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65
‘뭐지?’
그렇기에 현재의 리안이 특정 대상에 의문을 가진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검?’
하나의 개념이 강제적으로 그와 맞물렸다.
‘나는 를 가진 리안이다.’
이데아?
정보에 개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귀찮았던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이걸로 최고의 일검을 내질렀지.’
무엇 때문에?
‘최고의 검사가 되기 위해.’
아주 멋진 기분이었기에 ‘이제 그만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잠자리에 누워 ‘이제 그만 죽어 볼까?’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약한 의지였다.
‘왜?’
육하원칙 중에 가장 불필요하면서도, 그것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의문.
‘왜 내가 돌아가야 하지?’
리안의 개념은 그 시점에서 방향을 바꾸어 현실의 정반대편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흘러드는지 모르는 한 줄기의 빛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까마득히 멀 수도 있지만, 어쩌면 바로 앞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의 바깥에서 들어오는 신호.
그렇기에 지금 생각하고 있는 리안의 개념 또한 저 신호의 작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
리안은 빛이 들어오는 곳으로 가 보려고 했지만 전진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리안이다. 나는 리안이다. 나는 리안…….’
포기하지 않을수록 되먹임은 강해졌고 급기야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리안! 리안! 리안! 리안! 리안! 리안!’
생각을 하는 자신마저 잃어버리게 될까 봐 두려웠지만 그는 끝없이 전진했다.
오젠트 리안.
결국 하나의 개념이 생각 속에서 끝없이 점멸하면서 그의 전부를 이루었다.
모든 것이 명확해지면서 그의 시점이 의지와 상관없이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검을 들고 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어두운 세계의 끝에 펼쳐져 아른거리고 있었다.
‘내가 저렇게 생겼나?’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비로소 무언가를 실행할 최초의 의지가 발생했다.
‘그래, 나는 오젠트 리안.’
그림자는 파괴되지 않는다.
“시로네의 검이다.”
소리로 정의되는 육성의 파동이 발생하자 그가 있던 세계가 폭발하듯 창백해졌다.
“리안……. 이렇게 죽어 버리면…….”
제니아는 유리구에 힘없이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진마 파우스트는 처단했지만 소중한 동료를 잃은 헌터들의 심정도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제, 제니아.”
그때 카테인이 전방을 가리켰다.
리안이 사라지고 난 자리의 공기가 투명하게 아롱거리더니 한 인간의 육체를 형상화했다.
마치 텅 비어 있는 틀에 무언가를 채우듯 알록달록한 색감이 점점이 찍히기 시작했다.
인간의 육체였다.
뼈를 이루고, 신경과 근육이 그 위를 뒤덮고, 마침내 피부마저 빠른 속도로 재생하며 리안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 어떻게?”
기쁘다는 생각보다도 믿을 수 없다는 충격이 헌터들의 뇌리를 사로잡았다.
“크으으으으!”
끔찍한 고통이 현실의 영역에서 밀려들자 리안이 이를 악물며 무릎을 꿇었다.
‘진짜 싫은 기분이군.’
시로네가 이모탈 펑션의 한계에서 되돌아왔을 때의 기분이 이랬을까?
“리안…….”
제니아의 목소리를 들은 리안이 대직도를 붙잡고 천천히 일어섰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자태는 가히 당당했으나 알몸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아, 아니…….”
제니아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앞에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충격에도 버티던 유리구의 절반이 매끈하게 잘려 나가자 그녀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시선에 들어오는 건 이미 의식을 잃은 채로 서 있는 리안의 모습이었다.
“리안! 정신 차려! 리안!”
제니아가 달려가 흔들어 봤으나 마치 무언가에 고정된 듯, 쓰러뜨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우리를 풀어 줘!”
퓨직스 머신의 잠금장치를 해제하자 헌터들이 리안의 상태를 살폈다.
“어, 어떻게 이런…….”
정신을 잃은 상황에서도 발동되는 율법은 가히 1톤을 들어 옮기는 무게였다.
겨우 리안을 자리에 눕힌 카테인이 상태를 확인했다.
“어떻게 된 거야?”
“다행히 숨은 붙어 있어. 하지만 맥박이 약해. 빨리 아지트로 옮기는 게 좋겠어.”
“빨리 옮긴다고 해도…….”
지금 있는 헌터들만으로는 리안의 무게를 감당하는 게 고작이었다.
“저기다! 저기에 있어!”
저 멀리에서 수백 명의 치안대가 달려왔다.
치안대장 베노프의 얼굴을 확인한 뒤에야 제니아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런 위력이라니…….’
리안의 검이 파괴한 풍경을 확인할 때마다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세계 최강의 검호.’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리안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 터였다.
***
니플헤임.
모든 것이 얼어붙은 망자의 세계 깊숙한 곳에서 이미르의 눈꺼풀이 번쩍 열렸다.
그것만으로도 거대한 빙판이 진동을 일으켰다.
‘때가 되었는가?’
공생하는 생물체인 수오이를 통해 앙케 라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은 것은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
‘오젠트.’
1만 년 전에 약속한 대로 그의 핏줄이 또다시 파계의 세상을 열게 된 것이다.
“리안!”
입술이 움직이자 수오이들이 고체 분자를 통과해 빠르게 멀어지고…….
드드드드드드!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얼음의 바다 표면에 쩍쩍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승부를 가리자!”
오젠트가 세상을 떠난 이후 이미르 또한 파계의 원칙을 깼다는 이유로 이곳에 갇혔다.
“세상 밖이 어떻다느니, 이 세계를 지켜야 한다느니, 잔뜩 겁에 질려서는!”
이미르가 주먹을 쥐며 몸을 일으켜 세우자 주위의 얼음이 수증기로 증발했다.
“뭐가 됐든 부숴 버리면 그만!”
엄청난 존재감이 중력을 뒤틀자 얼음의 바다가 뒤죽박죽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강하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내가 바로……!”
쿠구구구구!
수백 톤에 달하는 얼음덩어리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면서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이미르다!”
충격파가 퍼지면서 에너지의 형태 그대로 빙벽을 밀어 버리자 굉음이 천국 전체를 뒤흔들었다.
거인의 왕 이미르.
본체 부활.
파계 (3)
***
리안은 꿈을 꾸었다.
아니, 어쩌면 유전자 단계에서 담겨 있던 신호들이 꿈을 통해 이미지로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
이미르는 완벽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스밀레를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가 버렸는가?”
그의 일격에 당한 유일한 부상은 어금니 하나.
본체인 그라면 언제든 재생할 수 있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건 후련하지 않아.”
하다가 만 느낌은, 여태까지 수많은 약자들을 파괴했던 허무함보다 더욱 불쾌했다.
온몸이 박살 날 정도로 싸우고 싶었다.
피를 토하며, 악을 지르며,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해방해도 어려울 정도의 싸움.
이미르의 천적이라면 이카엘의 3각 마라 아슈르 외에도 몇 명을 손에 꼽을 수 있지만, 힘과 힘으로 맞부딪쳐 자신을 몰아붙인 사람은 오젠트가 처음이었다.
‘이 세계는 너무 가볍다.’
태양을 향해 손을 뻗은 이미르가 강하게 움켜쥐자 공기가 좌우로 흔들렸다.
“진짜라는 느낌조차 들지 않아.”
만지는 순간 채 감각을 음미하기도 전에 부서져 버리는 종잇장으로 만든 세계.
그에게 있어 강적이란 자신의 모든 감각을 선명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죽인 건가?”
오젠트에게 일격을 얻어맞았던 카리엘이 흙먼지가 묻은 몸으로 다가왔다.
성광체가 빛을 발하자 부상당한 육체가 금세 복구되었지만 표정만은 좋지 않았다.
“아니, 잠들었다.”
“무슨 뜻이야?”
이미르는 스밀레를 가리켰다.
“생물의 경계선을 붕괴시켜 역진화했어. 원형으로 돌아가 여자에게 스며든 거지.”
“불가능한 일이야.”
역진화로 수렴하는 세포의 끝에는 생물의 아버지라 부르는 아르고네스가 있었다.
“아르고네스의 법칙에 위배되는 일이야. 어떤 생물도 자력으로 뮤커스가 될 수는 없다.”
특징 없는 생물 그 자체를 뮤커스라고 부른다.
“불가능한 일이지.”
이미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일을 초월해 도달했다. 형태라는 것은 특정 신호의 그림자에 불과. 태양이 떠 있는 한…….”
이미르가 자신의 그림자를 짓밟자 쿵 소리를 내며 땅이 한 뼘이나 들어갔다.
“그림자는 파괴되지 않지.”
다만 변형될 뿐이다.
“이것이 한낱 인간의 몸으로 파계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 놈을 부수려면 그림자가 아니라…….”
이미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을 부숴야 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카리엘이 차가운 눈을 뜨며 스밀레에게 다가갔다.
“차라리 잘됐군.”
어쨌거나 파계의 요소는 스스로 사라졌고 스밀레를 죽이면 더 이상의 위험 요소는 없다.
“이 여자를 죽이겠다.”
천사의 사법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목을 잘라 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기다려.”
이미르가 카리엘을 멈춰 세웠다.
“그 여자는 죽일 수 없다.”
오젠트와 그렇게 약속한 이유는 언젠가 다시 돌아와 자웅을 겨루기 위해.
“건방 떨지 마라, 이미르.”
카리엘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너 또한 이미 파계의 원칙을 어겼어. 앙케 라께서 지시한 일이라도 나를 막는다면 중한 벌을 받을 것이다.”
“상관없어.”
오젠트에게 맞은 부위가 아직도 욱신거렸다.
“당분간은 뭘 해도 허무할 것 같거든.”
대천사의 살기를 가볍게 받아 내는 모습에 카리엘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쳇!”
하지만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오젠트와 달리 순수한 무력만으로 파계에 도달한 거인이라면 승산이 없었다.
‘현재 이미르를 막을 수 있는 건 라뿐이다.’
카리엘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그때, 스밀레가 작은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으음.”
잠시 뒤척이다가 번쩍 눈을 뜬 그녀는 3미터 높이에 있는 이미르의 얼굴을 확인하고 벌떡 일어났다.
“오빠!”
오젠트는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알몸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뒤로 물러서며 이미르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누구죠?”
“거인의 왕.”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 스밀레가 비로소 물었다.