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59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야아아!”
레이드가 수직 베기를 하는 순간 오젠트가 몸을 뒤틀면서 올려치기 자세를 취했다.
‘차라리…….’
여기서 검을 위로 쳐올리면 레아드의 목이 부러질 테지만, 그는 황급히 동작을 멈췄다.
오젠트에게 한차례도 공격을 받지 않은 레아드가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았다.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이 쪼다 녀석아.”
어째서 공격을 하지 않는지 알 수는 없지만 조롱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만하자. 더 이상은 의미가 없어.”
두 사람만의 속삭임은 바깥으로 퍼지지 않았지만 미묘한 분위기에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의미가 없다고? 산의 일족과 강의 일족의 자웅을 겨루는 대결이다. 네가 그러고도 전사냐?”
“나는 강의 일족이 아니다.”
오젠트가 추장의 양자라는 것은 머리의 색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 자식은 뭐야?’
자신의 맹공을 가볍게 흘리는 실력자임에도 소심의 극치에 신경질적인 성격.
‘아무리 핏줄이 아니라고 해도 매제에게 이렇게 굴어?’
한 가지 가능성이 번뜩였다.
“설마 너…….”
스밀레를 살피고 돌아온 레아드의 시선이 오젠트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원래 창백했던 얼굴에 핏기가 사라져 있었다.
“이런 변태 새끼가!”
갑작스러운 외침에 강의 일족과 산의 일족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스밀레만이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너 같은 놈은 때려죽여 주마!”
이미 스밀레가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는 레아드가 분노를 토해 내며 목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 순간 가장 분노한 사람은 오젠트였다.
‘죽여 버린다!’
수치심에서 태어난 분노가 이성을 날려 버리면서 엄청난 속도로 검이 휘어들어 갔다.
육안으로 구별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레아드는 동작의 100분의 1도 움직이지 못한 상태였다.
참아.
마음의 소리가 들리면서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자를 죽이면…….’
살인자가 된다.
스밀레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 아버지는 얼마나 슬퍼할까? 모두의 비난을 견딜 수 있을까?
‘참아! 제발 참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수천 가지의 생각이 빠르게 이동하는 목검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으아아아아!”
강풍이 몰아치면서 목검이 우뚝 멈추었다.
“크윽!”
어느새 도달했는지도 모르는 목검을 눈앞에 둔 채로 레아드가 경직된 순간.
쿠르르르르릉!
그의 뒤편에 있는 숲에서 나무들이 모조리 베이며 같은 방향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오젠트도 알지 못했다.
‘뭐지?’
그의 감각은 육체의 정점에 달해 있지만 베지도 않은 것들이 베이는 현상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분출했다.’
율법.
아직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개념을 생각하는 사이 레아드가 이성을 잃었다.
“이 개자식아!”
죽일 각오로 후려친 목검이 오젠트의 얼굴 앞에서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퍽 하고 터져 나갔다.
“오빠!”
사람들은 오젠트가 직격을 맞은 것으로 생각했고 스밀레도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너…… 도대체 뭐야?”
인간의 상식을 벗어나는 기괴함은 오직 당사자인 레아드만이 느끼고 있었다.
‘거대함.’
마음속의 분노가 이치로 승화되어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
최상위의 거인만이 가능한 신적초월이었다.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목검을 땅바닥에 던진 오젠트는 다미안에게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자리를 피했다.
멀어지는 아들을 바라보며 다미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또다시 도망치는 것인가?’
딸의 결혼식을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쯤은 아들이 울분을 토해 내기를 바랐다.
‘하긴, 그것이 너지.’
그렇게 영원히 도망칠 수 있다면, 평생 참으며 살아가는 것도 인생의 하나였다.
“오빠에게 갔다 올게.”
스밀레가 오젠트의 뒤를 따르려 하자 다미안이 딸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지 마라.”
“왜? 내 오빤데.”
다미안은 차마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스밀레는 그것조차 싫다는 듯 매몰차게 손을 뿌리치며 돌아섰다.
“다들 겁쟁이야.”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답답할 따름이었다.
스밀레가 찾을 수 없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간 오젠트는 명상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느리게. 더 느리게.’
스밀레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잊어버리자.’
오늘 밤에 떠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차마 마주할 수 없는 두려움을 피해 도망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구나.’
레아드와의 대결을 통해서 도달한 경지가 깨달음을 통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아아.’
마치 뇌가 열린 것처럼, 의식하지 않아도 끝없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오젠트의 몸이 저절로 떠오르고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두 손이 올라갔다.
‘나는…… 육체를 초월했다.’
천재의 각성이었다.
‘그래, 이것으로 됐어.’
그에게 있어 검이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닌 불행을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
‘이것으로 된 거야.’
눈물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어느덧 날이 바뀌어 있었다.
“짐을 싸야지.”
차마 스밀레를 만날 용기가 없는 이유는 레아드와 함께 밤을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혼례를 치르기 전까지는 엄연히 남남이지만, 여태까지 지켜본 바에 의하면 대부분 초야는 당일 밤에 치러진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했으나 애써 그런 생각을 외면한 채 산을 내려가려는 그때.
“오빠.”
숲의 구석에 스밀레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밀레.”
자신이 듣기에도 한심한 목소리였다.
“어떻게 알고?”
스밀레가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가리켰다.
마하의 율법에 의해 숲의 모든 나무들이 부러지기 직전까지 휘어져 있었다.
“이건…….”
“아니, 그딴 얘기는 됐어.”
평소와 달리 화난 말투였다.
“어떻게 된 건지 말해.”
결국 들키고 만 것인가?
“뭘?”
“나에게 물을 일이 아니라는 건 알잖아? 이제는 오빠가 얘기해야 할 차례야.”
오젠트는 사력을 다해 변명했다.
“미안하다. 내가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레아드에게도 미안하다고 전해 줘. 그리고 결혼식은 꼭…….”
“오빠, 그냥 나 결혼하지 말까?”
오젠트의 얼굴이 굳었다.
“무, 무슨 말이야, 갑자기? 일족의 명운이 달린 결혼식을 이런 식으로 취소하면 안 되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고 있는데 스밀레가 다시 찌르고 들어왔다.
“어젯밤에 내가 뭘 했는지 알아?”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야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어.”
오젠트의 눈빛이 바뀌는 것을 지켜보던 스밀레가 크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로 나에게 할 얘기 없어?”
마지막 기회를 주는 듯했다.
‘나에게 다음이라는 게 있을까?’
무언가를 바꾸려면 오직 지금밖에 없다는 확신이 머릿속에 꽂혔다.
‘고백해야 한다. 더 이상 검술도 나를 지켜 주지 못해.’
지금 이상의 경지는 없을 것이었다.
“스밀레.”
오젠트가 스밀레의 어깨를 붙잡았다.
“레아드와 결혼해.”
어쩌면 레아드가 사람을 잘 본 것이다.
‘나는 쪼다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심한 놈이었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 그것이 일족과 아버지를 즐겁게 하는 일이야. 네가 결혼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해져.”
“뭐가 그렇게 복잡해? 전부 책임지면 되지.”
오젠트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그런 멋진 말을 할 수 있는 거냐?’
고요하지만 모든 것을 담으며 흐르는 거대한 강, 스밀레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잘 지내라, 스밀레. 오빠는 이제…….”
오젠트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뭐지?”
우우우우우우웅.
공기가 진동하면서 청명한 음파가 산 전체를 휘감으며 이동하고 있었다.
‘바이브레이션?’
연옥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천사의 고유진동음이었다.
분노 (2)
거대한 소리가 산 너머로 멀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제길!”
오젠트가 먼저 땅을 박차고 나가고 스밀레가 뒤를 따랐다.
도착했을 때는 강의 일족과 산의 일족 모두가 천사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왔구나.”
1각부터 3각 마라에게 둘러싸인 천사가 몸을 돌렸다.
하늘을 비행하는 천사를 먼발치에서 지켜본 적은 있으나 이토록 가까이에서 대적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건 뭐야?’
연옥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육해공의 괴물들을 모조리 합쳐도 천사에게는 발끝에도 못 미칠 듯했다.
“오젠트! 도망쳐!”
무릎을 꿇고 있던 다미안이 소리쳤다.
“스밀레를……! 컥!”
마치 기계처럼 청동색의 몸을 가지고 있는 1각 마라가 다미안을 발로 짓눌렀다.
“아빠!”
뒤늦게 스밀레가 도착하자 오젠트는 즉각 검을 뽑아 들고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멈춰, 스밀레. 내 뒤에…….”
오젠트는 놀란 표정으로 말을 멈췄다.
‘어느새?’
착시처럼 천사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스밀레의 뒤편에 서서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흐음, 상당히 괜찮은데?”
오젠트는 두려웠다.
천사에게 죽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이 세상이, 정해진 시간의 밀물이 두려웠다.
‘도망치고 싶다.’
모든 것으로부터.
“나는 정재의 천사 아이로페.”
목소리는 뒤에서 들렸으나 천사는 어느새 스밀레를 데리고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 있었다.
“연옥에서 일화의 술 대상자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일화의 술?”
이단들의 입을 통해 일화의 술이 무엇인지는 그들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