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47
“걱정 마.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심장이 멈췄다고 들었다.
“……그럼 어느 정도여야 죽는데?”
“나도 몰라.”
어쩌면 뱀파이어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며, 리안은 3층 유리창을 올려다보았다.
“누구였지?”
생사가 오가는 소란 속에서도 아이린은 핵심적인 정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은발의 여자였는데, 뱀파이어가 헌터라고 불렀어요.”
“아하.”
헌터가 전부 강한 것은 아니지만 리안이 알기로 뱀파이어가 싫어하는 모든 수법을 이용한다.
‘도망친 것도 이해가 되는군.’
뱀파이어전에 특화된 병력이라면 알마스 계급이라고 해도 상대하기 벅찼을 것이다.
“할 수 없지.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기사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나, 사망자가 늘어나는 것보다는 심장 한 번 멈추는 게 나았다.
“무슨 일이죠? 설마…….”
뒤늦게 저택의 불이 켜지고 아이린의 엄마가 병사들을 데리고 달려왔다.
“엄마!”
아이린을 품에 안은 그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리안을 돌아보았다.
본래라면 야근을 해야 하지만 경고장 사건으로 그녀만 2시간 전에 귀가한 상태였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뱀파이어가 따님을 노렸습니다. 도망쳤어요. 일단 오늘 밤에 다시 습격하지는 않을 겁니다.”
“놓쳤다고요? 이 많은 병력을 가지고도요?”
리안은 뱀파이어 사회에서 알마스 계급이 어떤 위치인지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 리안 아저씨, 아니 오빠가 나를 지켜 줬어.”
아이린이 손윗사람을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는 한정되어 있기에 엄마도 표정을 풀었다.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예민해져서.”
“괜찮습니다. 따님이 걱정되시겠죠.”
“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어떤 지원이든 아끼지 않고 돕겠습니다.”
리안은 복도를 돌아보았다.
“그럼 일단 병력을 전부 해산시키세요.”
“네?”
황당한 제안이었으나, 상대가 알마스라면 저런 오합지졸은 인질이 될 뿐이었다.
“저 혼자 지키는 게 편합니다. 내일 아침 치안대장이 오면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엄마, 오빠 말대로 해요.”
아이린의 목소리는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투였다.
“알, 알았어요. 그럼.”
그녀의 지시에 집사들이 시체를 치우고 집을 정리하는 동안 아이린이 쪼르르 달려왔다.
“오빠, 그럼 저는 뭐 하면 될까요?”
리안은 단호했다.
“넌 빨리 들어가서 자.”
***
다음 날 아침, 이미 간밤에 기별을 받은 치안대장 베노프가 바르크 가문을 찾았다.
“한판 붙었다고?”
“네. 범인은 뱀파이어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알마스 계급이에요.”
세상에 고작 수십 명밖에 없는 순혈이라는 말에 베노프가 머리를 긁었다.
“제길! 거물이 들어왔군.”
“사망자가 생겼어요. 죄송합니다.”
“얘기는 들었네. 자네의 탓이 아니야. 자네가 희생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망자가 나왔을 테지.”
“경호는 어떻게 되죠?”
“일가족 전부 왕성으로 모실 거네. 자네는 우리 기동대에 합류하면 돼. 빠질 생각은 아니지?”
시로네와 같은 박애는 없지만, 리안은 모든 죽음에 책임을 지기로 맹세한 검사였다.
“물론이죠. 성과는 있습니까?”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확정 지은 것만으로도 성과라 할 수 있지. 이제부터는 강하게 압박할 거야.”
“어디를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세워지지 않아서 접근 권한이 없었던 곳이 있어. 로데닌 혈액은행. 조만간 왕성에서 출입 허가 권한을 위임할 거야.”
대량의 피를 빼 간 범인이 뱀파이어라면 혈액은행을 조사하는 건 필수였다.
“너무 늦지 않을까요?”
“혈액은행은 왕성 예하 기관이야. 영장이 나오기 전까지 타 부서는 장부를 열람할 수 없어.”
“그렇군요.”
“왕성 근위대 ‘신장’을 출동시킬 거야. 그렇게 되면 순혈의 뱀파이어라도 꼼짝없이 당하겠지.”
알마스 계급 1명이라면 그럴 것이다.
‘뭔가 이상해.’
뱀파이어 1명이 필요한 혈액의 양치고는 너무 많은 피를 빼 가고 있었다.
‘알마스를 중심으로 조직을 꾸린 건가.’
특히나 왕성 기관이라면 내부 첩자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시간을 줄 수 있을까요?”
“왜? 아직 기동대가 편성되지는 않았네만…….”
“따로 조사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렇게 바르크 가문이 왕성으로 들어가고, 리안은 홀로 도시를 거닐었다.
‘여기군. 로데닌 혈액은행.’
삼각형의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7층 건물을 살핀 그는 골목길로 들어갔다.
밤이 되자 예상대로 몇몇 무리가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확인할 방법은 없다.’
뱀파이어를 소탕하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가 인간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햇빛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것도 순혈이 아닌 혼종들에게나 치명적이었고, 순혈들은 강력 재생을 이용해 버틴다고 들었다.
“어이, 너희들.”
리안이 부르자 5명으로 이루어진 무리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넌 뭐야?”
리더로 보이는 중키의 남자가 나이프부터 꺼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이 혈액은행, 이 시간에 사람이 출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리더의 눈빛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너, 누구야? 치안대냐?”
“검사다.”
“검사?”
리더가 나이프를 휘돌리며 다가왔다.
“내 검 맛은 어때?”
살기를 드러내지 않고 그저 나이프로 배를 쑤시는 것만으로도 경험이 많다는 증거였다.
“어라?”
신속하게 상체를 뒤튼 리안이 복부에 주먹을 먹이자 리더의 두 발이 들썩 떠올랐다.
“꺼어어어……!”
무릎을 꿇은 채 위액을 게워 내는 모습에 뒤편에 있던 무리가 달려들었다.
“이 자식이 지금 해보자는 거지!”
대검을 뽑을 필요도 없었다.
“억! 억!”
베노프에게 몸으로 배운 잽으로 톡톡 두드리자 목이 덜컥 꺾이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살, 살려 주십시오!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요!”
‘뱀파이어는 아니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는 듯했다.
“솔직하게 불어. 아까 말했듯이 나는 치안대가 아니야. 판단을 잘못하면…….”
리안이 대직도를 뽑아 들자 리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진짜 몰라요! 우린 그저 옮기기만 했어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요!”
“옮겨? 뭘?”
“가, 가방요! 여기 혈액은행 앞에서 기다리면 새벽에 누가 들어갔다 나와서 가방하고 돈을 줘요. 가방을 전달하면, 돈은 우리 게 되는 거예요.”
“가방을 준 사람이 누군데?”
“어두워서 자세히는 못 봤어요.”
리안이 대검을 목에 겨누었다.
“안경을 썼어요! 날카로운 인상이고, 키는 저보다 한 뼘 정도 커요. 얼굴이 창백하고 호리호리해요.”
‘바르크 가문에 들어온 놈이 아니군.’
리안이 물었다.
“가방을 어디로 운반했지?”
“매번 목적지가 달라요. 13블록일 때도 있고, 47블록일 때도 있어요.”
아지트를 알려 주지는 않았을 터였다.
“너희들 말고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또 있나?”
“요즘은 다들 하는 것 같은데요. 세력끼리 날짜를 정해서 돌아가면서 운반해요. 솔직히 찝찝하지만, 돈을 너무 많이 주거든요. 우리도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이라고요.”
리안은 시간을 확인했다.
“돌아가. 그리고 앞으로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마라.”
이해를 못 한 듯 리더가 멍한 표정을 짓자 리안이 호랑이 눈을 치켜뜨며 으름장을 놨다.
“싫으면 여기서 죽을래?”
“아, 아뇨!”
떨어뜨린 나이프도 챙기지 못한 리더가 골목 깊숙한 곳으로 달리자 무리가 우르르 따랐다.
‘혈액은행에 드나드는 브로커라. 그렇다면 이미 치안대도 감시하에 있을 거야.’
그렇기에 리안이 나서야 했다.
불량배들을 돌려보낸 자리에서 2시간을 기다리자 완벽하게 인적이 끊겼다.
수정등마저 꺼진 캄캄한 밤, 중절모를 쓴 남자가 혈액은행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왔다.’
주위를 살핀 그가 뒷문으로 향한 뒤에야 리안은 거리로 나가 미행을 시작했다.
어둠의 일족 (3)
중절모에 안경을 쓴 남자가 혈액은행의 뒷문에서 마지막으로 주위를 살폈다.
불량배의 리더에게 들었던 인상착의와 똑같이 생긴 남자의 이름은 템페스트.
바르크 가문을 습격한 뱀파이어와 마찬가지로 알마스 계급이었다.
리안이 모퉁이 쪽에서 살피고 있자니 남자가 문을 열지 않고 그대로 벽을 투과했다.
‘뱀파이어 확정인가.’
1분 정도 자리에서 머무른 리안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뒷문에 다가갔다.
‘난감한데.’
리안에게는 열쇠가 없었다.
강철 문의 문고리를 살며시 붙잡은 리안이 팔의 완력을 미세하게 높여 나갔다.
“흐읍.”
우드득, 철이 뒤틀리면서 문이 열렸다.
‘들렸을까?’
살그머니 문을 밀고 내부의 동태를 살폈으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경험으로 갈고닦은 감에 의지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복도가 건물의 끝까지 뻗어 있었다.
수정등은 일부만 빛을 내고 있었고 어두운 복도를 따라가자 저 멀리 불빛이 보였다.
‘혈액 냉장고.’
팻말을 읽은 그가 문밖에서 들여다보니 특수 처리된 혈액 팩들이 종류별로 보관되어 있었다.
뱀파이어가 문을 향해 돌아서자 리안이 황급히 벽에 등을 기댔다.
‘들키지 않아.’
빠른 것만이 강함의 척도는 아니다.
‘기척은 없었어.’
리안의 미행은 공기의 흐름조차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느릿했고, 이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아직 최고는 아니지.’
자신의 경지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적을 속일 정도로는 충분할 터였다.
템페스트가 철 상자의 뚜껑을 열자 혈액 팩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눈으로 훑은 그가 옆에 가방을 놓고 팩을 하나씩 옮겨 담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꾸미는 거지?”
마침내 리안이 몸을 돌리며 문 앞에 서자 템페스트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
하지만 이내 평온함을 되찾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마스커를 방해한 놈이로군.”
바르크 가문을 습격했던 뱀파이어의 이름일 테고,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너도 알마스인가?”
“템페스트라고 하네. 살아온 지는 꽤 되었지. 물론 어둠 속에서 말이야.”
“뱀파이어의 사회에 관여할 생각은 없어.”
리안이 등 뒤의 대직도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안 돼. 순순히 붙잡히면 험한 꼴은 당하지 않을 거야.”
“피해?”
템페스트가 눈웃음을 지었다.
“인간이 무언가를 먹듯, 우리도 살기 위해 피를 갈구하지. 혐오감을 담아 표현하자면, 모기처럼 말이야. 인간은 모기를 죽이지만, 그것에 죄책감을 갖지는 않아.”
사막을 종단하며 수많은 신념과 충돌했던 리안이다.
‘언제나 이렇지.’
정답을 찾을 수 있었던 경우는 극히 적었고, 결과는 언제나 이긴 자의 몫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인간을 죽였고, 죽일 것이기에, 너를 체포하겠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