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53
메이어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근위대장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다릅니다, 전하. 정신의 힘을 빌리지만 어디까지나 육체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힘입니다.”
신적초월이라는 이름이었다.
“육체? 사람이 저런 파괴력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자네도 나에게 보여 준 적이 없지 않나.”
정답은 단순했다.
“저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메이어의 시선이 리안에게 향했다.
‘신진 검사 중에 최고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신장조차 넘어서는 실력이었나?’
자이브 왕국에 필요한 인재였다.
“따로 독대를 하고 싶구먼. 말을 전하게.”
근위대장은 난처한 눈치였다.
‘돈, 명예,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자였으면 이미 여기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제국의 황제조차 가지지 못한 검사였다.
“크르르르!”
짐승의 소리를 내는 수백 마리의 박쥐들이 다시 뭉치면서 니케의 형상으로 변했다.
‘소멸할 뻔했다.’
박쥐 의태가 아니었다면 몸통이 뚫리는 게 아니라 아예 흩어져 버렸을 것이다.
“너희들 인생에서 최고의 행운이겠군.”
채찍을 거두어들이며 니케가 벽으로 물러서자 제니아가 한 발을 내디뎠다.
“어딜 도망가려고!”
헌터들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침착해. 이대로 물러가 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비켜! 저 녀석은 내 부모님을……!”
“알아. 하지만 이제 곧 어둠이 찾아온다. 너도 하루 이틀 싸운 거 아니잖아?”
헌터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제길!”
헌터들이 긴장을 하는 와중에도 니케의 시선은 오직 리안에게 쏠려 있었다.
‘진마께서 특별히 언질을 하실 만하군.’
왕성에 침투하여 헌터들을 죽이고 국왕 메이어를 암살하라는 게 지령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마하의 기사를 생포하라는 명령도.
‘가능하면이라고?’
어느 것도 해내지 못한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니케가 리안을 가리켰다.
“다시 만날 것이다.”
니케가 모습을 감추자 리안은 이미 말라붙어 재로 변한 쇼벨의 사체에서 대직도를 뽑아 들었다.
“이것으로 내부 첩자는 제거했군요. 앞으로는 작전이 유출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리자 베노프가 황급히 뒤를 쫓아오며 말했다.
“잠깐. 그냥 가려고?”
“이곳에 남아 봤자 좋을 게 없어요. 앞으로는 단독으로 행동하겠습니다.”
법이 인정하지 않겠지만, 야차의 능력을 확인한 지금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잠깐 기다리게.”
근위대장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헌터와 왕국치안대의 통합 작전을 펼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근위대가 직접 관리하는 것으로 관료들의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는 전략이었다.
“통합 작전?”
헌터들이 술렁거렸다.
물론 리안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만, 왕국의 비호를 받으면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헌터 중 1명이 소리쳤다.
“통합 작전이라면, 어떤 지원을 해 줄 수 있죠?”
이미 국왕의 승낙을 얻은 근위대장이 거칠 것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뱀파이어를 몰아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 건, 탄, 병장기, 약물, 작전 병력도 지원해 주겠다.”
제니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단, 조건이 있네.”
그녀의 예상대로 근위대장이 리안에게 똑바로 걸어와 손을 내밀었다.
“마하의 기사. 자네가 이번 작전에 함께한다는 가정하에 모든 지원을 약속하지.”
포섭 단계의 일환이었다.
“복잡한 건 질색입니다. 저는 저대로 혼자서 뱀파이어를 추격할 생각입니다. 왕국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근위대장은 리안을 보낼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지원은 물거품이 되네. 뱀파이어의 실력을 알고 있을 텐데? 저들이 개죽음을 당해도 상관없다는 건가?”
“개죽음?”
리안이 조소를 지었다.
“스스로 냉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근위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참을 수 있다면 정말로 분노하지 않은 겁니다. 평범한 잣대로 저들을 평가하지 마시죠.”
헌터들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들의 시선을 느낀 근위대장은 실수를 깨달았으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칠왕성의 근위대장을 너무 우습게 만드는군. 자네를 강압적으로 묶어 둘 수도 있어.”
“멍청해서 돌아가는 방법 따위는 모릅니다.”
리안이 대직도를 등에 꽂으며 말했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요.”
길을 막아서겠다면 카샨의 종단선이 사막을 넘어 자이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헌터들이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무기로, 숫자로 싸우는 게 아니야. 아무것도 없을 때에도 나는 놈들과 싸웠다.”
“맞아. 조건 따위를 거는 사람들하고는 함께 일할 수 없어. 나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헌터들이 한목소리로 소리쳤다.
“자네를 따르겠네. 우리를 인도하게.”
이것으로 결정이 난 셈이었고, 리안은 가볍게 묵례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뜻을 잘 알겠다.”
국왕 메이어가 말했다.
“자네에게 무리한 제안을 했군. 헌터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그러니 이번에는 헌터의 입장이 되어 왕성을 지원해 주지 않겠나?”
자이브의 입장에서도 뱀파이어는 하루라도 빨리 몰아내야 하는 족속들이었다.
“내가 듣기로 뱀파이어를 상대하려면 특별한 무기가 필요하다고 하더군. 거래를 하지. 노하우를 전해 주면 왕성의 자금력으로 대량생산을 하겠네.”
이번만큼은 리안도 거절할 구실을 찾지 못했다.
‘제니아.’
유일하게 생각을 가로막는 건 이곳에 오기 전에 그녀와 한 약속이었다.
리안과 눈을 마주친 제니아가 입술을 비죽거렸다.
“팀명은 제노사이드로 할 거야.”
미소를 지은 리안이 베노프를 돌아보았다.
“우선 헌터들을 아지트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회의를 통해 나온 안건은 치안대장님을 통해 연락드리죠.”
“그래. 기다리고 있겠네.”
그나마 리안과 친분이 있는 베노프가 왕성 쪽의 책임자를 맡는 게 좋았다.
***
제노사이드의 아지트에 도착한 헌터들은 예상보다 첨단을 달리는 기술력에 감탄했다.
“호오? 이런 식으로 개조했나?”
파우러가 총열이 좌우에 2개 달려 있는 묵직한 건을 장전하며 말했다.
“메가 건 Z-88. 가스 충전식. 인체 공학적 설계. 뱀파이어의 살점을 발기기에는 이보다 좋은 게 없지.”
이제는 물자를 걱정할 필요가 없기에 파우러가 직접 타깃을 세워 두고 선을 보였다.
“갈겨 버리는 거야!”
진동이 커서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초당 열두 발의 은탄을 쏘아 대는 속도는 위력적이었다.
“자, 그리고 이건 산탄식인데…….”
신이 나서 화력기를 소개할 무렵, 다른 헌터들도 전공 분야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약물기의 안티셀을 확인한 어떤 헌터는 10년을 앞서가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금속기를 다루는 헌터는 전체 중에서 고작 3명밖에 되지 않았다.
제니아가 말했다.
“왕성에서 옵스큐라B를 얻을 수 있지만, 특별히 무기를 바꿀 필요는 없겠지.”
금속기를 다루는 자는 무기보다는 사용자 본인의 신체 능력이 더욱 중요했다.
“나도 손에 익은 무기를 바꿀 생각은 없어. 파손에 대비해서 여분을 만드는 정도면 돼. 그보다는 작전을 세우는 데 치중하자고.”
국가를 막론하고 헌터 조직의 리더는 대부분 금속기의 전공자들이었다.
도끼를 휘두르는 자가 말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군. 실버 본이 있는데도 로드의 위치를 추적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야.”
“모르겠어. 로데닌 도시를 샅샅이 뒤졌지만, 로드로 느껴지는 파장은 포착되지 않아.”
창을 다루는 자가 말했다.
“반경 2킬로미터라고 했지? 그렇다면 답은 하나야. 반경 바깥에 숨어 있다.”
리안이 물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지하. 깊이 2킬로미터 아래의 지하라면 제니아도 탐색이 불가능할 테지.”
“아하.”
“여태까지 실버 본의 능력에만 의지한 게 맹점이었던 거야. 그래서 말인데…… 내가 주로 쓰는 방법이 있어.”
제니아가 돌아보자 창을 다루는 자가 즐겁다는 듯 입가를 찢으며 말했다.
“잡종 사냥.”
자정이 넘은 무렵에도 클럽 하우스의 내부에서는 시끄러운 악기들의 연주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제노사이드 1진, 리안과 제니아를 포함한 8명의 헌터들이 그 앞에 도착했다.
‘클럽 하우스, 블러드 나이트.’
이름만 보면 뱀파이어의 소굴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으나 이런 장소는 로데닌에 흔했다.
“여기에 잡종들이 있단 말이야?”
“순혈이 있다는 건 잡종들이 있다는 거야. 며칠간 조사한 결과 이곳이 가장 유력해.”
카테인이 주사기를 점검하며 말했다.
“확실히 맹점이군. 실버 본이라고 해도 반마의 위치는 잡을 수 없지. 하지만 순혈과 연결 고리가 있을까?”
“분명 도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어. 로드와 관련이 있다면 순혈들만으로 뭔가 하기에는 벅차지.”
창을 다루는 자는 확신하는 눈치였다.
“잡종들은 순혈과 달리 생식능력이 있어. 그래서 노는 것도 퇴폐적이지.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귀를 기울여 보면 음악 소리에 섞여 수많은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죽지도 않고 생식도 가능하니, 터부 같은 것도 없어. 잡종이란 일종의 성병 같은 것들이야.”
파우러가 핀잔했다.
“거, 계속 잡종, 잡종.”
제노사이드가 반마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이유는 제니아 또한 순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 미안하네. 내가 실수를…….”
창을 다루는 자가 황급히 사과했으나 제니아는 고개를 저으며 클럽 하우스로 다가갔다.
“상관없어.”
설령 자신이 잡종이라고 해도.
“뱀파이어를 죽일 힘이 없을 때에는 나 자신을 혐오하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으니까.”
진정한 분노란 그런 것이다.
“그렇군. 그래도 앞으로 달리하겠네.”
제니아의 말에 숙연함을 느낀 헌터들이 각자의 무기를 단속하며 문을 노려보았다.
“시작할까?”
리안이 문을 열자 쿵쿵 하는 드럼 소리가 탈출하듯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
뱀파이어의 은신처에 도착한 니케가 알마스들의 시선을 받으며 본청으로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위대한 진마시여.”
십로회 서열 3위, 백귀 야차 파우스트가 넓은 홀을 걸어 다니며 책을 읽고 있었다.
“회복은 됐나?”
니케가 송구한 듯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를 죽이기에는 충분합니다.”
“그래? 마하의 기사라고 해도?”
니케의 눈에 살기가 치솟았다.
권의 율법에 직격당하고 4일이 지나서야 겨우 기운이 회복되었던 그다.
“당신이 주신 어둠에 적은 없습니다.”
“소멸을 각오해야 할 것이야.”
진마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자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수많은 알마스들이 몸을 떨었다.
“조만간 3명의 로드가 한자리에 모인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우리 것이지. 다만…….”
유일한 방해물은.
“오젠트의 핏줄이 없다는 가정하에서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진마시여. 그가 아무리 강해도 현재의 로드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물론 어둠 속의 자신도 포함해서였다.
“인간을 단정 짓지 마라. 약할 때는 한없이 나약해 보이지만, 강할 때는 한계를 모르고 강해지는 게 인간이다.”
“송구하오나, 뱀파이어의 권능을 초월한 인간을 아직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있다.”
1만 년도 더 지난 과거에.
“내가 화신을 깨닫기 전…….”
천국의 동굴에 거꾸로 매달린 박쥐가 빛의 세계를 무심히 감상하던 시절.
“1명의 인간이, 거인의 왕과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