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50
“그러는 너는? 어째서 뱀파이어와 싸우지? 누군가를 증오해야 한다면, 그건 인간이 아닌가?”
인간은 가장 배타적인 종족이다.
“틀린 말은 아니야. 내 부모는 모두 반마였으니까. 인간의 적개심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제니아가 비웃음을 지었다.
“인간이 증오할 대상이나 되나?”
“…….”
“너도 알겠지만, 비록 반마라도 인간은 우리들의 상대가 안 돼. 그들은 그저 먹잇감일 뿐이지. 내 부모를 죽인 건, 인간이 아니라 뱀파이어다.”
달빛이 차가웠다.
“그냥 평범하게 살았어. 엄마 아빠와 인간의 피를 빨며, 가끔은 달을 보며…….”
제니아가 물었다.
“평범하다고 하니까 이상해?”
“아니. 어차피 인간도 마찬가지야.”
수많은 종족을 잡아먹으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비극을 줬지.”
“순혈?”
“놈들은 우리를 잡종이라고 불러. 놈들은 사랑을 몰라. 생식이라는 것 자체를 할 수가 없거든. 바이러스지.”
그녀의 검, 다크 블레이드가 웅 하고 떨렸다.
“순혈에게 인간이 식량이라면, 잡종은 먹을 수조차 없는 벌레지. 결국 부모님은 잡혀갔고…….”
제니아가 옷깃을 양쪽으로 잡아 뜯자 번개 모양으로 생긴 상처가 명치에 새겨져 있었다.
“나 또한 온갖 실험을 당했지. 블러드 큐를 흡입해도 이 상처는 안 없어져. 내 피부조직이 아니거든. 내 배 속을 마음대로 주물러 댔어. 그 기분 알아?”
리안이기에, 알 것 같았다.
“제노사이드의 멤버들은 모두 뱀파이어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었어. 파우러는 아내를, 그레인은 딸을…….”
제니아가 리안을 돌아보았다.
“너는 무엇을 잃었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고? 그렇다면 이 바닥을 우습게 보는 거야. 너 또한 특이체질. 만약 놈들의 손에 넘어간다면 나와 같은 꼴을 당하겠지. 버틸 수 없을 거야.”
제니아가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리안이 아니라, 이기적인 인간 전부였다.
“얼마나 힘들었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면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거야. 나에게는 세상에 있는 어떤 격언도, 어떤 시구도 역겨울 뿐이야.”
뱀파이어 헌터들의 세계였다.
“강해지고 싶었어.”
리안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내가 정말로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지. 하지만 그 사람은 나보다 훨씬 강해.”
시로네는 지금도 세상과 싸우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강해질까, 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런 의문이 떠오르면 이번에는 강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어. 많은 답이 있지만, 어느 것도 와닿지는 않았어.”
제니아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걷기로 했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그냥 걸었지.”
그렇게 1만의 마족을 베었다.
“북쪽의 땅끝에서부터 집을 향해 계속…… 그러다가 이곳에 도착했다. 이제 나는 더 강해졌는가?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가?”
대검호의 후보에 오른 자라고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단순 무식한 방법이었다.
“아직은 모르겠어. 하지만 지금도 나는 똑바로 걷고 있다. 집에 도착하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때도 강함이 뭔지 모르겠다면?”
“다시 걷는다.”
“…….”
까마득한 느낌을 너무 쉽게 말하고 있었다.
“강함이란 말이야, 너도 검사지만, 어떤 검술을 펼친달지, 근력을 높인달지, 심지어는 책을 보거나, 유명한 검사의 명언을 참고한다거나…….”
사막을 종단하며 유일하게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게 아닐 거야. 복잡하다고 느끼는 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내가 온 세상을 걸을 수 있다면, 그 앞에 무엇이 있든 전부 뚫고 나갈 수 있다면…….”
리안이 대직도를 뽑아 들었다.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있다는 뜻이고.”
부양하듯 뒤로 날아오른 제니아가 다크 블레이드를 사선으로 늘어뜨렸다.
“그 지점에서 내가 가야 할 곳은 오직 하나.”
시로네.
“주군에게 돌아간다.”
리안의 육체에 디나이가 걸리면서 관성을 무시한 동작으로 제니아에게 쇄도했다.
“타하!”
공격을 피하면서 회전한 제니아가 리안의 뒷목을 향해 세검을 휘둘렀다.
‘뭐지?’
마치 몸의 앞뒤가 바뀐 것처럼 리안이 어느새 돌아서서 대직도를 위로 쳐올리고 있었다.
맑은 철음성이 터지면서 다크 블레이드가 하늘 높은 곳으로 치솟았다.
제니아는 달빛에 반사되는 묵검의 향방을 살핀 채 멍하니 고개를 쳐들었다.
“너의 상황도, 내 상황도, 사실은 복잡한 게 아닐 거야. 뚫고 나가면 모든 게 단순해진다.”
그렇게 할 용기가 없을 때 복잡해지는 것이다.
“난 멈출 생각이 없어. 그러니 너도 멈추지 마라.”
추락하는 다크 블레이드를 잡은 리안이 유려한 동작으로 칼날을 역전시키며 손잡이 쪽을 내밀었다.
“아…….”
“내가 멈추려고 한다면, 그때는 네가 직접 이 검으로 내 목을 치면 되는 거야.”
내민 손잡이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던 제니아가 낚아채듯 다크 블레이드를 회수했다.
“흥, 제법 하네. 하지만 기억해 둬. 나는 인간도 뱀파이어도 믿지 않아. 오직 내가 믿는 사람들만 믿지.”
그녀의 상처를 매일 밤 어루만져 줄 수 없기에, 리안 또한 그편이 마음이 가벼웠다.
“가자. 뱀파이어를 쓸어버려야지.”
오두막의 지하 시설로 돌아가자 제노사이드 일행이 이른 아침을 먹고 있었다.
“어서 와. 얘기는 잘 끝났어?”
제니아가 다크 블레이드를 던지자 벽에 붙은 넓적한 자석에 쾅 하고 달라붙었다.
“함께 싸운다는 점에서는 합의를 봤어.”
여지를 남겨 둔 말이지만 제니아를 설득시켰다는 것만으로 리안이 다르게 보였다.
“이리 와서 앉게. 싸우려면 먹는 것도 중요하지.”
삶은 고기와 싱싱한 야채들이 어우러진 식단을 깔아 두고 회의가 진행되었다.
“블러드 큐를 흡입한 상태에서도 로드의 위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어.”
파세트가 말했다.
“그걸 알려면 우선 알마스 계급을 생포해야 돼. 그런데 혈액은행은 폐쇄되었다며?”
리안이 말했다.
“어쩌면 왕성 쪽에 뱀파이어가 침투했을 수도 있어. 알마스는 햇빛을 견딜 수 있으니까. 치안대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내가 물어보고 올게.”
어차피 베노프를 만나야 했다.
“괜찮겠어? 벌써 아침인데?”
“하루 정도는 괜찮아.”
제니아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앞으로는 하루 정도가 아닐걸. 너도 시차 적응을 빨리 하는 게 좋을 거야.”
뱀파이어 헌터에게 아침은 자는 시간이었다.
“그러지.”
오두막 밖으로 나가자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이었다.
‘아이린은 무사할까?’
간밤의 기억이 꿈처럼 어두웠다.
***
“로드시여, 피를 구해 왔습니다.”
로데닌의 지하 기숙한 곳에 있는 뱀파이어의 아지트에 알마스 계급의 마스커가 도착했다.
혈액은행을 전담하던 템페스트가 소멸하면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밤이 새도록 돌아다녀야 했던 그다.
흉측한 박쥐 조각이 새겨진 의자에서, 더 이상 늙을 수 없을 것 같은 노인이 시선을 돌렸다.
뱀파이어 로드, 베네딕트였다.
“크윽!”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한기를 느끼는 이유는, 그가 자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늦었구나. 그분께서 화가 많이 나셨다.”
“죄송합니다! 헌터들이 방해하는 바람에…….”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벽돌로 만든 돔형의 공간에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곁을 지키고 있던 모든 알마스가 무릎을 꿇었다.
“불사의 존재가 인간 따위에게 휘둘리다니. 뱀파이어의 수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스커도 할 말은 있었다.
“하오나 상대는 실버 본입니다. 그리고 제가 만난 인간 중에는 마하의 기사도 있었습니다.”
“마하의 기사?”
“로드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인간 중에서 클래스 원으로 분류되고 있는 자입니다.”
“클래스 원이라.”
뱀파이어는 인간의 밤을 지배하지만, 인간 중에서도 유별나게 강한 개체가 있었다.
클래스 원은 뱀파이어 분류 중에 최상으로, 알마스 1명으로는 벅찬 수준이었다.
“부대를 꾸려 주십시오. 다른 알마스를 데리고 놈들을 쓸어버리겠습니다.”
베네딕트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남은 2명의 로드를 동면에서 깨우는 것.”
3명의 로드가 동시에 세상에 등장하는 것은 2천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분간은 헌터에 신경 쓰지 말고 더욱 많은 피를 모으는 데 집중해라.”
마스커가 고개를 숙이려는 그때 뒤편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마하의 기사라면 얘기가 다르지. 내 전우인 박녀도 꺾은 인간이니까.”
베네딕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런 누추하신 곳까지 어떻게…….”
뱀파이어의 본本이자 십로회 서열 3위, 파우스트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진마를 뵙습니다!”
수십 명의 뱀파이어들이 무릎을 꿇은 가운데 그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 녀석이 우리의 마지막 퍼즐이 될 것이다.”
그들이 사는 세계 (2)
***
카샨과 자이브의 국경 지대.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의 한복판에서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책을 읽고 있었다.
검은 중절모 아래로 고불고불한 흑발이 커튼처럼 얼굴을 가렸다.
바위에 앉아 황새처럼 긴 다리를 직각으로 구부리고 있는 그가 태양을 올려다보며 숨을 내쉬었다.
“하아.”
건조한 연기가 뭉게뭉게 뿜어져 나왔다.
“또 오는가?”
시선을 내려 지평선 쪽을 바라보자, 아지랑이 사이로 검은 우산을 쓴 노인이 다가왔다.
“여전히 바이블을 놓지 않으십니까?”
마치 신이 들어다 내려놓은 듯 노인은 어느새 남자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자비가 없는 삶은 끝없는 사막과 같지.”
“신을 버리셨잖습니까?”
노인이 덧붙였다.
“신이 되기 위해.”
탁 소리를 내며 바이블이 닫혔다.
“무슨 일로 찾아왔지?”
“로드께서 당신을 찾으십니다.”
사제의 이름은 니케, 역사상 최강의 알마스라 불리는 뱀파이어였다.
“날씨가 좋군.”
뱀파이어의 특징과는 전혀 다른 구릿빛 피부의 그가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으십니까?”
뱀파이어는 자외선에 약하지만 고유의 강력 재생으로 얼마간은 버틸 수 있다.
알마스 계급이라면 평균 4시간 정도를 버틸 수 있으나 활동성은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아아아.”
갈색 피부가 타들어 간 니케가 뜨거운 무화를 내뿜자 피부가 금세 재생되었다.
‘괴물 같은 사내다.’
다른 알마스보다 10배 이상 강력한 재생 능력은 로드에 근접할 정도였다.
“버틸 수 있다고 해서 괴롭지 않은 건 아닐 텐데요.”
입술을 길게 찢은 니케가 바이팅 상태로 들어가자 송곳니 부근의 잇몸이 위로 올라갔다.
“고통 없이는 영생도 없지.”
대상을 깨무는 것을 바이팅이라고 부르며 그 상태에서 석션과 인젝션을 수행할 수 있다.
석션은 피를 빨아들이는 것이고, 인젝션은 프리온을 주입해 상대를 복종시키는 능력이었다.
“이번에는 무슨 임무지? 잡종 사냥?”
전 세계에 퍼진 반마 중 10분의 1이 니케의 손에 붙잡혀 잔혹한 실험을 당했다.
“진마께서 오셨습니다.”
니케의 시선이 처음으로 노인을 향했다.
“뱀파이어의 모든 약점을 없애고 이 세계를 접수한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2명의 로드를 깨우기 위해 피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내가 할 일은?”
“자이브로 오십시오. 우리가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노인의 얼굴이 흉측한 박쥐의 얼굴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땅을 파고 들어갔다.
“…….”
니케가 자이브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약속의 땅인가.”
***
리안이 치안본부에 도착하자 베노프가 목이 빠지도록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안색이 안 좋은데.”
“대장님도 얼굴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요. 혈액은행 사건은 들으셨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