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5
이 상태에서 순간 이동을 시전하다가는 팔이 먼저 뜯겨 나가고 말 터였다.
“우으으으……!”
에텔라는 붙잡힌 팔을 끌어당겼다.
그림자의 장력은 마치 고무처럼 질겼지만 그녀의 완력도 만만치 않았다.
온 힘을 다해 잡아당기자 그림자의 중간 부분이 으득 하고 뜯겼다.
‘체술도 익히고 있는가? 튼튼한 아이로군.’
아케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쪽이 취향이라면 맞춰 주지.”
마법사의 전투(3)
갑작스러운 살기에 에텔라는 고개를 돌렸다. 허공의 암흑에서 엄청난 속도로 그림자가 튀어나와 그녀의 턱을 후려치고 지나갔다.
“큭!”
쓰러지는 와중에도 그녀는 망막에 남아 있는 잔상의 형태를 분석했다.
‘주먹?’
이어서 수십 개의 그림자 주먹이 날아들었다.
피할 수 없는 연타에 에텔라는 몸을 극한까지 웅크리고 두 팔로 급소를 가렸다.
타격음이 북을 치듯 연달아 터지는 와중에도 그녀의 두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흠, 이래도 버텨?’
어지간하면 뼈가 부러졌을 터. 하지만 가드 사이로 보이는 눈빛은 여전히 또렷했다.
“맷집은 인정한다만…….”
이 정도의 타격을 받고 멀쩡한 상태일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사방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들이 에텔라의 사지를 붙잡고 끌어당기자, 큼직한 안경에 금이 가고 입술이 찢어진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만 끝내자꾸나.”
아케인이 포이즌 커트를 시전하자 칼날처럼 예리한 바람이 독성을 뿜어내며 회전했다. 암흑의 힘으로 대기에 독성을 결합한 트리플 마법이었다.
아케인의 손이 휘둘리자 사람의 허리를 끊을 정도로 거대한 바람이 표창처럼 날아들었다.
무방비 상태로 지켜보고 있던 에텔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즉사의 술법.
에텔라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아아!
수풀을 쓰러뜨리면서 질주하는 음파의 굉음이 어둠의 기운을 연기처럼 분쇄시켰다.
‘이건……?’
수도사의 기술, 파마의 함성이었다.
카르시스 수도회의 선조인 카르시스 융은 거대한 깨달음은 굉음과 함께 밀려든다고 했다.
파마의 함성은 고명한 굉음을 일으켜 악의의 현상을 깨트리는 정법으로, 마치 죄를 지은 인간이 천둥소리에 놀라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크으으으!”
굉음이 휩쓸고 지나간 뒤 아케인은 인상을 찡그렸다.
피부가 저릿저릿하고 머리털이 곤두섰다.
마법이 아닌 경지다. 130년의 인생에서도 몇 번 접하지 못한 파마의 함성을 불과 20대 중반의 여성이 구사할 줄이야.
‘크크크, 이래서 못 떠난다니까.’
최고의 재능이 하나의 능력을 극한으로 갈고닦아 자신의 강함을 증명한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게 무수한 파괴와 생성, 재생성을 거듭하며 마법은 발전해 나가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것이지. 아무렴.’
아케인이 포이즌 커터를 다시 캐스팅하자 에텔라는 다급하게 힘을 주었다.
사지를 구속하는 어둠의 권능을 끊어 내고 공간 이동을 시전하는 것과 동시에 포이즌 커터가 빛의 잔상을 관통했다.
아케인은 휘파람을 불었다.
“휘우.”
강한 인간일수록 도망칠 때의 굴욕감은 큰 법이지만, 망설임 없이 후퇴할 수 있는 판단력 또한 전투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
에텔라가 있던 자리를 살피자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는지 핏물이 떨어져 있었다.
독이 스며들었다면 멀리까지 도망치지는 못할 터였다.
“아가씨가 고생깨나 하겠구먼.”
40년 만에 만난 강적에 아케인은 즐거웠다.
조너의 스피릿 존, 어둠의 권능을 끊어 내는 체술, 수도사의 지고한 경지까지, 삼위일체를 다 갖춘 천재를 본 것이다.
‘공인 6급의 마법사라고 했던가?’
모르긴 해도 교사이니 구도자이니 하는 사명에 얽매이지 않았다면 현재 직급은 더 높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케인은 어떻게 그녀가 알페아스 밑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 애송이가 존경을 받는다고?”
아케인의 눈빛이 슬퍼졌다.
“부끄럽지도 않으냐, 알페아스. 너보다 뛰어난 인간에게 존경이나 받고 있다니.”
에텔라를 찾으러 발길을 옮기자 어둠의 권능으로 휘어진 나무들이 곧게 일어섰다.
햇살이 다시 숲을 비추기 시작했다.
***
‘제길! 도대체 어디에 계신 거야?’
사드는 점점 초조해졌다.
있으리라 생각했던 숙소에 알페아스는 없었다. 그렇다고 적에게 잡히지도 않았다면, 이제 남은 곳은 한 군데뿐이었다.
“스승님!”
교장실의 문이 열렸다.
알페아스는 없었으나 사드는 포기하지 않고 책장에 진열된 책들을 살폈다.
오래전부터 알페아스가 이곳에 개인적인 공간을 꾸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기관 장치가 있을 텐데.’
빠르게 훑는 시선에 한 권의 책이 포착되었다.
고리타분한 마법 서적 사이에 끼워진 책의 제목은 ‘어둠을 보다’였다.
스승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드는 묘한 감정에 이끌려 손을 내밀었다.
책의 윗부분을 잡아당기자 묵직한 기관 장치가 돌아가면서 책장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 뒤로 터널이 뚫려 있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등 뒤에서 책장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사드는 계단을 내려갔다.
끝에 도착해 철문을 열자 수정등이 달린 작은 방이 나왔다. 낡은 선반 위에 수많은 물품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골동품 가게라고 해도 믿을 만큼 예스러웠다.
사드가 주목한 것은 벽에 걸린 여성의 초상화였다.
빼어나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알페아스에게 들은 대로 묘한 감흥을 주는 인상이었다.
‘아마도 저 시선이…….’
“누구냐?”
사드는 흠칫 몸을 돌렸다.
구석의 의자에 알페아스가 무릎을 짚고 앉아 있었다. 분노와 당혹감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평소와 전혀 달랐다.
“스승님! 역시 무사하셨군요!”
“너…… 날 알고 있나 보군.”
알페아스의 말을 듣고 상황을 직감한 사드가 다가서려던 걸음을 멈췄다.
“기억을 잃으셨군요.”
다른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아케인의 마법에 당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공인 4급의 마법사답게 기억을 완전히 잃기 전에 조치를 취하고 피신한 듯했다.
사드의 말을 들은 알페아스는 청동 거울로 다가가 자신의 모습을 다시 살폈다.
“흠, 기억을 잃은 거야? 나는 또 갑자기 미래로 와 버렸나 생각했지. 어쨌거나 잘생긴 열여덟 살 청춘이 이런 늙은이로 변해 버리다니. 상당히 짜증 나네.”
‘열여덟 살?’
사드는 입술을 질겅거렸다.
열여덟 살이라면 대략 45년의 기억이 차단당했다는 얘기다. 알페아스가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면 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기억을 잃었다라. 차라리 다행이네. 인생을 도둑맞은 건 아니니.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내가 기억을 잃은 거야?”
“어떤 마법사가 스승님을 해하기 위해 암흑 마법을 시전했습니다. 스승님은 가까스로 벗어난 것이고요.”
기억을 잃은 사람에게 설명해 봤자 불안감만 가중시킬 뿐이지만 알페아스는 개의치 않았다.
“그래? 지금 내 나이가 몇이지?”
“아, 예순셋입니다.”
“예순셋이라. 그렇다면 난 뭐가 됐지?”
“네?”
“어떤 마법적 성과를 이루었는가 묻는 거야.”
“아, 훌륭한 성품의 인격자로서 현재는 마법학교의 교장직을 역임하고 계십니다.”
알페아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미르히 가문의 빛이라고 불리는 천재가 남을 가르친다니. 자신의 성격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뭐야, 내가 교사라고?”
“네. 모두가 스승님을 따르고, 또 존경하고 있습니다.”
“푸하하하! 교사?”
알페아스는 광오한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에는 갑자기 늙어 버린 외모에 짜증이 나기도 했으나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 자신의 업적을 새롭게 들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나도 제법 철이 든 모양이네. 교장이라. 그럼 여긴 왕궁이야? 왕자님은 왕위를 계승하셨고?”
사드는 불안했다. 합리적인 성향이라고 해도 45년을 뛰어넘은 시간의 간극은 무시할 수 없었다.
“여긴 사립학교입니다. 스승님이 직접 설립하신 알페아스 마법학교입니다.”
“사립?”
알페아스의 인상이 구겨졌다.
천재적인 사유의 알페아스라면 최소한 왕족을 가르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사립이라니?
대체 45년의 인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난 몇 급이지?”
“네? 아, 그게 저기…….”
알페아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는 수많은 기록이 증명하고 있다.
스승의 기대를 배신해야 하는 사드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빨리 말해! 몇 급이야? 내 나이가 예순셋이라고 했지? 그럼 1급인가? 아니면 2급?”
사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4급입니다…….”
알페아스는 비틀거렸다. 노인의 몸으로 감당할 충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멍청한 놈! 한심한 자식!”
알페아스는 머리를 때리며 자책했다.
신이 내린 재능으로 45년을 바쳤다면 적어도 2급은 되어야 했다. 그런데 3급도 아닌 4급이라니.
어떻게 된 일일까? 얼마나 얼빠진 생각을 하며 살았기에 이 지경이 되었을까?
과거를 알아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결심을 내린 알페아스가 사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암흑 마법 풀 수 있지? 내 제자라고 했으니 광자 마법은 익혔을 거 아냐?”
“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스승님이 도와주신다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사드는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아닐까?
젊은 날의 실수로 알페아스는 무려 40년이란 세월을 죄책감 속에서 살았다. 기억을 잃은 것으로 과거를 청산할 수 있다면, 평생의 회한거리도 사라지는 셈이었다.
“꼭 기억을 되찾으셔야 하겠습니까?”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기억이니 당연히 되찾아야지. 뭔가 착각을 했던 거야. 그것만 수정하면 지금이라도 더 높은 경지로 들어갈 수 있다고.”
“스승님, 지금 상황이 납득이 안 가시겠지요. 미르히 가문의 빛이 고작 공인 4급의 교장직에 머물러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말리고 싶습니다. 스승님은 큰 실수를 하셨어요. 그리고 40년 동안 괴로움을 안고 사셨습니다. 이제는 그만 자유로워질 때도 됐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상황 또한 신이 내린 면죄부가 아닐까요?”
“…….”
열여덟 살의 정신으로 회귀한 알페아스지만 트라우마가 인생을 얼마나 파괴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아픈 기억이 있다면, 잊고 사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생각에 잠겨 방 안을 돌아다니던 알페아스는 문득 벽에 걸린 초상화를 발견했다.
“저 여자는 누구야? 여기는 내 방이 아닌가?”
“스승님 방이 맞습니다.”
“그래? 내가 저 그림을 걸었다고? 미녀도 아니고, 눈은 왜 저렇게 흐리멍덩해? 좀 모자란 여자처럼 말이야.”
알페아스에게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사드는 슬픈 감정이 북받쳤다.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저분은…….’
알페아스는 짜증 난 표정으로 돌아섰다.
이것이고 저것이고 납득이 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됐어. 기억을 되찾겠다. 내 계획과 너무 어긋난 미래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어.”
“스승님,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인생이란…….”
“어이, 너.”
말을 끊는 알페아스의 오만한 눈빛에서, 사드는 스승의 말에 거짓이 없음을 깨달았다.
저 모습이 바로 젊은 날의 알페아스일 것이다.
“내 제자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과분한 영광이고, 항상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부로 파문이다.”
“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천하의 알페아스다. 그깟 지나와 버린 기억을 되찾는다고 내가 눈이나 깜빡할 것 같아? 너같이 한심한 제자는 필요 없어.”
마법사의 전투(4)
사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스승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과거의 상처 때문만은 아니다. 기억을 되찾아도 예전의 알페아스로 되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같은 인생을 두 번 산다고 해서 언제나 도착지가 같은 건 아닐 테니까.
“아니. 내 판단은 언제나 옳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나는 나야. 마지막 기회를 주지. 암흑 마법을 풀어. 아니면 이 방에서 나가든가.”
사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알페아스가 본래의 인격을 되찾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구석의 의자를 가운데로 끌고 온 사드는 알페아스를 앉히고 정신을 집중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빛의 마법이 외부부터 침투할 테지만, 그다음은 스승님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