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51
“말도 마. 신장에서 감쪽같이 우리를 속였어. 치안감님도 듣지 못했다더군.”
“그 현장에 제가 있었습니다.”
“자네가?”
리안은 간밤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뭐? 헌터를 만났다고?”
“네. 뱀파이어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더군요. 언제나 우리보다 빨랐던 이유입니다.”
“놈들은 어디에 있지?”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하긴, 허가되지 않은 활동을 하는 자들이니.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자네도 그 녀석들 쪽에 붙으려고?”
“저는 이방인입니다. 왕성의 일에는 연루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스밀레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기회였다.
“자네가 그렇다는데 말릴 수는 없겠지. 그래도 정보 교환은 가끔 하자고.”
의외로 너무 순순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죠?”
“사실은…… 자네의 심정이 이해가 가. 아무래도 왕성에 내부 첩자가 있는 모양이야.”
베노프가 은밀한 제안을 했다.
“조만간 왕성에서 세계 각지의 헌터들을 고용할 거야. 숨어 있는 쥐를 잡으려면 고양이를 풀어야지.”
“내가 아는 자들은 참가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야. 자네가 알고 있는 헌터, 분명 뱀파이어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그랬지?”
리안도 감을 잡았다.
“조건만 맞으면요.”
“왕성에서 헌터 고용 면접이 있어. 고위 관리들도 참관하러 올 테고. 내부 첩자를 적발할 절호의 기회지. 이번 일을 도와주면 그쪽 헌터의 일은 불문에 부치겠네.”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고, 리안이 아는 제니아라면 분명 승낙할 터였다.
“얘기는 해 보죠. 대신 신변 보호는 확실히 해 주셔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직접 나서지 않을 겁니다.”
“알아. 나도 첩자가 누군지만 알면 돼. 자네와 나만 아는 사실이니 발설될 일은 없을 거야.”
베노프와 헤어진 리안은 미행에 주의하며 제노사이드의 아지트에 도착했다.
아침에 잠이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자 리안은 모두를 소집했다.
“……이런 제안이 들어왔어.”
그레인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부 첩자라. 확실히 왕성 쪽에 뱀파이어가 붙어 있으면 일이 어려워지지.”
파세트가 말했다.
“놈들이 우릴 봐주는 듯한 느낌은 불쾌하지만요. 어쨌든 우리 일하고도 연관이 있잖아요?”
대부분 동의하는 눈치였으나 결국 판단은 실버 본인 제니아의 몫이었다.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그녀의 성격을 아는 동료들이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할까? 리안이 우리 일을 발설했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빠.”
카테인이 변호했다.
“어차피 헌터에 대해서는 저들도 알고 있어. 실버 본도. 그냥 만났다는 것만 말했잖아.”
“그 실버 본이 여기에 있다는 걸 말했잖아!”
파우러가 말했다.
“어디에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지. 제니아, 그건 억지야. 우리도 뱀파이어의 아지트를 찾지 못해서 계속 헤매고 있잖아. 왕성이 공개적으로 헌터를 고용한다고 했어.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제니아는 굽히지 않았다.
“알아, 우리에게 좋은 제안이라는 거. 그러니까 이건 내 문제야. 감정의 문제라고.”
리안이 말했다.
“불쾌했다면 사과하지. 강요하는 건 아니야. 네가 원한다면 저쪽과는 연락을 끊을게.”
“어린애 취급하지 마! 좋은 제안이라고 말했잖아! 그냥, 나는…….”
“그래, 무섭겠지.”
제니아는 인간도, 뱀파이어도 아니다.
“뭐?”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과 손을 잡는다는 게 두려운 거잖아. 하지만 손잡을 필요 없어.”
“흥, 말은 쉽게 하는군. 나를 이용하려고 들면? 앞으로 인간의 개가 되어서 싸우게 되면?”
“그때는 내가 벤다.”
모두가 리안을 돌아보았다.
“자이브 왕이든, 신장이든, 치안대든, 약속을 어긴다면 내가 너를 대신해 싸울 거야.”
제니아는 리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하지? 너도 인간이잖아? 날 위해 인간을 죽이겠다고?”
“검을 들고 생각하면 늦어. 언제나 생각은 그 이전에 끝나 있어야 하지.”
리안의 철학이었다.
“날카로운 쇠붙이를 들고 할 수 있는 건 사랑이나 희생이 아니야. 내가 만든 모든 죽음에 책임을 지는 것. 이미 그렇게 결정을 내려 버렸어.”
“너는 대체…….”
뱀파이어 헌터로 살아오며 제니아 또한 수많은 죽음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어쩌면 외면했을지도 모르는 그 죽음들.
하지만 리안은 책임지겠다고 했다.
“정말로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그랬지? 그 사람은 어떻게 하고? 평생 도망자가 된다면 어떻게 할 건데? 그때도 나를 위해 싸울 거야?”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이미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내 신념이다.”
너무 까마득한 느낌이라서 제니아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인간 따위, 믿지 않아.”
“제니아.”
파세트가 나서려는 그때 제니아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네가 책임지겠다고 했으니, 이번만큼은 도와줄게. 반드시 내 옆에 있어야 해.”
“그래.”
리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니아가 새침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배고파. 밥이나 먹자.”
그레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제니아.’
누구나 아픈 기억이 있지만, 반마로 살아야 했던 그녀의 고통은 남들보다 길었다.
‘리안이라면 저주받은 그녀의 인생도 책임져 줄 수 있을지 모르지.’
아니, 오직 리안이기에 가능했다.
***
제노사이드 팀은 밤마다 로데닌 거리를 돌아다니며 뱀파이어의 은신처를 찾아 헤맸다.
베시카 계급의 뱀파이어 몇 명을 생포했으나 그들조차 상부에 대해서는 정보가 전무했다.
“제길! 쥐새끼들처럼 피해 다녀!”
의료실에서는 뱀파이어의 모든 것을 알아내려는 그레인의 잔혹한 실험이 시행되었다.
“크아아아! 죽여 버릴 테다!”
블러드 큐를 흡입하는 제니아의 표정은 무심했으나, 일행은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제니아도…….’
저런 비명을 질렀던 것일까 하고.
“역시 안되겠어.”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듯, 제니아가 일어나며 말했다.
“인간들과 손을 잡는 수밖에.”
“아직도 고민하고 있었어? 이미 하기로 했잖아? 헌터 면접이 내일이라고.”
“시켜서 하는 것과 자발적으로 하는 건 다르지. 리안, 확실히 준비는 된 거겠지?”
리안이 후드를 건넸다.
“이 옷을 쓰고 들어갈 거야. 신원 검사는 없을 거고, 우리는 가장 높은 곳에서 지켜보면 돼.”
베노프의 권한으로 해 줄 수 있는 한계였지만 리안이 곁에 있으니 믿는 수밖에 없었다.
파세트가 배웅했다.
“조심히 다녀와. 오늘은 출동 없으니까 끝나면 맛있는 거 먹고 와도 돼.”
“놀러 가는 줄 알아?”
“그래도 단둘이잖아. 오붓한 시간 보내라고.”
파세트의 속삭임에 제니아도 싫지는 않은지 대답을 미루며 몸을 돌렸다.
“후후, 하여튼 귀엽다니까.”
왕성의 헌터 면접장으로 가는 길에 리안이 후드를 쓴 제니아에게 물었다.
“괜찮아?”
“버틸 만한 것 같아. 오늘은 태양도 강하지 않고.”
그럼에도 남들의 이목이 사라진 지점에서는 블러드 큐를 꺼내 꼬박꼬박 흡입했다.
“있어.”
왕성에 도착한 순간부터 느껴졌다.
“뱀파이어가.”
“개체 수는?”
제니아가 눈을 굴렸다.
“그렇게 많지는 않아. 3명에서 4명. 하지만 전부 알마스야. 괜찮겠어? 이 정도 숫자면 너도 버티지 못할 텐데.”
“누가 그래, 못 버틴다고?”
로데닌에 들어와 모든 전투에 최선을 다한 리안이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이었다.
본질은 야차.
일대를 초토화시킬 생각이라면 알마스 계급이라고 해도 제니아는 지킬 수 있을 터였다.
베노프에게 형식적인 검문을 받은 두 사람은 무기를 소지한 채로 콜로세움으로 들어갔다.
경비대가 포진한 곳이 그들의 자리였고 왕성 관계자들이 건너편 좌석에 앉아 있었다.
“보여?”
“어, 2명.”
제니아가 블러드 큐를 다시 흡입했다.
“저기, 젊은 비서관. 뱀파이어야. 그리고 VIP석에 앉아 있는 늙은이. 저자도 뱀파이어.”
자연스럽게 그늘에 몸을 두고 있었다.
“전하께서 나오십니다!”
자이브의 국왕 메이어가 단상에 올랐다.
근위대 ‘신장’이 다리를 모으고 허리를 45도 뒤튼 특유의 자세로 뒤편에 포진했다.
‘하나같이 강자들이군.’
메이어가 선포했다.
“왕국의 수도에 마의 무리가 들끓는 바, 각지의 유능한 헌터들을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모쪼록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자이브의 평화에 일조하기 바란다.”
철문이 올라가고 100명에 달하는 헌터들이 콜로세움의 중앙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면면을 지켜보던 리안이 거친 숨소리를 듣고 제니아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후드에 감춰진 얼굴이 경악에 잠겨 있었다.
‘저 녀석.’
그녀의 시선에 들어온 자는 매를 닮은 인상에 흑발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사제였다.
두 자루의 철편을 둥그렇게 말아 어깨에 걸쳤고 턱 밑에는 십자가의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니케에에…….”
제니아의 이빨에서 으득 소리가 났다.
그녀의 부모를 죽인 원수이자 자신을 실험실로 몰아넣은 장본인이었다.
그들이 사는 세계 (3)
한편, 관리들이 있는 좌석에는 바르크 가문의 가주와 외동딸 아이린도 참석해 있었다.
“아이린, 그만 돌아가라. 이건 무거운 사안이야. 네 나이에 볼만한 것이 아니다.”
아이린은 고집을 부렸다.
“나도 이제 알 거 다 안단 말이야. 그리고 나를 지킬 호위대인데 내가 보는 게 당연하지.”
오늘 모인 헌터들은 실력에 따라 차등 분류되어 적재적소에 배치될 예정이다.
다만 뛰어난 실력자들이 고위 관리의 개인 경호원으로 들어갈 확률이 높다는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안 왔나? 바보같이…….’
아이린이 찾고 있는 사람은 리안이었다.
‘우리 가문에 눈도장을 찍을 기회인데. 오기만 하면 특별히 발탁해 주려고 했더니.’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어라?”
아쉬운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는데 경비대 쪽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있다!’
리안이 콜로세움의 꼭대기에서 면접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저씨, 아니, 오빠!”
아이린이 두 팔을 머리 위로 흔드는 그때, 리안의 옆에 있던 제니아가 소리쳤다.
“이 개자식아!”
말릴 겨를도 없이 계단을 박차고 내려온 그녀가 콜로세움으로 뛰어들었다.
‘죽여 버리겠어!’
니케의 채찍에 수십 조각으로 찢어진 부모님의 시체가 머릿속에 생생했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그녀 또한 이름 모를 실험실에 끌려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끔찍한 실험을 당했다.
“이야아아!”
제니아가 니케를 향해 다크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순간 철썩, 하고 시야의 절반이 날아갔다.
“뭐……!”
계단을 내려오던 리안이 소리쳤다.
“제니아! 물러서!”
아마 당사자는 깨닫지 못했겠지만, 니케가 휘두른 채찍에 왼쪽 눈이 파열된 상태였다.
‘엄청난 반응 속도. 강한 놈이다.’
태양이 지배하는 낮이라는 점이 더욱 섬뜩했다.
“리안!”
베노프가 앞을 가로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