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57
강의 일족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으면 자신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 같아서…….
“오빠, 나 배고파. 우리 뭐 좀 먹고 가자.”
오젠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하여튼 먹성은.”
작은 모닥불을 피워 두고 손질한 물고기를 나뭇가지에 끼워 노릇노릇하게 구웠다.
“맛있어.”
“어차피 늦은 거, 천천히 먹어. 체할라.”
고개를 끄덕이는 스밀레였으나 먹는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그런데 오빠, 아까 그거 있잖아. 막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 그것도 검술이야?”
“몸 바깥으로 관성을 빼내는 기술이지. 상당히 어렵다. 그런데 왜?”
“나도 그거 가르쳐 주면 안 돼?”
오젠트는 실소를 터뜨렸다.
“네가? 기본적인 체술도 익히지 못했으면서 퍽이나 할 수 있겠다.”
강의 일족에도 유능한 전사들이 많지만 어째서인지 스밀레는 재능이 요만큼도 없었다.
“아니야. 정말 열심히 할 거야. 응? 가르쳐 주라.”
“몸의 감각을 전부 깨우는 거야.”
오젠트는 손바닥을 펼쳤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하지만 자신의 몸을 익히기 위해서는 더 깊이 들어가야 돼.”
“어떻게?”
“극한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거야. 먹으면서 봐.”
스밀레가 우물거리는 가운데 오젠트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으나 10분 정도가 지나자 비로소 느껴졌다.
“아하?”
오젠트의 다섯 손가락이 미약하게 구부러져 있었다.
“알겠지? 느리게. 더 느리게. 주먹을 쥐는 한 번의 시간을 10시간 동안 분절하는 거야.”
“나도 해 볼래.”
스밀레가 손바닥을 펼쳤다.
“으음…….”
동생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던 오젠트가 덧붙였다.
“멈추면 끝이야.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오직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계속하는 거야.”
“알았어. 느리게라고.”
스밀레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아! 안 되겠어! 또 멈춰 버렸어. 이거 의외로 어렵네. 오빠는 이런 걸 어디서 배운 거야?”
“배운 적 없어. 혼자서 생각하다가 개발한 방법이야. 육체의 감각을 가장 작은 단위로 쪼개는 거지.”
오젠트에게는 스승이 없다.
“굳이 스승을 꼽자면…….”
스밀레가 눈을 깜박거리며 대답을 기다렸으나 오젠트는 떠날 채비를 했다.
“늦었어. 돌아가자.”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기에 스밀레도 군소리 없이 자리를 정리했다.
“스밀레.”
마을로 들어가는 오솔길 앞에 물색의 머리를 곱게 묶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아빠.”
강의 일족의 추장 다미안은 오젠트와 스밀레가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오젠트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자 다미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 골치로구나.’
내색을 한 적은 없다.
친자는 아니라도 오젠트 또한 그의 아들이었고, 무엇보다 강의 일족 최고의 전사였다.
아니, 전사라고 해야 할까?
패도적인 검술을 구사하는 강의 일족에 비해 오젠트의 움직임은 너무나 섬세하고 정밀했다.
‘피는 달라도 같이 자랐거늘, 이렇게 다르게 성장할 수가 있는 것인가?’
오젠트가 외톨이가 된 데에는 일족의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검의 재능도 한몫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리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오젠트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식성 좋은 강의 일족에게 저녁 식사 시간은 화목한 자리지만 오늘만큼은 분위기가 무거웠다.
“오젠트, 혼례 전 예식이 내일이다. 산의 일족 사람들이 올 거야. 물론 스밀레의 약혼자도.”
“알고 있습니다.”
예식을 올리기 전에 신부 측이 신랑의 가족을 초대해 7일 동안 잔치를 베푸는 게 관습이었다.
“어떤 사람일까, 내 약혼자는? 잘생기지는 않았어도 강한 사람이면 좋겠다. 오빠처럼.”
“스밀레.”
오젠트가 주의를 주었으나 다미안의 심기는 이미 어지럽혀져 있었다.
“오젠트, 앞으로 어떡할 생각이냐? 강의 일족은 대대로 강을 수호해 왔다. 가장 강한 전사의 지휘 아래 말이야.”
가장 강한 것은 오젠트지만 개인주의적인 그를 추대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떠나겠습니다.”
이번만큼은 다미안도 놀랐다.
“떠나겠다고?”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
추장의 딸이 다른 부족과 결혼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나 아무래도 빠른 감이 있었다.
‘나 때문이겠지.’
“떠나라는 얘기가 아니다. 너는 강한 전사고 내 아들이야. 다만 강을 지키는 일은…….”
“대대로 강의 일족이 맡아 왔죠. 저에게는 자격이 없습니다. 생각해 둔 것도 있고요.”
“생각이라면?”
“여러 곳을 다니면서 실력을 더 쌓고 싶습니다.”
“경계인이 되겠다는 거냐?”
오젠트의 실력이라면 연옥에서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겠지만, 아버지로서 마음이 아팠다.
‘결국…… 이번에도 도망치는 것인가?’
그런 아이였다.
가지고 싶은 게 있어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그저 혼자서 삭였다.
그런 장남이 듬직하기도 했으나, 스밀레에 대한 마음을 알고 있는 지금은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긴, 이것이 순리일지도 모르지.’
처음부터 양자로 삼지 않았다면 모를까, 두 사람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오빠! 갑자기 떠나다니? 여태까지 나한테는 그런 말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잖아?”
“미안하다.”
스밀레가 언성을 높였다.
“미안하면 끝이야? 오빠는 항상 그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절대로 말 안 해 주잖아. 나는 오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무슨 생각을 하냐고?
‘빌어먹을!’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면, 떠날 때 떠나더라도 시원하게 외치고 싶었다.
‘스밀레, 나는 너를……!’
그래서는 안 된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오젠트는 식기를 내려놓았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어디 가? 나랑 얘기 좀 해.”
스밀레의 말을 무시한 채 밖으로 나가는 동안에도 다미안은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참아야 한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오젠트는 금기로부터 한 걸음도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검, 검을 잡아야 해. 분노를 다스려.’
분노야말로, 그의 유일한 스승이었다.
스밀레, 스밀레 (4)
***
‘나는 무엇에 화를 내고 있는가?’
의식을 잃은 채로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던 리안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빠르게 다가오는 건물이 눈에 보였다.
눈에 보였으나 생각은 그가 경험한 것이 아닌 어떤 것으로 가득 차서…….
‘아니, 내 경험인가?’
누군가의 기억이 지나갈 때마다 세포 단위에서 너무나 선명한 자극들이 전해지고 있었다.
가로막는 물체를 뚫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이, 리안은 달리는 자세 그대로 충돌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니케의 기억에 의하면 제노사이드 팀은 대부호 미겔의 저택으로 잡혀갔을 터였다.
진마 파우스트, 일화의 술, 뱀파이어 로드와 이미 깨어났을 또 1명의 로드.
“제니아.”
그녀의 이름을 내뱉는 순간 우주 끝에서 날아온 듯한 환청이 폭발했다.
“스밀레.”
쾅! 쾅! 쾅!
과자처럼 부서져 가는 벽들이 사라지며 대부호 미겔의 저택이 눈앞에 보였다.
그 시점에서 생각은 다시 1만 년을 뛰어넘어 천국의 어떤 장소에 그를 데려다 놓았다.
‘오젠트.’
아주 오래전에 소심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신경질적이었던 1명의 검사가 살았다.
세상을 구한 것도, 특정 시대를 상징할 만큼 대단한 사건을 일으킨 것도 아니지만.
‘무엇에 화를 내는가?’
1만 년 이상의 세월을 견딘 천국의 존재들은 그 검사를 이렇게 회고한다.
야차.
***
밤이 늦은 시간, 오젠트는 일족이 검술을 연마하는 수련장에 들어갔다.
“후우. 후우.”
그가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주위를 밝히는 촛불이 꺼질 듯이 흔들거렸다.
‘참아. 참는 거야. 그냥 참아.’
분노란 무엇인가?
마음에서 피어오른 불길이 정신과 육체를 녹여서 용광로의 쇳물처럼 뒤죽박죽 섞이는 느낌이었다.
“아아……!”
세게 다문 이빨이 절로 벌어지면서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검술.’
오젠트는 도망칠 곳이 필요했다.
사방이 불길로 막힌 마음의 지옥에서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있어야 했다.
‘최고가 되자.’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마치 검의 정점에 오르면 스밀레가 자신에게 올 것 같아서.
‘이런 망상이나 하고 있으니 스밀레에게 음흉하다는 소리나 듣는 것이지.’
그래도 상관없었다.
‘열 걸음을 걷자.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
전방의 열 걸음을 눈으로 잰 오젠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물론 실제로 걸음을 옮겼지만, 10분이 지나도록 그의 발바닥은 떨어지지 않았다.
‘천천히. 극한으로 느리게.’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그저 서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오젠트는 무수히 많은 전신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끝없이 해체된다.’
신경이 잘게 쪼개지면서 공기의 입자마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우주다.’
오직 육체에 담긴 것만이 나의 것이고, 그렇기에 무한히 자유롭다.
“오빠?”
수련장을 찾은 스밀레가 빼꼼 문을 열었다.
‘스밀레.’
예민한 감각이 그녀를 포착했지만, 신경이 질주하는 엄청난 속도에 휩쓸려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익숙한 일이었기에 스밀레는 수련장의 구석에 앉아 오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게 도대체 무슨 수련이야?’
일족의 검사들과 달리 오젠트의 수련은 지루해서 보다가 지쳐 돌아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할 얘기가 있었기에 스밀레는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렸다.
“…….”
30분도 지나지 않아 졸음이 쏟아졌고, 어느새 그녀는 꾸벅꾸벅 고개를 떨어뜨리다가 깊은 잠에 빠졌다.
“응?”
다시 깨어났을 때는 수련장 밖에서 새벽을 알리는 새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끊어진 기억이 연결되면서 제자리를 되찾은 시선 속에 오젠트는 없었다.
“우와.”
그녀의 고개가 돌아가고, 밤사이에 열 걸음을 옮긴 오젠트가 두 다리를 모은 채 기립하고 있었다.
“오빠.”
그저 서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젠트는 완벽한 정지에 도달하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멈춘다.’
열 걸음을 옮기는 동안 한 번도 멈춘 적이 없기에 가속도는 인간의 측정 범위를 벗어나 있었고.
‘멈춰.’
그것을 육체로 통제하는 것은 가히 빛의속도를 느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촛불이 위에서 아래로 짓눌리면서 불꽃이 꺼지는 순간 스밀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완벽한 정지.
뇌가 분석하지 못할 뿐, 그녀의 눈은 분명 그것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