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6
“하하! 내 몫을 신경 쓸 깜냥은 되고? 쓸데없는 걱정 말고 빨리 하기나 해.”
‘제발.’
사드가 빛의 마법을 시전하자 알페아스의 캄캄한 기억에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왔다.
졸음이 밀려들고, 알페아스의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이것이…… 나의 삶.’
18세에서 멈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명과 암, 선과 악(1)
“으으으.”
포톤 캐논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카니스는 덤불 위에 쓰러져 신음했다.
복부에 퍼진 충격파로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린의 전공이 정신 계열이라면 카니스의 전공은 암흑 마법의 물리 계열이었다.
힘을 흡수하는 것 또한 물리이기에 그가 흡수할 수 있는 충격량은 상당히 높았다. 성인이 휘두르는 해머도 다크 스킨 앞에서는 어린애 주먹질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기습적으로 당한 포톤 캐논의 위력은 그의 예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이었다.
카니스의 그림자에서 탁한 목소리가 올라왔다.
“키키키, 제대로 당했구나, 카니스.”
“하비……. 내가 뭐에 당한 거지?”
“알 수 없지. 하지만 내가 느끼기론 질량이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질량이 복부에 박힌 거야.”
“빛은 질량이 없어.”
상극의 속성을 공부하는 건 전투 마법사의 기본이기에 카니스도 광자화 이론에 대해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에너지는 있어. 그리고 에너지는 질량으로 변환 가능하지. 네가 구사하는 암흑 마법도 그런 식으로 작동하잖아.”
“그것 또한 닫힌계에서 이루어지는 수학적 환원이야. 뭔가 하나 빠졌어. 이 정도의 위력을 내려면 질량과 에너지를 매개하는 또 하나의 무언가가 있어야 해.”
탁한 목소리는 심드렁했다.
“놈은 찾았나 보지 뭐.”
카니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와 그림자는 엄연히 다른 개체이지만 정신을 공유하는 하나이기도 했다. 카니스의 불쾌한 감정을 읽었는지 탁한 목소리가 마지못해 인정했다.
“강한 놈이야. 독특한 놈이고. 마법학교에도 이런 인재가 있었군. 아케인도 꽤나 분하겠어.”
그제야 만족한 카니스는 몸을 일으켰다.
적의 실력을 파악하는 것은 승리로 가는 첫 번째 단추였다. 처음으로 만난 호적수에 체온이 올라갔다.
“이길 수 있겠지, 하비?”
“크크크. 카니스, 네가 원한다면…….”
카니스의 발밑에서 늘어난 그림자가 창처럼 긴 두 팔을 한껏 벌리며 말했다.
“우리가 이기지 못할 적은 없어.”
***
시로네는 숲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카니스가 다크 스킨을 시전한 것까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눈에만 새겨진 잔상이 경계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예상대로 카니스가 숲에서 걸어 나오자, 전투를 지켜본 네이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젠장, 멀쩡하잖아?”
이루키가 말했다.
“네이드, 해가 진다.”
밤이 되면 암흑 마법의 위력은 극대화될 것이기에 이루키는 조명 마법을 시전했다.
네이드까지 힘을 보태자 2개의 발광체가 상공에서 빛났다.
그럼에도 마법사의 고속 전투를 감안하면 시야가 어두운 상태였다.
“쳇, 이걸로 만족해야 하나?”
그때 카니스가 조명 마법을 시전했다.
3개의 발광체가 빛났으나 네이드의 기분은 오히려 불쾌했다.
“무슨 생각이야? 조명 마법이라니.”
카니스가 말했다.
“뭐가 어때서? 어떤 계열이라도 광자화 이론은 필수로 배우잖아. 순간 이동의 기본이니까.”
“그런 뜻이 아니잖아! 암흑 마법사에게 빛은 약점일 텐데? 왜 제 살을 깎아 먹냐는 거야.”
카니스는 폭소를 터트렸다.
“역시 마법학교 출신들은 멍청하고 고지식하군. 약점이 없는 마법은 없어. 중요한 건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이지. 조명 마법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아린, 한 발 더 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듯, 신중한 아린도 순순히 조명 마법을 시전했다.
“…….”
4개의 발광체가 모이자 제법 낮과 같은 밝기였다.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한 카니스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독특한 전지를 가진 빛의 마법사. 그의 조명 마법이라면 원하는 무대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어이, 너도 한 발 쏴 주지? 기대하고 있는데.”
시로네는 조명 마법을 배우지 못했다. 순간 이동에서 광자 출력, 포톤 캐논까지 기술적 진화를 이루는 동안 다른 마법에 투자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끼어들려는 순간, 시로네의 머리 위로 발광체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조명 마법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밝은 빛에 네이드와 이루키의 표정이 멍해졌다.
“…….”
광자 계열을 깊이 연구했으니 이론상 시전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마법을 즉각 성공시켰다는 것은 집중력이 엄청나다는 뜻이었고,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분노였다.
친구들의 생각대로 시로네는 카니스의 스피릿 존으로 성큼 들어갔다.
전교생을 인질로 붙잡아 놓고 좋은 대결 운운한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이제 됐지? 뜻대로 해 줬으니 뭐든지 해 봐.”
카니스는 가장 밝게 빛나는 시로네의 발광체를 살폈다.
학생 수준이 아닌 이유 또한 빛에 질량을 담는 전지가 작용했을 터였다.
“흥.”
하지만 상관있을까?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자신은 더 강하다.
라둠에서 생존하면서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그였다.
“뭐든지? 그 말 후회하게 될 거다.”
카니스의 그림자가 급류처럼 질주하자 시로네는 하늘에서 포톤 캐논을 연사했다.
이제는 충격을 줄 수 있기에 공격 좌표는 카니스 본체였다.
7개의 섬광이 지상을 폭격하자 카니스는 다크포트로 주위의 어둠을 타고 이동했다.
워낙에 빨라서 수십 마리의 두더지가 동시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듯했고, 그때마다 처박히는 포톤 캐논에 정상이 초토화되었다.
‘잡았다!’
시로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사위가 어둡다면 잡을 수 없었을 테지만 5개의 발광체가 떠 있는 상태에서 다크포트를 사용할 공간은 한계가 있었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곳을 향해 예측 사격을 하자 다음 순간 카니스가 정확히 모습을 드러냈다.
회피는 불가능. 또한 다크 스킨으로 막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됐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때, 카니스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불쑥 일어섰다.
마치 인간의 실루엣을 길게 늘어뜨린 것 같은 외형이었다.
그림자는 시로네의 섬광을 양손과 배로 받아 냈고, 잠시 후 손바닥 사이에 끼인 광자가 풍선이 터지듯 파편으로 찢어지며 소멸했다.
당황한 시로네가 지상으로 착지하자 카니스의 그림자가 더욱 크게 일어섰다.
“크크크, 화려한 등장. 나 어땠어?”
얼굴이 작은 반면 어깨와 가슴은 거대했고, 허리는 범처럼 가늘고 팔은 원숭이처럼 길었다. 방패처럼 크고 넓적한 손바닥에 칼날처럼 길고 가는 손가락이 달려 있었다.
신체 밸런스가 아름답다는 것은 인위적인 창조물이라는 뜻이었다.
“어때, 카니스? 내가 별거 아니라고 했잖아. 어이, 애송이. 네가 쏜 광자는 정말 맛이 좋더구나.”
지적 능력을 가진 그림자의 등장에 모두가 황당한 가운데 카니스가 소개했다.
“암흑 마법의 정수, 최강의 마도 생물체 하비스트다.”
“마도 생물체?”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연금술과 마도공학이 결합된 마도 생물학의 진수.
하지만 눈앞의 그림자는 어떤 책에서도 소개된 적이 없는 종류였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어떤 마도 생물체도 지적 능력은 가지지 못했어.’
하비스트가 웃었다.
“키키키! 저 녀석 완전히 얼이 빠졌는데? 이거 왜 이래, 마도 생물체 처음 본 사람처럼?”
경솔하고 괴팍한 괴물일까? 아니, 오히려 가장 인간에 가깝다고 봐야 했다.
카니스가 말했다.
“하비스트는 빛에 면역이다. 또한 나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지. 내가 죽지 않는 한 소멸하지 않아.”
“고럼, 고럼! 우리는 둘이자 하나! 하나이자 둘이지! 물론 얼굴은 내가 더 잘생겼지만 말이야. 진짜라니까! 그런데 보여 줄 방법이 없네. 케헤헤헤!”
쉬지 않고 입을 놀리는 하비스트였지만 동시에 카니스와 연결된 정신 채널에서는 현재의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실제로 하비스트는 카니스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났는데, 바로 아케인의 지식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이다.
-카니스, 숲으로 들어가자. 여기서는 우리가 불리해.
-쉽게 따라와 줄까?
-인질이 있으니 급한 건 저쪽이야. 그리고 루카스는 상당히 강하다. 그를 움직이게 한다면 우리 쪽의 전력이 상승할 거야.
-마음에 들지 않아. 저런 놈에게 도움 따위 받고 싶지 않다고. 아까도 네가 말리지 않았으면 한판 붙었을 거야.
-널 위해서야, 카니스. 놈은 강한 데다 멍청하지도 않아. 수치의 총량만 봤을 때는 네가 밀린다. 소모적인 감정싸움에 너를 휘말리게 할 수는 없어.
찰나의 속도로 뇌파 교환을 끝낸 카니스는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라둠에서 그들을 괴롭혔던 악당들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카니스, 심장박동 수가 1.7배 빨라졌다. 아드레날린 수치가 증가하면 판단력이 흐려져. 내가 한 말 때문에 화난 거라면 사과할게.
전투력 손실을 막기 위한 마도 생물체의 판단이 카니스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냉철한 하비스트가 있는 한 그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야. 네 판단이 옳아. 시작하자.
스피릿 존과 상대의 간격을 계산하며 걸어가는 카니스의 눈이 시로네를 담았다.
고생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외모에 속이 뒤틀렸다.
‘내가 악당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카니스의 발밑에서 하비스트와 다른 또 다른 그림자가 예리한 톱날의 형태로 쇄도했다.
‘나에게는 너희들이 악이다!’
몸이 풀린 시로네도 이제는 어둠의 권능 정도에 휘둘리지 않았다.
엄청난 두께의 광자 출력으로 지면을 깨끗이 닦아 버린 뒤 오른손에 포톤 캐논을 띄워 집어 던졌다.
카니스를 가로막은 하비스트가 섬광을 몸으로 받아 내자 퉁 하고 튕기며 숲속으로 밀려 나갔다. 하지만 충격을 받기는커녕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시로네를 도발했다.
“크크크, 들어와.”
암흑 마법사에게 숲은 최적의 장소지만 시로네는 지체 없이 숲으로 돌진했다.
동시에 머리 위로 수십 발의 조명탄을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갈겨 댔다.
명과 암, 선과 악(2)
백여 발의 조명탄이 숲을 뚫고 올라오자 네이드와 이루키의 표정이 멍해졌다.
“저 자식, 제대로 발동 걸렸네.”
“본인도 알고 있는 거겠지. 시로네가 저놈을 막지 못하면 우리가 지는 게임이야.”
그렇게 말한 이루키는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자리를 박찬 루카스가 숲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루키의 눈이 부릅떠지고, 그의 앞에 아토믹 봄이 폭발했다.
“큭!”
엄청난 반응 속도로 상체를 젖힌 루카스가 10미터를 후퇴하며 이루키를 노려보았다.
“너 이 자식…….”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것은 우리도 생각하고 있으니까.”
“어처구니가 없군.”
아무리 철이 없다고 해도 마법사 수련생 따위가 B급 범죄자를 상대하겠다고 나서다니.
루카스가 쌍검을 뽑자 이루키는 그의 적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생물체에서 뿜어지는 활성화에너지일 터였다.
‘훨씬 강해졌어. 스키마다.’
이론상 스키마는 신체의 모든 영역을 강화시킬 수 있지만 막무가내로 사용했다가는 신체 밸런스가 붕괴되어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신경계에 너무 많은 강화를 하면 근육이 신경전달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파열하게 되는 식이었다.
따라서 스키마 유저들은 이미 검증된 강화 루트를 차용하는데, 이를 빌드라고 부른다.
현재 루카스의 빌드는 미토콘드리아 빌드로, 생명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를 강화시켜 에너지대사율을 높이는 방식이었다.
체력 소모가 빨라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신체 기능을 전반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기에 범용성이 탁월하고, 무엇보다 안정적이었다.
그래서 대다수 스키마 유저들이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대중적인 빌드이기도 했다.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이루키는 네이드를 돌아보았다.
차가운 느낌의 얼굴이, 5년 전의 그날을 떠올리게 했다.
두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충돌했던 그날 밤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졌었다.
콰르르르릉!
이루키는 기억하고 있다. 그날의 빗소리와 천둥소리, 네이드의 일그러진 얼굴을.
지금 네이드가 웃으며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그는 두 번 다시 예전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그 얼굴을, 네이드는 증오했다.
‘가능하면 싸우게 하고 싶지 않아.’
가능하면.
하지만 전교생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 앞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정을 내린 이루키가 말했다.
“조심해. 스키마 유저야.”
“알아. 화력으로 밀자. 초반에 제압하는 거야.”
루카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조심이라는 말은 웅덩이를 피할 때에나 쓰는 말이지 조만간 칼날에 목이 베일 상황에서 입에 담을 게 아니었다.
“하아, 요즘 애들이란…….”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진 기습 전의 신호.
하지만 이루키와 네이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따라서 순간 이동으로 회피한 이루키의 가슴팍이 베인 것은 순전히 속도에 의해서였다.
“허허, 피했어?”
이루키는 가슴팍을 살폈다.
옷이 예리하게 베여 있고 가슴에 그어진 선에서 핏물이 흘렀다.
네이드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