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46
“좀 참아.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
“혼자 있으니까 무섭단 말이에요. 정말로 살인마가 노리는 거라면 나는…….”
당당한 척은 해도 아직 어린애였다.
“그러니까 말을 들어. 내가 곁에 있으면 네가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죽었으면 내가 죽었지.
‘안 오는군.’
저택 1층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자 리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장난인가?’
“저기…… 화장실 좀 가면 안 돼요?”
아이린이 몸을 배배 꼬며 말하자 리안은 방구석에 놓아둔 항아리를 가리켰다.
“저기 있잖아.”
“진짜 변태예요? 다 큰 여자가 어떻게 저런 곳에다가 볼일을 봐요!”
“그럼 나랑 같이 가.”
“안 돼요! 그것만은 절대로 안 돼! 이건 사소한 일이 아니라, 그러니까…….”
리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그냥 잠깐만 갔다 올게요. 네에?”
식은땀을 흘리는 아이린의 표정을 보면 당장이라도 큰일이 터질 것 같았다.
“따라와.”
화장실 앞에서 아이린이 재차 확인했다.
“절대로 가까이 오면 안 돼요. 알았죠? 저기 복도 끝에서 기다리세요.”
“빨리 들어가. 안 급하냐?”
발을 동동 구른 그녀가 문을 닫자 리안은 문 앞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
큰일을 보는 소리가 들릴 때에는 어쩔 수 없이 피식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요즘 애들은 다 저러나?’
하긴, 리안도 어릴 때에는 지금처럼 세상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물소리가 들렸다.
“후우, 죽을 뻔했네.”
긴장을 해서 그런지 대장 활동이 너무 활발했다.
‘설마 엿들은 건 아니겠지?’
만약 그랬다면 상종을 말아야 할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세면대로 다가갔다.
‘조금 더 있다가 나가야지. 간만의 자유니까.’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물로 씻으며 거울을 돌아보는데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응?”
관성적으로 다시 물을 받던 아이린의 눈이 커졌다.
‘뭐, 뭐야?’
차마 다시 거울을 볼 용기가 나지 않은 아이린이 가만히 몸을 돌리다가 고개를 홱 틀었다.
“…….”
아무도 없었다.
“후우, 그럼 그렇지.”
그때 문득 리안의 말이 떠올랐고, 그녀는 다시 겁을 먹은 채로 천천히 거울을 돌아보았다.
정장을 입은 미남자가 붉은 입술을 이기죽거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 어어.”
“쉬이.”
거울 속의 남자가 입술에 검지를 댔다.
‘살, 살려 줘!’
머릿속으로는 온 힘을 다해 소리치고 싶었으나 목구멍이 막힌 듯 숨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소리 없이 다가온 남자가 그녀의 두 어깨를 손으로 짚고, 차가운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문다. 문다.’
거울을 통해 남자의 송곳니가 똑똑히 보였다.
“아저씨!”
소리치는 동시에 문이 박살 나면서 리안이 대검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뱀파이어.’
화장실은 텅 비어 있었으나 측면의 거울 속에서는 남자가 돌아서고 있었다.
위치를 잡고 대검을 내리긋자 시커먼 연기가 벽으로 밀려나더니 실체를 드러냈다.
“아저씨! 저 자식, 계속 나를…….”
“나가.”
목소리에 담긴 기운이 달랐기에 아이린은 즉각 부서진 문틈으로 빠져나갔다.
“놓칠 수 없지!”
하체가 시커먼 연기로 풀어진 그가 밖으로 나가자 리안 또한 땅을 박차며 검을 휘둘렀다.
“귀찮은 녀석!”
목표물을 놓친 것에 분노한 뱀파이어가 소용돌이처럼 리안의 주위를 회전했다.
‘빠르다.’
여태까지 상대한 마족 중에서 이에 준하는 속도는 사단장 이상 급밖에 없었다.
‘그래 봤자.’
리안의 검은 최단거리의 직선이다.
‘감지한 즉시 베면 그만.’
섬광의 속도로 검이 휘둘리자 펑 하고 파공음이 터지면서 뱀파이어가 둘로 쪼개졌다.
“크으으으!”
하지만 2개의 몸체는 다시 연기로 풀어져 복도의 중앙에 집결했다.
‘반신반혼. 확실히 까다롭군.’
그렇더라도 육체가 쪼개지기 직전 화신술을 시행했다는 것은 뱀파이어 중에서도 상위라는 뜻.
“……알마스인가?”
뱀파이어의 눈매가 꿈틀했다.
“헌터였구나.”
순혈의 뱀파이어는 계보가 있다.
“아니. 방랑 검사다.”
진마의 인젝션 로드, 로드의 인젝션 알마스, 알마스의 인젝션 베시카가 그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어둠의 계보를 알지?”
“사막에서 살다 보면 많은 이야기를 듣지.”
라둠의 아인종 조직, 스펙트럼의 내정부 장관이었던 라이카 또한 알마스 계급이었다.
“흥, 하찮은 인간 따위가…….”
뱀파이어가 잔상을 일으키며 움직였다.
“감히 마를 논해!”
복도의 유리창이 전부 깨지고 벽면에는 원인이 없는 것처럼 칼자국과 손톱자국이 퍽퍽 새겨졌다.
“저쪽이다! 범인을 잡아라!”
복도 끝에서 자칭 아이린 친위대가 장검을 들고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오지 마!”
무식해서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 전투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공포가 생길 여지도 없었다.
“어디냐! 나와!”
공명심에 사로잡힌 기사들이 허공에 검을 휘두르는 즉시 3명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으아아아!”
이제는 두려웠고, 모두 등을 보이고 아이린에게 되돌아가는 악수를 두고 말았다.
“멍청이들!”
그래도 기사라면 죽음을 택하는 것으로라도 고용주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잡았다!”
아이린의 시야에 거대한 연기가 수직으로 솟구치고, 뱀파이어의 얼굴이 폭포처럼 떨어졌다.
‘신적초월!’
펑 하고 바람이 폭발하면서 어느새 아이린의 앞을 가로막은 리안이 가로로 검을 휘둘렀다.
‘심검!’
마음이 먼저 베고.
“크아아아!”
무한의 수평선이 뱀파이어를 갈랐다.
“아, 아저씨…….”
잠시 동안 세상이 상하로 분리되었던 환영이 아이린의 눈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어둠의 일족 (2)
저택은 조금 전과 다르지 않았다.
‘내 눈이 이상해졌나?’
하지만 리안의 검이 휘둘렸을 때 벽이 갈라지면서 밤의 풍경이 보였다.
그리고 급기야 그 풍경마저 갈라지면서 한 줄기의 섬광만이 시야를 가득 채웠던 것이다.
“크으으으…… 어째서?”
뱀파이어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파괴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그것을 관통할 수도 있는 반신반혼의 육체.
하지만 리안의 오브제는 파괴되지 않는 성질이기에, 뱀파이어에게는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러서.”
리안이 검으로 전방을 겨누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뱀파이어의 상체와 하체 사이에 피가 끈적끈적 맞물리더니 다시 접합되었다.
‘강력 재생.’
피를 이용해 신체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순혈의 능력 중의 하나였다.
심장에 말뚝을 박으면 재생이 불가능하지만, 말뚝을 뽑으면 다시 살아나는 종족이 뱀파이어였다.
“너…… 인간이 아니구나.”
리안은 인간이다.
“내 검은 너를 죽인다. 순순히 붙잡혀라.”
“헛소리.”
인간에게 붙잡힌 뱀파이어가 어떻게 되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잠시 주위로 시선을 돌린 뱀파이어는 등 뒤에 남아 있는 기사들을 포착했다.
“크크, 1명이라도 더 죽여 주지.”
뱀파이어의 다리부터 쪼개지기 시작하더니 수많은 박쥐로 변해 기사들에게 날아갔다.
“으아아아! 뭐야!”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간 리안이 박쥐의 무리 속으로 파고들자 겁에 질린 기사들이 보였다.
“빨리 나가!”
대검을 휘두르며 박쥐를 흩어지게 했으나 기사들은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
“살, 살려……!”
기사의 멱살을 움켜쥐고 바깥으로 던지자 몸이 붕 하고 떠오르더니 바닥을 굴렀다.
“오늘 밤은 네가 희생양이구나!”
하체를 연기처럼 풀어 헤친 뱀파이어가 말쑥하게 생긴 기사에게 쇄도했다.
‘제길! 할 수 없지!’
리안이 기사를 힘껏 떠미는 것과 동시에 뱀파이어의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충파!”
혼의 상태에서 충격을 가하는 뱀파이어의 기술이 리안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큭!”
심장이 멈춘 리안이 쾅 소리를 내며 벽에 처박히자 아이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저씨!”
쨍그랑!
3층의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날렵한 몸매의 인영이 1층의 홀에 착지했다.
“물러서!”
여자의 목소리였고, 은발이었다.
다다닥 소리를 내며 신속하게 계단을 오른 그녀가 예리한 세검을 휘둘렀다.
칼날이 목덜미를 베고 지나갔다.
“크악! 이건!”
화신술을 펼쳐 반혼의 상태로 변했으나 놀랍게도 검은 정확히 상처를 냈다.
“……헌터!”
여자가 들고 있는 검은 광택을 내는 검을 본 순간 의문은 확신이 되었다.
어쨌거나 리안을 죽였기에 도주로는 열린 셈이었다.
“제길! 두고 보자!”
그대로 벽을 투과하며 도망치는 뱀파이어의 모습에 여자가 황급히 방향을 틀었다.
“어딜 도망치려고!”
“아저씨! 아저씨!”
아이린의 흐느끼는 목소리에 몸을 날리려던 여자가 움찔하며 몸을 돌렸다.
리안이 고개를 꺾은 채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이미 늦었어. 알마스급의 충파는 심장을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폭발시켜 버린다.”
응급 소생술을 실시할 이유조차 없었기에 여자는 몸을 날려 깨진 창문 밖으로 사라졌다.
아이린은 포기하지 않고 리안을 흔들었다.
“죽지 말아요! 아저씨가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해요! 빨리 일어나란 말이야!”
“아우, 시끄러.”
리안이 천천히 눈을 떴다.
“엄마야!”
살아나라고 애원을 했던 아이린이지만 실제로 일어나자 귀신을 본 듯 놀랐다.
“뭐, 뭐예요? 그 여자는 심장이…….”
“그래, 멈췄지.”
야차의 내구력이 형태를 보존했고 그렇기에 회복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직 재생 중인가?’
스밀레의 환청이 귓가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