 돼요?”
“안 돼.”
아이린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자 리안이 타이르듯 저음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